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킵네비게이션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빠른예매 바로가기 사이트 지도 바로가기
월간미르 상세

2019년 06월호 Vol.353

국악 관현악, 경계의 인식&경계의 극복

SPECIAL┃국립국악관현악단 관현악시리즈Ⅳ '내셔널&인터내셔널'_김성진과 다섯 명의 작곡가

국립국악관현악단의 ‘내셔널&인터내셔널’은

내셔널에서 출발해 인터내셔널이 되고자 하는 작곡가 다섯 명의 ‘고민과 노력’을 살필 수 있고

‘해답과 제시’를 읽을 수 있는 ‘미래 지향적 콘서트’다. 그들이 생각하는 ‘경계’는 무엇이며,

그 경계를 어떤 매개 또는 사이(Inter)로 연결해 저마다의 방식으로 음악적 영토를 확장할지 볼 수 있는 기회다.

 

 


국립국악관현악단 예술감독 김성진을 떠올리니, ‘경계’라는 단어가 연결된다. 그는 경계를 ‘아는’ 사람이자, 경계를 ‘허문’ 사람이다. 지금으로부터 2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자. 그 시절 국악계에서 김성진을 아는 사람은 드물었다. 국내에 든든한 기반을 둔 지휘자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실력이란 것이 있었다. KBS국악관현악단의 몇몇 단원이 그를 알아보고 적극적으로 추천해 KBS국악관현악단 정기 연주회(1999)에서 지휘봉을 잡게 된다. 이를 계기로 국악계 사람들의 의식도 점차 바뀌기 시작한다. “서양 음악을 공부한 지휘자가 국악 관현악도 잘 지휘할 수 있다!”라고.


김성진은 이렇게 두 음악계 사이의 경계를 허물기 시작했다. 서울시국악관현악단 상임 지휘자를 맡으면서(2001~2006), 그는 크게 성장했고 작곡가 김희조의 합주곡을 집중 탐구하며 이제 누구도 그를 ‘서양 음악 지휘자’라고 경계 긋지 못하게 만들었다. 김성진의 끈질긴 노력은 비교컨대 서양 음악계에서 어떤 지휘자가 말러 교향곡을 성공리에 잘 연주했다는 소식보다 더 가치 있다. 국립국악관현악단 예술감독을 지낸 고(故) 황병기 명인이 생전에 그를 주목했다는 사실도 되새기게 된다.


김성진과 국악 관현악, 이 둘의 상관관계는 마치 동전의 양면처럼 ‘경계의 인식’이자, ‘경계의 일탈’이기도 했다. 김성진은 서양 음악과 국악의 공통점과 차이점, 그 경계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그의 국악 지휘 20년은 이제 ‘탄탄한 내공’으로 뿌리를 내렸다.
이제 지휘자를 넘어 국립국악관현악단의 예술감독으로 자리한 김성진이라면 필시 서양의 유명 오케스트라에 필적하는 국악 관현악단을 만들고픈 꿈이 있을 것이다. ‘내셔널&인터내셔널’은 그 출발점이다. 롯데콘서트홀 무대에 오르는 그는, 앞으로 베를린 필하모닉 콘서트홀에서 지휘하는 자신과 국립국악관현악단의 미래를 꿈꿀지 모른다.

 

‘경계’에 대한 성찰
국립국악관현악단의 ‘내셔널&인터내셔널’도 ‘경계’를 키워드로 한 공연이다. 여기서 경계는 국적 또는 국경이다. 겉으로 드러나는 건, 국적이 다른 국내 작곡가와 해외 작곡가의 작품을 비교하는 재미를 준다는 것이다. 하지만 속 깊게 살펴볼 건, 경계라는 것 자체가 어떻게 존재하며, 그것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지에 대한 화두다.


‘경계의 극복’은 고정불변할 것 같았던 베를린 장벽이 어느 날 갑자기 허물어지는 기쁨에 비유할 수 있겠다. 어쩌면 지구상의 유일한 분단국인 이 땅에서, 경계가 없어지는 것과 같은 기대일지도 모른다. ‘내셔널&인터내셔널’이 이 같은 기쁨이자 기대로 남길 바란다. 로린 마젤이 지휘하는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연주했던(2008) 북한 동평양대극장에서도, 언젠가 김성진이 지휘하는 국립국악관현악단의 연주가 울릴 거라는 ‘상상 이상의 현실’을 직시하게 해줄지 모른다.


‘내셔널&인터내셔널’에서 만나는 다섯 곡은 저마다의 경계와 개성이 존재한다. 우선 작곡가 저마다의 경계, 나라(Nationa)l가 다르고, 저마다 또 다른 세계와 어떻게 만나는 것이 바람직한지 고민한 흔적이 역력하다. 그렇다. ‘내셔널’이 ‘인터내셔널’이 되는 것이다. 또한 ‘인터내셔널’의 ‘인터(Inter)’라는 것의 깊은 의미를 새기게도 된다.

