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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06월호 Vol.353

정심으로 일군 수리성

프리뷰 2┃국립극장 '완창판소리' 최호성의 심청가-강산제

스승에게 이어받은 강산제 심청가를 올곧게 전승하고 있는 최호성이 완숙한 소리꾼으로 도약하기 위한 또 하나의 도전을 시작한다.

 

 

 

2019년 상반기 국립극장 완창판소리의 대미는 국립창극단원 최호성이 장식하게 됐다. 그는 한국예술종합학교를 졸업하고 2013년 국립창극단에 입단했다. 국립창극단에서 10년 만에 정단원을 뽑았는데, 이때 그는 김준수·민은경·이광복·이소연·정은혜와 함께 정단원이 됐다. 국립창극단원이 되기 전에도 인턴으로 여러 창극에 출연했지만, 정단원이 된 후에는 ‘변강쇠 점 찍고 옹녀’ ‘아비, 방연’ 등에서 주역을 맡아 그야말로 눈부신 활동을 펼쳤다. 국립창극단원이 된 지 6년, 이제 그는 국립창극단을 대표하는 소리꾼이자 배우가 됐다. 여기서 국립창극단원으로 그의 활동을 논하는 것은 군더더기가 될 것이 분명하므로, 소리꾼 최호성에 초점을 맞추어 얘기하는 것이 나을 듯하다.


최호성은 여덟 살 때부터 전라도 광주에서 윤진철 명창으로부터 판소리를 배웠다고 한다. 물론 그 후에 안숙선·염경애·채수정 명창에게도 판소리를 배웠다. 그렇지만 시작부터 지금까지 윤진철로부터 판소리를 배웠기 때문에 최호성의 소리에는 윤진철의 소리 특성이 가장 강하게 담겨 있다. 최호성은 윤진철을 “부모님이나 다름없는 분”이라고 했다. 육체는 부모님께 물려받았지만, 예술은 윤진철로부터 물려받았다는 뜻일 것이다. 그래서 최호성의 판소리를 알기 위해서는 윤진철의 소리부터 더듬어보아야 한다. 그리고 윤진철의 소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강산제 소리의 전승 과정을 추적해보지 않을 수 없다.


강산제 ‘심청가’란 강산 박유전으로부터 전승돼온 ‘심청가’를 일컫는다. 이 소리는 정재근을 거쳐 조카인 정응민에게 이어졌다. 전라남도 보성에 묻혀 살면서 소리를 갈고닦은 정응민은 말년에 제자를 여럿 두었는데, 대표적인 소리꾼이 정권진·조상현·성우향·성창순 등이다.


정권진은 정응민의 아들인데, 아들이 소리꾼이 되기를 원치 않았던 정응민은 정권진에게 판소리를 가르치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정권진은 정응민의 제자인 박기채로부터 소리를 배웠다. 이를 안 정응민이 나중에 정권진에게 소리를 가르쳤는데, 직접 가르치기가 싫어서 박춘성이란 소리꾼을 가르칠 때 같이 앉혀놓고 가르쳤다고 한다. 그래서 정권진은 정재근으로부터 이어진 정씨 가문 판소리의 적자가 됐다.


정응민·정권진으로 이어진 소리에서 가장 강조하는 것은 ‘성음 중심의 소리’다. 판소리의 다른 구성 요소보다 ‘소리’ 그 자체의 미감 실현에 주력한다는 것이다. 그런 노력 속에서 보성소리는 ‘성음’에 관한 용어와 개념을 발전시켰고 너름새나 아니리는 최소화했다. 다음으로 들 수 있는 것은 판소리에서 윤리성을 유난히 강조한다는 점이다. 음악 행위와 윤리적 실천을 동일시하는 데까지 밀고 나간다. 그래서 훌륭한 소리꾼이 되기 위해서는 ‘정심正心: 바른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한다. 예컨대 ‘심청가’에서 심청이가 아버지 눈을 뜨게 하려고 인당수에 몸을 던질 때, 바로 뛰어드는 것이 아니라 고향 쪽을 향해 아버지에게 작별 인사를 드린 후, 부친을 위로해드리라는 부탁을 하고 물에 뛰어들거나, 황성 올라가는 길에 뺑덕과 도망을 갔던 황봉사는 두 눈이 아닌 한쪽 눈만 뜨게 한다던지 선행을 한 사람에게 포상하는 내용 등이 그것이다. ‘장승상댁 대목’이 두 번이나 등장하는 것도 심청의 효를 강조하는 기능을 한다.


