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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06월호 Vol.353

궂은 편견 속에서 깊은 효성 품었어라

삶과 노래 사이┃지혜롭고 고귀한 새, 까마귀

 까마귀 울음소리가 들리면 곧 좋지 않은 일이 생길 거라고 예견한다.

그러나 까마귀는 곁에 가까이 두고 본받을 만한 성실하고 효성이 깊은 새다.

 

동서양의 여러 기록에서 까마귀는 대개 극단적인 이미지로 나타난다. 매우 고귀한 존재거나 흉조를 상징하는 미물이다. 어떻게 이런 상반된 이미지를 동시에 가질 수 있을까. 검디검은 외형 때문에 생긴 선입관, 그리고 그것을 극복하려는 성찰이 오랜 세월 공존한 결과이지 않을까 싶다.


요즘 인기리에 마지막 시즌이 방영 중인 미국 드라마 ‘왕좌의 게임’의 주요 인물 가운데 브랜든 스타크라는 청년이 있다. 그에게는 과거·현재·미래를 보는 능력이 있는데, 그와 교감하는 존재가 바로 세눈박이 까마귀다. 그 작품의 모티프가 된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북유럽 신화에서 신들의 왕인 오딘(Odin)을 상징하는 동물이 또한 까마귀다. 신화적 상상력 안에서는 까마귀가 통찰력 있는 지혜로운 새로 인식돼온 것이다.

 


우리나라도 고대에는 까마귀를 신성한 새로 여긴 듯하다. 고구려인들이 태양 속에 사는 새로 여겨 숭배한 삼족오(三足烏)와 삼국유사에서 각각 해와 달을 상징하는 연오랑(延烏郞)과 세오녀(細烏女)에 까마귀가 들어간 건 이 새를 고귀하게 여긴 인식에서 기인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언제부터인가 까마귀는 불길한 새의 대표가 됐다. 대개는 그 색이 검기 때문이다. 게다가 시체를 먹는 새로 알려져 있어 섬뜩한 기운을 풍길 뿐 아니라, 우는 소리는 또 얼마나 음산한가. 이런 이미지는 까마귀를 악의 상징으로 규정하기에 이른다. ‘까마귀 노는 곳에 백로야 가지 마라’라는 시조에서는 순결한 백로를 더럽힐 수 있는 못된 무리로 지목된다. “까마귀 고기를 먹었나”라는 속담에서는 ‘까먹다’와 유사한 발음에 착안해 기억력이 나쁜 사람을 까마귀에 비유해 놀린다. 글 읽을 줄 모르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인 ‘까막눈’도 아마 까마귀의 이미지와 연결된 것이 아닐까 한다. 오로지 검은 새라는 이유로 까마귀는 음흉하고 무식하고 멍청한 성격을 모두 가진 새가 돼버렸다. 참 억울한 일이다. 그나마 ‘까마귀 검다하고 백로야 웃지 마라 / 겉이 검은들 속조차 검을쏘냐 / 아마도 겉 희고 속 검은 것은 너뿐인가 하노라’라는 이직(李稷)의 시조가 있어서 모두가 까마귀를 매도하지는 않는다는 인문학적 성찰의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


까마귀가 더욱 억울한 것은 주로 까치와 묶여 극단적으로 대비되는 데 있다. 까치가 울면 반가운 손님이 온다는 길조(吉兆)라 여기지만, 까마귀가 울면 불길한 일이 일어날 징조라 한다. 까마귀는 견우와 직녀를 만나게 하려고 해마다 칠월 칠석에 까치와 함께 오작교(烏鵲橋)를 만든 새인데, 이렇게 부당한 차별 대우를 받아서야 되겠는가.


사실 까치는 영역을 무척 중시하기 때문에 낯선 사람이 나타나면 손님이 아니라 침입자로 간주해 우는 새다. 그런 까치를 길조吉鳥로 여기는 것은 사실상 맞지 않는 일이다. 그러니 단지 검다는 이유로 까마귀가 상대적으로 부정적인 이미지로 남아야 하는 것은 너무도 부당한 처사다. 나아가 까마귀는 도구를 이용할 수 있을 만큼 지혜로운 새로 알려졌는데, 까치와 대비하기 위해 흉조(凶鳥)라는 캐릭터를 떠맡아야 하다니. 적이 억울할 것이다.

 

흉조에서 효성의 상징으로
습성에 주목해 본다면 까마귀는 아주 성실한 새다. 사체가 있는 곳을 찾거나 영리하게 먹이를 취하는 것은 먹고사는 일에 충실한 것일 뿐이다. 더구나 그런 활동이 효도로 이어진다는 점은 까마귀를 가장 교훈적인 동물로 꼽을 수 있게 한다. ‘까마귀 검다하고 백로야 웃지 마라’고 했듯 겉이 검다고 속조차 검은 것은 아니며, 오히려 힘이 약해진 부모를 봉양하는 속 깊은 효조(孝鳥)가 바로 까마귀다. 그런 까마귀를 보며 함부로 웃지 못하는 건 백로만이 아닐 것이다.


