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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06월호 Vol.353

민중과 함께 지켜낸 전통과 역사

전통 예술 기행┃체코의 인형극 '마리오네트'

어린이 교육을 목적으로 처음 사용된 마리오네트는 점차 다양한 민중의 삶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체코에서 민족주의 바람이 불자, 자국의 언어와 정체성을 지키는 데 적극 활용됐다.

 

동유럽의 낭만을 기대하며 2018년 체코 여행길에 올랐다. 프라하 바츨라프 하벨 공항은 국제공항이지만 아담하고 편리했다. 유럽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한국어로 인사하는 공항 직원이 있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녹음이 우거진 공원엔 초여름의 따사로운 햇살이 내리쬐고 있었고 산책하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여유가 느껴졌다. 도심으로 들어갈수록 내가 기대했던 고풍스러운 중세 유럽의 분위기가 짙어졌다. 우아한 건축물 사이로 지나는 트램과 유유히 흐르는 강은 너무도 아름다웠다.


블타바강의 카렐 다리 위에 멍하니 서서 악사의 음악을 듣고, 화가의 그림을 구경하는 것은 여행자의 몫이다. 현지인이 카렐 다리를 이용하는 경우는 강 건너편 일터로 종종걸음으로 건너가거나 자전거를 타고 지나갈 때뿐이다. 여행자인 나는 매일 한가롭게 카렐 다리를 오갔다. 역사적인 건축물이 모여 있는 구시가지는 마치 프라하 사람들이 여행자에게 내준 공간인 것처럼 여행객들로 북적거렸다. 노을이 온 도시를 황금빛으로 물들이는 광경은 환상적이었다. 잔잔하게 윤슬이 흐르는 강 너머로 시간의 더께가 쌓인 건축물을 보고 있노라면, 역사의 흔적이 모두 사라져버린 서울의 스카이라인과 비교돼 조금 서글픈 마음도 들었다. 체코에서 맥주를 빼놓을 수 없어서 필스너 우르켈 맥주에 체코식 족발인 콜레노를 맛보고 조금 취한 상태로 걷다 보니 또다시 카렐 다리에 닿았다. 다리를 중심으로 프라하의 동서를 오고 가면서 머릿속에 도시의 윤곽을 잡았고, 3일째 되던 날부터는 도시 안으로 좀 더 깊숙이 들어갔다.

 

교육과 재미 모두 잡은 인형극
숙소 인근인 올드타운을 둘러보다 우연히 국립 마리오네트 극장(National Marionette Theatre)을 발견했다. 대로변에서 한 블록 들어간 건물인 데다 지하에 위치해 쉽게 눈에 띄는 곳은 아니었다. 이곳이 정말 국립 마리오네트 극장이 맞을까? 하는 의심마저 들기도 했다. 표를 사기 위해 문 앞을 기웃거리자 한 할아버지가 나와 표가 모두 매진됐다고 알려줬다. 아쉬운 마음에 주변을 둘러보니 한국어 안내 책자가 있었다. 한국인 관광객이 자주 온다는 의미다. 590코루나(한화 약 3만 원)를 지불해 표를 미리 사두고 다음 날 저녁 다시 방문했다.

국립 마리오네트 극장은 100석 남짓의 작고 소박한 공간이었다. 조금만 움직여도 삐걱거리는 의자와 벨벳으로 만든 붉은 커튼이 오랜 역사를 말해준다. 극장 안은 특유의 냄새로 가득했다. 오래된 시골 학교의 시청각실 같은 냄새랄까. 약간 퀴퀴하면서도 왠지 모르게 정감이 느껴지는 냄새였다. 공연 시간이 되자 웅성거리는 소리가 줄어들었고 이내 커튼이 활짝 열렸다. 지휘자 인형이 등장하며 모차르트의 오페라 ‘돈 조반니Don Giovanni’가 시작됐다. 인형에 연결된 수많은 끈을 정교하고 정확하게 조절하는 손동작이 놀라웠다. 인형 관절은 상하좌우 유연하게 움직이는데 발이 바닥에 닿지도 공중에 너무 떠 있지도 않았다. 그 높이를 조절하는 것도 상당히 신기했다.

 

인형은 귀엽다가도 무섭게 변했고, 느리다가도 재빨라졌다. 사람의 손은 뻣뻣한 인형에 생명을, 음악은 감성을 불어넣었다. 인형을 조종하던 사람이 무대 앞으로 나와 인형과 함께 연기를 펼치는 장면은 마치 사람과 인형이 하나가 된 듯한 재미를 줬다. 중간중간 개그를 적절히 넣어 극은 지루할 틈이 없었다. 등장인물 중 한 명인 모차르트의 개그에 현지인들은 숨넘어갈 듯이 웃었다. 그렇다고 외국어에 서툰 외국인 관광객들이 소외된 건 아니었다. 전 세계 인종과 국적, 나이와 성별을 막론하고 소통 가능한 유머 코드를 섞은 것이 마리오네트 공연의 특징이다. 이탈리아어로 진행되기 때문에 완전히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인형극인 만큼 동작이 명확하고 내용이 쉬워 이해하기 어렵지 않았다. 만약 극을 좀 더 이해하고 싶다면 사전에 오페라 내용을 숙지해 가면 도움이 될 것이다. 공연은 약 두 시간 동안 진행된다.

