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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1월호 Vol.370

남산 자락에서 들려온 ‘금성金聲’

미리보기 하나 | 국립국악관현악단 '정오의 음악회'

 

유독 힘겨운 여름 보낸 당신에게 띄우는 금빛 선율

 

“어젯밤 불던 바람 금성金聲이 완연하다” 
불과 얼마 전까지 장맛비가 끝나지 않을 듯한 기세로 퍼부었다. 그사이 눅눅한 공기가 착 가라앉아 하루하루를 굼뜨게 했다. 그러다 언젠가부터 바람이 청량해지고 선선한 기운이 주변을 가볍게 맴돈다. 그렇게 목 놓아 울던 매미는 어디 가고, 이제는 해가 지면 귀뚜라미 소리가 이따금 들려온다. 이렇듯 계절의 경계를 온몸으로 감각하다 보면 ‘추풍감별곡秋風感別曲’의 첫머리 가사가 떠오른다. 여기서 ‘금성’이란 바람에 실려 오는 가을 소리를 표현한 단어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찬바람에 굳이 황금색黃金色을 입혀 가을 소리를 표현한 까닭은, 황금빛이 바로 가을의 색이기 때문이다. 가을에는 벼가 누렇게 익어 들판이 황금빛으로 변한다. 단풍 든 잎을 떨어뜨리는 위력을 지닌 알싸한 바람을 맞고 있자면 온몸이 시리지만, 잘 익은 벼로 너울대는 논밭의 따뜻한 황금빛을 떠올리면 마음 한 켠이 넉넉해진다. 


가을에는 1년 중 가장 파랗게 물든 하늘 아래 가장 붉게 타오르는 단풍의 화려함도 있고, 소복한 낙엽 길을 혼자 걸을 때의 고즈넉함도 있고, 쌀쌀한 바람이 맴도는 텅 빈 골목에 접어들 때 느끼는 적막함도 있다. 가을을 노래한 시를 읊조리다 보면 추수의 기쁨이나 가을밤 풍류가 느껴지고 쓸쓸함과 외로움도 벗 삼게 된다. 이처럼 다양한 얼굴을 가진 가을 소리를 실제 음악으로 표현해 본다면 과연 어떤 소리로 빚어질까? 이에 대한 답을 11월 11일, 하늘극장에서 열리는 ‘정오의 음악회’에서 찾아봐도 좋을 것 같다. 그 어느 때보다 다채로운 소리로 채워질 이번 공연은 가을을 닮았다.


먼저 11월의 ‘정오의 음악회’는 우리 동요 ‘섬집 아기’와 ‘오빠 생각’으로 막을 올린다. 전통 감성을 음악으로 풀어내는 젊은 작곡가 손다혜가 두 곡을 국악관현악곡으로 편곡했다. 엄마를 기다리며 잠든 섬집 아기와 서울 간 오빠를 기다리는 동생의 마음을 담은 노랫말이 전하는 애틋함이 우리 국악기 소리에 실려 전달될 예정이다. 매우 익숙한 국민 동요 두 곡의 감성이, 가을날의 처연하고도 애잔한 공기와 어떻게 어우러질지 기대된다.


두 번째 코너는 국립국악관현악단 단원의 빼어난 기량을 감상할 수 있는 ‘정오의 협연’이다. 이번에는 김성국의 사물놀이 협주곡 ‘사기四氣’를 국립국악관현악단 김인수 단원이 장구곡으로 재구성해 협연한다. ‘사기’라는 곡명에서 알 수 있듯, 이 곡은 끊임없이 변하는 사계절의 기운을 형상화했다. 경기도 도당굿의 장단을 활용해 가락을 맺고, 풀고, 당기고, 조이면서 순조롭게 순환하는 사계절처럼 모든 일이 잘 풀리기를 기원하는 마음을 담았다. 김인수 단원의 장구 가락이 풍요롭고도 넉넉한 결실의 계절, 가을이 빚어내는 신명을 담아낼 예정이다.

 

(왼쪽부터) 작곡 성화정, 타악 김인수, 뮤지컬 배우 민영기

 

모진 풍파 헤친 당신에게 드리는 정오의 음악 선물
한편 선선하고 고즈넉한 정취 넘치는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기도 하다. 그런 만큼 우리의 지적 호기심과 상상력을 자극하는 흥미로운 음악도 준비돼 있다. 소편성 국악관현악의 매력에 흠뻑 젖어볼 수 있는 ‘정오의 앙상블’ 코너에서는 작곡가 성화정의 ‘흔적’이 초연될 예정이다. 성화정은 고려 시대 금속활자 인쇄본 ‘직지심체요절’과 구텐베르크 금속활자의 관계를 파고드는 내용의 영화 ‘직지코드’(2017)에 음악감독으로 참여했다. 영화 ‘직지코드’의 메인 테마를 바탕으로 작곡한 ‘흔적’은 고려 말부터 바로크 시대에 이르는 동서양의 연주자들이 서로 만난다면 과연 어떤 음악을 연주할지 상상하며 만든 곡이다. 그만큼 각 시대 음악 기법을 다채롭게 감상할 수 있어서 흥미롭다. 


‘정오의 스타’ 코너에는 가을처럼 성숙하고 무게감 있는 음색이 매력인 뮤지컬 배우 민영기가 출연한다. 정조가 왜 화성을 지으려고 했는지 그 이유를 찾는 과정을 그린 창작 뮤지컬 ‘화성에서 꿈꾸다’의 ‘달의 노래’, 이순신이 거북선을 만들고, 그에 대한 애정과 자긍심을 표현하는 뮤지컬 ‘이순신’의 ‘나를 태워라’를 노래한다. 민영기가 전달하는 정조와 이순신의 목소리가 국악기 선율과 조화를 이룬다고 하니 그것만으로도 관객을 압도하기 충분하다. 20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변함없이 무대를 지켜온 목소리에서 묻어나는 성숙함과 연륜, 안정적인 가창에 취해 보자. 


마지막으로 준비된 코너는 국악관현악의 진수를 맛볼 수 있는 ‘정오의 관현악’이다. 이번 11월 ‘정오의 관현악’은 노관우 작곡의 ‘바람과 함께 살아지다’가 준비됐다. 익숙한 영화 제목처럼 바람과 함께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살아진다’라는 어휘를 사용한 이 곡은 조선 시대 연례 때부터 연주된 아악곡을 바탕으로 한다. ‘천년만세’ 중 ‘계면가락도드리’를 주제로 구성한 이 곡에서 노관우 작곡가는 자연에서 누리는 여유로운 삶을 권하고 싶은 마음을 담아냈다. 그래서인지 이 곡을 듣다 보면 갈대 우거진 경치를 배경으로 작은 배 띄워두고 한가로이 낚시질을 즐기는 은일지사의 여유로운 삶이 떠오른다. 


모진 풍파 헤치고 달려온 한 해. 하루하루 살아내기 바빴지만 우리는 어느덧 올해의 세 번째 계절인 가을을 지나고 있다. 11월에는 금빛 국악기 소리로 물들 남산에 올라 한 해를 잘 견딘 스스로에게 정오의 음악 선물을 건네는 것이 어떨까.

 

국립국악관현악단
‘정오의 음악회’ 11월 공연
2020년 11월 11일
국립극장 하늘극장
전석 2만 원
02-2280-4114

예매 링크 바로 가기

 

이채은  ‘현재’의 삶을 바꾸는 ‘고전’을 공부하기 위해 읽고 쓴다. 판소리계 소설을 중심으로 조선 후기 문학과 예술에 관해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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