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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미르 상세

2020년 11월호 Vol.370

몬드리안의 1942~43

안목의 성장 | 부기우기

 

칸딘스키, 베토벤 교향곡 5번(제1음절) 악보를 점으로 옮겨놓은 것

 

예술가들은 화면에 흥興을 어떻게 표현했는가?

 

눈으로 보는 소리
‘Boogie Woogie Dancing Shoes’와 ‘Yes Sir, I Can Boogie’는 1970년대 말에 나온 팝송으로 한국에서도 유행했다. ‘부기우기’는 아프리카계 미국인들로부터 시작돼 1930~40년대에 유행한 재즈 음악이다. 단순한 리듬이 반복되는 형식이지만 수시로 화려하게 변주돼 춤곡으로 많이 쓰였다. 경쾌하고 신나는 피아노 소리에 온몸이 절로 반응하게 된다. 리듬이 몸짓으로 변환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피아노나 드럼 소리를 눈에 보이게 할 수 있을까? 또는 왈츠나 탱고의 리듬을 그림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화가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는 베토벤 교향곡 5번에서 느껴지는 리듬을 점으로 표현했다. 눈으로 점을 따르다 보면 마음속에서 울려온다. 따따따 당~ 따따따 당~. 


외부에서 온 자극을 정확히 인지하기 위해 우리는 시각·청각·후각·미각·촉각이라는 오감을 동원한다. 여기에 심안心眼(마음의 눈), 촉(주관과 객관의 접촉 감각으로 생기는 정신 작용)과 같은 심리적 부분까지 합세한다. 감각은 서로에게 영향을 주면서 공감각적인 체험으로 발전한다. 그러나 귀에 들리는 소리와 눈에 보이는 형상이 어떻게 상호작용 하는지, 그것이 실제로 가능한 것인지 과학적으로 검증하기는 힘들다. 그렇지만 예술가들은 그들의 예민한 감수성을 발휘해 이러한 효과를 시도해 왔으며, 우리 또한 그 결과물인 예술 작품에서 상호 연관성을 느낀다. 예술의 역사 속에서 음악은 종종 새로운 회화 장르를 탄생시키는 촉매가 됐다. 


음악과 회화만이 아니다. 조선 중기의 문신 고산 윤선도가 살았던 집의 사랑채가 녹우당綠雨堂이다. 녹우는 집 뒤편의 비자나무 숲에 솨~ 하며 바람이 불어오면 마치 ‘녹색 비가 내리는 듯하다’는 의미다. 서늘한 바람의 기운을 녹색의 비로 은유한 것이다. 청각으로 느끼는 바람을 시각 이미지로 치환한 것이니 이 역시 공감각적 호소다.  


에즈라 파운드Ezra Pound는 예술가를 ‘인류의 촉각’이라고 했다. 청정 하천에 사는 쉬리나 산천어는 수질 변화를 가장 먼저 알아챈다. 예술가들 역시 사회 환경의 변화에 민감하다. 그들만의 예민한 촉수로 환경 변화를 앞서서 감지하는 것이다. 그들의 감수성은 음악·미술·문학 등을 통해 발현되지만 마침내 보통 사람의 일상까지도 변화시킨다.

 

 

융합-서로 다른 것들의 어울림
음악에 조예가 깊었던 칸딘스키는 회화도 음악적 맥락으로 접근했다. 작품에 대해 이야기할 때도 ‘대위법’이나 ‘화음’ 같은 음악 용어를 자주 사용했다. 그는 “회화가 사물의 단순한 재현을 넘어선다면 얼마나 더 재미있을까? 색채나 형태를 악보처럼 표현할 수는 없을까?”라는 화두로 회화 발전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다. 색과 선의 근원적인 관계에서부터 작품과 관람자 사이의 정신적인 교감에 천착한 그의 작품과 예술 이론은 20세기 미술 전반에 큰 족적을 남겼다.


칸딘스키가 음악과 회화의 교집합을 꾀했다면 핀란드의 건축가 알토Alvar Aalto는 예술과 기술의 결합을 시도했다. 그가 주축이 돼 1935년에 설립한 가구 회사가 아르텍Artek, Art+Technology이다. 어설픈 절충주의나 경박한 장식 대신에 생산과 품질의 기술적인 전문성에 치중하는 국제주의 양식, 특히 바우하우스Bauhaus(1919년 독일의 바이마르에 설립된 조형 학교)의 핵심 이념을 반영한 것이다. 그러한 활동을 기반으로  근대적 디자인의 개념이 정립됐다. 최근 국내외 여러 대학에서 ‘아트 앤드 테크놀로지’ 전공이 개설·운영되고 있는데, 이는 향후 예술·디자인과 융합한 장르가 더욱 다채롭게 확장될 것이라는 징후이기도 하다.

