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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0월호 Vol.357

다시, 회오리가 불어온다

SPECIALㅣ 자세히 들여다보기

 

잔잔한 물결로 시작해 거센 회오리가 돼가는 파도의 역동성을 표현한 안무는 조명과 의상을 만나 최종 완성됐다. 여기에 비빙의 음악, 무용수들의 땀이 더해져 폭발하는 에너지로 객석을 압도한다. 회오리’가 뿜어내는 에너지의 원천을 들여다본다.

 

 

 

‘전통의 동시대성’을 추구하는 현재 국립극장의 정체성은 2012년 레퍼토리시즌제의 도입과 함께 강화되기 시작했다. 국립무용단은 2013년 현대무용 안무가 안성수, 디자이너 정구호와 함께 ‘단’으로 기존 스타일에 균열을 일으킨 데 이어 2014년 핀란드 안무가 테로 사리넨과 함께한 ‘회오리’를 통해 본격적으로 변화를 보여줬다고 평가받는다. ‘회오리’는 창단 52년 만에 최초로 외국인 안무가와 협업한 작품이다. 이후 정구호와 협업한 ‘묵향’ ‘향연’, 프랑스 안무가 조세 몽탈보와 협업한 ‘시간의 나이’, 벨기에 현대무용단 피핑톰 출신의 김설진과 협업한 ‘더 룸’ 등 다양한 화제작을 레퍼토리로 축적했다. 국립무용단이 고전과 현대를 아우르는 역량을 갖춘 무용단으로 자리 매김한 과정을 돌이켜볼 때 ‘회오리’의 의미는 매우 크다. 그 ‘회오리’가 오는 10월 다시 돌아온다.

 

한국 전통춤과 테로 사리넨의 아름다운 만남
테로 사리넨은 20세기 후반 현대무용계에서 존재감을 드러낸 핀란드의 대표 안무가다. 그는 발레·서구 현대무용·일본 부토·마셜 아츠(무술)가 결합된 독특한 춤 언어를 구사한다. 핀란드 국립오페라발레단원으로 활동을 시작했지만 젊은 시절 네팔·중국·일본에서 전통춤을 배우면서 자신만의 예술적 색깔을 확립해갔다. 특히 정신세계를 강조하는 일본의 독특한 현대무용인 부토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테로는 자신을 “고대와 원시로 돌아가 자연을 이야기하는 안무가”라고 칭하곤 한다. 두 발을 대지 깊숙이 뿌리내리는 동시에 대기 속으로 떠오르는 영혼을 느끼는 ‘자연주의’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깊은 호흡으로 발디딤 하며 자연스러운 동작을 중시하는 한국 전통춤과 일맥상통한다. 바로 국립무용단이 한국춤의 자산을 이해하고 현대화할 안무가로 테로 사리넨을 선택한 배경이다. 테로는 앞서 세계 유수의 무용단과 작업하면서 꼼꼼한 조사를 토대로 작품을 만들어왔다. ‘회오리’ 역시 그가 한국 전통춤의 특성을 성실하게 연구한 흔적이 역력하다. 1장 ‘조류’, 2장 ‘전파’, 3장 ‘회오리’로 구성된 각 장의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 초반에는 파도의 형상을 모방한 동작들이 반복된다. 또한 한 명에서 두 명, 그리고 네 명으로 무용수의 수가 점차 늘어나며 춤 역시 격렬해지고 확장되는 흐름을 보여준다. 캐릭터가 특별히 부여되진 않았지만 군무의 움직임을 선도하는 주역 무용수들의 춤은 원시 제의에 참여한 무당을 연상시킨다. 대칭과 정렬을 이루다 다시 흩어짐을 반복하는 군무는 폭발적인 긴장감과 에너지를 조성한다. 그래서 심금을 울리는 드라마 없이도 관객에게 강한 몰입감을 준다.
‘회오리’에서 무용수들의 움직임은 한국 전통춤에 기반을 둔 것이 분명하면서도 테로만의 특성이 묻어난다. 가장 눈에 띈 것은 한국 전통춤에서 보기 어려운 몸을 활용한 웨이브 동작이다. 물결이나 회오리의 출렁거림을 표현하는 동작으로 현대무용에서처럼 몸을 많이 움직인다. 그래서 무용수들의 움직임이 유난히 크고 강하게 느껴진다. 무용수들의 손가락 사용도 인상적이다. 한국 전통춤에서 손가락은 많은 움직임 없이 약간 오므린 모양을 유지하는데, 테로는 쫙 펴게 하는 등 다양한 동작을 취하게 했다. 덕분에 손동작이 훨씬 섬세하면서도 입체적으로 보이는 동시에 역동성을 띤다. 한국춤에서 보기 드문 공간 구성도 특이할 만하다. 무대 양쪽에 단을 만들고 무용수들을 앉힌 뒤 그 가운데 공간에서 직선과 사선, 원형 등 다양한 대형으로 움직이게 했다. 조명이 덧붙여지면서 대형 자체가 생명력을 띤 회오리처럼 보인다.