정권진은 여러 제자를 두었으나 충실한 제자 중 한 명으로 윤진철을 꼽는다. 윤진철의 성음과 목은 정권진의 것과 같다. 이번에 ‘심청가’를 부를 최호성의 소리도 정응민·정권진·윤진철로 이어진 거친 수리성과 목을 그대로 잘 계승하고 있다. 최호성이 강산제 ‘심청가’의 전승에서 차지하는 중요성과 가치는 우선 이러한 점에 있다고 생각된다. 곧 강산제 ‘심청가’ 원형에 가까운 충실한 소리를 전승하고 있다는 것이다.


원형에 가까운 소리를 전승하고 있다는 것만으로 바로 소리꾼의 기량이 정해지지는 않는다. 그런 소리를 전승하고 있다고 할지라도 소리 기량이 따라주지 못하면 명창이라고 할 수 없다. 강산제 ‘심청가’의 전통은 수리성의 전통이다. 수리성이란 판소리의 목소리 중에서도 거친 소리, 곧 목쉰 소리를 가리킨다. 판소리에서는 본래 수리성을 최고로 쳤다. 거칠고 뻑뻑한 음질의 소리에서 가치를 찾는 미학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근래에 와서 여성 창자가 크게 늘어난 데다 서양 음악의 영향으로 맑은 목소리를 중시하는 경향이 늘어났지만 판소리는 본래 거칠한 수리성의 미학을 중요시했다. 최호성은 그런 수리성을 가졌다. 물론 아직 완숙하다고 표현하기엔 이르지만 대성할 수 있는 기본 자질을 갖춘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정응민은 “판소리는 성음 놀음”이라고 했다. 곧 판소리는 목소리의 변화를 통해서 그 미감을 즐기는 예술이라는 뜻이다. 다양한 성음의 변화를 구사하기 위해서는 그야말로 피나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이른바 길고 긴 득음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래서 최호성의 현재 소리는 완성된 소리가 아니라, 미래를 기약하는 소리라고 할 수 있다.


최근에 장래가 촉망되는 소리꾼 여러 명이 대중음악에까지 활동 영역을 넓히고 있다. 어찌 보면 이는 바람직한 현상일 수도 있다. 판소리 창자의 능력이 대중음악에서도 빛을 발할 수 있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걱정이 되기도 한다. 자질을 갖춘 소리꾼이 소리판을 떠나 대중음악으로 넘어가면 판소리는 어찌 될 것인가?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한편 최호성과 같은 젊은 소리꾼을 보면서 그래도 희망을 갖는다. 아직도 판소리에 인생을 건 젊은이가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놓이기 때문이다. 부디 훌륭한 소리꾼으로 완숙하길 바란다. 그 과정에서 이번 ‘완창판소리’ 공연이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는 발판이 되길 기대한다.

 

최동현 군산대학교 국문과 교수·시인·판소리학회장. 전라북도 문화재위원회 위원을 지냈으며, 현재 전주세계소리축제 조직위원회 부위원장을 맡고 있다.

 

국립극장 완창판소리 ‘최호성의 심청가-강산제’
날짜     2019년 6월 22일
장소     국립극장 하늘극장
관람료  전석 2만 원
문의     국립극장 02-2280-4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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