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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6월호 Vol. 419
목차 열기국립국악관현악단 관현악시리즈IV <스위치Switch>
같은 음악, 다른 관현악
이 공연의 1부 마지막 곡은 최지혜의 ‘무늬’다. 그런데 2부의 첫 곡도 최지혜의 ‘무늬’다.
1부를 잘 끝내고 새로운 마음으로 시작해야 할 2부를, 재차 같은 곡으로 시작하는 이유는 대체 뭘까.
이 곡을 반드시 두 번 들어야만 하는 이유가 있을까?

정답은 바로, 이 관현악곡이 ‘다른 편성’으로 연주되기 때문이다. 한번은 서양관현악으로, 한번은 국악관현악으로. 인터미션이 끝나면 ‘딸깍’하고 스위치를 눌러 무언가를 바꾼 것처럼 KBS교향악단의 무대는 순간 국립국악관현악단의 무대로 바뀐다. 하지만 그들이 연주하는 곡은 여전히 ‘국악관현악곡’이다.
국악관현악곡을 ‘관현악곡’으로
<스위치Switch>는 국악관현악 레퍼토리의 확장을 시도한다. 국립국악관현악단은 장르와 악곡, 표현 방식 등에서 다양한 변화를 모색하며 레퍼토리를 개발해 왔다. 서양 오케스트라를 위해 창작된 곡을 국악관현악으로 편곡해 연주하기도 했고, 국악관현악을 위한 독자적인 창작 작업을 통해 자신만의 레퍼토리를 구축하는 노력도 지속해 왔다. 다양한 시각으로 만들어진 수많은 음악 언어를 받아들이고 포용하는 여정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만들어진 레퍼토리가 국악관현악 ‘바깥’으로 나간 경우는 아직 없었다.
그런 지금, 만약 서양관현악단이 국악관현악 레퍼토리를 연주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스위치>는 바로 그런 가정을 실현하는 공연이다. 이날 공연 프로그램은 모두 국악관현악 레퍼토리지만 1부는 KBS교향악단을 위해 편곡된 버전으로, 2부는 본래 창작된 국악 버전으로 연주된다. 1부에서 연주될 곡은 총 세 곡으로, 굿판에서 이뤄지는 무당의 강렬한 춤을 담은 이고운의 오케스트라를 위한 ‘무당의 춤’, 깊은 위로의 애틋한 감정을 담은 손다혜의 25현 가야금과 관현악을 위한 ‘어린 꽃’, 최지혜의 한오백년을 주제로 한 ‘무늬MooNee’다. 국악관현악을 위해 쓰인 곡이지만 이번 공연에서는 KBS교향악단이 연주한다.
같은 관현악이지만 서로 다른 악기로 연주되는 만큼 이번 공연을 위해 특별한 편곡 절차가 더해졌다. ‘무당의 춤’은 이고운이 직접 편곡을 맡았고, 손다혜의 ‘어린 꽃’은 최지운이 서양관현악단에 맞게 곡을 편곡했다. 최지혜의 ‘무늬’ 또한 한정임이 편곡자로 나섰다. 이 레퍼토리에서 관현악은 서양악기를 위해 편곡되지만, 가야금과 국악관현악을 위한 손다혜의 ‘어린 꽃’에서 가야금 협연은 그대로 유지되어 가야금과 서양관현악의 협연이 된다.
이어질 2부의 곡은 마찬가지로 최지혜의 ‘무늬’, 첼로와 국악관현악을 위한 첼로 콘체르토Cello Concerto ‘미소微笑’, 그리고 국악관현악 편성에 대한 깊은 이해를 지닌 박범훈의 국악관현악 ‘신내림’이다. 이들은 모두 원곡대로 연주되지만, 이 중 특히 주목할 만한 곡은 서양악기인 첼로와 국악관현악의 협연으로 연주될 최지혜의 ‘미소’다. 1부에서 손다혜의 ‘어린 꽃’이 가야금과 서양관현악의 만남을 시도했다면, 2부에서는 첼로와 국악관현악이 교차하는 최지혜의 ‘미소’가 그 흐름을 잇는다. <스위치>는 국악과 서양음악을 결합하는 융합 지향 공연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둘을 섞지 않고 나란히 두며 둘 사이의 경계를 탐색한다. 그런 이 공연에서 유일하게 국악과 서양음악이 교차하는 작은 순간이 있다면 그건 바로 이 두 협주곡 무대다.
국악관현악이라는 정체성
<스위치>의 시도는 단순한 편성의 변화에 그치지 않는다. 거기서 나아가 국악관현악곡을 ‘관현악곡’으로 넓혀서 이해하고, 서양관현악단이 연주할 수 있는 새로운 레퍼토리로 이해해 보기를 제안한다. 그런 점에서 <스위치>는 국악관현악이라는 하나의 장르가 얼마나 더 널리 확산될 수 있을지, 그 가능성을 조망해 보는 시도이기도 하다.