 

시대를 표현하는 리듬
칸딘스키로 대변되는 ‘뜨거운 추상’은 작가 자신의 감흥이나 사상을 다양한 색채와 형태로 자유분방하게 표현하는 것이다. 활달하고 격정적이다. 이에 비해서 몬드리안Piet Mondrian의 작품은 정형화된 선과 면·색채를 이용해 화면을 계획적으로 분할한다. 단정하고 절제돼 있다. 몬드리안의 작품 세계는 ‘차가운 추상’이다.


몬드리안은 오래된 유럽을 떠나 에너지와 역동성으로 넘쳐나는 새로운 도시 뉴욕으로 이주한다. 맨해튼 남단의 바둑판 모양의 시가지를 가로지르는 대로가 브로드웨이다. 이곳은 그가 말년을 보낸 20세기 전반에 최고로 번영했으며 지금도 세계적으로 유명한 연극과 뮤지컬이 공연되고 있다. 직각으로 힘차게 뻗어나가는 도로, 직육면체 건물들로 이루어진 도시는 그가 추구하던 신조형주의의 이념이 실체화된 곳이기도 했다. 그는 바흐와 재즈 음악도 좋아했다는데, 단순한 모티프를 활용해 리드미컬하게 변주해 나가는 자신의 작품 세계와 닮아서가 아니었을까? 교사이자 목사이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몬드리안은 평생 독신으로 금욕적인 생활을 고수하며 살았지만, 놀랍게도 춤 솜씨는 수준급이었다고 한다.

 

뉴욕 맨해튼 시가지의 모습


뉴욕의 고층 빌딩 위에서 야경을 내려다보면 몬드리안의 ‘브로드웨이 부기우기Broadway Boogie Woogie’가 떠오른다. 선과 면의 단순한 구성처럼 보이지만 경쾌하고 즐겁다. 선 사이사이에 배열된 짙은 색 사각형 모티프에서 시각적인 스타카토staccato의 리듬이 느껴진다. 땡땡거리며 달리는 전차 소리도 들리는 듯하다. 큰 사각형들은 거대한 건물이나 기념물 또는 어떤 구역으로, 작은 사각형들은 깜박이는 교통신호등의 정지와 출발을 상상하게 한다. 잘 구획된 시가지와 휘황찬란한 네온 불빛 사이로 일명 ‘옐로 캡’이라는 노란 택시들이 달리는 거리는 활기차고 수다스럽다. 브로드웨이의 찬란한 야경에 당시 유행하던 부기우기의 흥겨운 리듬을 오버랩해 추상적 언어로 표현한 것이다. 몬드리안은 작품에 자신의 예술적 이상과 시대정신을 담았다. 온몸이 들썩거릴 듯한 자신의 흥興도.


몬드리안의 신조형주의 이념은 당대에 건축, 인테리어, 디자인으로 발전한 데슈틸De Stjil(양식이란 뜻)을 거쳐 지금 우리 삶 속에까지 들어와 있다. 패션 브랜드 이브 생 로랑과 프라다, 루이비통, 버버리 등은 모두 몬드리안의 기하학 패턴을 제품은 물론 매장 인테리어에까지 활용하고 있으며, 몬드리안이라는 명칭의 아파트·호텔·타운 등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복제되고 있다. 마침내 조형 세계에서의 ‘몬드리아니즘Mondrianism’은 하나의 메타언어가 됐다. 


60여 년이 지나 몬드리안의 ‘브로드웨이 부기우기, 1942~43’가 다시 호출됐다. ‘디지털 부기우기, 2003’으로 그를 오마주hommage한 것이다. 지난 세기 예술이 타 장르와 원만한 교호를 시도했다면 금세기는 장르 간의 격렬한 교접과 융합, 혹은 이종격투기라 할 정도의 격변 속에 있다. 전자시대, 멀티미디어, 하이퍼텍스트, 디지털 이미지 등으로 수식되는 새로운 시대에는 또 어떤 리듬이 우리를 열광시킬까?

 

박현택 시각디자인을 전공하고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근무했다. ‘오래된 디자인’ ‘보이지 않는 디자인’ 등을 출간했으며 ‘디자인 상상’ ‘디자인은 죽었다’를 공동 집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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