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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0월호 Vol. 423
목차 열기케이글로벌발레원 <인어공주>
<인어공주>는 단순한 동화 속 존재가 아닌, 인간이 가진 가장 깊고 순수한 정신의 상징이다.

푸른 바다 아래서 피어난 인어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는 200년의 세월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공감을 일으키고 상상력을 자극한다. 1837년 안데르센이 동화로 이 이야기를 세상에 내놓은 이래, 발레와 오페라, 애니메이션과 영화, 뮤지컬로 변주되며 예술가와 관객의 사랑을 두루 받아 온 이유다.
그 생명력이 한국 창작 발레에도 스며들었다. 김선희 전 한국예술종합학교(이하 한예종) 무용원 교수가 안무·연출한 <인어공주>다. 2000년 <인어의 노래>라는 15분 분량 소품이 2001년 전막 작품으로 재탄생했던바, 올해 음악·안무·의상 등 전면적 개정을 거쳐 새롭게 선보인다. 수많은 발레 유망주를 키워 냈다는 의미까지 더해진 이 작품의 관전 요소를 연출가 김선희와 서면 인터뷰를 통해 짚어 봤다.
마린스키의 품격 담아, 환상의 바다 재현
창작 발레의 기반이 약한 우리나라에서, 이 작품은 남녀노소 쉽게 즐길 수 있는 원작 서사의 힘을 빌려 오랜 시간 관객과 만났다. 1막의 바닷속 환상의 세계와 2막의 육지 위 궁정 무도회가 대비를 이뤄 원작의 낭만과 비극을 충실히 펼쳐 낸다.
줄거리는 동화 내용을 그대로 따른다. 인어공주는 난파선 사고로 바다에 빠진 왕자를 구해 준 후 사랑에 빠지고, 자기 목소리를 잃는 대신 인간의 다리를 얻는다. 그러나 끝내 왕자의 사랑은 얻지 못한다. 왕자를 칼로 찌르면 자신은 살 수 있다는 마지막 선택의 갈림길에서도 칼을 버리고 물거품이 되는 쪽을 택한다.
김선희는 “가슴에 아릿한 아름다움을 남기는 이야기”를 발레로 옮기는 데 다른 고민은 필요치 않았다. “인어공주는 단순한 동화 속 존재가 아닌, 인간이 가진 가장 깊고 순수한 정신의 상징입니다. 그녀를 통해 사랑의 자유로움, 표현의 당당함, 배려와 책임, 실패와 절망, 끝내 승화하는 인간의 복잡한 감정을 담고 싶었습니다.”
작품이 그저 뻔한 동화의 재현에 머물지 않는 까닭은 여러 차례 개작을 거듭하며 연출과 안무의 완성도를 높인 덕분이다. 특히 1막은 바다 생물들이 펼치는 다채로운 군무로 관객을 사로잡는다. 살랑살랑 헤엄치는 물고기, 장난기 어린 유유자적 거북이, 바닥에 납작 붙은 불가사리까지. 마치 디즈니 영화 <인어공주>의 경쾌한 ‘언더 더 시Under the Sea’를 무대 위에 구현한 듯, 깊은 바닷속을 들여다보는 듯한 판타지를 선사한다.
올해는 이 장면에 새로운 의상도 더했다. 사실적이고 직관적으로 바다 생물을 묘사한 반면, 이번 무대에선 상징적 특징은 강조하되 빛과 그림자가 어우러진 듯 유려한 선과 색채, 질감을 강조한 의상을 선보인다. 러시아의 명문 마린스키극장 소속 타티아나 노기노바가 디자인했다. 김선희는 “마린스키 발레단은 가장 큰 예술적 영감을 준 곳이자 동경의 대상이었고, 이번 작품에서 그 품격을 조금이나마 담아내고 싶었다”고 했다.
원작에 없는 특별한 오브제 ‘산호 피리’도 신비로운 느낌을 더한다. 인어공주만이 연주할 수 있는 환상의 악기이자, 인어공주가 왕자를 구해 준 존재임을 확인해 주는 둘 사이의 매개체다. 첫 만남과 마지막 이별의 순간에 피리의 애달픈 소리가 더해질 예정이다.
발레 유망주·창작 발레의 희망
작품의 정서를 지배하는 음악은 이번에 완전히 새롭게 바뀐다. <인어공주>에서 네 번째 시도하는 버전이다. 러시아 지휘자 겸 작곡가 안톤 룹첸코Anton Lubchenko가 만든 오리지널 음악을 이번 공연에서 세계 초연으로 직접 지휘한다. 김선희는 “작품을 만들고 지속적으로 다듬어 나가는 것은 내 사명”이라며 “한국 발레의 미래를 향한 소중한 한 걸음이 될 것”이라고 했다. 연주는 한예종 출신 연주자들로 구성된 실내악 오케스트라 ‘아카데미아 클라시카 크누아’가 맡는다.
음악에 맞춰 대대적인 재안무도 거쳤다. 100분 미만이던 공연은 135분(휴식 시간 포함)으로 늘었다. 예컨대 2막에서 인어공주를 냉대하는 귀족 무도회 장면을 추가해 인간 사회의 양면성을 반영하고, 인어공주의 감정선도 세밀하게 보여 준다. 앞서 이 작품의 조안무 등으로 참여해 온 안무가 유회웅이 전반적인 움직임과 정서를 재조율했다. 또 초연 때 왕자 역, 이후 코칭 스태프로 참여해 온 한예종 교수 김현웅이 협력안무를 맡았다.
발레 유망주들의 풋풋한 활약상을 볼 수 있다는 것도 이 작품의 매력이다. 재정적·환경적 제약 때문에 전막 작품에 설 기회가 적었던 학생들을 염두에 두고 탄생한 작품이기에, 대대로 한예종 발레 샛별들이 이 무대를 거쳐 프로 무용수로 도약했다. 이번 공연에선 인어공주 역에 손민지와 김민진, 왕자 역에 성재승과 이강원 등이 활약한다. 모두 국내외 다수의 콩쿠르에서 1위를 거둔 실력파다.
대부분 10대, 20대 초반으로 구성된 무용수들은 주역이 아니어도 빛을 발한다. 고전발레에선 대부분 주역, 캐릭터, 군무 앙상블로 역할의 비중과 동작의 난이도를 구분하지만, 이 작품은 출연자 대다수에게 난도 높은 안무가 부여됐다. 김선희는 “아직 나이는 어리지만 재능 많은 젊은 무용수 집단을 믿는다”고 했다. 관객 역시 이들의 가치와 가능성을 알아보는 기쁨을 나눈다. 인어의 전설을 빌려 성장해 온 한국 창작 발레가 또 한 번 새로운 파동으로 번져 갈 채비를 마쳤다.
㈔케이글로벌발레원 <인어공주>
일정 2025-10-10 ~ 2025-10-12 | 시간 금 19:30 토 14:00, 19:30 일 14:00 | 장소 해오름극장
관람권 VIP석 10만 원, R석 8만 원, S석 5만 원, A석 3만 원 | 문의 02-3473-77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