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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07월호 Vol.366

진화하는 미술관

안목의 성장 | 건축가 안도 다다오의 ‘뮤지엄 산’


1 열린 하늘 공간을 우러러보는 긴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스카이 스페이스’

음악을 듣듯 공연을 보듯 건축을 감상한다면 어떨까. 우리에게 말을 건네고 감동을 전하는 미술관 속으로 성큼 걸어 들어간다

산에 깃들여 바라본 내면
강원도 원주, 산기슭 깊숙이 위치한 ‘뮤지엄 산’은 미술관이자 공연장이다. 또한 700미터에 이르는 긴 길을 걸으며 건축물 자체를 즐길 수 있는 공간이다. 주차장에 내려서는 길게 난 아담한 길을 걸으며 나무,  꽃, 물 온갖 자연을 벗 삼을 수 있고 그 길의 끝에 뮤지엄 본관·명상관·제임스 터렐관이 순서대로 우리를 기다린다.
이 건축물은 노출 콘크리트로 유명한 일본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설계했다. 르코르뷔지에가 노출 콘크리트를 사용하기 시작했다면 안도는 이를 본격적으로 알린 인물이라 볼 수 있다. 별도의 마감 없이 구조체인 콘크리트 자체가 그대로 드러나는 노출 콘크리트는 이제 카페·갤러리 심지어 주택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건축 어법이 됐다. 안도의 노출 콘크리트는 아주 매끈해서 화장이 필요 없는 ‘민낯 미인’이라 할 수 있다. 좋은 품질의 노출 콘크리트로 시공하는 노하우 덕분에 마감 없는 건물을 지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는 “외형보다 내부의 체험이 더 중요하다”라고 말한다. 눈에 잘 띄지 않는 노출 콘크리트 덕분에 우리는 주변 자연을 둘러보고, 빛이 드는 창을 응시하며, 내부 콘텐츠에 집중하게 된다. 그의 대표작인 ‘빛의 교회’(1989)는 겉으로 보기엔 직사각형 콘크리트 박스일 뿐이지만 벽 자체에 뚫어놓은 크고 얇은 십자가를 통해 안으로 빛이 들어오며 경건함과 신성함을 극대화한다. ‘뮤지엄 산’의 명상관 역시 노출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돔에 얇게 창을 내어, 밖에서 안으로 쏟아지는 빛의 형태에 집중하게 만든다. 노출 콘크리트는 태양광에 의해 형성되는 표면을 보여주기에 가장 적합한 소재로 이 공간에서 벽체는 추상화되고 잊힌 채 공간 자체만이 존재함을 느낀다. 이에서 자연스레 자신의 내면에 집중한다면 건축의 힘을 실감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2 안도 다다오가 만든 명상관. 오전 11시, 돔 안으로 빛이 쏟아진다 


건축가가 준비한 시나리오
‘뮤지엄 산’이 가진 또 하나의 특징은, 완벽하게 짜인 공간 시나리오다. 이 역시 안도가 설계한 건축의 특징이다. 그는 보행자 동선의 의도적 구성을 통해 공간 간의 관계 속에서 이미지와 느낌을 전달하는 경향이 짙다. 그가 만들어놓은 길을 따라가면 한 편의 공연을 보는 듯 움직이고 느끼게 된다.
한편으로 일방적이기까지 한 공간 구성의 의도성을 느껴본 적 없다면 사찰을 떠올리면 된다. 사찰의 길과 계단, 시선의 움직임을 통해 우리는 종교의 신성함을 깨닫기 때문이다. 산 깊숙이 위치한 사찰을 방문하면 우선 일주문에서 천왕문에 이르는 긴 길을 걷게 된다. 이 길은 자연과 호흡하며 잡념을 잊는 공간이다. 이후 다층의 석축과 계단을 오르는데, 전방이 보이지 않으면서 불안함과 기대를 동시에 느낀다. 그리고 누각에 이르면 신체적 어려움의 절정에 이른 채 허리를 숙이고 계단을 오르는데, 고개를 듦과 동시에 빛과 함께 대웅전이 등장하며 “우와!” 하고 탄성을 지르는 결말에 도달한다. 이렇게 방문자는 사찰의 신비에 빠지는 시나리오를 자기도 모르는 사이 경험한다.
‘뮤지엄 산’의 700미터 선형 부지는 차례대로 공간을 경험하기 최적의 환경이다. 본관으로 가는 길에서 건물은 눈에 띄지도 않기 때문에 호기심과 기대를 품은 채 산책을 즐긴다. 그러다 본관과 알렉산더 리버먼의 작품인 강렬한 붉은색의 ‘아치웨이Archway’가 갑자기 나타나 자연과 반대되는 인조물이 큰 인상을 전달한다. 그리고 본관으로 들어가는 물 위의 길을 꽤 오래 걸어가면 내 모습 또한 자연의 일부 혹은 풍경의 주인공이 된 것 같은 느낌에 마음이 고요해진다. 물이 깃든 공간은 애매한 경계를 형성해 건축과 자연, 방문자를 융화시키는 역할을 하며 관람자의 전시 관람 준비를 유도한다. 건축가 피터 아이젠먼은 “안도의 건축에 ‘아이콘’과 ‘지표’가 함께 내포돼 있다”라고 했다. 즉 공간의 이미지만 아니라 무언가를 말하려는 느낌이 전달되면서 방문자가 공간과 공간 사이 의도된 사건에 대응하고 공간과 관계 맺기를 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다.