까마귀가 효성의 상징으로 유명해진 것은 진晉나라 사람 이밀李密(224~287)의 이야기에서 비롯된다. 진나라 무제(武帝)가 이밀에게 높은 벼슬을 내렸으나 그는 할머니를 봉양해야 한다는 이유로 고사했다.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마저 개가한 탓에 이밀의 할머니 사랑은 각별했다. 그러나 효보다 충을 우선으로 여기는 관습을 내세우며 무제가 크게 화내자 이밀은 ‘진정표(陳情表)’를 올렸고 거기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신 이밀은 올해 나이 마흔넷이고 할머니 유씨는 아흔여섯입니다.

신이 폐하께 충절을 다할 날은 길지만 할머니 은혜에 보답할 날은 짧을 것입니다.

할머니 돌아가시는 날까지 봉양하도록 허락해주시기를 까마귀가 효도하는 사사로운 마음으로 빕니다.
臣密 今年四十有四, 祖母劉 今九十有六.

是臣盡節於陛下之日長 報劉之日短也. 烏鳥私情 願乞終養.

- 이밀의 ‘진정표’ 중에서 -

 

태어난 지 60일이 지날 때까지는 어미의 보살핌을 받고 그 후로는 먹이를 구해 와 어미를 봉양하는 새가 까마귀다. 은혜를 잊지 않고 어미에게 먹을 것을 물어다 주는 새란 의미의 반포조(反哺鳥)는 까마귀의 다른 이름이며, 그런 까마귀의 효성에 빗댄 이밀의 글에서 반포지효(反哺之孝)라는 말이 생겨났다.

 

우리의 고전 중에서 효도의 가치를 가장 잘 드러낸 ‘심청가’도 까마귀의 효성을 인용한다. 태어난 지 7일 만에 어머니를 여의고 아버지 심봉사의 젖동냥으로 자라난 심청은 열 살쯤 됐을 때 이미 어머니의 제사를 챙길 뿐 아니라 아버지 봉양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심청은 이제부터 혼자서 동냥을 다니겠노라고 아버지에게 말한다. 비록 자신도 앞을 못 보는 처지지만 금쪽같은 어린 딸을 홀로 동냥 다니게 할 수는 없다며 완강하게 불허하는 심봉사. 그런 아버지를 설득하기 위해 심청은 이렇게 말한다. 아니, 이리 서글프게 노래한다.

 

아버지 듣조시오. 자로子路는 현인(賢人)으로, 백리(百里)에 부미(負米)하고, 순우의(淳于意) 딸 제영이는, 낙양옥(洛陽獄)에 갇힌 아비 몸을 팔아 속죄(贖罪)하고, 말 못 하는 까마귀도, 공림(空林) 저문 날에 반포은(反哺恩)을 할 줄 아니, 하물며 사람이야 미물(微物)만 못하리까. 다 큰 자식 집에 두고 아버지가 밥을 빌면 남이 욕(辱)도 할 것이요, 천방지축(天方地軸) 다니시다, 행여 병이 날까 염려오니, 그런 말씀을 마옵소서.
- 성창순 창본 ‘심청가’ 중에서 -

 

할머니를 위하는 이밀의 마음과 아버지를 걱정하는 심청의 생각이 꼭 닮았다. 어떤 이는 죄지은 아비를 위해 스스로를 관가의 노비로 팔기도 하고, 까마귀는 늙은 어미에게 먹이를 구해 먹이는데, 멀쩡한 사람이 부모의 고난을 두고 보아서야 되겠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세상에는 과연 까마귀에게 떳떳할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너나없이.


어쨌든 심봉사는 까마귀까지 동원한 딸의 설득을 듣고 마침내 허락한다. 하지만 또 하나의 반전이 기다린다. 장승상댁에 간 딸이 평소보다 늦게 돌아오는 듯하자 조바심이 난 심봉사가 지팡이 짚고 나섰다가 그만 개천에 빠지고 만 것이다. 그때의 광경을 이렇게 묘사하는 ‘심청가’ 이본(異本)도 있다. ‘반생반사 죽게 되었을 때, 난데없는 까막까치 떼를 지어 내려와서, 까진 눈을 빼려 하고 기웃기웃 엿볼 적에’라고. 다시 까마귀를 무서운 새로 그린 것이다. 효조(孝鳥)임을 알지만, 풍속에 얽혀 여전히 흉조로 여기는 까마귀. 그러나 이제 변화하는 시대에 발맞춰 모든 편견을 내려놓고 맑은 시선으로 다시 바라봐야 하지 않을까.

 

이태화 고려대학교 글로벌학부 한국학 전공 초빙교수. 텍스트보다 현장을 주목하는 연구자다. 고전으로 시대정신을 적실하게 노래할 수 있기를 기대하며 소리판 주위를 서성인다.
그림 리타 일러스트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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