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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0월호 Vol.357

국가와 도시 사이, 전통의 가치를 생각하다

세계무대┃홍콩 서구룡문화지구 시취센터

 

중국 본토와 홍콩을 잇는 웨스트카우룽 역 건너편, 서구룡문화지구의 첫 번째 시설 시취센터가 자리한다. 마치 현대미술관을 본 듯하지만 중국 전통 월극 전용 극장이다. 국가와 도시의 교차로, 전통과 현대의 기로에서 그들이 선택한 가치가 담겨 있다.

 


시취센터
ⓒWest Kowloon Cultural District Authority

 

지난 6월에 송환법 반대 시위가 격렬했던 홍콩을 찾았다. 홍콩 정부가 도시 발전 계획의 일환으로 추진 중인 서구룡문화지구West Kowloon Cultural District가 첫 번째로 공개한 시취센터에 대한 궁금증 때문이었다. 서구룡문화지구는 1997년에 중국으로부터 ‘일국양제一國兩制’에 따른 일시적인 자치를 약속받은 반환 이듬해에 홍콩 정부가 발표한 대규모 프로젝트라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됐다. 홍콩은 홍콩 본섬, 중국 본토와 연결된 주룽반도(구룡반도), 크고 작은 섬들이 홍콩 특별행정구를 이루고 있다. 본섬은 뉴욕의 맨해튼에 비견될 만큼 성장했지만, 인구·경제·문화 등 모든 면에서 포화 상태였다. 홍콩 정부는 주룽반도 서쪽, 빅토리아 항 앞바다에 간척지 40만㎡를 매립하고, 그 위에 넓은 녹지를 조성해 문화예술 및 교육 시설 10개의 건립계획을 발표했다. 이것이 서구룡문화지구의 핵심이다. 1998년 첫 구상을 시작했고, 2026년까지 단계적으로 개발, 국가와 민간이 공동 출자한 예산 300억 홍콩달러(한화 약 4.3조 원)가 투입된다. 공연 분야 시취센터, 전시 분야 M+미술관, 베이징 고궁박물관의 분관이 될 홍콩 고궁박물관 등 주요 시설의 건립 계획이 공개되면서 베일에 가려졌던 서구룡문화지구의 윤곽이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10개 시설 중 무엇을 가장 먼저 짓겠습니까?”
서구룡문화지구 공연예술 부문 총괄감독 임기 만료를 하루 앞둔 날, 홍콩에서 루이스 유Louis Yu Kwok-lit를 만났다. 서구룡문화지구에 들어설 문화예술 시설 10개 중에 7개가 공연예술 부문이다. 7개 공연 시설은 다양한 크기의 극장 총 14개를 갖게 된다. 2010년 서구룡문화지구 사업에 합류한 루이스 유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전 세계 극장 경영인과 기획자를 만나 그들의 시행착오를 경청하는 일이었다. 서구룡문화지구의 전통예술·연극·무용·음악 등 각 부문 프로그래머들과 함께한 워크숍 마지막에는 늘 이렇게 물었다고 한다. “당신이라면 서구룡문화지구에 지어질 극장 중 무엇을 가장 먼저 짓겠습니까?”
대부분은 랜드마크가 될 만큼 화려한 대극장, 최고 수준의 음향을 들려줄 수 있는 콘서트홀, 서너 개 공연장을 동시 운영할 수 있는 복합 문화 공간이라고 대답했다. 대형 공연장을 먼저 지으면, 작은 공연장은 비교적 수월하게 지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가 내린 결론은 달랐다. “홍콩 예술가들에게 가장 필요한 중소형 공연장을 먼저 짓는다. 전통과 연극, 무용 분야를 우선으로.” 한정된 예산과 시간으로 수립해야 하는 공연장 초기 건립 계획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술가의 필요를 어떻게 사회에 연결할지와 누가 공연장을 이용할 것이냐는 질문이었다.

