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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1월호 Vol.370

정착을 넘어, 이미 진화 중

깊이보기 하나 | 공연영상화의 세 주역 NT·메트·베를린 필

베니딕트 컴버배치의 오랜 팬들은 그의 ‘무대’를 해오름극장 스크린을 통해 만날 수 있었다

 

영국 국립극장, 미국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독일 베를린 필하모닉은 일찍이 공연영상화 사업을 시작해 자신만의 방식을 정착시킨 대표적 공연예술 기관이다

 

영국 연극계 최신 화제작 알려온 영국 국립극장 ‘NT Live’
‘NT Live’는 2009년 6월 영국 국립극장National Theatre이 장 라신의 ‘페드르’(헬렌 미렌 주연)를 파일럿으로 시도한 이후, 지금까지 전 세계 영화관과 공연장에 영국의 우수 연극 작품을 영상으로 제작·보급해 왔다. 미국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의 ‘메트 라이브 인 HD’의 경우 상영작을 메트가 정하면 각 지역이 따르는 방식인 반면 NT Live는 각국, 각 지역의 영화관·공연장 등 상영 기관과 상영작을 논의하고 라이브와 지연 중계를 정하는 과정에서 원활한 피드백을 주고받았다. 영국 국립극장뿐 아니라 여타 극장의 프로덕션이 NT Live의 한 테두리로 전해지더라도 공연과 영상 품질에 대한 불만이 초기부터 잠잠했던 건 해당 지역 관객의 특성을 파악한 상영 기관의 요구에 NT가 탄력적으로 대응한 덕분이다. 일례로 배우 베니딕트 컴버배치의 ‘무대’를 보고 싶어 하는 한국 팬들의 갈증 역시 NT Live가 해소해 줄 수 있었다.


올해 초 코로나19 사태가 전 세계로 확산하자 NT Live도 일부 아카이브와 상영 예정작을 ‘NT Live 앳 홈’의 이름
으로 홈페이지에 무료 공개했다. NT Live의 온라인 상영은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영화관과 공연장이 문을 닫으면서 이미 NT Live용으로 제작한 작품에서 더는 채산성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판단에 따른 조치다. 영국 국립극장은 NT Live와 오프라인 관객 감소가 무관하다는 공식 보고서를 수집한 터라, 단기적 코로나19 국면이 영상화 서비스를 지속하는 데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보지 않는다. 다만 NT Live 상영 기관들은  상영관의 거리두기식 자리 배치로 티켓 수익이 줄어든 탓에 타격이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영국 국립극장은 NT Live의 수익 축을 기존 상영관 관람 방식에서 온라인 직접 구매 형태로 전환할 가능성이 높다. 이미 넷플릭스가 연극 공연영상화에 뛰어들었고, 아마존프라임·디즈니 역시 영화와 애니메이션의 경계를 넘어 각 영상 장르에서 콘텐츠 보강에 집중 투자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예술의전당이 극장 영상화 작업의 최적 장르로 연극을 염두에 두고 있으며, 네이버TV 등 포털 업체의 온라인 공연 진출도 뮤지컬을 위시한 극예술 비중이 높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면 밀접 접촉의 위험으로부터 안전한 공간에서 연극 콘텐츠를 즐기는 여건이 조성될 것이고, NT Live의 온라인 전환은 더욱 탄력이 붙을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19 장기화 국면에서 NT Live 영상이 온라인 중심으로 전환될 경우, 공연장과 영화관이 꺼내 들 수 있는 카드는 마땅치 않아 보인다. 손쉽게는 휴가 시즌에 화제작을 한데 모은 특별기획전을 고려할 수 있다. 밀폐된 실내 공간이 아닌 야외 공간에서 상영 이벤트를 진행하거나 출연 배우가 행사에 등장하는 영화 홍보 방식을 참고할 만하다.


중기적으론 영국 국립극장과 각국 공연장이 상영관 전용 콘텐츠 제작에 합의해 제반 비용을 분담하는 구조를 모색할 수 있다. 온라인에선 볼 수 없는 영국의 우수 연극 공연 영상을 유인책으로 관객을 끌어모으는 전략이다. 각국 공연장 입장에선 공동 제작 노하우를 축적해 NT 이외에 독일어·프랑스어·러시아어 등 타 외국어 기반의 주요 연극 극장과 콘텐츠 영상화 공동 제작을 주도할 협상력을 제고할 수 있다.


