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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2월호 Vol.359

무대 예술가의 무한한 상상

공연예술박물관 개관 10주년 기념전시 ‘무대디자인’展

 

극장에 들어선 순간, 관객은 외부와 단절된 채 무대 디자이너와 연출가·배우가 창조한 세계를 마주한다. 그 세계의 바탕을 만들고, 환상을 유지해주는 것이 바로 무대 디자인이다.


영국의 거장 연출가 피터 브룩은 무대 디자이너의 스케치를 명징하지만 고정되지 않은, ‘열린’ 디자인으로 봤고, 무대 디자인은 배우의 연기와 함께 움직이며 이동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다시 말해 화가가 2차원적으로, 조각가가 3차원적으로 사고한다면, 연극 디자이너는 4차원, 즉 시간의 흐름을 염두에 두고 사고한다.”

 

 

공연예술의 이면을 살펴본 전시
국립극장 공연예술박물관 개관 10주년 기념 기획전시 ‘무대 위 새로운 공간의 창조, 무대디자인’(이하 ‘무대디자인’展)에서는 공연 무대가 단순히 배경에 그려진 그림 이상이란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무대 디자인은 무대미술의 한 요소다. 공연의 시각 정보와 이미지를 표현해 무대라는 물리적 공간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것이자, 무대 위의 모든 환경을 창조하는 작업이다. 무대미술은 넓은 의미로 무대 위에 보이는 장치·의상·조명 등의 전반적인 것을 포함한다. 무대장치가 일반적인 의미로 무대 디자인에 해당하지만, 이번 전시에는 무대의상 스케치도 다수 포함돼 있다.
‘무대디자인’展은 국립극장 개관 후 69년 역사를 만들어온 무대 디자인 자료를 기반으로 공연 이면에 존재하는 작업 과정과 이를 위한 무대 기술의 변천을 다룬다. 한국 공연예술의 무대 디자인 전반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이번 전시는 배재학당역사박물관과 공동 주최로 서울 근대문화 1번지 정동에 위치한 배재학당역사박물관에서 연다. 전시는 1부와 2부로 나눠 구성된다.

 

 

한눈에 살펴보는 국립극장 공연예술의 흐름
1부에서는 국립극장 전속단체인 국립창극단·국립무용단과 이관단체인 국립극단·국립오페라단·국립발레단을 기준으로 섹션을 나누어 진행한다. 각 섹션 안에서 연대순으로 전시됐기 때문에 1950년대부터 현재까지의 변화를 볼 수 있다. 1950년 국립극장의 탄생과 함께 창단된 국립극단은 한국 현대 연극사의 맥을 이어온 데다, 다른 극단에서 시도하기 어려운 큰 무대를 많이 선보여와서 가장 관심이 갔다. 1959년 서울신문 현상공모 당선작인 ‘젊은 세대의 백서’를 시작으로 1970년대 이전까지 김정환과 디자이너 장종선의 무대가 주를 이루었다. 작은 소품이나 장식의 문양과 색깔까지 지정하는 세심한 디자인에 놀랄 때쯤, 1973년 막을 올린 ‘성웅 이순신’의 무대가 나왔다. 전시를 보기 전 가장 기대했던 부분이다. 만약 이 작품이 없었다면 섭섭했을 것이다. 이 무대를 보고 싶었던 이유는 우선 국립극장이 명동 시대를 마감하고 1973년 남산에 새롭게 자리를 잡은 후 열린 첫 공연이라는 데 있다. ‘성웅 이순신’은 준공 기념 공연으로 큰 기대를 받았다. 국립극단원뿐만 아니라, 당시 국립극장 전속단체였던 국립합창단·국립가무단·국립발레단 등 총 240여 명이 협연했으며, 당시 국내 연극 사상 최대 규모였다.
하지만 무엇보다 관심을 끈 것은 극장과 무대였다. 명동 시절 시공관보다 28배나 큰 무대는 자동 회전과 수평이동·입체 승강이 가능했고, 무대장치와 배경, 의상 등도 이에 걸맞게 상당했다. 하지만 공연을 마치기 5분 전, 기계장치가 말썽을 일으켰다. 이순신이 화살을 맞고 쓰러지면 무대가 돌며 배우들이 합창하며 막을 내리는 장엄한 장면인데, 이순신 혼자 무대에 덜렁 남게 됐다. 지금은 웃으면서 듣는 이야기지만, 당시에는 극장에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진땀을 뺐을지 상상도 못할 것 같다. 전시에 나온 웅장한 무대 스케치를 보면서, 현장의 예술이라는 공연에서 무대가 가진 무게가 무겁게 느껴졌다.
국립극단의 ‘바리더기’(1983)와 국립발레단의 ‘바리’(1998)를 보면 장르 간 무대의 차이도 볼 수 있다. 무용수들의 움직임이 많을 수밖에 없는 ‘바리’의 무대는 연기로 서사를 풀어내는 ‘바리더기’의 무대보다 훨씬 간결하다. 시대차를 느끼기엔 40년 가까운 세월을 두고 무대에 오른 국립국극단의 ‘춘향전’(1962)과 국립창극단의 ‘성춘향’(2001)을 나란히 두고 보는 게 제격이다. ‘춘향전’이 수묵화로 그려낸 듯한 무대를 선보인 데 반해, ‘성춘향’은 막이 바뀔 때마다 병풍을 바꿔서 무대를 표현했다. 좀 더 정제되고 현대적으로 진화한 셈이다.