 

 

 

마리오네트는 목각인형의 관절 마디마다 실을 연결해 사람이 줄을 조종하며 움직이도록 연출하는 인형극이다. 중세 이탈리아 교회에서 어린이 교육을 위해 끈이 달린 인형으로 공연을 한 것이 본격적인 마리오네트 공연의 시작이다. 마리오네트는 ‘작은 성모마리아’를 뜻하는데 성서 속 이야기를 전할 때 등장하는 마리아에서 이름이 유래했다. 마리오네트 인형은 실존 혹은 가상의 인물을 형상화해서 나무로 만들고 다양한 얼굴 표정과 복장을 입힌다. 옛날 유럽 어린이들은 마리오네트를 통해 성서의 내용과 윤리 그리고 사회질서를 배웠다.


마리오네트 인형의 기원은 아주 오래전이다. 기원전 2000년경 이집트 무덤에서 끈으로 연결된 나무 인형이 발견됐다. 마리오네트의 원형 중 가장 오래된 기록이다. 기원전 500년으로 추정되는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아이 무덤에서는 철사로 팔다리 관절이 연결된 점토 인형이 발견된 기록이 있다. 하지만 우리에게 친숙한 마리오네트 형태는 중세에서 르네상스 시대까지 이탈리아에서 제작한 형태의 인형극을 말한다. 이탈리아는 르네상스의 시발지로서 마리오네트를 비롯한 다양한 분야의 예술을 선도해나갔다. 교회에서 이루어지는 마리오네트 공연은 어린이 교육이 목적이었지만, 르네상스 이후 교회 밖으로 나온 마리오네트는 민중의 삶과 가까운 주제를 다루며 큰 호응을 받았다. 유럽의 여러 나라가 유서 깊은 마리오네트 전용 극장을 갖게 된 배경이다.

 

 

체코의 역사와 나란히 하다
마리오네트가 체코의 상징이 된 배경은 무엇일까. 잠깐 체코의 역사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프라하의 자유화 운동을 상징하는 바츨라프 광장을 지나며 1968년 체코에서 일어난 민주 자유화 운동 ‘프라하의 봄’이 떠올랐고 우리의 광화문, 혹은 광주의 금남로가 겹쳐졌다. ‘서울의 봄’ 역시 프라하의 봄에서 따온 말로 1979년 10.26 사건 이후부터 1980년 5.17 비상계엄 전국 확대 조치 전까지의 정치적 과도기를 의미한다.


프라하의 역사를 공부해 보면 우리의 근현대사와 비슷한 부분이 있다. 프라하는 오랜 시간 동안 체코인과 독일인, 유대인이 섞여 사는 도시였다. 19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체코어 사용자보다 독일어 사용자가 더욱 많았다. 체코 서부에 있던 보헤미아 왕국이 신성 로마 제국과 오스트리아 제국의 그늘에 있었기 때문이다. 체코의 귀족과 부르주아는 유럽을 주름잡던 합스부르크를 향한 사대주의에 젖어 독일어를 쓰며 독일 문화를 받아들였다. 체코어가 사라질 위기에 처하자 민중은 민족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체코어로 된 마리오네트를 공연하기 시작했다. 체코어로 공연되는 마리오네트는 시대를 풍자하며 체코의 정체성을 담았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독일이 체코를 떠나면서 체코에서 독일어가 점차 사라지기 시작했고, 순수하게 체코어로 된 마리오네트 공연만이 남았다. 일제강점기에 한글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 선조와 역사가 떠오르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민족 정체성을 지키고자 자국의 언어로만 공연한 체코의 마리오네트. 독일의 탄압을 받을 때도 마리오네트만큼은 체코어로 진행하는 것을 암묵적으로 허락했다. 영국·독일·오스트리아·이탈리아 등 유럽의 많은 나라가 마리오네트 전용 극장을 마련해 공연하고 있고 심지어 미국 센트럴파크 부근에도 마리오네트 극장이 있다. 특히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에 있는 마리오네트 극장은 수준 높은 공연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사람들은 마리오네트의 본고장으로 체코를 꼽는다.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2천여 개가 넘는 마리오네트 전용 극장이 있을 만큼 큰 인기를 누렸고, 현재까지도 체코를 상징하는 예술로 인정받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는 아홉 개의 전문 마리오네트 인형 극장이 운영되고 있으며, 프라하의 국립 마리오네트 극장은 인형극 관람과 함께 극장 투어 프로그램도 진행한다. 프라하 외에도 체코의 다른 도시인 플젠과 체스키크룸로프의 인형 박물관도 인기다. 그리고 2016년 12월, 체코 마리오네트 인형극은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됐다. 체코의 전통문화로서 마리오네트가 갖는 의미를 증명한 것이다.

 

김진 10여 년의 회사 생활을 마무리하고 여행 작가가 됐다. 현재 여행 잡지 ‘트래비’ 객원 기자로 활동 중이며 경향신문·서울신문·건설경제신문·이코노미조선 등 다수 매체에 기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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