장기적으론 공연예술에서 불변의 가치로 여겨지던 ‘현장성’에 대한 대안이 NT Live식 공연 문법에서조차 벗어나 다양하고도 새로운 문법으로 도출될 것이다. 이미 NT Live의 도입으로 인해, 희곡·배우·무대·관객이라는 전통적 연극 4요소 가운데 무대와 관객이 재정의되고 있다. 온라인 콘텐츠의 소비 수단으로 연극 영상이 지속적으로 필요할 경우, 배우의 존재는 오직 인간에 의존할 것인지의 담론도 대안적 공연 영상 안에서 충분히 논의될 수 있다. 이미 클래식 음악계에선 인공지능AI의 딥러닝으로 기존 거장 연주자들의 연주 패턴을 학습하고 재현할 기회를 영상 플랫폼에서 찾고 있다. 극장 상영 규격에선 도전자를 찾기 어려웠던 NT Live도 온라인으로 들어가면 마주칠 경쟁 여건이 만만치 않다.

 

베를린 필은 일찍이 '개인용 디바이스 기반의 스트리밍'으로 포맷을 정하고 사업을 펼쳐왔다 ⓒBerlin Phil Media GmbH

 

디지털 음향 향상에 승부 거는 베를린 필하모닉
베를린 필하모닉은 2000년대 중반부터 지금까지 매 시즌 평균 135회의 흥행 연주회를 개최해 왔다. 티켓 판매율은 90퍼센트를 웃돈다. 클래식 음악계에선 최정상 악단이지만 총동원 관객은 연간 약 25만 명으로 오프라인 매출은 정체됐고 더  늘리기도 어렵다. 2008년 냅스터·유튜브·아이튠스가 서로 다른 형태로 기존 CD 위주의 클래식 음악 음원 시장에 도전장을 냈고, 악단도 결단을 내렸다. 베를린 필은 2009년 1월 6일 당시 음악감독 사이먼 래틀이 지휘한 브람스 교향곡 1번 공연을 시작으로, 매 시즌 40여 회 정기연주회를 ‘디지털 콘서트홀Digital Concert Hall’(이하 DCH)에서 유료 가입자를 대상으로 실시간 스트리밍 중계한다. 2008년은 스트리밍과 다운로드, 영화관 상영과 개인 PC 재생 사이에 클래식 음악 공연 영상 중계에 표준이 자리 잡지 않은 시기였다. 그러나 베를린 필은 미래를 내다보고 ‘개인용 디바이스 기반의 스트리밍’으로 포맷을 정했다. LP·테이프·CD·DVD로 재생 포맷이 변할 때마다 적극적으로 변화를 수용한 악단의 역사가 공연영상화 국면에도 그대로 반복됐다.


2019년 말 기준 DCH 등록 회원은 약 100만 명이고, 유료 회원은 약 3만 5천 명이다. 베를린 필하모닉의 자회사이자 단원 출자로 만들어진 베를린 필 미디어가 DCH를 운용하고 콘텐츠 가격을 정한다. 2020/2021 시즌 DCH 관람료는 7일권 9.9유로(한화 1만 3,300원), 30일권 19.9유로(2만 6,700원), 1년권 149유로(20만 원)로 저렴한 편이다. 참고로 DCH 태동기를 이끈 사이먼 래틀은 “양질의 콘텐츠를 값싸게 보급한다”라는 철학을 밝혀왔다. 지난봄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인해 DCH를 한시적으로 무료 개방했지만 베를린 필은 신규 가입자의 유료 전환 비율을 대외에 알리진 않았다.