3 뮤지엄 산의 내부. 빛과 선이 공간을 분할한다

4 알렉산더 리버먼의 작품 ‘아치웨이’가 입구를 장식한다


작품과 하나가 된 관객
모든 여정을 끝내고 마지막으로 만나게 되는 ‘뮤지엄 산’의 백미는 바로 빛과 공간의 예술가 제임스 터렐관이다. 많은 것을 인터넷으로 대신 경험할 수 있는 지금 이 시대에, 직접 보지 않으면 절대 온전히 경험할 수 없는 작품이란 특이성을 가진다. ‘워크 인 스컬프처Walk in sculpture’ 즉 작품 안으로 들어가야 작품을 감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감상자가 직접 경험하는 일종의 체험형 전시인 셈이다. 특히 ‘뮤지엄 산’에서는 관람 인원과 시간을 제한했고, ‘일몰 프로젝트’ 관람은 연간 회원만 가능하며 예약은 필수다. 장소·시간·인원을 제한하는 장치들은 그의 작품에 극한 환상을 더한다.
제임스 터렐은 빛과 공간을 조응해 작품을 완성한다. 자연광과 인공광을 세밀하게 조절하고 공간의 형태를 바꾸면서 환영과 착시를 유도한다. 미술관에는 4개의 작품이 설치돼 있다. 공간을 가로지르는 붉은빛의 선과 면을 통해 공간이 분할된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웨지워크Wedgework’, 계단 위 뚫린 문으로 빛이 들어오며 계단 위 세계를 상상하게 만드는 ‘호라이즌 룸Horizon Room’, 시시각각 다양한 색으로 변하는 스크린 안으로 들어가며 공간의 정체에 놀라게 되는 ‘간츠펠트Ganzfeld’, 열린 하늘 공간을 우러러보는 긴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스카이 스페이스Skyspace’. 4개의 작품 모두 관객·건축·작품 세 가지가 서로 긴밀한 관계를 맺으면서 깨달음과 내면의 성찰 시간을 만들어낸다. 스카이 스페이스와 호라이즌 룸을 기반으로 노을 지는 시간과 비가 올 때만 문을 여는 프로그램 ‘스페이스 디비전Space-Division도 있다. 초 단위로 변하는 자연이 더 깊은 명상의 세계를 연다. 1시간, 침묵의 순간을 직접 느껴보길 추천한다.

미술관 역할의 확장
이렇게 공간 자체가 스토리를 갖게 된 데는 건축이 기능을 넘어 또 다른 만족을 충족시켜야 하는 시대적 요구와 맞닥뜨렸기 때문이기도 하다. 미술관은 작품을 전시하는 기능을 넘어 새로운 공간 구성과 이벤트를 통해 경험의 제공처가 되는 방법을 지속해서 고민하고 있다. 화이트박스였던 미술관은 다양한 건축 형태로 진화했고, 교육과 공연은 미술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프로그램이 됐다.
국립현대미술관은 함께 요가를 하거나 나이트 러닝, 심지어 맥주를 함께 마시는 행사도 개최한다. 코로나가 기승인 올해는 유튜브와 공식 사이트에 전시와 공연을 올리는 방법도 선보인다. ‘집콕 문화생활’이란 주제로 국립현대미술관·국립중앙박물관·예술의전당·국립극장 등 여러 기관이 전시·행사·공연 등의 콘텐츠를 온라인에 적극 업로드하는 것은 큰 변화다. 특히 국립극장과 국립현대미술관은 공동으로 온라인 공연 ‘미술관에書서 여우樂락’을 개최하고 6월 30일 유튜브·네이버TV등 양 기관의 온라인 채널을 통해 공개한다.
‘뮤지엄 산’도 판화 공방, 음악회를 수시로 운영한다. ‘뮤지엄 산’ 관계자는 “찾아가는 음악회처럼 크고 작은 공연, 이벤트 등을 통해 시각 외에도 다른 감각을 깨우는 기회를 계속해서 마련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 말이 이 시대 미술관의 역할을 잘 설명해 준다. 
오늘날 미술관이 꾸준히 진화하고 있음은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전시품을 담는 그릇 역할에서 벗어나 관객의 감각을 깨우고 경험을 제공하는 장소로 계속해서 변해가며 그에 걸맞은 공간과 건축을 선보일 것이다. 경험할 것이 점점 풍부해지는 이 시대, 건축도 음악을 듣듯, 미술을 보듯, 공연을 보듯 감상한다면 더 큰 감동과 영감을 얻으리라 믿는다.

박계현 건축 전문지 월간 ‘Space공간’ 기자로 활동했다. 현재 윤디자인에서 공간을 매개로 한 미디어를 기획하고 운영한다
사진 뮤지엄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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