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킵네비게이션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빠른예매 바로가기 사이트 지도 바로가기
월간미르 상세

2020년 06월호 Vol.365

무대, 제단祭壇이 되다

깊이보기 둘 | 안무가 윤성주

※국립극장은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의 수도권 지역 공공시설 운영 중단 결정에 따라 국립무용단 ‘제의’ 공연을 취소합니다. 자세한 사항은 하단의 링크를 참고해주세요.

https://www.ntok.go.kr/Community/BoardNotice/Details?articleId=194817

 

 ⓒ 황필주 STUDIO79


“시대와 무대를 관통하는 소멸과 탄생, 순환의 서사. ‘제의’는 인간 스스로를 위로하는 몸짓이기도.” 무용수 47명의 간절한 몸짓에 무대는 서로를 위안하는 거대한 제단, 그 자체가 된다

 

몸짓은 인간과 신, 땅과 하늘을 이어주는 끈이었다. 풍요를 기원하든 신의 노여움을 달래든 절대자를 향한 다양한 형태의 제의에는 늘 춤이 있었다. 인간의 강한 열망이 담긴 춤사위는 어쩌면 신 아닌 인간 스스로를 치유하고 위로하기 위한 몸부림이었는지도 모른다.
인류 역사와 함께한 제례의식 속 의식무, 시대를 관통하는 간절한 염원의 몸짓을 모은 국립무용단의 ‘제의’가 5년 만에 무대에 오른다. 국립무용단 예술감독이던 2015년 ‘제의’ 초연을 완성한 윤성주 인천시립무용단 예술감독이 다시 지휘를 맡았다. 어느 때보다 위로가 필요한 2020년, 관객을 역동적이고 감각적인 몸짓의 세계로 초대할 안무가 윤성주를 만났다.

 

5년 만의 재연 무대다.
초연 이후 무대에 올린 적이 없어서 사실 새 작품처럼 느껴진다. 초연 당시 준비 시간도 많지 않았고, 단원들도 체력적인 한계를 많이 느꼈던지라 ‘언젠가 꼭 다시 하고 싶다’는 아쉬움이 컸던 작품인데 이렇게 기회가 주어져서 정말 감사할 따름이다.

 

국립무용단 무용수들이 꼽은 ‘다시 하고 싶은 작품 1위’가 ‘제의’였다고.
다들 춤에 대한 목마름이 있었던 것 같다. ‘제의’는 70여 분의 공연 시간 내내 퇴장 없이 움직여야 하는 공연이었다. 무용수들에게는 시쳇말로 ‘체력전’ 작품인 셈이다. 몸을 쓰면서 극한의 상태를 경험하고, 그 희열을 맛본 사람들이기에 이 작품을 좋게 기억해 준 게 아닌가 싶다. 말로는 힘들다고 할지언정 춤추는 순간 나를 잊고 춤에 빠져드는 사람이 바로 무용수 아닌가.

 

특별히 의식무에 주목한 이유는.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다양한 제천의식이 있었고, 의식무의 종류도 정말 많았다. 원시시대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의식무의 판이 정말 넓게 펼쳐져 있는데, 그걸 집대성한 작업은 없었던 것 같다. ‘언젠가 의식무를 하나로 엮어 큰 작품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줄곧 해오다가 국립무용단 예술감독 임기 마지막 해에 무대에 올렸다. 내 무용 인생에서는 나 나름대로 집대성이라는 표현을 쓸 수 있는, ‘의식무 대하드라마’ 같은 작품이다.

 

다양한 갈래의 의식무를 조화롭게 하나로 묶는 작업이 결코 쉽지는 않았을 텐데.
불교·유교·무속 신앙…. 종교별 의식무는 저마다의 성향이 강하기 때문에 하나로 묶으려다 자칫 소품 레퍼토리로 흘러갈 위험이 있다. 그래서 현대에서 과거로 돌아가는 시간 흐름으로 시대별 의식무용을 엮어 ‘순환의 고리’를 만들었다. 현대의 몸짓에서 출발해 조선 시대 유교의 일무, 고려 시대 불교의 바라춤·나비춤·법고춤, 부족국가·원시 신앙의 춤사위까지 거슬러 올라간 뒤 다시 조선 시대의 춘앵무가 이어진다. 여기서 새 생명을 잉태한 여인이 등장하면서 소멸과 탄생이란 만물의 순환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무대를 관통하는 이 메시지는 시대·종교별로 각기 다른 의식무를 해체하고 다시 조립해 ‘하나의 춤’으로 촘촘하게 엮어낸다. 더 나아가 순환과 조화라는 동양 사상의 뿌리에 깊숙이 다가서며 ‘춤의 단순 나열’이란 우려를 뛰어넘는다. 이 거대한 순환의 이치를 그려내는 것은 오롯이 무용수의 몫이다. 금방이고 쓰러질 듯한 한계이자, 절정을 향해 치닫는 역동적인 춤사위는 그 자체로 강렬한 물감이 돼 무대라는 제단을 물들인다.

