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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06월호 Vol.365

이토록 아방가르드한 탈이라니

내일의 전통 | 아티스트 마크 최

 

 

 

할 말을 하는 용기를 주고 싶어서, 요즘 시대에 언뜻 무용無用한 창작품을 통해 ‘큰’ 영감을 불어넣고 싶어서. 그렇게 시작된 한 예술가의 독특하고 독창적인 탈 작업 세계

 

한국에서 유독 안 팔리는 장르의 그림이 있다. 인물화와 나체화다.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이 나를 보고 있는 것 같으니 차분히 감상할 수가 없다. 마크 최가 진행하는 ‘탈 프로젝트’를 보자마자 ‘저걸 누가 살까?’ 싶었다. 집에 두기엔 무섭고 께름칙하지 않은가. 그런데 보면 볼수록 독창적이고 디테일도 남달라 계속해서 눈길이 갔다.
약속 장소에 나온 마크 최는 휴대용 상자에 탈 대여섯 개를 담아 왔다. 그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익히 보아 익숙했지만 실물로 보니 훨씬 정교하고 매력적이었다. ‘아프리카 탈’이라고 꺼내 놓은 것은 녹색·빨간색·파란색·흰색 천이 겹겹이 쌓여 있었다. 다양한 색깔을 중첩해 올린 옻칠화처럼 색의 레이어드가 근사했다. 두툼한 촉감도 인상적이었다. 코는 솜을 말아 넣은 후 안쪽에서 꼼꼼하게 바느질을 해 바깥쪽으로 툭 튀어 올라오게 만들었다. 색의 감각, 손의 감각이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지금은 아프리카 탈에 꽂혀 있지만 그는 오랫동안 한국의 전통 탈에서 모티프를 얻은 탈을 선보여 왔다. 직물 공예가와 협업해 선보인 작품이었다. 각양각색의 탈을 만든 후에 동료에게 탈을 씌워 사진을 찍었다. 검은색 재킷과 넥타이 차림의 얼굴 위로 올라간 탈은 화려한 색감, 촘촘한 디테일, 다양한 표정으로 단박에 눈길을 끌었다. 언뜻 행위예술 같기도 했다. 맞은편에 앉은 그가 먼저 꺼낸 탈은 말뚝이탈이었다.
“영화 ‘왕의 남자’에서 보는 것처럼 조선 시대에는 한바탕 탈놀음이 많았어요. 탈마다 역할과 뜻풀이가 있는데 말뚝이탈은 사람들의 한과 불만을 속 시원하게 풀어주는 존재였어요.”
자료를 찾아보니 ‘평소 모시고 다니는 양반을 신랄하게 풍자하는’ 것도 주요 역할 중 하나다. 상전인 양반을 욕보이려면 배짱과 맷집이 상당해야 할 텐데 생김새만 봐도 강단이 느껴진다. 부리부리한 눈매는 도깨비처럼 축 찢어져 위로 올라가 있고 큰 입 사이로 굵은 치아가 다섯 개나 튀어나왔다. 탈의 생김새를 그 옛날 원본과 함께 살펴보면 더욱 재미있는데 직물로 만든 마크 최의 탈은 얇은 천을 잇고, 덧대고, 쌓아 올려 입체적으로 만든 후 색색의 바느질로 얼굴에 점을 만들고 점 아래쪽으로는 실을 늘어뜨려 수염처럼 만들기도 하면서 원본과 비교해 컬러풀하고 생생한 캐릭터를 만들어낸다. 섬유는 덴마크의 유명 직물 브랜드 크바드라트Kvadrat에서 공수한 것이다.
패션 화보에 등장해도, 크게 만들어 공연장 한가운데 매달아도 임팩트가 대단할 것 같은 탈은 저마다 캐릭터가 확실했다. 목중탈도 그중 하나. 한자로 풀이하면 먹중黑僧, 즉 속이 검은 중으로 파계승을 의미한다. 세속적인 캐릭터와 달리 탈의 색깔이 곱디고운 주황색이다. 탈 테두리에는 반듯하게 자른 직물을 덧대 갈퀴로 만들었는데 이는 조선 시대 목중탈에서도 똑같이 발견되는 요소로 그때는 한지를 이용해 오방색으로 꾸몄다. 그가 가져온 탈 중에는 덕을 많이 쌓았지만 끝내 속세로 내려와 파계승이 되는 노승탈도 있었다. 검은색인 데다 입술 주변을 빨간색 실로 마감해 언뜻 무서워 보이지만 가만 들여다보니 흰 눈썹과 축 처진 눈이 순하고 처량해 보인다. 