 

악기의 경계_강준일
필자는 2014년 3월호 「미르」에서 작곡가 고(故) 강준일을 가리켜 ‘호모 아카데미쿠스’라고 한 바 있다. 그의 작품이 매우 학구적이기 때문이다. 그는 작곡할 때 ‘물리적 사고’에서 출발한다. ‘물리적인 대상’을 어떻게 ‘음악적인 형상’으로 치환할 것인지는 그에게 평생의 화두였고, 그의 작품은 이것을 풀어내기 위한 일련의 과정이라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서양 음악을 전공한 그가, 돌연 국악 또는 사물놀이에 빠진 이유는 무엇일까? 사물놀이 자체의 리듬과 앙상블보다는 네 개의 악기가 가진 물성에 대한 충격 또는 한국적 악기 편성에 대한 원초적 자각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그는 각각의 악기에 집중하기보단 ‘사물’을 하나로 본 상태에서 그것과 ‘그 무엇’을 어떻게 만나게 할지에 관심이 컸다. 사물놀이와 피아노, 사물놀이와 오케스트라 등 그의 작품을 보면 악기 간의 충돌과 융합에 얼마나 큰 재미를 느끼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이번에 연주될 국악 관현악과 해금, 바이올린을 위한 이중 협주곡 ‘소리그림자 No.2’ 또한 비슷한 듯 다른 두 개의 찰현악기에 대한 탐구에서 출발한다. 물성(物性)에서 출발해 어떻게 철학성(哲學性)을 더할 수 있는지가 작곡가에게 흥밋거리였고, 그런 숨겨진 매력을 찾아내는 것이 강준일의 작품을 듣는 기쁨이기도 하다. 

 

 

 

 

 

생사의 경계_임준희
작곡가 임준희가 황병기의 ‘침향무’를 오마주해 헌정한 ‘심향(心香’)에는, 황병기와 같은 존재가 한 명 더 겹쳐진다. 바로 작곡가의 아버지다. 그녀가 이 작품을 쓸 즈음은 마음에 번뇌와 고통이 존재하는 시기였다. 생사의 갈림길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한 듯하다. 이 작품의 저변에 흐르는 정서가 ‘먼저 떠난 분들에 대한 애틋한 마음’이기 때문. 이 작품에는 아버지에 대한 사랑과 작곡가 황병기에 대한 존경이 담겨 있다. 여기서 ‘생사의 경계’는 ‘사랑과 존경’의 또 다른 이름이다.


임준희는 매우 다양한 방향으로 곡을 쓴다. 아마 동시대 작곡가 중에서 그녀만큼 다양한 경향의 작품을 쓰고, 저마다 다른 분위기를 낼 수 있는 작곡가도 많지 않을 것이다. 그만큼 그녀의 작품을 두고 전체를 일괄하는 하나의 키워드를 잡아내긴 쉽지 않다. 그러나 이번 작품의 주제와 접근 방식은 극명하게 드러난다. 황병기가 남긴 유음(遺音)에 존경과 사랑의 마음을 담았다. 초연을 듣고 나 또한 “황병기 선생님이 다녀가셨다”라는 말을 한 바 있다. 아버지 또는 선생님을 ‘잘 보내고 싶은 마음’, 곧 자식의 마음과 제자의 마음이 객석에 그대로 전달된다.

황병기의 선율을 잘 흘러가게 해주는 임준희의 유음(流音)은 수려함을 넘어서 숭고함이 느껴진다. 이 작품을 한마디로 평한다면, “유음(遺音)을 돋보이게 하는 유음(流音)”이다.

  

 

남북의 경계_김대성
지난해 국립국악관현악단의 ‘다시 만난 아리랑-엇갈린 운명, 새로운 시작’에서 작곡가 김대성은 남?북의 음악적 공통분모를 잘 알고 있었다. 한반도 어디에서나 불리던 ‘반달’이란 노래를 가져와서, 지금은 헤어져 사는 남북 사람들의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통일을 위한 반달 환상곡’을 만들어낸 것. 이 땅에서 남북의 경계를 허물고, 북의 리현우와 남의 김대성 작품을 선입견 없이 들어볼 날은 언제일까?


이번에 위촉 초연될 국악 관현악곡 ‘금잔디’는 작곡가 리건우의 노래에서 출발한다. 소박한 노래 또는 민요적 선율을 바탕으로 한 변주 형태의 관현악곡이 많음에도 김대성이 돋보이는 것은, 소박한 선율로 감성을 파고들다 어느 순간 예기치 못한 리듬(장단)을 가져와 역동성을 부여한다는 점이다. 이번 공연에서도 리건우의 ‘금잔디’ 선율과 지영희의 경기도당굿 중 올림채장단이 만난다고 하니 기대된다. 남북의 경계를 인식하면서 남북의 정서를 포용하는 작품을 지향하는 그의 곡은 통일이라는 명제 아래 언제나 의미를 던져준다.