 

 

 

개인적으로 마음 가는 장면이 있다면.
‘제의’는 무용수의 응축된 에너지, 춤과의 일체감이 정말 중요한 작품이다. 그렇다 보니 무용수들의 춤사위가 휘몰아치는 6장 ‘제전’(원시 집단의 다양한 의식을 조합해 춤으로 표현) 부분이 기억에 많이 남는다. 고서에 ‘동이족은 사흘 밤낮을 춤추더라’는 대목이 있다. 쓰러져 죽을 것처럼 치닫고, 그 끝은 경이로움이라는 결말을 내고 싶었다. 10~12분 정도 무용수들의 격정적인 동작이 펼쳐지는데, 모든 에너지를 다 쏟아낸 끝에 새 생명을 잉태한 여인이 나오며 다음 장인 ‘춘앵’으로 넘어간다. 무용수들 입장에서는 이때 ‘죽어도 여한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 것 같다.

 

무대가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LG아트센터로 바뀌었는데, 안무에도 변화가 있는지.
해오름극장은 무대가 정말 광활해서 무용수들이 70분간 퇴장도 못 하고 계속 춤을 춰야 했는데, 이번에는 무대 조건상 등퇴장도 생기고 팀별 전환도 가능해졌다. 그렇다고 무용수들이 편해지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동작이라는 게 사람이 달라지면 느낌도 달라지기 때문에 초연 무대와 비교할 때 분위기도 많이 달라질 것이다. 특히 무대의 폭이 좁아지고 객석과 거리도 가까워져서 작은 디테일도 더 잘 보일 수밖에 없다. 무용수의 들숨과 날숨까지 다 감지할 수 있는 만큼 어느 때보다 집중력이 필요할 것 같다.

 

의식무를 집대성한 작품이다 보니 일반 관객 입장에선 배경지식 없이는 다소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다.
관객은 무대를 보고 ‘좋았다’ ‘잘 춘다’ 하고 그저 느끼면 된다. 무용수의 발가락 하나하나 손짓 하나하나 분석하고 평가하는 것은 춤을 즐기는 게 아니다. 이것은 평론가와 비평가들이 할 일이다. 일반 관객들이 ‘제의’를 보고 ‘와 정말 잘 춘다’ ‘죽을힘을 다해 춤을 추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 그게 가장 정확한 평가다. 그렇게 하려면 무용수는 얼마나 춤을 잘 춰야겠나.

 

‘절대자를 향한 제의’라는 게 요즘처럼 절실할 때도 없어 보인다. 작품을 볼 관객에게 한마디 한다면.
인간은 제의를 통해 무엇인가를 신에게 기원하는 것뿐만 아니라 스스로 마음의 위안을 찾는다고 생각한다. 지금 모두가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은 가고 힘든 시기 끝에 새 시대가 도래하는 것 아니겠나. 이런 마음으로 공연에 함께해 주길 바란다.

 

 

안무가 윤성주의 작품들은 매번 화제를 낳았다. 단순한 전통춤의 재현이 아닌, 현대적인 해석과 새로운 시도가 더해졌기 때문이다. “전통을 기반으로 현시대와 소통하며 재창작하는 것이 나의 미션이다.” ‘그대, 논개여!’(2012) ‘묵향’(2013) ‘신들의 만찬’(2013) ‘토너먼트’(2014) 그리고 ‘제의’(2015)에 이르기까지, 국립무용단 예술감독 재직 시절 윤성주가 선보인 작품들은 모두 이런 생각에서 탄생했다. 몸짓을 매개로 끊임없이 시대와 호흡해 온 윤성주의 무용 인생에 2020년의 ‘제의’ 무대가 더욱 남다르게 다가오는 이유다. 모두가 ‘생동하는 삶’을 열망하는 지금, 윤성주와 국립무용단이 객석을 향해 올릴 신성한 의식은 그래서 더 기다려진다.

 

송주희 ‘서울경제’ 문화레저부 기자. 2008년 2월 입사해 사회부·증권부·문화부·정치부를 거쳤으며 올 4월 문화부로 복귀했다. 여전히 더 많은 무대를 보고 듣고 배우고 싶다

사이트 지도

사이트 지도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