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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06월호 Vol.365

다섯 가지 색채의 조각

미리보기 하나 | 국립국악관현악단 ‘정오의 음악회’


조각보를 가까이 들여다보면 각각 매력을 뽐내는 색채를 확인할 수 있다. 요모조모 하나로 어우러져 아름다움을 빚어내는 공연 속으로

 

조각보를 닮은 무대
우리 전통 공예 중 ‘조각보’라는 것이 있다. 조각보는 직물이 귀하던 시절 조선 시대 여인이 옷이나 이불을 짓다 남은 자투리 천을 이어 붙여 생활 용품을 만들어 쓴 데서 비롯됐다. 조각보는 패물이나 바느질 도구를 보관하거나 밥상을 덮고 가리는 용도로 쓰이기에 실용적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추상예술에서 볼 법한 조형미를 갖추고 있어 경이롭다. 하나의 조각보를 이루는 각각의 조각 천이 지닌 다양한 패턴과 색채의 결합은 억지로 만들어낸 것이 아닌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드러낸다.
2020년 ‘정오의 음악회’ 공연이 두 번째를 맞았다. 다채로운 관현악 편성과 개성 있는 프로그램으로 짜여 실용성과 예술성이란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았다고 평가되는 국립국악관현악단의 대표 상설공연이다. ‘정오의 음악회’에서 선보이는 프로그램은 항상 국악관현악의 다양한 면모를 한자리에서 쉽게 즐길 수 있게 해주면서, 동시에 국악계를 대표하는 최고 기량의 출연진이 힘을 모으고 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친숙하고 실용적이면서도 높은 예술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 마치 우리 전통 조각보와 닮았다. 그렇다면 이번 무대는 어떤 색채의 조각들로 만들어질까? 공연에 앞서 미리 알아보자.

 

 

옹기종기 이어진 다채로움
첫 번째 조각은 몽글몽글한 분홍빛의 ‘정오의 시작’ 코너다. 대중에게 친숙한 영화음악을 편곡해 공연장을 찾아온 누구나 편안하게 국악관현악에 스며들 수 있도록 해주는 시간이다. 이번 공연에서는 영화 ‘꽃피는 봄이 오면’의 삽입곡인 ‘옛사랑을 위한 트럼펫’이 국악관현악 버전으로 준비돼 있다. 트럼펫 연주자인 주인공 현우(최민식)가 첫사랑을 생각하며 가슴에 품고 있던 곡으로, 익숙하고 편안한 선율이 인생의 지나간 순간들을 추억할 수 있게 해준다. 누군가에게는 풋풋한 선분홍빛이면서 누군가에게는 아련한 해 질 녘 노을빛이기도 할 첫사랑의 기억. 국악관현악을 처음 즐기는 관객이더라도 어느새 마음을 활짝 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두 번째 조각은 긴 겨울을 이겨내고 막 돋은 새순이 보여주는 연둣빛과 같은 ‘정오의 협연’ 코너다. 이번에는 가야금과 해금의 이중주로 황병기 작곡의 ‘추천사’가 연주될 예정이다. 원래 이 곡은 서정주 시인이 쓴 동명의 시를 노랫말로 만들었는데, 그 노랫말을 보자면 봄을 맞아 그네를 타고 머언 바다로, 또는 저 하늘로, 마치 ‘바람이 파도를 밀어 올리듯이’ 떠나고 싶은 춘향의 일렁이는 마음이 묻어 있다. 새순의 녹색은 꿈틀대는 생명의 약동을 품고 있다. 이 곡에 박소영·최호종 국립무용단원이 국립무용단 대표 레퍼토리인 ‘춤, 춘향’(안무 배정혜) 속 사랑의 이인무를 재해석해 선보인다. 두 사람의 몸짓으로 춘향의 떨리는 마음이 어떻게 무대 위에 그려지는지 기대해도 좋다.
세 번째 조각은 실내악곡을 선보이는 ‘정오의 앙상블’ 코너로, 힘들 때 잠깐 올려다본 하늘빛이 주는 평온함을 닮은 무대다. 이번에 연주될 곡은 박경훈 작곡의 ‘작은 기도’. 대금·해금·생황·25현가야금 등 편성이 돋보이는 이 곡은 조바꿈이 여러 번 일어나는 과정 속에서 단계적으로 상승하는 선율을 따라 진행된다. 각각의 악기 개성이 묻어나는 주제 선율을 따라가다 보면 결국 마지막에 한데 어우러진 조화를 경험하게 될 것인데, 이곡을 통해 어지러운 세상 속에서 작은 기도를 올리며 마음을 가다듬고 세상을 다시 살아가는 힘을 얻길 바라는 작곡가의 마음이 담겨 있다.
네 번째 조각은 강렬하지만 성숙한 보랏빛을 닮은 ‘정오의 스타’ 코너다. 보랏빛은 신비롭고 화려하면서도 품위를 나타낸다. 이번 무대를 빛내줄 정오의 스타는 1970년대 디바 정미조. 1979년 돌연 화가의 길을 걷고자 무대를 떠난 그녀는 20년 넘게 가수가 아닌 삶을 살았다. 노래가 그리워서 다시 무대로 복귀한 그녀의 목소리가 국악관현악 선율 위에 포개져 객석을 휘감을 예정이다. 처연하면서도 나직한 목소리로 부를 ‘개여울’을 듣다 보면 세월 속에서 단단하게 영근 우아함과 여유로움을 느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마지막 다섯 번째 조각은 신진 예술가들의 무대로 꾸려지는 ‘정오의 3분’ 코너다. 이번에는 2019년 10월 관현악시리즈 I ‘3분 관현악’에서 초연된 작곡가 김창환의 ‘취吹하고 타打하다’가 준비돼 있다. 이 곡은 궁중 연례악 중 하나인 취타를 모티프로 만들어진 곡이다. 가야금의 취타 선율을 시작으로 대금과 피리가 어우러져 곡을 이끌고, 그 뒤를 소금과 양금이 빚어내는 부드러운 멜로디가 잇는다. 또 혼합박을 사용해 긴장과 이완 속에서 재미를 느끼게 해주는 경쾌한 리듬감도 느껴볼 수 있을 것이다. 전통음악 중 흥겨운 분위기가 짙은 취타의 장단은 정동과 음양의 조화를 상징하는 흑과 백을 떠올리게 한다. 양극에 서 있는 색채의 조화가 만드는 가능성과 무한한 신명을 느껴볼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정오의 음악회’는 이처럼 추억 속 사랑의 분홍색, 봄의 시작과 생명의 연두색, 기도와 휴식의 하늘색, 시간과 성숙의 보라색, 조화와 신명의 흑과 백의 조화로운 색채가 조각조각 이어질 예정이다. 각각의 색채는 국악관현악의 선율과 만나 규칙과 불규칙, 질서와 균형, 긴장과 이완 속에서 감동과 재미를 안겨줄 것이다. 7월 1일 11시, 하늘극장에 들러 당신의 색채를 찾아보시길. 또한 ‘정오의 음악회’를 꾸준히 찾는 관객이라면, 2019-2020 시즌 총 5번의 공연을 관람하고 티켓 5장을 모으는 ‘정오의 도장깨기’ 이벤트도 놓치지 않기를 바란다.

 

이채은 ‘현재’의 삶을 바꾸는 ‘고전’을 공부하기 위해 읽고 쓴다. 판소리계 소설을 중심으로 조선 후기 문학과 예술에 관해 연구하고 있다

 

국립국악관현악단 ‘정오의 음악회’
2020년 7월 1일
국립극장 하늘극장
전석 2만 원
02-2280-4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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