 

 

 

 

 

 

 

 

신구의 경계_탕젠핑(편곡 홍정의)
중국을 대표하는 작곡가 탕젠핑(唐建平)의 ‘춘추(春秋)’는 중국의 금(琴) 선율에서 출발한 곡으로 ‘너무도 중국적인’ 작품이다. 그런데 그의 작품 세계로 들어가 보면, 여기에 더해 ‘너무도 전통적인’ 작품이라고도 할 수 있다. 물론 중국의 전통 음악 관련 작곡가 대개가 이렇지 않은가 반문할 수도 있지만 탕젠핑의 곡은 더욱 더 ‘중국적’ 혹은 ‘전통적’ 정서가 농후하다. ‘춘추’는 1994년에 쓴 작품이다.


외국인의 시각에서는 중국이 ‘공자’ 또는 ‘유교’와 연결되기도 하지만, 실제 중국 내부에서 살던 사람들에겐 문화혁명과 같은 일련의 정치적 격변이 더욱 더 피부에 와닿는다. 비유컨대 한국에서도 ‘퇴계’와 ‘율곡’을 작품의 소재로 삼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가?
하지만 탕젠핑의 곡을 들으면 그가 다른 어떤 작곡가보다도 중국의 고대 정신과 물려받은 음악에 대한 존중이 깊은지 읽을 수 있다. 자신이 속한 세대에 자신보다 윗세대 또는 더 윗세대가 보유한 ‘중국적 가치’를 음악으로 깊이 있게 알려주는 작곡가가 탕젠핑이다. 이를 통해서 신구세대의 정서적 결속을 희망했으리라 짐작한다. 사회주의 국가체계 속에 살아왔으면서도 중국 철학의 심오함에 가치를 두고 이를 음악으로 풀어낸 작곡가 탕젠핑은 사회주의 국가체계에 익숙한 동시대 중국인이 중국의 고전과 중국의 전통을 인식하는 데 영향을 준 작곡가라고 할 수 있다.

 

 

동서의 경계_토머스 오즈번
토머스 오즈번(Thomas Osborne)의 작품을 들으면 놀랄 때가 있다. 첫째, 그가 한국인이 아님에도 한국인 작곡가도 간과하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 둘째, 그렇게 자신이 알고 있는 국악적 특성을 그저 여과 없이 본 모양대로 드러내지 않고, 매우 정치(精致)하게 배열하고 있다는 점이다. 무엇보다도 놀라운 것은, 그가 ‘한국적’이라는 것을 떠나서 창작자 입장에서 매우 ‘작곡적’인 작품을 쓴다는 점이다. 그는 작곡가로서 아주 큰 영향력을 갖고 있는 동시대 작곡가다.


그는 하와이대학교 교수다. 그곳에는 ‘이스트웨스트 센터’가 있다. 오래전부터 동서양의 문화가 만나는 데 큰 역할을 해온 곳이다. 한국을 포함해 동양의 많은 음악가가 이곳을 세계로 진출하는 교두보로 삼았다.
토머스 오즈번의 음악은 하와이라는 곳이 그렇듯이, 정확하게 동서양 음악의 가운데 지점에 놓인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두 개의 가치를 모두 포용할 수 있는 음악을 지향하는 것이, 그에게는 마치 신념을 넘어선 신앙과 같다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이번에 연주될 ‘Haru(하루)’는 한국의 악기를 사용해, 하루(The Day)의 과정을 매우 표제적이고 표현적으로 그려낸다. ‘인상주의적’이란 말로 표현해도 될지 모르겠다. 그의 작품을 들으면 국악기가 하나의 합쳐진 빛깔로 느껴진다. 또한 ‘Haru(하루)’라는 제목에 대한 일종의 고마움도 느낀다. 지극히 자의적인 해석이나, 상대적으로 일본인 거주자가 많은 하와이에서 한국어 단어 ‘하루’의 의미를 새롭게 알리고 있기 때문. 참고로 같은 발음의 일본어 ‘하루(春)’는 봄을 가리킨다. 시간의 변화를 통해, 국악기를 통해 음색의 변화를 추구하는 이 작품을 ‘경계의, 경계에 의한, 경계를 위한’ 작품이라고도 평하고 싶다.

 

‘경계를 정확히 알아야, 경계를 넘을 수 있다.’ 지금의 국악 관현악이 가장 명심해야 할 명제인지 모른다. 내셔널이란 것이 언제까지 긍지일 수도 없으며, 섣부르게 인터내셔널을 지향한다고 비판할 수도 없다. 지금 한국의 국악 관현악은 내셔널과 인터내셔널의 경계에 존재한다. 이런 상태에 계속 머물 것인가? 이런 상태를 뛰어넘을 것인가? 김성진 예술감독과 국립국악관현악단이 앞으로 풀어내야 할 즐거운 고민이 되길 바란다.

 

윤중강 평론가이자 연출가. 평론과 방송 활동뿐 아니라 2018년부터 전통연희 페스티벌의 프로그램 디렉터를 맡아 연희 창작물을 만드는 등 공연 기획까지 영역을 넓히고 있다.

 

 

국립국악관현악단 관현악시리즈IV ‘내셔널&인터내셔널’
날짜     2019년 6월 11일
장소     롯데콘서트홀
관람료  R석 5만 원, S석 3만 원, A석 2만 원
문의     국립극장 02-2280-4114


사이트 지도

사이트 지도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