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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간 국립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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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6월호 Vol. 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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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를 짓다, 삶을 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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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극장 <완창판소리> 이선희의 ‘춘향가’ 만정제

소리를 짓다, 삶을 읊다


그의 무대는 단순한 재현이 아니다. 수십 년간 이어진 수련과 자기 성찰,

그리고 여러 스승에게서 이어받은 예술혼이 응축된 무대다.






국악의 요람에서 피어난 소리꾼의 꿈


이선희 명창이 예인으로서 내디딘 첫걸음은 목포라는 국악 친화적 도시에서 시작됐다. 그가 여섯 살 되던 해, 이선희의 부모님은 목포시립국악원의 문을 두드렸다. 당시 월 수업료 2천 원으로 어린아이부터 고등학생까지 다양한 연령층이 모여 국악을 배우던 목포 국악의 산실. 이선희는 이곳에서 판소리·판소리고법·가야금·무용 등 다양한 전통예술을 자연스럽게 접하며 국악의 세계로 들어섰다.

소리를 전공으로 생각한 것은 일곱 살 무렵이었다. 그녀의 첫 스승은 이지오 명창, 감남종 명인으로, 이지오는 한국무용과 판소리에 능했고, 남편 감남종은 김명환 명고의 제자로 고법에 탁월한 실력을 갖춘 이였다. 당시 이선희는 이지오 명창에게 박동실제 ‘심청가’를 배웠다. 이지오는 꼼꼼한 스승이었다. 하루에 두세 장단만 가르치고 완전히 익힐 때까지 다음으로 넘어가지 않았고, 이러한 선생의 교육 방식으로 이선희는 판소리의 기본기를 다지며 박동실제 ‘심청가’를 익힐 수 있었다. 감남종 명인의 제자 사랑은 각별했다. 이선희가 훗날 안숙선 명창의 제자로 서울에서 소리를 배울 때, 감남종은 안숙선과 마주한 자리에서 이선희를 가리키며 “내 새끼입니다.”라고 했다. 어린 시절부터 거의 매일 만나며 오랜 시간 북과 소리를 가르친 이선희는 그에게 자식과 진배없던 것이다.



안숙선 명창과의 만남 그리고 소리꾼으로 성장


이선희의 소리 인생에서 전환점은 중학교 3학년 때 안숙선 명창과 만난 일이다. 이 만남의 배경에는 그녀의 오촌 외당숙이자 극단 신협의 대표였던 고故 김성옥 배우의 역할이 컸다. 김성옥은 이선희가 소리에 재능이 있다는 것을 알고 서울로 가서 공부하는 것이 좋겠다고 권유했다. 그리고 안숙선 명창과의 만남도 직접 주선해 주었다. 이후 이선희는 안숙선에게 만정제 ‘춘향가’, 강도근제 ‘흥보가’, 정광수제 ‘수궁가’를 차례로 학습했다.

처음 만정제 ‘춘향가’를 배울 때는 이전에 오랫동안 배운 소리 스타일과 달라 적응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이지오 선생의 소리는 담백하면서도 투박한 맛이 있었다. 박동실제 ‘심청가’는 고제古制 스타일을 유지하고 있었고, 소리의 길이도 오늘날 판소리에 비해 짧은 편이었다. 반면 만정 김소희의 소리를 온전히 전수받은 안숙선의 소리는 화려하면서도 빼어난 기교를 요하는 부분이 많았다. 세련되면서도 변화무쌍한 역동성이 매력이었다.

이선희는 만정제 ‘춘향가’를 20대까지 배웠다. 바탕소리 자체가 길기도 하거니와 온전히 배우기에 상당한 공력이 필요한 소리였기 때문이다. 안숙선은 엄격한 스승이었다. 소리의 끝맺음, 시김새 하나까지 자신의 것을 완전히 익혀 부르도록 끈질기게 지도했다.

판소리는 구전심수口傳心授의 예술이다. 이는 단순한 교육적 관계를 넘어선 특별한 사제 관계를 형성한다. 안숙선은 판소리의 전수를 “내 살과 피를 주는 것과 같은 가르침”이라고 표현한다. 스승의 소리를 체득하기 위해 그의 표정, 입 모양, 손짓, 몸짓에 집중한다. 스승이 소리를 대하는 태도, 소리를 익히는 방식까지 고스란히 따르기에 판소리 학습은 단지 기예 전수를 넘어 한 예인의 예술은 물론 그의 예술적 가치관, 삶의 가치관까지 배우는 과정이다. 이를 통해서만이 판소리의 본질이 전승될 수 있다.

