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킵네비게이션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빠른예매 바로가기 사이트 지도 바로가기
월간미르 상세

2019년 08월호 Vol.355

깊고 짙어진 ‘소리’에 거는 기대

SPECIAL ㅣ 국립창극단 시즌 프리뷰

 

 

 

이번 시즌 국립창극단은 ‘소리’ 그 자체에 집중한 무대에 공을 들일 계획이다.

실험과 도전 속에서 한껏 탄탄해진 소리꾼들의 내공이 더욱 빛날 차례다.

 

2010년대 창극계는 총천연색이다. 2012년 국립극장이 레퍼토리시즌제를 도입하고, 그해 국립창극단에 김성녀 전 예술감독이 부임하며 작품의 채도와 명도가 급격히 달라졌다. 소재, 형식의 변화가 아찔할 정도였다. 드라마가 보강되고 세련되게 다듬어지면서 공연장에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고상하나 고루하다는 인식에 중·장년층의 취향으로만 여겨지던 창극이, 젊은 관객 사이에서 새로운 장르처럼 소환됐다.

레퍼토리 두 편과 신작 세 편을 선보인 2018-2019 시즌은 ‘안정’과 ‘실험’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았다. 레퍼토리 두 편이 처음과 끝을 장식했다. 국립창극단의 간판작이 된 고선웅 연출의 ‘변강쇠 점 찍고 옹녀’와 판소리 서사의 흥취와 경치에 집중한 손진책 연출의 ‘심청가’가 그것이다. 이미 검증된 작품을 앞뒤로 갑옷처럼 두른 국립창극단은 내용·형식·장르의 실험을 각각 이어갔다. 김태형 연출의 ‘우주소리’는 내용의 파격이 도드라졌다. 과학고등학교와 카이스트 출신이라는 이색 이력의 김 연출은 SF문학의 거장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의 단편선 ‘마지막으로 할 만한 멋진 일’을 원작으로 삼아 ‘SF 창극’을 선보였다. 박지혜 연출의 ‘시詩?Poetry’는 창극 형식의 스펙트럼을 넓혔다.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이자 ‘칠레의 국민시인’으로 통하는 파블로 네루다(1904~1973)의 시를 창극으로 옮겨왔다. 파편화된 시 형식으로 극을 들려주는 일은, 이해보다 감각에 더 방점을 찍는 일이다. 시는 해석을 통한 이해가 아니다. 국립창극단 ‘시’는 ‘포엠 창극’이라는 새로운 형식을 보여줬다.

2018-2019 시즌 마지막 신작이던 ‘패왕별희’는 경극 ‘패왕별희’를 원작으로 한다. 동명 영화로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항우와 우희의 이야기가 바탕이다. 청각과 시각의 공조가 뛰어난 ‘공감각적 심상’의 정점을 찍으며 관객의 심금을 울렸다. 처음에는 청각 중심의 창극과 시각 중심인 경극의 조화가 낯설 것이라 업계는 예상했다. 하지만 두 장르는 은밀하게 콤비를 이뤄, 장르의 지평을 넓히며 관객을 속절없이 무너뜨렸다. 두 문화가 만날 때 필요충분조건은 각각의 뿌리가 튼튼해야 한다는 것이다. 판소리와 경극의 대표 선수들인 작창·작곡·음악감독 이자람, 연출가 우싱궈와 대본?안무가 린슈웨이 덕에 가능했다. ‘패왕별희’는 김성녀 전 국립창극단 예술감독 퇴임 이후 공연했지만 사실상 그의 마지막 작품이다. 신임 유수정 예술감독의 시작에도 힘을 실어주는 자연스러운 연결고리가 됐다.

이후 공연한 ‘심청가’가 2018-2019 시즌 마지막 공연이었다. 유 감독이 단원들을 지도하는 동시에 도창을 맡아 무대에도 오른, 즉 ‘플레잉 코치’가 된 ‘심청가’는 레퍼토리지만 그의 청사진을 보여주는 통로가 됐다. 유 감독은 ‘전통의 진한 오리지널’을 관객에게 전하고 싶다는 마음이다. ‘심청가’가 이런 마음을 대변했다. 완창으로 공연하면 5~6시간이 소요되는데, 좋은 소리와 장면을 골라 2시간 30분으로 압축했다. 옥조 같은 소리는 다 넣었다.