DCH도 지난 10년간 기술 변화에 맞춰 영상과 사운드 포맷을 개량했다. 영상 해상도는 초창기 720p였지만 지금은 4K/HDR로 진화하면서 화질에선 어느 정도 서비스 안정화에 성공했다. 최초 개인용 컴퓨터에 최적화된 플랫폼도 애플리케이션 개발과 함께 스마트폰과 태블릿에서 구동이 가능하게 됐다. DCH 서비스 준비부터 기술 대응에 소요된 비용은 2008년부터 8년간 맺은 도이체방크 후원과 동아시아 투어로 충당했다. 래틀은 베를린 필 재임 기간에 일본을 7회, 한국을 5회 방문했다.


2010년대 후반 이후 베를린 필 미디어는 전송과 오디오 기술 향상에 중점을 두고 있다. 고해상 영상과 안정적인 오디오 전송을 위해 가상이동통신망 사업에 잔뼈가 굵은 파나소닉의 인터넷 이니셔티브 재팬IIJ을 파트너로 맞았다. IIJ는 2019/2020 시즌 일본 한정으로 SACD 4배 수준 해상도의 DSD 11.2MHz로 DCH를 전송했다. 파나소닉은 DCH 감상에 최적화된 사운드바 SC-HTB900를 출시했고, 단원들이 공연 전 무대 중앙으로 들어오는 발소리부터 관현악 사운드가 공연장에 퍼지는 순간을 안방에 구현한다. 베를린 필 미디어는 코로나19 사태와 맞물려 공연 소비 대신 고품질 오디오 기기에 눈을 돌리는 소비층에 주목하고, 매출이 급성장한 하이엔드 오디오 기기 업체와 전략적 제휴를 모색했다. 


‘DCH의 아버지’ 래틀은 런던 심포니로 떠났지만 그의 잔영은 악단에 여전하다. 지금도 베를린 필 미디어는 DCH를 이익 추구의 수단이 아니라 예술 전파의 도구로 인식한다. 베를린 필의 첼리스트이자 베를린 필 미디어 대표인 올라프 마이닝거는 지난해 일본 투어 기자간담회에서 “유료 회원 티켓 수익만으론 DCH 운영 재원을 조달할 수 없다”라고 현실을 토로했다. “DCH 서비스만 놓고 보면 매년 적자를 보진 않았지만 향후 DCH 수입이 늘어나더라도 콘텐츠 제작에 재투자하는 것이 단원들의 생각”이라고 마이닝거는 강조했다.


한편 베를린 필 미디어는 사운드 포맷의 복고 바람까지 DCH 매출에 활용한다. 2010년대 후반 LP 소비가 늘어나면서, 베르나르트 하이팅크의 마지막 베를린 필 공연 실황을 한정 수량 LP로 발매하고, DCH 유료 회원에게 구매 기회를 우선 제공한다. DCH 연간 회원 연장 고객에겐 기존 레이블에 음원이 거의 없는 현 감독 키릴 페트렌코의 정기연주회 실황을 비매품 CD에 담아 발송한다. 세계 최정상의 오케스트라는 공연 영상 에피소드당 단가를 고민하는 단계를 일찍이 지나, DCH를 활용한 더욱 더 큰 그림을 구상하는 듯하다.

 

 

개인 스마트폰으로 관람하는 ‘메트 오페라 온 디맨드’
미국을 대표하는 오케스트라인 뉴욕 필하모닉은 지난 10월 13일 행정감독 데보르 보르다의 성명으로 2021년 6월 13일까지 예정된 2020/2021 시즌 전 공연의 취소를 알렸다. 뉴욕 주재 공연 업체 결사인 ‘브로드웨이 리그’가 내년 5월 말까지 공연 중단을 알린 직후의 결정이다. 같은 도시를 근거지로 한 카네기홀과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이하 메트) 역시 뉴욕 필과 비슷한 위기를 마주하고 있다. 메트는 지난 9월 말 2020/2021 시즌 공연 전체를 취소하고 일단 버티기에 들어갔다. 시즌 오픈 갈라 공연을 열 수 없어 부호들의 기부금 모금 기회를 잃었기에, 제작 부서 인력을 일시 해고해 고정 비용을 최대한 줄인다는 전략이다. 동시에 모든 방면에서 매출을 발생시키기 위해 히트 상품인 공연영상화 서비스 ‘메트: 라이브 인 HD’(이하 메트 라이브) 방식에도 손을 댔다. 


