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08월호 Vol.35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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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국립창극단과 국립국악관현악단이 앞으로의 3년을 책임질 새 수장을 맞이했다. 남다른 다짐으로 사령탑에 입성한 두 예술감독이 그리고 있는 청사진을 들여다본다.
철학자 마르셀 프루스트는 “진정한 여행은 새로운 풍경을 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을 갖는 것”이라고 했다. 수백 개의 다른 땅을 같은 눈으로 바라볼 때가 아니라 수백 개의 다른 눈으로 같은 땅을 바라볼 때 여행의 진가가 드러난다는 의미다. 국립창극단 유수정 예술감독과 국립국악관현악단 김성진 예술감독이 지난 7월 9일로 취임 100일을 맞았다. 3년간 ‘새로운 눈’을 갖고 단체의 발전을 모색하는 여행을 하게 된 두 사람을 만나 운영 계획과 새로운 시즌에 선보일 공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유 감독은 1987년 국립창극단에 입단해 창악부장과 수석 단원 등을 지낸 창극계 베테랑이다. 오랜 시간 단원으로 활동해온 만큼 국립창극단의 정체성과 단원에 대한 이해가 높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김 감독은 양악과 국악을 두루 아는 전문가로 통한다. 국내에서 작곡을, 미국에서 지휘를 전공한 그는 서울시국악관현악단장, 청주시립국악단 예술감독 등을 거치며 국악 연주단체 운영 및 지휘 경험을 쌓았다.
예술감독에 임명된 지 3개월이 지났습니다.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나요? 김성진 단원들과 대화하며 단원 모두의 의견에 귀 기울였어요. 내용을 정리해 분류하니 분량이 A4용지로 7~8매 정도가 나오더라고요. 우선 할 수 있는 것은 바로 해결하고, 시간이 걸리는 것들은 점차적으로 해나가고 있어요. 단원들과 소통하는 데 방점을 두고, 그들의 의견을 듣는 데 집중하면서 조직을 재정비하고 있습니다. 유수정 예술감독이란 직책을 맡고 보니 할 일이 많더라고요. 단원들과는 상견례가 필요 없을 만큼 가까운 사이라 소통하는 데 어려움은 없어요. 그들도 제가 예술감독이 됐다고 해서 어려워하지 않고 집무실에도 편하게 찾아와 얘기하고 있죠. 얼마 전 좋은 평가 속에 창극 ‘심청가’를 끝냈고 새로운 시즌과 내년 국립극장 70주년 공연을 준비하고 있어요.
소속 단원으로 활동하다 예술감독이 되는 것과 외부에 있다 예술감독을 맡는 건 장단점이 있을 것 같습니다. 김성진 지금까지 여러 단체와 함께했지만, 국립국악관현악단과는 첫 만남입니다. 저와의 이 신선한 만남이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면 장점이 되겠지요. 국립국악관현악단이 다른 국악 연주단체와 차별화되는 점은 전통에 머물지 않고 경계를 뛰어넘어 우리 음악의 영역을 넓혀가는 단체라는 점입니다. 연주력의 한계를 뛰어넘는 작품들도 마다하지 않아요. 도전 정신으로 가득찬 단체입니다. 유수정 국립창극단원으로 활동했기 때문에 내부 분위기를 잘 안다는 게 제 장점이에요. 그 점을 잘 살려서 단원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잘 화합하도록 도와 좋은 무대를 꾸밀 수 있도록 이끌어갈 생각입니다.
예술감독으로 부임하면서 세운 목표는 뭔가요? 김성진 해오던 걸 숙성시키는 것과 새로운 결합을 통한 영역 확대를 병행해볼 생각입니다. 그리고 국립국악관현악단을 국제적인 단체로 만들고 싶어요. 근래 외국 작곡가들이 국악 관현악에 많은 관심을 갖고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국악 관현악은 더는 우리만의 음악이 아닌 세계인이 공감하고 매력을 느낄 수 있는 장르가 됐다고 생각합니다. 현재에 머무르지 않고 이들과 지속적으로 교류해 국악 관현악의 위상을 높이도록 노력하려 합니다. 덧붙여 그걸 추진할 수 있게 젊은 작곡가와 지휘자를 발굴하고 이들과의 협업도 지속적으로 해나갈 계획입니다. 유수정 국립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전통’이란 색을 더해보려 합니다. 40~50대 젊은 작창자를 발굴해서 더 다양한 작업을 하는 것도 목표고요. 가능하다면 정원을 조금 늘려서 젊고 능력 있는 인재들을 창극단에 더 들이고 싶은 마음도 있죠.