 

 

안무를 시각적으로 완성한 조명과 의상
잔잔한 물결로 시작해 거센 회오리가 돼가는 파도의 역동성을 표현한 테로의 의도는 조명과 의상을 만나 최종 완성됐다. 조명 및 세트 디자 이너 미키 쿤투와 의상 디자이너 에리카 투루넨은 테로와 오랜 시간 함께 작업한 파트너다. 두 디자이너는 유럽의 무용·오페라·연극·방송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해왔다. 무용 분야에서는 테로 외에 아크람 칸·이리 킬리언·카롤린 칼송 등 거장들과 작업했다. 미키 쿤투는 2006년 테로 사리넨·아크람 칸과의 작업으로 미국의 권위 있는 베시 어워즈를 받은 실력파다. ‘회오리’도 오프닝부터 조명이 인상적이다. 조명이 무대 전면에 반원형으로 펼쳐지는 동시에 뒤쪽에서 좌우로 회전하며 독무를 추는 주역 무용수의 형상을 비춘다. 마치 깊은 바닷속 동굴 안에 있는 듯한 몽환적 분위기를 연출한다. 관객의 시선을 한눈에 사로잡는 오프닝과 함께 밝아진 무대는 좌우와 뒤쪽에 2단의 공간을 가지고 있다. 무용수들은 양쪽 옆에 놓인 단에 앉아 있다가 군무에 합류하는데, 군무의 움직임에 생명력을 불어넣어주는 것이 바로 조명이다. 전체적으로 강렬하지만 점진적으로 색의 농도를 조절 하기 때문에 세련되고 우아하게 보인다. 그리고 무대 곳곳에 설치한 작은 조명 수십 개가 무용수들을 입체적으로 부각해준다. 핀란드 국립발레단 의상 실장으로 10여 년간 근무한 에리카 투루넨 역시 현대 안무가들과 작업하며 국제적 명성을 쌓아왔다. ‘회오리’는 그의 날카로운 재능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였다. 자연의 근원적 아름다움을 표현한 테로의 춤에 에리카는 한 단계 비상할 수 있는 날개를 달았다. 한복 특유의 실루엣, 실크 같은 소재 등에서 영감을 얻은 의상은 당연히 한복의 이미지가 보인다. 여기에 그는 검은색·흰색·보라색·회색 등의 색깔에 그러데이션으로 변화를 주는 한편 주름 장식으로 이루어진 비대칭의 레이어를 더했다. 한국의 부채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레이어는 마치 물고기 지느러미처럼 펴졌다 오므라 졌다 한다. 의상 속에 작은 마이크를 달아서 무용수가 움직이거나 춤을출 때마다 소리가 나도록 한 것도 특징이다. 춤을 춤으로써 회오리가 완성되게 한 재치가 번뜩인다.

 

 

 

 

 

