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08월호 Vol.35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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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12월 14일 해오름극장에서 국립극장 개관 50주년을 기념한 특별공연 ‘우루왕’이 무대에 올랐다. 이 공연은 당시 국립극장 전속단체인 국립극단·국립창극단·국립무용단·국립국악관현악단이 모두 참여한 종합 가무극으로 같은 해 10월 경주세계문화엑스포의 특별기획공연 초청작으로 반월성터인 야외 특설 무대에서 첫선을 보였다. ‘우루왕’은 처음부터 세계 무대 진출을 염두에 두고 제작됐으며 제작비만 약 10억 원이 투입된 대작이다. 경주세계문화엑스포에서의 초연 당시 내·외빈에게 큰 환호와 함께 ‘보기 드문 대작’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이런 성과를 바탕으로 두 달 뒤 국립극장 개관 50주년을 기념한 특별공연으로 다시 선보인 것이다.
김명곤 전 극장장이 대본과 총감독을, 배정혜 전 국립무용단장이 안무를 맡았으며, 원일 전 국립국악관현악단 예술감독이 음악을 담당했다. 우루왕 역에는 뮤지컬 ‘명성황후’에서 미우라 역을 맡았던 배우 김성기가, 바리공주 역에는 신예 이선희와 박애리가 더블 캐스팅됐다.
우리나라 상고시대가 배경인 ‘우루왕’은 한국의 전통 서사무가인 ‘바리데기’ 설화와 셰익스피어의 ‘리어왕’을 재구성한 이야기로, 광활한 영토를 가진 우루왕과 세 명의 공주 사이에서 일어나는 음모와 배신, 갈등과 화해의 내용을 담았다.
불같은 성격을 가진 우루왕은 영악한 두 딸에게 영토와 권력을 전부 물려주는 한편 돌아가신 어머니의 현몽을 전하며 국운을 걱정하는 막내 바리는 내쫓아버린다. 그러나 믿었던 두 딸에게 배신당해 폭우가 몰아치는 밤 광야로 쫓겨나게 된다. 결국 광증에 걸려 들판을 헤매다가 옛 신하의 도움을 받아 목숨을 부지하던 중 마지막에 바리를 구하고 죽음을 맞이한다. 아버지를 쫓아내고 치열한 권력 다툼을 벌이던 두 딸 가화와 연화, 음모와 배신의 중심에 있던 솔지장군까지 결국은 모두 죽음을 맞이한다. 마지막에 무조신巫祖神이 된 바리가 씻김굿을 통해 죽은 이들의 영혼을 천도하는데, 죽은 이들이 모두 함께 나와 부둥켜안고 화해와 상생의 춤을 추며 노래하는 것으로 막을 내린다. 주인공이 모두 죽음으로써 인간의 파괴와 절망을 나타낸 ‘리어왕’의 비극적 결말과 달리, ‘우루왕’은 개인의 서사에 중점을 두지 않고 권선징악의 특성을 드러내며 용서와 상생의 사회적 가치를 전달하는 결말을 보여준다. 서양 고전문학과 우리의 고전 설화를 절묘하게 조화시켜 익숙하면서도 한국적 색채가 짙은 극으로 완성한 것이다.
여기에 더해 이 공연을 이끌어가는 재미있는 요소 중 하나가 바로 ‘광대’다. 광대는 그리스극에 등장하는 코러스와 같은 역할을 하면서도 완전히 다른 분위기를 연출한다. 이들은 서사의 시작과 끝을 노래하고, 장면의 생동성을 살려줄 뿐만 아니라, 빈 공간의 간극을 메워주거나 극의 전반적인 내용을 상기시킨다. 우리의 전통 가면극에서 양반을 희화화하고 그들의 잘못을 비판해 공감과 웃음을 자아냈던 광대의 모습으로 극에 참여한다. 또한 그들이 노래하는 내용과 행동은 한국 고유의 풍자와 해학을 담고 있으면서도 이면에 담긴 씁쓸한 정서까지 보여주는 효과적인 장치로 활용됐다.
필자는 2011년 무대 디자인을 주제로 기획한 ‘새로운 공간, 무대를 찾아서’ 전시를 준비할 때 ‘우루왕’을 녹화된 공연 영상으로 시청했다. 무대 디자인으로 본 일식·월식·삼족오·고대의 전통 문양 등은 공연에서 스펙터클한 무대장치로 사용되고 있었고, 마지막 씻김굿에서 흰옷을 입은 무용수들이 모두 지전을 흔들면서 영혼을 위로하는 장면과 전 출연자가 부르는 ‘상생’의 노래는 이 공연의 클라이맥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강렬했다. ‘우루왕’을 다시 무대에서 볼 수 없더라도, 이 공연만큼은 꼭 추천하고 싶다.
글 하을란 공연예술박물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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