“메트 공연을 전 세계 영화관에 디지털로 전달해 오페라 관객을 확대한다”는 목표로 2006년 메트 행정감독 피터 겔브가 시작한 메트 라이브는 2018/2019 시즌 기준 세계 70여 개국 2,200여 개 영화 극장에서 상영됐다. 겔브는 5.1채널 서라운드 음향과 현란한 카메라워크를 제대로 즐기려면 개인용 컴퓨터나 AV 시스템보다 극장 대형 스크린과 음향 시스템이 낫다고 판단했다. 업무 차원에서 보면, 개인용 모바일 기기의 진화에 메트가 일일이 대응하기보다 각 지역 영화관 체인과 시즌 계약으로 수익을 얻는 체계가 훨씬 간편했다. 스마트폰 앱에 메트 라이브 서비스를 넣을 경우, 뉴욕 거주 관객의 오프라인 티켓 구매 감소를 초래할 것이라는 역마진 위험도 감안한 결정이었다.


그러나 지난 3월 뉴욕시 봉쇄 조치 이후, 메트는 지난 14년간 축적해 온 기존 메트 라이브 아카이브를 한시적으로 홈페이지에서 무료 공개했다. 코로나19 국면이 장기화하면서 오프라인 공연이 불가능해지자 메트는 ‘메트 오페라 온 디맨드’ 앱을 통해 개인용 디바이스에서 유료 결제가 가능한 ‘나이틀리 메트 오페라 스트림스’를 개시하기에 이른다. 1년 전만 해도 극장 대형 스크린 관람을 권유하던 메트가 가정용 스마트 TV와 모바일로 메트 감상을 권하는 셈이다. 다만 넷플릭스·디즈니·아마존프라임을 시청하듯 스마트TV 앱인 ‘메트 오페라 온 디맨드’로 결제하고 소비하는 미국 가정의 방식은 통신사 IPTV를 통해 개별 콘텐츠를 구매하는 한국 실정과는 조금 거리가 있다.

 

전 세계 영화관에서 상영돼온 메트 라이브는 이제 스마트TV와 모바일 기기로 들어왔다


메트는 온라인 관람료를 각각 1개월 14.99달러(1만 7,000원), 1년 149.99달러(17만 원)로 책정하고, 상품권 형식을 통해 법인이나 개인이 메트 온라인 관람권을 선물로 주고받을 수 있도록 했다. 기존 메트 라이브 영화관 관람객 외에 베를린 필 DCH 구매층처럼 개인용 디바이스와 AV 시스템에 익숙한 클래식 음악 콘텐츠 구매자를 유인하는 전략이다. 코로나19 사태가 마무리되더라도 해외 구매자의 접근성을 배려한 ‘메트 오페라 온 디맨드’는 역마진 우려와 관계없이 지속될 전망이다. 디지털 기술로 오페라 관객을 확대한다는 겔브의 철학에 오히려 영화관 상영 방식보다 더욱 부응하는 서비스다. 재정 여건이 열악한 상황에서 메트가 온라인 서비스를 개시한 배경에는 기존 메트 기부자들에게 기금 모금의 명분을 제공하는 것도 있다. 메트 콘텐츠의 모든 결제창에는 기부금 모금 버튼이 있다.


메트는 2021년 9월 오프라인 공연 재개를 목표로 재무 구조를 개선하고 있다. 공연이 정상화된다면 오프라인 공연 매출과 영화관 방식의 메트 라이브, 개인 디바이스 기반의 매출 추이가 요동칠 것이다. 대공황 이후 막대한 자본으로 각계 인재를 끌어모아 최고 수준의 공연예술을 구현했던 메트로폴리탄 오페라가 코로나19를 통해 상업 관점에서 오페라 장르 자체를 다시 바라보고 있다. 여기엔 경제적 어려움을 자초한 현재의 오페라 제작 방식이 미래에도 지속 가능할지에 대한 고민도 담겨 있다.

 

한정호 에투알클래식&컨설팅 대표. 월간 ‘객석’에서 클래식 음악과 무용을 담당했고,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예술정책·지원 소위원회 위원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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