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가 인정한 연출가 미야기 사토시가 ‘마담 보르자’로 다시 한번 세계 연극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 작품을 통해 매년 봄 시즈오카현에서 열리는 국제 연극제의 단면을 만나보자.
매년 일본의 황금 연휴인 4월 말~5월 초에 개최되는 ‘후지노쿠니 세계연극제(World Theatre Festival Shizuoka)’가 20회를 맞이했다. 이는 일본 문화청의 지원금을 받는 국제 연극제이면서 시즈오카가 지원하는 지역 밀착형 페스티벌이기도 하다. 연극제의 주최자 SPAC(Shizuoka Performing Arts Center, 시즈오카현 무대예술센터)의 거점인 ‘무대예술공원’은 시내에서 멀지 않은 산 위에 있다. 실내극장과 야외극장을 겸비, 연극제가 열리는 동안 시즈오카 시내의 시즈오카예술극장, 슨푸조(駿府城) 공원과 함께 국내외 우수 작품들을 공연하는 장소다. 국내 공연은 SPAC의 예술감독인 미야기 사토시(宮城聰)가 연출한 작품이 주를 이루며, 이번에는 프랑스·스코틀랜드·이탈리아·한국 작품과 함께 독일 영화를 상영했다.
‘후지노쿠니 세계연극제’의 백미 중 하나로 야외공연을 들 수 있는데, 이번에도 미야기 사토시가 연출한 작품 두 편이 공연됐다. 그중 ‘두 여자’(원작 가라 주로)는 예술공원 내 야외극장에서 공연됐다. 저녁쯤에 시작되는 공연은 자연과 조화를 이루도록 설계된 극장 안에서 조명의 변화에 따라 다양한 얼굴을 드러내는 판타지 공간을 선사한다. 일본과 해외에서 큰 활약을 펼쳐온 연출가 미야기 사토시는 2014년 프랑스의 아비뇽 페스티벌에서 ‘마하바라타’라는 작품으로 호평을 받고, 2017년에는 ‘안티고네’로 아비뇽 페스티벌 사상 처음으로 아시아 작품이 오프닝을 장식하는 성과를 올렸다. 올해 4월, 그의 세계적인 활약을 높이 평가한 프랑스는 문화예술공로훈장인 슈발리에(Chevalie) 기사 작위를 내렸다. 이런 그의 활약은 ‘후지노쿠니 세계연극제2019’의 매력을 한층 더해주는 요소이기도 하다.
동·서양의 문화를 한 작품에 녹이다
이번 미야기 사토시의 신작 ‘마담 보르자(マダム·ボルジア)’는 슨푸조 공원 야외 상설무대에서 공연됐다. 원작은 빅토르 위고의 희곡 ‘뤼크레스 보르기아(Lucrece Borgia)’(1833년 작)로 르네상스 시대를 대표하는 미인이자 악녀로 불리는 ‘루크레치아 보르자(Lucrezia Borgia)’(1480~1519)를 주축으로 전개된다. 보르자 가문은 스페인에서 이탈리아로 건너와 교황의 자리를 돈으로 매수해 권력을 장악한 아버지 알렉산드로 6세와 아들인 체사레의 악행으로 유명하다. 또, 체사레의 동생인 루크레치아는 남성 편력과 근친상간으로 인해 부도덕한 귀부인으로도 알려져 있다. 위고의 원작은 루크레치아가 근친상간 관계에 있었다는 형제 중 하나인 후안 사이에 아들을 두었다는 상상을 전제로 한다. 체사레의 질투로 후안이 살해당하고, 아들 역시 죽임을 당할지 모른다는 이유로 루크레치아는 아들을 직접 키우지 못하는데, 어부의 손에 키워진 아들 젠나로는 용병 부대의 지휘관이 돼 베네치아의 한 가장무도회에서 루크레치아와 재회한다.
미야기 사토시의 ‘마담 보르자’ 내용은 위고의 원작과 큰 차이가 없으나, 이탈리아를 일본의 센고쿠 시대(15~16세기)로, 젠나로를 포함한 그의 동료 귀족들을 센고쿠 시대 각 나라의 무장으로 각색했다. 배우들은 일본풍이지만 이국적이기도 한 퓨전 의상을 걸치고 무대를 활보한다. 특히 흥미로운 점은 초반부와 후반부의 무대를 분할해놓았다는 점인데, 초반부는 일본의 축제와도 같은 소란스러운 분위기와 음악 속에서, 보르자 가문의 악행과 루크레치아의 사정을 극중극 형식으로 보여준다. 허수아비처럼 표현된 보르자 가문의 남자들과 루크레치아 역의 가면을 쓴 배우가 남자들 사이를 왕래하는데, 미야기 사토시 연극의 특징 중 하나인 ‘2인 1역’의 수법을 엿볼 수 있는 장면이다.
