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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6월호 Vol. 419
목차 열기국립국악관현악단 어린이 음악회 <신나락 만나락>
엄마의 시선으로, 딸의 눈높이로
나에겐 딸이 하나 있다. 덕분일지 때문일지, 국악 프로그램 작가인지라 나는 딸에게 국악관현악부터
민요·창극 심지어 완창 공연까지 국악 공연을 꽤 자주 접하게 했는데,
그중에서도 늘 자신 있게 소개한 공연이 바로 국립국악관현악단의 어린이 음악회였다.

2004년 <엄마와 함께하는 국악보따리>로 시작된 국립국악관현악단의 어린이 음악회는 <땅속 두더지 두디>를 거쳐 <아빠 사우루스> <엔통이의 동요나라> 그리고 지난해 노래놀이 <별별땅땅>에서 2025년 <신나락 만나락>으로 성장했다.
그사이에 딸은 올해로 중학생이 됐다. 이제 엄마와 외출하기보다 자신의 방에서 본인 취향의 음악을 들으며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는 게 더 좋다는 중학생 소녀에게는 그동안 엄마와 함께한 공연이 어떻게 남았을까, 문득 궁금했다. 그래서 이번 원고를 의뢰받았을 때 이 소녀의 시선으로 바라본 어린이 음악회의 감상평을 들어 보고 싶다는 목표가 생겨 공연장에 딸과 동행하기로 했다.
어린이들의 맑고 청량한 웃음을 꼭 닮은 계절. 연둣빛으로 물든 남산이 어느 때보다 더욱 싱그러워 보인 건 하늘극장에서 펼쳐질 <신나락 만나락>을 기다리는 순수한 어린이들의 미소 덕분인 것 같았다. 뭐 내 곁의 시니컬한 중학생 소녀는 내내 냉소를 유지했지만 난 자신 있었다.
일로, 때론 개인적 관심으로 그동안 꾸준히 어린이 국악 공연을 지켜봐 온 나에게 <신나락 만나락>은 프로그램 팸플릿만 봐도 될성부른 공연이었다. 평소 창극과 뮤지컬, 드라마를 넘나들며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만들어 온 판소리 창작자인 박인혜 소리꾼이 연출을 맡았고, 국악 기반의 어린이를 위한 작품을 꾸준히 선보여 온 구도윤 작가가 극본을, 젊은 감각으로 세련되고 다정한 음악을 만들어 온 이고운 작곡가가 음악감독을 맡았다니. 이건 뭐 흥행 보증 수표지. 게다가 판타지를 좋아하는 아이들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좋아한다는 신화를 소재로 삼았다니. 안 봐도 아이들의 반응이 훤한데, 거기에 아이들의 눈길을 사로잡을 퍼펫Puppet이라는 장치까지! 치트키가 많아도 너무 많은 공연이라, 중학생 소녀를 데리고도 가벼운 마음으로 공연장으로 입장할 수 있었다.
공연장에 들어서니 무대는 요즘 다양한 매체와 문화생활로 눈높이가 높아진 어린이들의 수준에 맞춰 알록달록한 색감 대신에 상상력을 더하는 깔끔하고 세련된 색상으로 꾸며졌고, 10인조 연주 단원들이 생생하게 국악을 들려줄 준비를 마치고 있었다. 공연은 퍼펫의 등장으로 시작됐다. 퍼펫의 생김새는 투박했지만, 오히려 그래서 정감 있고 특별하게 다가왔다. 퍼펫티어의 정성스러운 손길에 따라 생명을 얻어 한 걸음 한 걸음 움직이기 시작한 주인공 인형 선율이의 등장에 어린이들이 숨죽이며 무대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이야기는 제주도를 만들었다고 전해지는 여신, 설문대할망 설화에서 영감을 얻었다. 음악이 없는 세상에서 유일하게 노래하는 아이 선율이가 일하러 간 엄마, 설문대를 찾아 모험을 떠나는 과정을 담았다. 그 모험에는 얄밉지만 얄밉지 않은 애벌레 오물이가 동행해 함께 늪과 화산 공간에서 장애물을 헤쳐 나가며 극이 진행된다. 모험을 떠나는 동안 열여섯 곡의 노래가 국악기 연주와 어우러졌다. 악기 나무 숲에 도착했을 때는 가야금·거문고·해금·피리·대금·타악기를 담당하는 단원들이 악기 친구들로 공연에 참여해 관객과 소통했다. 이들이 악기 소리를 친절히 들려주는 동안 국악기는 어린이들의 마음에 서서히 스며들었다. 그렇게 긴 시간 모험을 통해 음악이 지닌 힘과 위로를 배운 선율이와 오물이는 한층 마음이 단단해진 아이들로 성장해 있었다. 엄마를 자신 곁에 데리고 오겠다는 소원 대신에, 친구의 꿈을 대신 이뤄 주어 애벌레였던 오물이가 훨훨 날갯짓하는 나비가 되는 장면에서 어린이 관객들은 큰 소리로 환호했다. 선율이 엄마이자 거대한 신인 설문대가 “정성껏 세상을 키워 내면, 세상도 아이를 함께 키워 주는 걸 알게 되었다.”라는 말로 일하는 엄마들의 미안한 마음을 다독여 줄 땐 객석 엄마들의 공감과 기쁨의 박수가 터져 나오는 걸 보니 <신나락 만나락>은 어린이뿐 아니라 어른들의 마음까지 모두 사로잡은 가족극의 탄생임이 분명하다.
우리 모녀는 다음의 대화로 공연의 소회를 마무리했다.
“윤서야, <신나락 만나락> 공연은 어땠어?”
“중학생인 내 눈높이에도 잘 맞았어. 국악과 이야기를 적절히 섞어서 어린이들이 국악에 대한 흥미를 느낄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아. 누군가는 국악을 지루하고 재미없는 음악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국악인 듯 국악이 아닌 듯 자연스럽게 국악이 스며든 어린이 공연을 보면서 자라 온 나는 국악이 친숙하고 편안하거든.
이런 공연을 보면 국악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알 수 있을뿐더러, 국악에 관한 관심을 가질 수 있을 것 같아. 그래서 앞으로 국악 공연을 보는 게 망설여지는 아이들이 있다면 이렇게 얘기해 주고 싶어. ‘국악을 지루하게만 생각하지 말고 마음을 열고 한 번이라도 보면 좋겠어. 그럼 분명히 너희도 국악을 좋아하게 될 거야’라고.”
“응, 엄마도 동감! 단순히 국악을 알려 주려는 공연이 아니라, 하나부터 열까지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세심하고 다정하게 곁에 머무르는 게 좋더라. 아마 이 공연을 본 아이들은 나중에 학교 음악 시간에 국악기가 나오면 윤서처럼 ‘어! 나 저 악기 알아, <신나락 만나락>에서 봤어!’ 하고 얘기할지도 몰라.(웃음) 그럼, 우리 다음에는 소년소녀를 위한 <소소 음악회>를 보러 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