물론 국악관현악과 서양관현악을 완전히 다른 음악 세계로 나누는 건 어쩌면 무의미할지도 모른다. 국악관현악은 전통음악의 어법을 바탕에 두고 있지만, 서양관현악의 편성과 작곡 기법을 적극적으로 차용해 구성된 장르다. 이 형식은 태생적으로 두 세계 사이의 경계에 서 있다. 전통의 음계와 리듬, 국악기의 독특한 음색을 지닌 곡이 있는가 하면, 서양식 대위법과 화성 구조를 따르는 곡도 있다. 한 장르 안에 이질적인 두 어법이 공존하는 셈이다.
그렇기에 국악관현악은 자기 자신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장르이기도 하다. 이 곡은 전통음악의 연장선일까, 아니면 그 자체로 독립적 음악 언어로 자리 잡을 수 있을까? 이런 질문은 국악관현악의 정체성을 흔들리게도 하지만, 동시에 더 넓은 가능성의 장을 열어 주기도 한다. 전통의 뿌리에서 시작했지만, 다른 음악적 환경과 만나는 접점에서 새로운 언어를 찾아가는 과정. 이 긴장감 넘치는 모순이야말로 국악관현악이 가진 독자적 힘이자, 잠재력이 아닐까.
이번 공연은 바로 그 지점을 탐색한다. 서양관현악단이 국악관현악곡을 연주할 때, 그 음악은 어떻게 변모할까? 국악관현악이 지닌 리듬과 선율, 음향적 패턴이 서양 악기군에 의해 재해석되는 과정에서 우리는 그 곡이 본래 지니고 있던 정체성을 어떻게 인식하게 될까? ‘같은 곡’이지만 ‘다른 연주’가 들려주는 차이의 지점에서 우리는 어쩌면 새로운 음악적 가능성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정치용의 지휘
지휘와 더불어 레퍼토리 선정은 국립국악관현악단과 KBS교향악단 모두와 긴 호흡으로 작업해 온 정치용이 맡았다. 이날 공연 프로그램도 그 두 악단의 성격을 고려해, 정치용이 고심하며 선곡한 것이다. 2002년 <창작 음악회 - 관현악 시편>을 시작으로 느리지만 꾸준히 국악관현악을 지휘해 온 그는 오래전부터 서양 오케스트라와 국악관현악단이 같은 무대에서 공연할 수 있는 자리를 꿈꿔 왔다.
그리고 마침내 그에게도 처음이고 어쩌면 국내에서도 처음일 <스위치>와 같은 특별한 기획의 공연이 꾸려졌다. 리허설을 앞둔 그는 KBS교향악단이 국악관현악을 처음으로 연주하는 것이긴 하지만, 결국 그 흐름을 자연스레 잘 따라갈 것이라 말한다. “서양음악을 연주한다 해도, 한국 연주자라면 한국적 감성에 대한 이해는 기본적으로 내재돼 있을 거예요. KBS교향악단이 그 나름대로 국악의 뉘앙스가 있는, 우리나라 작품을 해 왔기 때문에 충분히 방향을 잘 찾을 거예요.”
하지만 여기서 그가 바라는 건 단 한 번의 공연이 아니다. 그는 ‘음악의 토착화’를 말하며, 한국에서 만들어진 관현악곡이 하나의 언어로 자리 잡을 가능성도 염두에 둔다. 국악관현악이 특정 악단만의 전유물이 아닌, 누구나 연주할 수 있는 음악 언어가 될 수 있을까? “서양 오케스트라가 우리나라에 자리 잡은 지 100년 가까이 되어 가는데, 서양에서 출발한 오케스트라가 대한민국의 오케스트라로 토착화하려면 한국적 감성을 담은 창작곡을 연주하는 기회가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서양 오케스트라는 유럽에서 출발했지만, 그 이후에 각 나라의 색이 입혀진 음악이 만들어졌잖아요. 그 과정이 한국에서도 필요하다고 봐요. 그렇기에 국악적 요소가 담긴 창작곡들을 서양 오케스트라가 연주해 보는 시도가 중요한 거죠.”
<스위치>는 국악관현악의 현재를 다시 묻는다. 하나의 악곡이 두 편성으로 연주될 때, 그 곡은 과연 같은 음악일까? 악기가 바뀌어도 곡의 본질은 유지될까? 전통악기의 고유한 질감이 사라질 때, 그 곡은 여전히 그 곡일까? 그동안 국악관현악은 ‘전통의 계승’과 ‘현대화’ 사이에서 정체성을 모색해 왔다. 그러나 이제는 그 논의를 넘어, 국악관현악 자체가 하나의 고유한 음악 언어로 기능할 수 있는지, 다른 음악 세계와 어떻게 교차할 수 있는지를 묻는 실천이 요구된다. 전통과 현대, 서양과 국악, 하나의 악보와 두 가지 연주. 이번 <스위치>는 서로 다른 두 편성이 같은 음악을 어떻게 다르게 발화할 수 있는지 보여 주는 실험이자, 국악관현악의 미래를 다시 묻는 질문이다. 서로 다른 두 편성이 같은 악보를 연주하며 만들어 낼 그 차이에서, 어쩌면 우리는 국악관현악의 미래를 엿볼 수 있을지 모른다.

국립국악관현악단 관현악시리즈Ⅳ <스위치(Switch)>
일정 2025-06-21 | 시간 토 15:00 | 장소 해오름극장
관람권 R석 5만 원, S석 3만 원, A석 2만 원 | 문의 02-2280-4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