이선희는 1995년 동아국악콩쿠르 판소리 학생부 금상, 신라문화제 전국국악대경연 판소리 학생부 금상을 거머쥐며 재목으로 인정받았다. 이후 2010년 목포전국국악경연대회 판소리 명창부 최우수상, 2023년 제35회 목포전국국악경연대회 판소리 명창부 대통령상을 받으며 명창의 반열에 올랐다.



만정제 ‘춘향가’와 ‘옥방형상’에서 깨달은 소리의 길


이선희 명창이 선보일 판소리는 만정제 ‘춘향가’다. 이 소리는 김소희가 정정렬의 ‘춘향가’를 뼈대로 삼아, 여러 명창에게 배운 대목들을 자신만의 음악성으로 재해석한 소리다. 화려하면서도 정교하고, 우아하면서도 섬세해, 만정 김소희만의 독창적 예술 세계를 잘 보여 준다.

이선희는 안숙선 명창에게 ‘춘향가’를 배우며, 스승의 소리를 더 깊게 이해하기 위해 어떻게 만정제가 완성되었는지를 추적했다. 그 과정에서 소리꾼으로서 새로운 깨달음을 얻는 경험을 했는데, 바로 ‘옥방형상’ 대목에서다. 이 대목은 춘향이 옥중에서 임을 그리워하며 자신의 신세를 절절히 토로하는 부분으로, 만정제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유독 사설과 선율에서 큰 변화 없이 전승된 부분이다. 만정은 박봉술이 부른 송만갑제 ‘옥방형상’을 거의 그대로 받아들였는데, 같은 대목이지만 박봉술과 김소희가 부르는 ‘옥방형상’은 무척이나 다른 미감을 주었다. 박봉술의 소리는 비어 있는 듯 완벽하고, 불완전한 듯 완전했다. 반면 김소희의 소리는 풍부함 속에서 완벽함을 추구했고, 정교함 속에서 완전함을 지향하는 소리였다. 이선희는 그 차이를 체감하며, 판소리가 소리꾼의 예술이라는 본질을 다시금 깨달았다.

“같은 대목, 다른 미감 — 그 사이에서 ‘나의 소리’는 어떤 결을 가져야 하는가?” 이 질문은 그녀를 더 깊은 수련과 자기 성찰로 이끌었다. 전통을 따르면서도 나만의 소리를 갖는 일. 그것이 소리꾼으로서 그녀가 마주한 과제이자 가야 할 소리 길이었다. 소리꾼에게 ‘득음’은 곧 ‘득도’의 경지와 같다고 한다. 그녀는 수련실에서 땀이 바닥을 흥건히 적실 때까지 소리를 할 때 자신이 소리꾼인지 수행자인지 헷갈린다고 말한다. 그토록 자아를 잃고 몰입해야만 다가갈 수 있는 예술, 답이 없는 질문을 끊임없이 하며 수행해야 하는 예술이 그녀가 생각하는 판소리인 것이다.

이번 무대에서 이선희 명창은 만정제 ‘춘향가’ 중 ‘이별가’부터 마지막 대목까지, 중후반부 전체를 완창한다. 총 6시간에 달하는 소리 중 전반부는 아니리로 요약하고, 약 3시간 반에 걸쳐 후반부의 모든 대목을 빠짐없이 들려줄 예정이다. 전통을 껴안되 자신만의 결로 풀어내는 이선희의 소리를 통해 수행자의 예술적 정진 과정을 만날 수 있길 바란다.



글. 송소라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연구교수. 「20세기 창극의 음반, 방송화 양상과 창극사적 의미」(2017)로 박사 논문을 제출하고, 판소리와 창극 관련한 연구를 꾸준히 수행하고 있다.


국립극장 <완창판소리> 6월: 이선희의 춘향가 - 만정제

일정 2025-06-21 | 시간 토 15:00 | 장소 하늘극장 | 관람권 전석 2만 원 | 문의 02-2280-4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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