기존 두 단체에서 견지해오던 제작 방식이나 기조를 이어갈 생각이신가요? 유수정 2012년 국립극장 레퍼토리시즌 도입 이후 지난 일곱 번의 시즌 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어요. 창극에 경극을 결합한 ‘패왕별희’ 등 다양한 장르와 형식을 결합한 창극을 선보여왔고, 관객층을 넓히는 데도 큰 역할을 했죠. 새로운 도전의 한 편엔 전통에 대한 목마름도 있었죠. 그래서 앞으론 전통소리를 더 ‘진하게’ 들려주는 방법을 몇 가지 더해보려 합니다. 새로운 것들을 선보이는 사이사이에 전통적인 것들을 끼워서 보여줄 생각이에요. 김성진 국립국악관현악단은 ‘관현악시리즈’와 같은 정기 연주회를 하면서, 다양한 기획 공연을 더해 지속적으로 창작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이번 시즌에도 마찬가지예요. 국악 관현악이 무겁거나 어렵다고 느끼는 이들을 위해 3분짜리 짧은 곡을 들려주는 ‘3분 관현악’과 같은 프로그램을 기획하는가 하면 국악 관현악 명곡을 소개하는 진중한 프로그램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해오름극장 리모델링 공사로 인해 외부 극장에서도 공연하고 있어요. 타 공연장 경험이 도움이 되나요? 김성진 해오름극장에서 연주하면 가장 안정적으로 연주력을 발휘할 수 있겠지만, 다른 극장을 경험하는 건 좋은 기회 같아요. 익숙한 전용 극장에서 벗어나 다른 공연장의 불편함을 겪다 보면 여러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유연한 단체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또 다양한 음향에서 오는 생소함이 악단의 표현력을 극대화해줄 수도 있고요. 유수정 본래 판소리가 마이크 없이 마당에서 가깝게 즐기던 공연이잖아요. 그래서 그 원형을 살린 공연 형태도 많거든요. 현재 창극단 전용 극장인 달오름극장도 처음엔 그런 형태를 살리기 위해 만들어졌지만 아쉬운 게 사실이에요. 물론 해오름극장을 리모델링한다고 당장 해결되는 건 아니겠지만, 차츰차츰 육성으로 공연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면 좋겠다는 생각이에요. 판소리에 맞춘 마이크도요. 1980년대에 영국의 한 극장에서 공연한 적이 있는데 마이크를 머릿속에 심어서 하더라고요. 미세한 숨소리까지 다 들려 감탄한 적이 있어요.
소셜 미디어나 유튜브 등 공연예술을 즐길 수 있는 플랫폼이 다양해지고 있습니다. 이런 변화에 대비도 하고 있나요? 김성진 네, 차근차근 준비하고 있어요. 지난 시즌의 관현악시리즈 실황 녹화 영상에 곡에 대한 이해도를 높일 수 있도록 지휘자나 작곡가의 인터뷰를 넣어 ‘노크 초이스’ 영상을 제작하고 있습니다. 2019-2020 시즌이 시작되기 전, 유튜브 계정을 활용해 엄선된 대표 레퍼토리 영상을 선보일 예정입니다.
예술감독이 아닌 개인 예술가로서도 이루고자 하는 것이 있다면요? 유수정 8월 말에 ‘변강쇠 점 찍고 옹녀’에서 대방여장승 역할로 무대에 올라요. 초연 때도 했던 역할이죠. 제가 올해 예술감독이 돼 이 역을 어떻게 할지 고선웅 연출이 고민하더라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제가 한다고 했어요. 저는 실기인이니 앞으로 예술감독을 맡는 동안에도 제가 필요하다고 하면 언제든 무대에 서고 싶어요. 김성진 예술감독으로 있는 동안에는 국립국악관현악단을 전 세계의 공연장을 누비는 단체로 만드는 데 집중해보려고 해요. 또 공연장에서 직접 듣지 못했더라도, 녹음된 음반만으로도 감동을 전할 수 있는 국악 관현악을 들려줄 수 있길 꿈꿉니다.
글 김미영 한겨레신문 공연 담당 기자. ‘한겨레’가 만드는 다양한 매체에서 글쓰기를 하고 있다. “알고자 하는 자는 용기를 가져라”라는 계몽주의 표어처럼 전진해야 할 때 두려워하지 않는 기자가 되려고 노력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