“조선 시대에 사용되던 탈은 100가지가 넘었어요. 말뚝이탈만 해도 그 가짓수가 5~8개가 있어요. 탈은 사회 고발과 풍자의 역할도 했지만 샤머니즘·토테미즘과도 연관이 깊어요. 탈을 쓰고 잡귀를 쫓고 절대적 존재와 소통하는 거지요. 잡귀를 물리치려면 얼굴이 무서워야 하니 못생기고 우락부락한 생김새가 많아요. 혹과 점이 많은 것도 같은 맥락이지요. 비를 내려달라고 기원하는 등 제의적 성격도 강했고요.”
그의 말을 듣고 탈을 보면서 현대미술 바로 옆에는 전통이 있는 것 아닐까 싶었다. 후대의 청춘들은 그 오래된 것에서 현대적 아이디어와 미감을 뽑아내니 문화유산은 어떻게든 지켜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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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이너와 공예가를 잇는 연결고리가 되고파”
그가 탈에 주목한 계기는 최근 3년간 대한민국에 불어닥친 사회 변화와 맞닿아 있다. 대통령 탄핵을 외치며 길거리로 나온 사람들, 용기를 내 ‘미투’ 운동에 동참한 사람들, 재벌 기업의 부조리한 행태를 고발하는 사람 중에는 마스크를 쓴 이들이 있었고, 그 모습을 보면서 마크 최는 마스크가 누군가에게 용기를 내게 한다는 점에 끌렸다. 그렇게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니 한국에서는 탈, 서양에서는 마스크라 하는 이 ‘가면’의 뿌리는 원시 부족사회로까지 거슬러 올라갔고 그 옛날에도 가면을 쓴 이들은 신념과 확신으로 당당했다.
단순히 예쁜 물건이 아닌 사회적 이슈, 환경과도 연결된 작업을 하고 싶었던 그는 그때부터 탈을 공부하기 시작했고 수소문 끝에 손맛 좋은 직물 공예가를 만나 지금의 작업을 전개할 수 있었다. “혹시 본인도 평소에는 ‘세게’ 말하지 못한 억울함이나 화가 있는 것은 아닌가?” 하고 농담을 건넸더니 예상보다 훨씬 긴 답이 돌아왔는데 요약하자면 이렇다.
“스물두 살에 40대인 인생 선배들과 동업을 했어요. 포르투갈 기반의 친환경 컬러 엠디에프MDF 브랜드 발크로맷Valcromat을 수입해 가구로 만들어 팔았는데 잘 안돼 사업을 접을 수밖에 없었어요. 20대에 2­천 200만 원이란 큰 빚을 지게 됐죠. 사업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이래저래 하고 싶은 말도 많고 비용 계산을 더 철저하게 따져 빚을 최소화할 수도 있었지만 그냥 떠안았어요. 그때 속 시원하게 털어놓지 못한 ‘한’이 조금은 있는 것 같아요(웃음). 그때 제 멘토가 방송인 이상민 씨였습니다. 엄청난 빚을 지고도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면서 저도 힘을 내자 자기최면을 걸었지요. 하하.”