 

홍콩 문화의 새로운 상징, 시취센터
2019년 1월에 개관한 시취센터Xiqu Centre는 서구룡문화지구에 건립할 10개 시설 중 첫 번째로 문을 열었다. 시취센터戱曲中心의 ‘시취戱曲’는 중국에서 전통극을 뜻한다. 중국 전통 오페라는 여러 지방에서 발달했으며, 각 지방의 토착 언어로 쓰인 희곡과 음악·춤·연기·연출 등 스타일이 저마다 다르다. 영화 ‘패왕별희’ 덕분에 한국에는 베이징의 전통 오페라, 경극이 많이 알려져 있다. ‘월극越劇’은 저장성을 중심으로 발달한 중국 남방의 전통 오페라이며, 2009년에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됐다. 시취센터는 홍콩이 속한 광둥 지방의 월극 전용 공연장으로 설계됐는데, 월극 외에도 경극京劇·곤극昆劇 등 다양한 중국 전통 오페라와 그에 영향을 받은 현대 연극·음악극들을 선보일 계획이다.
시취센터는 건축사 레버리 아키텍처Revery Architecture와 로널드 루 & 파트너스Ronald Lu & Partners가 중국 전통 등燈에서 영감을 받아 디자인했다. 밤이 되면, 유려한 곡선을 따라 건물 외관의 빛이 은은하게 어둠을 감싸 안는다. 총면적 2만 8,164, 높이는 8층 건물쯤 된다. 시취센터는 서구룡문화지구의 관문과도 같은 위치에 있다. 본섬과 주룽반도를 연결하는 스타페리를 타고 침사추이에서 내려 고급 쇼핑 거리를 따라 10여 분 걸으면 도착한다. 시취센터 바로 앞에는 오스틴 지하철역이 있으며, 내년 1월에는 역과 공연장을 연결하는 에스컬레이터가 완공돼 접근성이 더욱 높아진다. 길 건너편에는 중국과 홍콩을 연결하는 웨스트카우룽 역이 있고, 고속철로 선전까지 15분, 광저우까지 45분이면 닿는다. 홍콩국제공항에서 시취센터까지 차로 30분이면 도착한다. 공연장 한 곳을 짓더라도 국가와 도시 간 연결성과 관객의 흐름을 고려한 통찰력이 놀랍다.
시취센터는 극장과 도로 사이에 출입구를 두지 않았다. 도로를 걷던 보행자들이 극장의 안마당(아트리움)을 거쳐 지나갈 수 있도록 완전히 개방돼 있다. 안마당에는 크고 넓은 계단이 있고, 중앙에는 중국식 정자(파빌리온)가 있어서 행인들이 앉아 쉬어가기도 한다. 위를 올려다보면 시취센터 두 개 극장의 입구가 한눈에 들어온다. 파빌리온 위층 티 하우스 시어터Tea House Theatre의 붉은 글씨가 눈에 들어오고, 한 층 더 위로 그랜드 시어터Grand Theatre를 확인할 수 있다. 파빌리온 위 타원형 둥근 천장이 그랜드 시어터의 무대를 떠받치고 있는 강철 구조물이다. 시취센터를 설계할 때, 우선 고려한 점은 전통을 낡고 시대에 뒤떨어진 것으로 보는 사람들의 심리적 저항이나 선입견을 낮추는 데 있었다. 그래서 열린 공간을 만드는 데 주안점을 두었다. 도로-안마당-정자-소극장-대극장이 수직으로 연결되는 독특한 구조는 월극과 전통에 대한 관심에서 시작해 입문 단계를 거쳐 수준 높은 작품까지 점진적으로 감상할 수 있도록 배려한 관객 중심 설계의 결과다. 2019년 시사지 ‘타임’이 세계에서 가장 멋진 장소 100곳에 시취센터를 선정한 데에는 외관의 아름다움뿐 아니라 건물이 품고 있는 전통에 대한 가치 때문이 아니었을까.

 

 

딤섬과 차를 즐기며 볼 수 있는 티 하우스 시어터의 상설 공연
ⓒWest Kowloon Cultural District Authority

 

 

전통과 동시대의 공존, 티 하우스 시어터와 그랜드 시어터
티 하우스 시어터는 200석 규모 소극장으로 간단한 딤섬과 차를 즐기며 볼 수 있는 90분 길이의 상설 공연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매주 목·금·토·일, 1회씩 저녁 공연이 있고, 학생을 위한 마티네 공연을 매주 2회 추가로 열고 있다. 한 공연당 6개 프로그램(월극 단막극과 전통음악 연주 소품들)으로 구성한다. 관객은 외국인을 비롯해 20~40대의 젊은 관객이 많았다. 놀라운 점은 객석 1층 오른쪽 출입구가 같은 층에 위치한 레스토랑의 조리실과 바로 연결돼 있어서 공연 전과 중간 휴식 사이에 식당 직원이 직접 딤섬과 차를 서빙하는 점이었다. 커튼콜이 끝나자 맞은편 왼쪽 출입구가 열리고, 관객은 안내에 따라 밖으로 이동하는데 시취센터 기념품 가게로 바로 연결돼 있었다!

