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킵네비게이션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빠른예매 바로가기 사이트 지도 바로가기
월간미르 상세

2020년 11월호 Vol.370

7인의 홀춤, 첫길 앞에 서다

미리보기 다섯 | 국립무용단 ‘홀춤’

금향무 김원경

 

춤과 꾼이 하나 된 물아일체.
손끝 움직임, 발놀림 하나하나, 순간의 표정과 시선 변화가 오롯이 관객의 눈에 담긴다

 

전통을 오늘의 무대에 어떻게 펼칠 것인가. 그동안 무대예술로서 한국춤의 묘미를 살리는 실험으로 이 난제에 도전해 온 국립무용단이 이번에는 독무獨舞에서 그 답을 모색한다. 화려한 무대장치나 군무의 조형미를 배제하고 오로지 춤사위 하나에 집중한 ‘홀춤’이 그것이다. 오랜 시간 체화된 과거의 유산은 노련한 춤꾼들의 재해석을 통해 오늘의 춤으로 거듭난다.

 

(왼쪽부터) 삶-풀이 박영애, 보듬고 박재순

 

‘홀춤’의 필연적인 등장
국립무용단은 타 장르와 이종교배하는 창작 실험을 통해 한국춤의 활로를 찾는 행보를 몇 년째 이어왔다. 이 과정에서 구태를 답습하기보다 새로운 길을 개척하려는 진취성은 높은 점수를 받았지만, 실험 일변도의 행보에서 우리 춤의 존재감이 퇴색한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함께 나왔다. 무대예술의 재미를 두루 발굴하는 시도를 통해 한국춤의 외연을 확장한 것이 그간의 성과였다면, 이제는 다시 춤 자체의 섬세한 미학을 발전시키는 내포 분석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런 배경에서 자연스레 등장한 것이 ‘홀춤’이다. 2000년대 한국춤의 한 장르로 자리 잡은 ‘신新전통춤’을 키워드로 하는 이 작품은 혼자 무대에 오른 춤꾼이 기존 전통춤의 움직임이나 구성, 미적 감각을 변주하는 독무獨舞 공연이다. 


그런데 왜 독무일까. 우선 ‘무대 위에 홀로 선 자’는 세트나 조명, 의상 같은 무대 요소보다 ‘춤추는 몸’ 자체에 집중하기 좋은 그림이 된다. 물론 군무群舞에서도 춤의 개성과 미학을 느낄 수 있지만, 초점은 대개 전체의 조화와 균형에 맞춰지기 십상이다. 또 군무의 매력은 조명이나 의상과 결합할 때 더욱 배가된다. 반면 독무에서는 섬세한 손끝 움직임, 발놀림 하나하나, 순간의 표정과 시선 변화가 오롯이 관객의 눈에 담긴다. 그런 집중의 효과를 통해 독무는 무대미술의 다채로운 양념에 가려지지 않은 날것의 춤맛을 느끼게 한다. 다만 그 맛이 비리지 않고 제대로 정수를 드러내려면 아무래도 만만치 않은 내공이 필요하다. ‘홀춤’에서 김원경·윤성철·박재순·박영애·조수정·이소정·정현숙처럼 경력 30년 이상의 숙련된 춤꾼들이 나서는 이유다. 또한 ‘홀춤’이라는 형식은 국립무용단이 내세우는 ‘새로운 전통 쓰기’의 과업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전통의 계승과 현대적 전환 문제는 오늘날 ‘한국적’ 정체성과 연결된 시대적 사명이다. 이는 소수의 명인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개별 무용가들의 성찰과 창의적인 해석이 누적돼 도출되는 결과물이다. 무용수도 이제는 안무가적 시각을 갖추고 끊임없이 전통을 재해석하는 자질이 필요해졌다. 


결국 새로운 전통의 길을 발견하고 닦는 작업은 노련한 춤꾼의 역량과 안무가적 통찰이 맞물려야 가능하다. 자신이 재해석한 전통을 직접 몸으로 구현하며 스스로 새로운 전통의 일부가 되는 것, 그것이 바로 국립무용단이 기대하는 ‘홀춤’의 역할이 아닐까. 이로부터 ‘홀춤’ 공연은 한국 전통춤이 진화하는 과정을 관객과 실시간으로 공유하는 시간이 될 것이다.

 

(왼쪽부터) 산산·수수 윤성철, 심향지전무 정현숙


과거를 현재로 번역하는 일곱 가지 ‘홀춤’
이번 무대는 노련한 춤꾼 일곱 명이 각자의 주제를 매개로 기존 전통춤을 현대적 정서와 미감으로 풀어낸다. 극 양식에서 춤은 다른 무대 요소들과 함께 공연의 일부였지만, ‘홀춤’에서는 그 자체로 공연의 중심이 된다. 


산조 음악에 맞춰 부채를 들고 추는 ‘금향무琴響舞’는 현실을 사는 춤꾼의 마음을 그대로 담아 눈길을 끈다. 자유롭고 즉흥적인 느낌의 거문고산조에 몸을 실은 중년 여성은 때로 부모님을, 때로 자식을 그리워하듯 애잔한 심상을 몸짓으로 그린다. 하지만 어느새 춤꾼인 자신으로 돌아와 현실의 번뇌를 예술혼으로 승화하는 전개가 흡사 무대 위 인생극장 같다. 다른 전통춤에 비해 즉흥적이고 개성적인 산조춤의 매력을 만날 수 있는 작품이다.