탈을 만드는 이유는 두 가지. 첫째는 사람들에게 할 말을 하는 용기를 주고 싶어서이고, 두 번째는 요즘 시대에 언뜻 무용無用한 창작품을 통해 ‘큰’ 영감을 불어넣고 싶기 때문이다. 그런 메시지가 공공의 장을 통해 확산되기를 바라는 마음에 개별 판매는 하지 않는다. ‘이런 작품이 잘 팔릴까?’ 하는 고민은 애초에 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그의 인생 이야기는 다채로웠다. 대학에서 가구 디자인을 전공했지만 가구 디자인하는 사람으로 본인을 가두기는 싫었다. 패션 디자인으로 유명한 파슨스 디자인 스쿨로 유학할 준비를 할 만큼 패션 디자인에도 관심이 많았고, 도예를 부전공으로 할 만큼 ‘흙’에도 애정이 있었다. 조명부터 벽지, 가구, 건축설계까지 다양한 분야를 넘나들며 전방위적 활동을 한 바우하우스의 크리에이터들처럼 가능한 한 많은 소재와 기법, 주제를 갖고 놀고 싶었다.
실제 그의 포트폴리오는 모르는 사람이 보면 ‘그래서, 뭐 하는 사람인가?’ 싶을 만큼 변화의 폭이 넓다. 반투명 유리를 금속으로 이어 붙여 만든 가림막부터 도자기로 만든 기물, 패브릭 깔개와 아웃도어 가구까지. 이런 행보는 앞으로도 계속될 예정인데 그의 목표는 디자이너가 아닌 예술가이기 때문이다.
“한 분야의 디자인만 하고 싶지 않아요. 다양한 공예가와 협업도 하고 싶고 그들과 연합해 새로운 창작물을 보여주고 싶어요. 탈 프로젝트처럼요. 공예가의 85퍼센트 정도는 평소 계속해 오던 작업을 반복해서 하는데 어떤 기획과 제안이 들어가느냐에 따라서 기존과 전혀 다른 작품이 나올 수 있어요. 그런 가능성과 확장의 중심부에 제가 서 있었으면 좋겠어요. 편집 가게가 인기를 끌면서 디자이너와 공예가를 찾는 곳도 그만큼 많아졌지만 그런 편집 가게는 그저 ‘예쁜 물건을 파는 곳’에 그칠 확률이 높은 것 같아요. 디자이너와 공예가가 머리를 맞대고 공정을 공유하면서 새롭고 신선한 제품을 만들어내는 생태계까지 구축하는 데는 한계가 있지요. 저는 이런 ‘큰 그림’까지 자연스럽게 그려져야 디자이너나 공예가들이 단지 예쁜 물건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원 절약이나 환경보호까지 염두에 둔 제품들을 더 활발하게 내놓을 수 있다고 봐요. 디자이너와 공예가의 사전적 개념은 다르지만 무언가를 창조해 낸다는 본질은 같잖아요. 서로 더 활발하게 자극을 받았으면 좋겠고, 영감도 나눴으면 좋겠어요. 저는 그 연결고리가 되고 싶고요.”

 

 

 

1 방상시탈, 2019. 6세기경 신라 시대에 출현한, 한국 최초의 탈. 재앙이나 병을 쫓는 신앙탈이다
2 아프리카 탈, 2020. 아프리카 특유의 원색적이고 현란한 색감이 강렬하다
3 말뚝이탈, 2019. 양반들의 무능과 부패를 조롱하며 민심을 대변하는 역할을 했다.
활달하고 장난기 넘치는 캐릭터 특징이 탈 디자인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4 노승탈, 2019. 나이가 많고 덕이 많은 승려. 속세를 풍자할 때 자주 등장했다.
직물과 실로 만든 두꺼운 눈썹과 긴 수염이 포인트

 

5 목중탈, 2019. 놀이판을 흥겹게 하는 일등 공신으로 사악한 것을 물리치는 역할도 수행했다. 사자 갈퀴처럼 붙인 직물과 오렌지 색깔이 현대적인 느낌을 준다 

 

정성갑 월간지 ‘럭셔리’와 네이버 디자인프레스에서 기자와 편집장으로 20년 가까이 일했다. 한 점 갤러리이자 콘텐츠 제작?기획사인 ‘클립clip’을 운영한다 
사진 제공 마크최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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