가장 높은 층에 위치한 1,073석 규모 그랜드 시어터는 월극의 특성을 고려한 전용 무대로 설계했지만, 로비와 인테리어, 동선은 모두 현대적으로 구상했다. 2019 차이니즈 오페라 페스티벌 초청작 월극 ‘삼협오의三俠五義’를 보기 위해 로비로 들어서자 나선형 내부 공간이 구겐하임 미술관을 연상시켰다. 객석 입구까지 이어진 나선형 경사로는 곡선으로 이뤄져 있어 편안함을 주며, 관객 동선이 물 흐르듯 효율적이고 자연스러웠다. 루이스 총감독은 중국 전통 오페라를 보러 오는 관객 연령대가 지금은 높지만, 젊은 세대 관객들도 전통을 어렵게 생각하지 않도록 마치 현대미술관에 온 것 같은 느낌을 주고자 심플하고 모던한 공간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고 한다. 그랜드 시어터에서 만난 관객 대부분은 중국 오페라를 좋아하는 오래된 팬이 많았다. 연간 공연 가능한 월극 레퍼토리가 몇 편인지 궁금했다. 서구룡문화지구 전통예술 책임 기획자, 나오미 청Naomi Chung은 인기 레퍼토리만 100여 편에 육박한다는 놀라운 답변을 들려줬다. 잘 공연되지 않는 비인기 레퍼토리는 500여 편이다. 월극과 비슷한 역사를 가진 창극의 레퍼토리 숫자와 비교했을 때, 놀라운 숫자였다. 만약 경극 등 다른 지방의 중국 전통 오페라 레퍼토리까지 모두 더하면 레퍼토리 수는 훨씬 많아질 것이다. 나오미는 중국 전통 오페라는 어느 시대든 다양한 극본과 연출·음악 등이 자유롭게 변형

·창작될 수 있도록 장려됐고, 변화하는 전통에 대한 관객의 지지와 호응이 있었기 때문에 이와 같은 발전이 가능했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그랜드 시어터에서의 월극 공연 장면
ⓒWest Kowloon Cultural District Authority

 

 

미래를 위해 전통과 현대, 두 개의 주춧돌이 같이 필요하다
“당신이라면 무엇을 가장 먼저 짓겠습니까?”라는 루이스 유의 질문으로 돌아간다. 서구룡문화지구는 중국이라는 국가와 홍콩이라는 도시를 세계와 연결하는 거점이 될 것이다. 중국 남방 지역 전통극, 월극 전용 극장인 시취센터를 서구룡문화지구를 상징하는 첫 번째 시설이자 극장으로 선택한 대담함과 자신감이 부러웠다.
지난 6월에 서구룡문화지구 두 번째 공연장인 프리스페이스Freespace가 개관했다. 프리스페이스는 서구룡문화지구 가장 안쪽, 녹지로 조성된 공원과 해변 사이에 위치한다. M+미술관이 바로 옆에 있다. 프리스페이스는 가변형 블랙박스 공연장으로 객석 500석 규모, 좌석을 모두 접으면 스탠딩 900명까지 수용이 가능한 텅 빈 공간을 만들 수 있다. 현대무용과 실험극, 복합 장르의 컨템퍼러리 퍼포먼스 등이 주로 올라간다. 특히 건물 외벽에 대형 스크린이 있어 장소 특정형 공연, 에어리얼 퍼포먼스, 미디어를 활용한 야외 음악 축제 등 거의 모든 장르의 구현이 가능하다. 시취센터와 프리스페이스, 미래를 위해 한쪽 끝에 전통을, 한쪽 끝에 현대라는 두 개의 코너스톤을 둔 셈이다. 세 번째 공연장은 리릭 시어터 콤플렉스Lyric Theatre Complex다. 1,450석·600석·270석 규모의 3개 공연장이 동시 운영되는 복합 문화센터로 2023년 개관을 예정하고 있다.
한국을 돌아본다. 우리가 발 딛고 있는 국가와 도시의 교차로에서 미래를 위해 어떤 가치를 생각해야 하는가? 중국의 월극과 비슷한 역사를 가진 창극은 한국의 전통과 현대를 잇는 문화유산으로서 어떤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가? 한국은 국가의 문화를 대표할 만한 첫 번째 극장으로 무엇을 선택해야 할까?


신민경 국립창극단 기획위원. 국립극장에서 창극 ‘패왕별희’ ‘시’ ‘소녀가’ ‘흥보씨’ ‘트로이의 여인들’ ‘변강쇠 점 찍고 옹녀’ 등 작품 제작을 함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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