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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간 국립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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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6월호 Vol. 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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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에도 없지만, 우리 안에 있는 존재

내다 / 스페셜 2

국립극장 무장애 공연 <헌치백> 프리뷰

어디에도 없지만,

우리 안에 있는 존재


어디에도 없는 ‘샤카’, 무대에선 존재하게 될까? 백상연극상, 동아연극상 등을 수상한
연출가 신유청이 첫 무장애배리어프리, Barrier-free 공연을 선보인다.




연출 신유청



『헌치백』은 선천성 근세관성 근병증이라는 중증 장애를 지닌 일본 작가 이치카와 사오의 자전적 내용을 담은 소설이다. 스스로 ‘꼽추 괴물’이라 부르는 중증 척추 장애인 ‘샤카’가 남성 간병인에게 임신과 중절을 도와주는 대가로 1억 엔을 제시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2023년 장애인 작가 최초로 일본의 권위 있는 문학상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해 화제가 됐다.




무장애 공연, 낯선 길 위의 설렘


신유청 연출가는 연극 <그을린 사랑> <와이프> <엔젤스 인 아메리카> 등을 통해 전쟁과 성소수자 등 사회적으로 민감한 이슈를 무대 위에 펼쳐 왔다. 무장애 공연 작업은 이번이 처음이다. 발단은 국립극장이 2022년 무장애 공연으로 선보인 연극 <틴에이지 딕>이었다. 셰익스피어의 『리처드 3세』를 뇌성마비 고등학생 이야기로 각색한 작품이다. 뇌병변 장애를 지닌 배우 하지성이 주인공 리처드 역을 맡아 제59회 백상예술대상 연극 부문 연기상을 수상해 화제가 됐다. 우연한 기회로 <틴에이지 딕>을 관람한 신유청은 다른 연극에서는 접하지 못한 새로운 경험을 통해 무장애 공연에 매료됐다.

“셰익스피어 연극은 보통 배우가 셰익스피어 작품 속 역할을 어떻게 소화하는지를 집중해서 보게 되죠. <틴에이지 딕>은 셰익스피어 원작임에도 다른 연극과 작품의 결이 달랐어요. 특히 하지성 배우가 연기한 리처드는 있는 그대로의 ‘리처드 3세’를 보는 것처럼 인물이 살아 있었어요. 장애를 안고 있으면서도 그 안에 또 비틀어진 욕망이 있는, 인간다움이 있었죠. 그런 점이 제게 일종의 충격이었어요.”

1년 뒤 국립극장으로부터 무장애 공연 연출 제안을 받은 신유청은 처음엔 바쁜 스케줄로 제안을 수락하지 못했다. 다시 1년이 지나 2024년 국립극장으로부터 한 번 더 연락을 받았다. 놓쳐서는 안 될 기회라 생각했다. 그렇게 무장애 공연 참여를 결정한 그는 국립극장과 논의한 끝에 『헌치백』을 선택했다. 인식의 틀을 아득하게 뛰어넘은 원작 소설의 매력 때문이었다.

“무장애 공연을 한다면 <틴에이지 딕> 같은 작품이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작업을 하다 보면 상투적인 작업 방식에 빠질 수 있는데, 무장애 공연은 그런 틀에 갇히지 않고 할 수 있겠다 싶었어요. 『헌치백』을 읽었는데 <틴에이지 딕>을 봤을 때와 비슷한 충격과 신선함이 있더라고요. 제가 가진 인식의 틀, 앎의 경계를 넘어서는 경험이었다고 할까요. 무장애 공연은 연출가로서 제 안에 있는 관습적 스타일을 깰 수 있는 원동력이 됐으면 했어요. 『헌치백』이 그런 점에 딱 부합하는 작품이었어요.”




공연으로 적합하지 않은, 그래서 더 무장애 공연과 어울리는 작품


소설 『헌치백』은 샤카를 중심으로 한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서술되어 있다. 그만큼 연극으로 각색하기 쉽지 않은 작품이다. 신유청 연출가 또한 “원작의 어떤 점이 공연으로 만들기 적합한지 묻는다면 ‘어떤 것도 적합하지 않았다’고 답할 것”이라고 털어놨다. 다만 이는 『헌치백』을 일반적인 연극으로 옮겼을 때의 이야기다. 오히려 『헌치백』이 지닌 독특함이 무장애 공연과 잘 어울릴 것이라는 게 그의 판단이었다.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때 몸을 자주 흔들거리며 다니는 친구를 한 명 만났어요. 그 친구와 친하게 지냈는데, 나중에야 친구에게 장애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죠. ‘장애’와 ‘비장애’에 대한 구분이나 경계가 없었던 거죠. 이 연극은 그런 경험을 담고 싶었어요. 관객 또한 작품을 통해 어떠한 경계나 구분, 또는 인식의 틀에 얽매이지 않기를 바라면서 작업하고 있어요.”