 

무대 위 세상을 표현하는 재료, 의상
다시 한번 피터 브룩의 말을 빌리자면, 그는 “잘못된 의상으로 배우의 연기를 망치자고 들면 그렇게 쉬울 수가 없으며 실제로도 꽤나 자주 있는 일이다”라고 했다. 그만큼 의상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완성도 높은 의상은 무대 위 세상을 표현하는 데 필수적인 재료다. 이번 전시 작품을 비교해 볼 때도, 의상이 가장 눈에 띈다. 일단 국립오페라단 ‘오텔로’(1998)의 경우, 무대보다 화려한 의상에 마음이 빼앗겨 그 앞에서 한참을 서성이게 된다. 의상 스케치를 한 종이에 실제로 쓰일 원단 천조각을 붙여 완성된 의상의 느낌을 고스란히 전해준다. 강렬한 원색을 많이 사용한 데다가 금사가 들어간 벨벳 등 소재도 다양하다. 국립오페라단의 전시를 지나 국립무용단에 이르면 또다시 의상이 눈길을 끄는 전시가 있는데, 이 역시 ‘오셀로’(1997)다. 이것은 한국적 춤사위의 춤극이기 때문에 전통의상이라는 것만 다를 뿐, 화려한 색과 다양한 소재, 그리고 스케치 옆에 원단을 붙여놓은 것까지 똑같다. 두 무대의상을 찬찬히 뜯어보면, 과연 관객들이 의상 디자이너의 세세한 정성을 다 알아챌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하지만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라고 하는 것처럼 공연의 완성도는 이렇게 작은 곳에 신경을 쓰는 것으로도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별도 공간으로 마련된 ‘무대 디자이너의 방’에서는 무대 제작 과정 영상과 함께 국립극장 무대에서 다수의 작품을 선보인 무대미술가 이태섭과 박동우의 인터뷰 영상을 볼 수 있다. 전시를 보고 난 뒤에 이 앞에 한참 동안 서 있는 관객들이 있을 정도로 전시와 매끄럽게 연결된다.

 

관객들의 상상이 시작되다
1부 전시실이 스케치와 평면도 위주였다면, 아래층에 마련된 2부 전시실은 입체적이고 능동적인 관람을 가능하게 한다. 전시실 3면이 다 화면으로 이뤄졌고, 관람객이 공연 무대를 직접 시각적으로 체험해볼 수 있도록 구성돼 있다. 관람객이 전시 공간 안에서 움직이면 그 움직임에 따라 무대디자인으로 만들어진 영상이 관람객과 상호작용하며 변하도록 연출된 체험 겸 감상 공간이다.
유럽 근대어에 있는 ‘극장’의 어원 ‘테아트론theatron’의 뜻은 ‘본다’, 즉 ‘사물이 보이고 행하는 장소’다. 배우들의 연기나 춤이 아니라 공간 자체에 방점을 찍은 것이다. 캄캄한 극장에 들어선 순간부터 관객은 외부와 단절된 채 무대 디자이너와 연출가, 배우들이 창조한 세계를 마주하게 된다. 그 세계의 바탕을 만들고, 환상을 유지해주는 것이 바로 무대 디자인이다. 이번 전시는 한국 공연 역사를 색다른 시각에서 조망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공연에 대한 호기심과 환상을 배가해준다. 미술 작품 못지않은 무대 디자인과 의상 디자인의 스케치를 보면서 관객들이 당시의 공연 무대를 저절로 상상하게 만드는 것만으로도 이 전시는 제 역할을 다했다. 무대 디자인이 또 다른 시각 예술이 될 가능성도 열어줬다는 것은 덤으로 얻은 성과다.


변희원 조선일보 기자

 

공연예술박물관 ‘무대 위 새로운 공간의 창조, 무대디자인’展
날짜 ~2020년 2월 29일
장소 배재학당역사박물관 기획전시실
관람료 무료
문의 국립극장 공연예술박물관 02-2280-5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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