유 감독의 새 시즌 행보에 특기할 만한 점은 급하지 않다는 것이다. 2019-2020 레퍼토리시즌을 살펴봐도 서두르지 않는 것이 분명하다. 김 전 감독이 창극의 외연을 확장한 레퍼토리를 이어받는다. 우선, 국립창극단 대표작 세 편을 전진 배치했다. ‘변강쇠 점 찍고 옹녀’가 지난 시즌에 이어 올해 시즌에도 선발로 나선다. 고전 비틀기에 일가견이 있는 고 연출이 지금은 더는 불리지 않는 판소리 일곱 바탕 중 하나인 ‘변강쇠타령’을 희곡으로 탈바꿈시킨 작품이다. 영화 등을 통해 색골남녀의 이야기로만 저평가된 작품에서 생명력과 휴머니티를 새롭게 발견해냈다. 주로 값싸고 음란한 인물로 묘사된 옹녀를 적극적이고 당찬 여성으로 그렸다. 2016년 ‘세계 공연예술계의 심장’으로 통하는 프랑스 파리의 테아트르 드 라 빌에서도 공연했다. (2019년 8월 30일~9월 8일, 달오름극장)

이어 올해 상반기 창극계뿐 아니라 공연계까지 들썩인 ‘패왕별희’를 다시 공연한다. (2019년 11월 9~17일,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

바통을 이어받는 작품은 서재형 연출의 ‘아비. 방연’이다. 공연계 대표 부부 콤비인 서 연출과 한아름 작가가 단종애사端宗哀史를 배경으로 한 팩션 창극이다. 2015년 11월 초연했다. 선택의 문제에 한이 파고들어 가는 솜씨가 발휘된다. 주군 대신 자식을 택하는 방연의 결정은, 관객의 감정선과 눈물샘을 자극하는 비수匕首 겸 비수悲愁다. (2020년 3월 6~15일, 달오름극장)

유 감독의 비수는 그다음 작품에 나온다. ‘춘향전’(가제)이다. 1962년 창설된 국립창극단 최초의 레퍼토리가 ‘춘향가’였다. 국립창극단은 2020년 국립극장 개관 70주년을 맞아 새로운 각오로 ‘춘향전’을 선보인다. 연출은 베테랑 연출가인 김명곤이 맡는다. 영화 ‘서편제’의 각본을 썼고, 이 영화에 아버지 유봉 역으로 출연도 했다. 국립극장 극장장, 문화관광부 장관을 역임한, 문화예술계에서 잔뼈가 굵은 예술가다. 김 연출은 자타 공인 ‘춘향 스페셜리스트’다. 1998년 국립극장에서 공연한 ‘완판장막창극 춘향전’ 대본을 썼다. 여섯 시간이 넘는 공연임에도 표가 매진, 말 그대로 완판된 공연이다. 김 연출은 2000년 개봉한 임권택 감독 영화 ‘춘향뎐’의 각본을 쓰기도 했다. 유 감독과 김 연출은 이번 ‘춘향전’에서 소리에 집중한다는 계획이다. 다양한 장르의 바다에서 순항해온 국립창극단의 나침반이 가리키는 방향은 애초부터 분명했다. 소리 그 자체다. 실험과 도전 속에서 한껏 탄탄해진 소리꾼들의 내공은, 앞으로 순도 높은 소리의 결정체를 선보일 것이다. ‘춘향전’은 그 서막이다. (2020년 5월 14~24일, 달오름극장)

매년 찾아오는 ‘완창판소리’지만 소리에 집중하는 올해는 유독 더 기대를 모은다. 지난 시즌부터 마련한 새로운 무대세트는 더 귀하게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동시대에 맞게 창극이 변화할 수 있는 이유는 판소리라는 뿌리가 흔들리지 않는 데 있다. ‘완창판소리’는 그 뿌리를 목도하는 자리다. (2019년 9~12월, 2020년 3~6월)

 

이재훈 뉴시스 문화부 기자. 2008년 11월 뉴시스에 입사해 사회부를 거쳐 문화부에 있다. 무대에 오르는 건 뭐든지 듣고 보고 쓴다.

 

 

 

 

 

 

사이트 지도

사이트 지도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