미야기 사토시는 1990년에 극단 ‘쿠·나우카’를 창단하면서 본격적인 연극 활동을 시작했고, 2007년부터 SPAC의 예술감독으로 취임했다. 동양적인 사상에 기반을 둔 신체 훈련법과 일본의 분라쿠·가부키 등과 같은 전통 예능 기법을 응용해 양식미를 추구하는 표현 방식이 국내외에서 주목을 받아왔다. 일본의 전통 인형극인 분라쿠에서 인형을 움직이는 역할과 대사를 말하는 역할이 각각 분리돼 있는 것처럼, 미야기 사토시의 연극에서도 하나의 역할이 ‘무버(Mover)’와 ‘스피커(Speaker)’로 분리되는 경우가 많다. 위에 언급한 장면에서도 보르자 가문의 등장인물은 움직임을 보여줄 뿐, 말을 하는 배우는 따로 설정돼 있다. 말과 신체의 분리에서 동반되는 부자연스러움으로 인해 의미와는 동떨어진 지점에서 재미와 흥미를 이끌어내고 싶다는 것이 이전부터 그가 지닌 생각이다.
악녀라는 이름 뒤에 가려진 모성애
소란스러움이 잠시 걷힌 무대 위, 가면을 쓴 루크레치아는 홀로 낮잠을 자는 젠나로에게 다가간다. 루크레치아는 자신의 아들을 애틋한 마음으로 대한다. 그 모습은 마치 연인을 대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남편인 알폰소는 젠나로가 루크레치아의 외도 상대라고 단정 짓는다. 루크레치아는 젠나로에게 좋은 사람으로 인식되기 위해 자신이 행한 지금까지의 악행을 바로잡고자 한다. 하지만 세기의 악녀라는 그녀의 낙인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자신의 악행을 밝히지 말아달라는 루크레치아의 거듭되는 간절한 부탁에도 불구하고, 젠나로의 동료들은 그녀의 정체를 밝힌다. 그 결과 젠나로는 자신의 어머니인지는 꿈에도 모른 채 루크레치아를 경멸하게 된다.
후반부, 루크레치아와 아들 젠나로를 둘러싼 상황은 더욱 비극적으로 치닫게 된다. 루크레치아의 정부가 젠나로라고 단정한 남편 알폰소에 의해 루크레치아는 독약이 든 술로 젠나로를 죽여야 하는 상황에 이른다. 하지만 남편이 부재한 틈을 타 해독제로 젠나로의 목숨을 살린다. 젠나로를 향한 루크레치아의 애정은 그녀가 세기의 악녀라는 사실을 잊게 하기에 충분하다. 루크레치아가 자신의 어머니임을 알지 못하는 젠나로가 자신을 살리려는 그녀를 오히려 의심하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젠나로를 결코 책망하지 않는다. 자신이 친모라고 말하지 못하는 비극적 상황을 속으로 삼키며, 아들을 살리기 위해 필사적으로 매달린다. 다만 루크레치아는 젠나로의 동료들까지 용서할 수 있는 심성을 갖진 않았다. 세기의 악녀라는 명성에 걸맞게 자신을 모욕한 일행을 죽이려고 일을 꾸민다. 그녀의 계획은 완벽한 듯이 보였지만, 하필 젠나로가 일행과 함께 연회에 참석해 독약을 마시게 되고, 루크레치아는 다시 한번 젠나로에게 해독제를 마시라고 애원한다. 젠나로는 자신의 동료를 죽이려고 한 그녀의 설득을 무시하고 칼을 들이댄다. 루크레치아는 젠나로가 자신을 죽이는 일이 없도록 반복해서 젠나로를 설득하지만, 복수를 대신 해달라는 친구 마피오의 목소리에 그는 어머니를 칼로 찌르고 만다. 칼에 찔린 루크레치아는 자신이 젠나로의 친모임을 밝히고 쓰러진다.
미야기 사토시는 루크레치아가 젠나로에게 갖는 감정 자체를 ‘연애 감정’과 비슷하다고 봤다. 그리고 이 연애 감정이 인간의 가장 아름다운 감정의 하나를 상징한다고 생각했고 ‘마담 보르자’에서 이 아름다운 감정의 복권을 시도했다고 이야기한다. 그의 연극에는 세상 그리고 인간이 ‘바뀔 수도 있다’는 희망이 전제돼 있다. 미야기 사토시는 연극을 통해 그 희망을 계속해서 보여주고 싶었고, 부정적인 감정과 폭력이 만연한 세계에 인간이 가진 아름다운 감정, 아름다운 것들을 복권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마담 보르자’에는 증오·질투·복수심 등 이 세상에 존재하는 온갖 부정적인 감정이 가득하고, 루크레치아 역시 악행을 일삼는 세기의 악녀임에도 불구하고, 아들을 향한 행동과 감정만큼은 그녀가 어머니 또는 한 여인으로서 순수한 감정을 지니고 있음을 보여준다.
참고
인터뷰 ‘新作演劇<マダム·ボルジア>上演/宮城聰芸術監督に聞く’, 日本經濟新聞, 2019년 4월 26일자.
塚本知佳·本橋哲也, ‘宮城聰の演劇世界’, 靑弓社, 2016.
글 심지연 동경대학교 대학원에서 일본 근대 연극 연구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한일연극코디네이터로 활동하며 연극 번역·드라마트루기·리뷰 작업을 병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