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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2월호 Vol.359

잠들어 있는 공연예술자료를 깨우는 시도

뉴욕·아비뇽 공연예술 아카이브

 

공연예술과 아카이브, 두 영역은 가깝지만 멀다. 공연예술은 사라진다는 숙명을 지닌 반면, 아카이브는 자료를 오래도록 보존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공연예술 아카이브는 사라지기 마련인 무대 위 순간을 계속 붙잡고자 하는 시도다.

 

 


프랑스 국립도서관 ⓒVincent Desjardins

 

공연예술 기록을 활용한 시각예술
공연예술과 아카이브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사라지는 것과 보존하는 것. 그 때문에 ‘공연예술’을 ‘기록’하는 것은 어렵다. 같은 공연이라도 매번 달라지는 무대를 영원히 보존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공연 현장의 생동감을 사진과 영상 같은 기록으로 전환하는 순간, 그 공연의 총체성은 파편적으로 남을 수밖에 없고 늘 왜곡될 가능성이 있다. 그렇더라도 공연 당시의 무대 상황이나 작품의 중요성?미학적 가치는 오직 남아 있는 기록으로만 파악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실황과 제작 과정을 면면히 남기는 일은 중요하다.
국내에서는 공연예술계보다 시각예술계에서 먼저 아카이브를 구축하고 활용하는 문제가 검토됐다. 2013년부터 아카이브를 활용하는 전시가 이어졌는데, 종종 공연예술 기록을 사용하는 사례도 전시관에서 목격됐다. 일민미술관의 ‘공동의 리듬, 공동의 몸: 공동체 아카이브’(2017) 전시는 ‘기록되지 않은 민중의 역사’라는 주제 아래, 소리·춤·리듬으로 공동체 아카이브를 구축하고 활용하는 프로젝트를 선보였다. 예술가뿐만 아니라 사회학자·역사학자·문화인류학자 등이 쌓아온 기록물은 기존 시스템에서 소외됐던 이들의 발자취를 보여줬다. 여기에는 ‘여성국극’을 조사하고 이를 현대 맥락의 공연으로 재창조한 정은영의 프로젝트가 포함됐다. 전시에서 음악·연극·안무 퍼포먼스가 펼쳐져 관람객은 각자의 리듬 속에서 스스로 자료를 재구성하며 감상했다. 아카이브의 틈새를 채워가는 연구자의 노력과 관람자가 공감각적인 방식으로 감상하는 과정 모두가 표현된 것이다.
공연예술계에서 무용과 아카이브의 관계를 가장 주도적으로 풀어낸 기관은 국립현대무용단일 것이다. 2014년 ‘역사와 기억’을 주제로 한국무용의 역사를 되짚는 아카이빙 작업을 시도했다. 아르코예술기록원에서 열린 ‘결정적 순간들: 공간사랑, 아카이브, 퍼포먼스’(2014)는 소극장 공간사랑의 역사와 그 의의를 반추하는 실제 기록물을 수집·정리하고 공유하는 전시였다. 이 중 ‘리빙 아카이브’ 섹션은 수집된 자료와 기획자·원로 안무가의 증언을 바탕으로 현대 예술가들이 작품으로 재창조한 것으로, 기록과 창작의 관계를 탐색하기도 했다. 이는 공연예술 아카이브를 구축하는 동시에 활용하면서 공연예술의 역사를 어떻게 기록하고 창작의 재료로 활용하며 동시대에 소환할 것인지 고민하는 시도였다.
국내 예술계는 단순히 자료를 수집하고 연구하는 형태가 아니라, 아카이브를 통해 의미를 계속 생산하고 능동적으로 감상하기 위한 토대를 마련하고자 한다. 프랑스 국립도서관의 공연예술 아카이브와 뉴욕 공연예술 공립도서관은 오랜 역사 아래 쌓아온 양질의 기록물과 온·오프라인 서비스 플랫폼을 바탕으로 살아 있는 아카이브를 만들고 있다.

 

여성 국극을 재해석한 정은영 작가의 전시 연계 공연 ‘비베레vivere’ ⓒ일민미술관

 

