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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0월호 Vol.357

한국 오페라계의 또 다른 주춧돌

두고두고 회자되는 공연 기록┃ 국립오페라단 제3회 공연 ‘가면무도회’

 

 

국립오페라단 제3회 공연 ‘가면무도회’
한국 오페라계의 또 다른 주춧돌
1963년 5월 29일~6월 4일

 

1963년은 국내외 오페라 팬들에게 뜻깊은 한 해였다. 대표적인 오페라 작곡가 베르디 탄생 150주년이자 국립오페라단이 국내 최초로 베르디 중기 오페라의 걸작 ‘가면무도회’를 공연했기 때문이다.
본래 ‘가면무도회’는 1961년 국제오페라사에서 스태프와 출연진까지 전격 발표하며 공연을 준비했으나 무산된 바 있었다. 마침 국립오페라단에서는 1963년 봄에 계획하고 있었던 ‘아이다’ 공연을 시민회관의 계약 취소로 연기해야 했기 때문에 ‘가면무도회’의 한국 초연으로 오페라 운동의 열기를 이어가고자 했다.
준비 기간은 짧았으나 제작진의 면면은 호화로웠다. 이탈리아에서 오페라를 공부하고 돌아와 국립오페라단 단장으로 취임한 홍진표가 연출을 맡고, 한국 오페라의 선구자인 테너 이인선의 동생이자 역시 음악가인 이유선이 리브레토를 한국어로 번역했다. 또한 임원식이 지휘하는 KBS 교향악단과 홍연택이 지도하는 KBS 합창단이 참여해 음악적 완성도를 높이는 데 공을 들였다. 그뿐만 아니다. 촉망받는 신인부터 노련한 베테랑까지 고루 출연하고, 한국의 1세대 무대미술가로 명망 높았던 장종선이 미술을 맡음으로써 드디어 한국에서 빛을 보게 될 걸작 오페라에 대한 기대는 나날이 고조됐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기대가 높았던 만큼 반응은 냉랭했다. 관객은 원작의 역사성과 그랜드 오페라의 묘미를 살리겠다는 홍진표의 의도를 잘 이해했고, 성악가 개개인의 역량과 연기에 합격점을 주었다. 특히 주연 다섯 명 모두 자신의 역할을 잘 소화했으며, 합창단과 오케스트라가 충분한 연습의 성과를 발휘했다는 점을 호평했다. 하지만 제목이 ‘가면무도회’인 만큼 춤 역시 중요한 요소임에도, 춤에 익숙지 않은 오페라 단원을 전면에 세우는 등의 동선 구성이 관객의 몰입을 방해했다. 좁은 무대에 적합하지 않은 이중 무대장치도 단점이었다.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성악과 기악 간의 조율이었다. 음악 전체에 질서를 부여하지 못해, 해당 작품의 음악적 특성을 살리기는커녕 성악과 기악의 소리 경쟁이 빚어지는 듯한 국면조차 있었다.
당시 상황을 현재 남아 있는 자료로 복기할 수 있다. 우선 보라색 배경 위에 가면 두 개를 겹쳐 작품 내용을 암시하는 표지의 프로그램은 제작진의 기본적인 정보와 함께 그들의 소회를 그대로 담고 있다. 연출 홍진표는 “(전략)…스칼라 극장과 로마 오페라 극장에서 연구한 것을 되살려보고자 노력했다…(중략)…우리는 좀더 정확한 사적史的 고증하에서 시대성에 알맞은 의상, 장치 그리고 연기 등을 배워야 하며 외국인 참관인에게도 납득이 가는 본격적인 오페라를 할 시기에 도달한 것이다…(중략)…오페라운동을 정상화하기 위해서는 우선 유능한 연출가와 오페라 전문 지휘자를 하루속히 초빙하여 장기간 체재케 하는 방법이 가장 좋을 것이나 경제적 빈곤 때문에 언제나 실현될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라고 썼다. 길지 않은 글에서 한국 오페라계가 안고 있는 어려움과 이번 작품에서의 접근 방식 모두를 일별할 수 있다.
사진 자료는 ‘가면무도회’의 무대미술을 단편적으로나마 기록하고 있다. 동선 제약과 공간 구별의 어려움으로 비판받았던 이중 무대장치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확실히 ‘가면무도회’를 올리기에 협소한 무대이나, 각 장면에 적합한 장치를 사용했으며 의상과 가발 또한 17세기 말 유럽 양식을 반영해 연출의 말대로 고증을 위한 제작진의 노력을 보여준다.
홍진표 감독은 연출의 변을 이렇게 마무리했다. “(전략)…우리나라에서도 일보전진하여 외국 오페라와 비슷한 면모를 찾고 앞날의 광휘 있는 오페라 발전을 위한 한 개의 작은 주춧돌이 되어지기를 바란다.”
비록 해당 공연이 흥행 면에서나 비평 면에서나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으나 저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을까. 국립오페라단조차 1960년대 내내 1년에 겨우 한두 편 공연을 올릴 정도로 열악한 상황이었음에도, 한국 오페라계는 고전의 레퍼토리화는 물론 창작에 힘쓰며 이제는 세계 굴지의 무대에 서는 가수와 연출가를 배출하고 있다. 주춧돌 하나하나의 모양이 전부 아름다울 수는 없을 것이다. 국립오페라단의 제3회 공연 ‘가면무도회’는 공들여 놓인 주춧돌로서 한국 오페라 역사를 단단히 받치고 있다.


이주현 국립극장 공연예술박물관 학예연구사

참고 
이용숙, ‘국립오페라단사’(국립극장, ‘국립극장 60년사’), 2010.
유한철, ‘사랑과 미움의 비가극 ‘가면무도회’ 초연에 즈음하여’, 경향신문, 1963년 5월 28일자.
유한철, ‘성악적 지시의 필요성 ‘오페라’ 가면무도회’, 경향신문, 1963년 6월 4일자.
작자 미상, ‘입체적 연출 취해’, 경향신문, 1963년 5월 22일자.
홍진표 외, ‘가면무도회’ 프로그램, 국립극장, 1963년 5월 29일자.

 

국립오페라단 제3회 공연 ‘가면무도회’
일자 1963년 5월 29일~6월 4일 | 장소 국립극장(명동)
작곡 주세페 베르디Giuseppe Verdi | 번역 이유선
연출 홍진표 | 음악 KBS 교향악단·KBS 합창단 외
미술 장종선 | 출연 김금환·이우근·황영금·김영환 외

 

공연예술자료 이용안내
국립극장 공연예술박물관은 약 21만 점의 공연예술 자료를 보존하고 있다. 공연예술 디지털아카이브 홈페이지(archive.ntok.go.kr)에서 누구나 쉽게 자료 검색 및 열람이 가능하며 박물관을 직접 방문하면 더 많은 자료를 이용할 수 있다.
문의 공연예술자료실(방문 이용) 02-2280-5834 공연예술디지털아카이브(온라인 이용) 02-2280-5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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