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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05월호 Vol.352

함께 걷는 꿈길, 훌쩍 자란 행복

예술배움┃국립극장 창극아카데미 이건율 수강생

엄마의 판소리를 듣고 국악을 좋아하게 됐다.

일상으로 판소리를 끌어안자 꿈이 한 뼘 더 자랐다.


봄비가 내리는 4월 첫째 주 토요일. 아직 서울의 벚꽃은 만개하지 않았지만, 간간이 무리 지어 피어난 개나리와 목련은 완연한 봄기운을 기대하게 한다. 매주 토요일, 장충체육관 다목적실에서 찬바람을 보내고 따듯한 계절을 맞이하며 새로운 출발을 준비하는 즐거운 모임이 열린다. 바로 ‘국립극장 창극아카데미’. 수업이 끝나는 오후 3시가 되자 다목적실 문이 열리고 아이들이 와르르 쏟아져 나온다. 스무 명 남짓 되는 인파 속에서 의연히 서 있는 건율이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판소리할 땐 목이 아닌 배에서 소리를 내야 해요.” 판소리에 관한 질문을 꺼내자 의젓한 목소리로 차근차근 답하는 건율이는 초등학교 5학년이다. 학교에 크고 작은 행사가 있을 때마다 사회자로 나서 발표를 주도하는 활발한 성격이지만, 판소리 앞에선 사뭇 진지해진다. 판소리 ‘춘향가’ 중 사랑가 대목을 꼽으며 이몽룡을 향한 춘향이의 마음이 무척 로맨틱하게 느껴진다는 건율이는 어떻게 판소리와 만나게 된 걸까. 건율 군의 어머니 김동림 씨는 건율이가 자신의 영향을 받아 7살에 판소리를 시작했다고 전한다.

 

“일하며 쌓인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대학생 때 배운 판소리를 다시 하게 됐어요. 집에서 과외를 받으며 거의 20년 만에 소리를 냈는데 옆에서 기차놀이를 하던 건율이가 따라 부르는 거예요. 그때 건율이가 만 6살이었어요. 그 후 건율이도 판소리에 흥미를 보여 소리 공부를 시켜줬고, 둘이 같이 대회에 나가기도 했죠. 여수에서 열린 판소리 대회에 각자 다른 부문으로 출전한 적이 있는데 저보다 건율이 등수가 훨씬 더 높았어요.(웃음)”

 

옆에서 가만 고개를 끄덕이던 건율이도 처음 판소리를 들었던 날이 기억난다며 두 눈을 반짝였고, 이내 애정을 가득 담아 판소리에 대해 이야기했다.

“어릴 때 엄마를 따라 어설프게 판소리를 해봤는데 엄청 신기하면서 재밌었어요. 시원하게 소리를 내는 것이 좋아 제대로 배워보고 싶었어요. 판소리를 통해 사랑가와 이별가를 알게 됐고 다양한 노래를 만났어요. 노래를 부르며 다른 사람의 감정을 느껴보는 경험을 했어요. 판소리는 서로를 이해할 수 있게 하는 징검다리 같아요!”

 

건율이가 판소리에 더욱 집중할 수 있도록 이끌어준 건 안숙선 명창이다. 2016년 안숙선 명창의 ‘심청가’ 공연을 보고 깊은 감동을 받았다고. 건율이는 무대에서 느낀 긴 여운을 간직한 채 꾸준히 판소리 연습을 했고 가족과 국악 공연을 보러 다니며 견문을 넓혔다. 그리고 용기를 내어 지난해 안숙선 명창과 함께하는 ‘국립극장 창극아카데미’를 수강했다. 누구보다 즐겁게 수업과 수료공연을 마친 건율이는 손꼽아 다음 시즌을 기다렸고 올해 3월, 한 번 더 창극아카데미를 신청했다.

“무대에서만 보던 안숙선 명창에게 직접 판소리를 배운다는 건 꿈만 같은 일이에요. 수업이 제게 너무 낯설고 어렵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차근차근 알려주시는 선생님들 덕분에 다시 한번 기본기를 탄탄하게 다질 수 있었어요.”

 

‘국립극장 창극아카데미’는 판소리와 전통예술을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는 국립극장 대표 청소년 예술교육 프로그램이다. 안숙선 명창과 최여림 연출 등 최고의 강사진이 아이들에게 창극 공연을 만들고 출연하는 특별한 경험을 선사한다. 놀이처럼 접하기 때문에 재미있게 놀며 창의성을 기를 수 있다. 건율이도 수업에서 진행하는 연극 놀이에 참여하며 상상의 폭이 넓어졌다고 말했다.

“오늘 오전에는 다 같이 ‘흥보가’의 제비노정기를 부르며 제비가 바라본 중국의 풍경과 문화재를 상상해봤어요. 또 친구들과 ‘흥보가’에 새로운 장면을 만들어 연극으로 표현하기도 했죠. 연극이 정말로 쉽고 가깝게 느껴졌어요.”

 

오랜 시간 판소리와 동행한 건율이는 어떤 삶을 꿈꾸고 있을까. 건율이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의 사회자가 꿈이라고 답했다. 판소리와 연극을 토대로 다져온 예술적 재능을 발휘해 많은 사람을 기쁘게 하고 싶다고. 나아가 국악을 널리 알리는 데 기여하는 것이 목표라며 국악에 대한 애정을 내비쳤다. 김동림 씨는 행복한 미소를 짓곤 자신도 건율이와 닮은 꿈을 꾸고 있다고 밝혔다.

“저는 ‘국립극장 전통예술아카데미’에서 판소리를 배우고 있어요. 토요일이 되면 설레는 마음을 안고 건율이와 판소리 하러 가죠. 할머니가 될 즈음엔 문화센터에서 판소리를 가르치고 싶어요. 누군가에게 기쁨이 되는 일을 한다면 좋을 것 같아요.”

 

사랑하는 사람과 같은 꿈을 꾼다는 건 큰 축복이 아닐까. 비록 세찬 바람이 불고 예상치 못한 빗방울이 떨어진다 해도 서로 믿고 의지하며 내딛는 앞길에는 충만한 행복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봄비가 멎고 날이 개자 벚꽃이 활짝 피어난 4월의 첫째 주 일요일처럼.


박효린 좋아하는 글을 쓰고 있는 오니트 에디터.
사진 김창제

 

국립극장 창극아카데미
2013년 개설된 ‘국립극장 창극아카데미’는 초등학교 4학년부터 중학교 3학년까지를 대상으로 한 창극 전문 교육 프로그램이다. 판소리와 전통예술을 단계적으로 접할 수 있도록 총 12회로 수업이 구성되며 안숙선 명창, 최여림 연출 등 각 분야의 최고 전문가가 강사로 참여한다. 수강생들은 판소리 눈대목과 민요를 배우며 소리꾼으로서의 기본기를 다지고, 다채로운 연극 놀이를 통해 표현력을 기른다. 자세한 내용은 국립극장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문의 국립극장 예술교육팀 02-2280-5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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