비빙, 전통음악의 시각적 이미지를 춤과 함께 무대화
국립무용단은 테로에게 한국에서 전통음악을 토대로 작업하는 5~6개 팀의 음악을 들려줬다. 당시 그가 가장 마음에 들어 한 것이 바로 비빙Be-Being의 음악이다. 역시 선수는 선수를 알아보는 모양이다. 장영규가 이끄는 비빙은 한국 전통음악에 토대를 두되 새로운 형식과 연주법으로 색다른 소리를 들려주는 음악 그룹으로 유명하다. 작곡가겸 음악감독 장영규 외에 박순아(가야금)·나원일(피리)·이승희(소리)·천지윤(해금)으로 구성돼 있다. 장영규는 영화는 물론 연극·무용·국악 등 공연계 전방위에서 활동하고 있다. 특히 무용과 관련해서는 재기발랄한 현대무용 안무가 안은미와 오랫동안 작업해왔다. ‘북한춤’ ‘조상님께 바치는 땐스’ 등 안은미의 거의 모든 작품에서 음악감독 겸 작곡을 맡았다.
그는 비빙에서 멜로디를 만들기보다 음의 구조를 쌓는 작업 방식을 선호한다. 즉 전통음악에서 샘플을 채취한 뒤 ‘배치와 재배치’ 또는 ‘해체와 재구성’의 과정을 거친다. 그리고 이를 토대로 또다시 구조를 만들 어가는 그의 방식은 전통음악에 모던함을 부여하며 새로운 청각적 울림을 준다.
‘회오리’에서 그는 춤에 걸맞은 음악을 비빙만의 방식으로 뽑아냈다. 주역 무용수들이 독무를 출 때는 해금 등의 구슬픈 소리가 느린 장단에 맞춰 물처럼 흐르는 듯하다. 그리고 듀엣으로 둘이 서로 뒤섞일 때는 고요 하고 평화로운 선율이 깔린다. 하지만 주역 무용수가 제사장처럼 군무를 이끌 때는 타악과 거문고, 해금과 피리가 각각 있는 힘껏 소리를 내며 격렬한 리듬을 만들어낸다. 각 장면의 성격, 무용수의 움직임에 따라 변하는 음악은 무대에 ‘회오리’를 만드는 데 톡톡히 한몫을 했다.

 

온몸의 에너지를 쏟아내는 무용수들
테로는 2014년 초연 당시 국립무용단 무용수들에 대한 정보 없이 캐스팅 오디션을 치렀다. 누가 수석인지 인턴인지 모른 채 그는 무용수들의 숨겨진 캐릭터와 감수성에만 집중해 캐스팅을 진행했다. 특히 작품의 주역으로 노련한 수석 무용수 김미애 외에 신예이던 송설, 인턴 단원 박혜지 등젊은 무용수를 발탁해 주목받았다. 송설은 초연부터 작품의 중심인 샤먼 역을 맡고 있다. 공연의 시작과 끝부분을 독무로 채우는 샤먼은 대단한 존재감이 필요한 역할이다. 특히 고요함 속에 내재된 에너지로 극장을 서서히 달구다가 폭발 직전에 춤추는 시작 부분은 송설의 탄탄한 내공을 막힘없이 보여준다.
초연 당시 인턴 단원이던 박혜지는 대선배인 김미애와 함께 군무를 이끄는 여자 화이트와 여자 블랙을 각각 맡았다. 블랙과 화이트로 대비되는 두 에너지의 흐름과 대립은 다양한 구도의 군무로 강렬하게 표현된 다. 김미애와 박혜지는 독무, 남성 파트너와의 듀엣을 추는 한편 군무의 움직임을 선도한다. 김미애가 이 작품의 조안무이자 훈련장 역할도 하는 만큼 2017년부터는 차세대 주역으로 꼽히는 송지영이 여자 블랙 역에 더블캐스팅돼 무대에 서고 있다.
남자 블랙과 화이트 역으로는 황용천과 이석준이 각각 출연한다. 황용 천은 2017년, 이석준은 2015년 칸 댄스 페스티벌부터 지금까지 출연 하며 무대를 이끌고 있다. 남녀 블랙·화이트 네 명이 음양의 조화로 얽히고설키는 움직임은 에너지로 꿈틀대는 ‘회오리’를 일으키는 기폭제 역할을 한다. 이 작품은 샤먼과 남녀 블랙·화이트 외에도 군무를 이루는 무용수 하나하나의 열정이 없으면 완성되지 못한다. 무대 위에서 강렬하게 움직 이는 ‘회오리’는 80분 내내 무용수들의 에너지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관객들이 공연 내내 숨도 제대로 못 쉰 채 몰두하게 되는 것은 바로 이들이 발산하는 강렬한 에너지 때문이다.
2014년 4월 초연 이후 재공연을 거치면서 업그레이드된 ‘회오리’가 올해 국내 무대에 오른다. 네 번째를 맞는 이번엔 리모델링이 한창인 해오름극장을 떠나 LG아트센터에서 공연한다. 또 2015년 프랑스 칸 댄스 페스티벌에 이어 두 번째 해외 초청 공연이 일본 요코하마 가나가와 예술극장 KAAT 에서 열린다. 한·일 관계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 ‘회오리’가 양국 문화예술계에서 교류의 장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장지영 국민일보 기자. 공연 칼럼니스트.

 

국립무용단 ‘회오리’
날짜 2019년 10월 3~5일
장소 LG아트센터
관람료 R석 5만 원, S석 3만 원, A석 2만 원
문의 국립극장 02-2280-4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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