‘산산·수수山散·水守’는 풍류를 즐기는 사내의 모습과 만나는 시간이다. ‘금향무’와 마찬가지로 부채를 들고 추지만 느낌은 사뭇 다르다. 경망스럽지만 기품을 잃지 않는 한량무의 춤사위는 여기서도 해학과 절제의 전환을 순간순간 보여준다. 작품은 여기에 굳건하고 동시에 변화무쌍한 자연의 이치를 엮어 한량무의 다른 면모를 선보인다.  


살풀이춤에서 영감을 얻은 작품도 잇따라 등장한다. ‘삶-풀이’는 제목에서 말하듯 살풀이춤과 통영진춤의 형식을 활용해 삶에 대한 성찰을 녹여낸 작품이다. 구음 시나위에 맞춰 표현하는 살풀이춤의 한恨과 통영진춤의 우아함은 강렬한 붉은 수건과 어우러지며 인생의 희로애락을 보여준다. 인생의 중간 지점을 통과한 이만이 체득할 수 있는 반성과 다짐의 정서는 오늘의 관객에게도 효과적으로 전달된다. 살풀이춤과 무당춤을 엮은 ‘푸너리’도 눈여겨볼 만하다. 막대기에 긴 천과 방울을 연결해 액을 몰아내고 살을 푸는 과정을 새롭게 재현한다.


시문과 그림에 특별한 자질을 보인 신사임당을 모티프로 하는 ‘산수묵죽山水墨竹’은 경기 시나위에 맞춰 추는 부채 산조가 인상적이다. 무대 위 춤꾼은 그 순간 현신現身한 신사임당이 된다. 작품에선 후세에 알려진 그의 예술적 재능과 진보적 정체성이 춤사위를 통해 어떻게 표현되는지 지켜보는 재미가 있다. 


‘보듬鼓고’는 창작 무대에서 좀처럼 볼 수 없는 시도로 이목을 끈다. 승무의 북 가락에 진도북춤을 접목한 작품은 양면북의 특성을 활용해 다양한 리듬을 선보인다. 살풀이의 형식 안에서 지난 시간을 보듬는 소리와 몸짓은 힘든 시기를 지나온 이들을 향한 위무가 된다. 또 무속에서 유래된 신칼대신무의 특성을 극대화한 ‘심향지전무’는 등장부터 시선을 사로잡는다. 특히 남성 중심으로 전승된 신칼대신무를 무녀의 시점으로 재구성한 변화가 흥미롭다.

 

(왼쪽부터) 푸너리 이소정, 산수묵죽 조수정


미래의 전통과 만나는 시간
이번 작품은 단순한 공연이 아니라 국립무용단이 ‘무용수 집단’을 넘어 ‘안무가 집단’으로 거듭날 것을 선언하는 장이기도 하다. 이 계획은 올해 4월에 ‘전통춤의 재창작’을 주제로 실시한 무용단 내부 안무 공개 모집을 통해 시작됐다. 국립무용단은 이미 ‘넥스트 스텝’에 뿌리를 둔 ‘가무악칠채’를 통해 이런 대전환의 가능성을 일찌감치 확인한 바 있다. 젊은 춤꾼 이재화는 전통 농악의 칠채장단을 새롭게 해석해 관객과 평단의 호평을 얻는 데 성공했다. 이때 주효했던 것은 젊은 감각의 군무에 어우러진 화려한 시각 효과였다. 반면 ‘홀춤’은 연륜과 내공을 갖춘 중견 춤꾼들의 묵직한 춤사위가 무기가 된다는 점에서 ‘가무악칠채’와 좋은 대칭을 이룬다. 이렇듯 다양한 방식으로 전통의 첫길 찾기에 나선 국립무용단의 행보를 비교하는 것도 이번 ‘홀춤’의 관전 포인트라고 할 수 있다.


홀로 무대에 오른 춤꾼들이 이 춤을 통해 찾으려는 것은 무엇일까. 아무래도 기존 전통춤과 연결돼 있으면서도 동시에 새로운 춤의 경지일 것이다. 근래 춤계에서는 이를 신전통춤이라 한다. 하지만 ‘포스트post’나 ‘뉴new’ 등의 접두사를 달고 나오는 동시대 춤의 양상이 그렇듯 신전통춤의 매력 역시 전통춤이라는 전제를 어떻게 성찰하고 변주하느냐에 달려 있다. 결국 이런 시도는 전통과 현대라는 이분법이 얼마나 부질없으며 어쩌면 현대 자체가 전통의 연속선상에 있는 것임을 방증한다. 그런 이유로 ‘신新’이라는 접두사가 붙은 이 ‘오늘의 춤’은 미래의 전통춤을 미리 만나는 자리라고 할 수 있다. 과거에서 전승된 전통이 오늘날 어떻게 해석되고 있는지 가장 뚜렷하게 볼 수 있는 ‘홀춤’은 그 좋은 시작이 될 것이다.

 

국립무용단 ‘홀춤’

2020년 11월 27~28일
국립극장 별오름극장
전석 2만 원
02-2280-4114

예매 링크 바로 가기

 

송준호 공연 칼럼니스트. 대학원에서 무용미학과 비평을 전공하고 ‘주간한국’과 ‘한국일보’, ‘더뮤지컬’을 거쳤다. 공연예술의 다양한 변화를 주시하며 대학에서 춤 글쓰기를 강의하고 있다
사진 황필주 STUDIO79

사이트 지도

사이트 지도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