책 없는 도서관
뉴욕 공연예술 공립도서관은 뉴욕시티발레·뉴욕 필하모닉·메트로폴리탄 오페라단 등 11개 예술 단체가 상주한 공연예술 종합 센터인 링컨 센터 내에 있다. 덕분에 한 공간에서 다채로운 장르의 공연을 연간 400회 이상 볼 수 있다. 이곳에는 연극이나 무용 등 전통 장르에서부터 거리공연·서커스·대중음악 등 현대 장르를 포괄하는 자료가 있는데, 종이책이 전체 자료의 30퍼센트에 불과해 ‘책 없는 도서관’이란 별칭으로 불리기도 한다. 책 대신에 음향 기록물·비디오테이프·무대 디자인·포스터·사진 등의 비도서류를 주로 소장하고 있다.
뉴욕 공연예술 공립도서관의 꽃은 자체적으로 공연 현장을 영상으로 기록하는 TOFTTheatre on Film and Tape archive다. 1970년 시작된 TOFT는 브로드웨이와 오프브로드웨이의 작품·지역 공연·주요 인물 인터뷰 등 생생한 공연예술 현장을 담는 데 주력해왔다. 이에 따라 뉴욕 공연예술 공립도서관은 현직 관계자뿐만 아니라 미래 세대의 창작과 연구를 위한 자료를 꾸준히 축적해 공연예술사에 의미 있는 역할을 한다. 또한 강연이나 퍼포먼스, 패널 토론 등 공공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도서관 내 도널드 앤드 메리 갤러리에서 공연예술 전시를 정기적으로 기획한다. 뉴욕 공연예술 공립도서관의 활동은 공연예술 문화 전반에 걸쳐 풍요로운 창작의 원천이 된다.
이렇게 공연예술에 특화된 자료를 구축하고 활용하는 활동이 돋보이는 뉴욕 공연예술 공립도서관의 강점은 온라인 플랫폼에서도 잘 드러난다. 최근 도서관은 저작권 문제 없이 누구나 자유롭게 무료로 내려받아 사용할 수 있는 공유 자료 컬렉션을 선보였는데, 여기에는 무려 18만 점 이상의 고화질 디지털 자료가 망라됐다. 홈페이지는 이용자가 해당 자료 이미지를 클릭하면 바로 볼 수 있게 정리했다. 더불어 1996년부터 진행된 온라인 전시 섹션은 도서관 내 갤러리 전시와 연계한 자료를 보여주거나, 소장 자료를 토대로 오직 온라인상에서만 볼 수 있는 전시를 꾸미기도 한다. 이처럼 아카이브 내 잠들어 있는 자료를 끊임없이 발굴하고 재조명하는 작업을 계속한다.

 

뉴욕 공연예술 공립도서관 ⓒKosboot

 

살아 있는 기록으로서 의의
프랑스 국립도서관의 공연예술 분과는 아비뇽의 장 빌라르관La Maison Jean Vilar에 있다. 프랑스 국립도서관은 20세기의 연극·서커스·무용·거리공연부터 TV·영화·페스티벌까지 공연예술과 연관된 모든 장르의 자료를 보유한다. ‘한 공연의 전 과정을 수집한다’는 방침 아래, 공연 작품 관련 도서나 정기간행물, 대본·무대 배경·소품·의상·사진·포스터 등 4백만 점 이상의 기록물을 보존한다. 특히 공연예술 아카이브는 극작劇作·무대 디자인·연출·연기·관객 수용과 같은 주제에 특화돼 있다.
장 빌라르관은 아비뇽 페스티벌의 아카이브 구실도 한다. 아비뇽 페스티벌은 프랑스에서 가장 오래된 축제이자 세계 최대 연극 축제다. 이를 최초로 만든 사람이 국립민중극단의 단장이던 장 빌라르였다. 그래서 페스티벌과 국립민중극단 자료, 장 빌라르 컬렉션도 함께 보관돼 있다. 이곳은 단순히 공연예술 자료를 소장하는 기관이 아니다. 세계적 명성의 축제를 이끄는 아비뇽의 자부심을 뜻하고, 그간의 역사를 증언하고 지역사회와 호흡하는 허브다. 빌라르관 메인 홀에서는 무대의상을 비롯해 소장 자료 중심의 기획 전시를 만날 수 있고, 맨 위층 자료실에서도 상시 아카이브 전시를 볼 수 있다.
소장 자료는 장 빌라르관 홈페이지에서 열람할 수 있으며, 프랑스 국립도서관의 전자도서관 갈리카를 통해서도 주요 자료 일부를 열람할 수 있다. 갈리카gallica는 1997년 프랑스 국립도서관이 선구적으로 시작한 디지털 서비스 사업으로, 사료 가치가 높은 소장 콘텐츠를 선별한 후 디지털화해 개방한 것이다. 프랑스는 이를 필두로 유럽연합EU의 유럽 디지털 도서관 구축과 운영을 주도하고, 효과적인 디지털 콘텐츠 활용에 앞장서 예술문화 민주화를 이루는 데 힘쓰고 있다. 이처럼 시대 요구에 부합하는 발 빠른 디지털 시스템 구축과 분야별로 전문화·세분화된 프랑스 국립도서관 운영체제는 프랑스의 예술 기록 문화 수준과 역사적 깊이, 그에 대한 공유 의식을 잘 반영하고 있다.
아카이브에 무엇을 어떻게 담을 것인지, 남겨진 기록을 매번 새로운 의미로 읽을 수 있을지의 문제는 중요하다. 공연예술 기록은 그 자체가 또 하나의 창작 영역으로 간주되기도 하고, 사용자에게는 아카이브를 접하는 경로나 방법에 따라 공연에 대한 경험의 폭이 크게 달라지기도 한다. 무엇보다 이러한 자료가 살아 있는 기록으로서 의미를 가지려면 온라인에서는 사용자 중심의 디지털 아카이브 플랫폼이 필요하고, 나아가 오프라인에서는 공연 기록물을 다채로운 감각으로 일깨우는 형태의 아카이브 전시, 혹은 기록물을 다시 찾아보는 새로운 재연으로서의 퍼포먼스도 유효할 것이다. 온·오프라인을 통한 아카이브의 활용이 공연예술만의 수행적인 스토리텔링이 잘 드러나는 기획으로 확장될 수 있다면 가장 이상적이지 않을까.


지가은 미팅룸meetingroom 아트 아카이브 연구팀 디렉터. 런던 골드스미스 대학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덕성여자대학교와 숙명여자대학교 대학원에서 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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