윤색은 연극 <붉은 낙엽> <왕서개 이야기> <천 개의 파랑> 등에 참여한 작가 김도영이 조연출 김진숙과 함께 맡았다. 그가 윤색한 희곡은 원작 소설의 문장을 거의 그대로 옮겨 놓았다. 희곡만 읽으면 낭독 공연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다. 신유청은 “원작을 일반적 희곡으로 각색하면 주인공 샤카의 단면만을 보여 줄 것 같았다.”며 “소설을 단순히 무대로 옮기는 것이 아니라 소설을 읽고 난 뒤 갖게 될 여러 가지 해석을 무대에서 시각적·청각적으로 표현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이번 연극에는 5명의 배우가 등장한다. 신유청 연출가와 <와이프> <그을린 사랑> 등에서 같이 작업한 배우 황은후, 그리고 장애인 배우 차윤슬이 샤카 역으로 2인 1역 연기를 선보인다. 샤카로부터 임신과 중절 제안을 받는 남성 간병인 다나카 역으로는 배우 원훈이 캐스팅됐다. 배우 김별·우범진은 각각 스사키·야먀시타 역, 야마노우치·니시 역으로 출연한다. 그러나 이들은 기존 연극처럼 고정된 배역만 연기하지 않는다. 희곡 또한 배역 이름이 아닌, 실제 배우들의 이름이 적혀 있다.


“소설에서는 샤카가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해요. 그러나 정작 샤캬의 이야기만으로는 샤카가 어떤 인물인지 알 수 없어요. 사람의 성격을 보려면 그 사람이 다른 누군가와 함께 있는 모습을 봐야 하잖아요. 샤카는 타자와 ‘마찰’이 없는 상태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 쓰면서 ‘마찰’을 그리워하고 있어요. 우리 주변의 다른 사람이 우리의 존재를 비춰 주는 ‘거울’이라면, 샤카는 그런 ‘거울’이 없는 것이죠. 연극에선 샤카를 비춰 줄 존재가 필요하겠다 싶었어요.”


원작 소설의 또 다른 특징은 샤카가 장애인으로서 겪는 소통의 어려움을 시각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샤카가 쓰는 웹소설 특유의 문장, 스마트폰 메신저를 통해 주고받는 채팅 메시지, 전자책을 읽거나 다른 이에게 말을 걸기 위해 사용하는 ‘음성 합성TTS’ 등이 그러하다. 연극은 무장애 공연의 특성을 십분 살려 자막과 영상을 활용해 원작의 특징을 무대에 구현할 예정이다.







“샤카를 통해 근원적 질문과 마주하길”


임신과 중절을 해보고 싶다. 내 휘어진 몸속에서 태아는 제대로 크지도 못할 텐데. 출산도 견뎌 내지 못할 것이다. 물론 육아도 어렵다. 하지만 아마도 임신과 중절까지라면 보통 사람처럼 가능할 것이다. 생식기능에는 문제가 없으니까. 그래서 임신과 중절은 해보고 싶다. 평범한 여자 사람처럼 아이를 임신하고 중절해 보는 게 나의 꿈이다. - 소설 『헌치백』 중


샤카가 꿈꾸는 ‘임신’과 ‘중절’은 장애와 상관없이 인간이라면 갖게 되는 욕망의 표현이다. 욕망이 거세된 것으로 여겨지는 ‘장애인’에 대한 편견에서 벗어나 똑같은 ‘사람’으로 인정받고 싶다는 선언이기도 하다. 일종의 반전 같은 에필로그까지 읽고 나면 독자는 샤카라는 인물이 어떤 존재인지 끊임없이 생각하게 된다. 연극 <헌치백> 또한 관객에게 같은 질문을 던진다. 샤카라는 인물에 대해 관객이 각자만의 방식으로 생각해 보길 바란다. 샤카는 어디에도 없다. 그러나 공연을 보고 나면 모두의 마음속에 제각각 다른 샤카에 대한 생각이 떠오를 것이다.


“소설에서 재밌었던 부분 중 하나가 샤카가 ‘나는 비장애인과도 다르지만 장애인과도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라고 한 부분이었어요. 지구에 75억 명이 산다고 하면 나와 똑같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잖아요. 하지만 우리는 그 속에서도 ‘남자’와 ‘여자’라든지 ‘한국인’ 같은 구분을 해야 안도감을 느끼죠. <헌치백>을 통해 관객이 근원적 질문과 마주하면 좋겠어요. ‘우리는 왜 존재하는 것이지?’ ‘우리는 왜 서로 다르지?’ ‘왜 누구는 아픈 거지?’ ‘서로 다름 속에서 우리는 왜 아프게 찔러 대는 것이지?’ 같은 질문을요.”





글. 장병호 『이데일리』 문화부 기자



국립극장 무장애 공연 <헌치백>

일정 2025-06-12 ~ 2025-06-15 | 시간 목·금 19:30, 토·일 15:00

장소 달오름극장 | 관람권 R석 4만 원, S석 3만 원 | 문의 02-2280-4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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