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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05월호 Vol.352

세상사 곡절이 묻어나는 소리

VIEW┃프리뷰3 국립극장 완창판소리 '오민아의 심청가-강산제'

반들반들한 소리는 재미가 없다는 고(故) 성우향 명창이 떨구고 간 씨앗 하나.

거기서 세(細)삼베 같은 컬컬한 성음과 날카로운 기세가 소리로 피어올랐다.

 


판소리를 오랫동안 연구해왔지만, 나는 오민아란 소리꾼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다. 물론 국립극장에서 얼굴은 한두 번 보았지만 소리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동안 어지간한 소리꾼은 다 만나보았고, 그 소리꾼들의 내력에 대해서도 알 만큼은 알고 있다고 자부해왔는데, 오민아란 소리꾼이 내게 숙제를 내준 셈이 됐다. 낯선 사람, 잘 모르는 사람의 공연을 보는 것은 늘 설레는 일이다. 생전 처음 듣는 소리가 어떨지 기대가 크기 때문이다. 사실 모든 소리꾼은 무명에서 출발한다. 낳자마자 이름을 날리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이름을 얻었다가도 노력 여하에 따라 주저앉기도 하고, 더 높은 성취에 이르기도 하는 것이 소리꾼이다.

 

오민아 명창이 보내준 ‘심청가’ 동영상 한 개가 내가 접한 오민아 명창 소리의 전부다. 이제 그 소리를 실마리 삼아 이야기를 풀어가 보기로 한다. 오민아의 ‘심청가’ 동영상을 보자마자 나는 깜짝 놀랐다. 청이 무척 높았기 때문이다. 이 정도의 청으로 노래한 사람은 박초월·성우향·이일주·김영자 정도뿐이다. 물론 내가 본 동영상은 9분 정도에 불과했기 때문에 국립극장 ‘완창판소리’ 공연에서도 그렇게 높은 청으로 소리를 이끌어나갈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오민아가 서슬이 깃든 높은 청을 가진 소리꾼, 전력을 다하는 치열한 소리꾼인 것만은 분명하다.

 

오민아는 전라남도 보성군 회천 출생이다. 회천이 어디인가. 바로 보성소리의 본고장 아닌가. 보성소리를 갈고닦아 후세에 전해준 정응민은 회천에서 자신의 예술 세계를 완성했다. 정응민은 큰아버지인 정재근에게 서편제 판소리의 시조 박유전으로부터 내려오는 ‘심청가’ ‘수궁가’ ‘적벽가’를 배우고, 동편제 김세종의 ‘춘향가’를 김찬업으로부터 이어받아 동·서편이 어우러지는 자신만의 독특한 예술 세계를 구축했다. 전승 과정과 특성이 다른 두 가지 양식의 소리가 정응민에 와서 합쳐졌기 때문에 정응민의 소리는 동편제니, 서편제니 하는 개념으로는 설명할 수가 없다. 그래서 정응민으로부터 이어진 소리를 이 소리가 탄생한 지역 이름을 따서 ‘보성소리’라고 부르기도 한다. 다만 소리의 기원을 따져서 구분할 때는 ‘춘향가’는 김세종제, ‘심청가’ ‘수궁가’ ‘적벽가’는 강산제라고 한다. ‘강산’은 대원군이 박유전의 소리를 듣고 “네가 제일강산이다”라고 했다는 데서 유래한 박유전의 호다.

 

오민아는 보성소리를 가장 수준 높게 불렀다는 성우향으로부터 ‘춘향가’와 ‘심청가’를 배웠다. 그 외에도 김일구로부터 ‘적벽가’, 안숙선으로부터 ‘흥보가’를 배우기도 했다. 보성소리의 가문을 잇고 있는 정회석으로부터도 배웠다고 한다. 그런데 내가 들어본 ‘심청가’는 성우향의 소리 특성을 잘 간직하고 있었다. 이는 성우향으로부터 배운 기간이 제일 길기 때문일 수도 있고, 성우향 명창의 소리를 등대 삼아 자신의 소리 세계를 구축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오민아는 자신을 소개하는 글에서 성우향 선생이 오민아의 소리를 가리켜, “컬컬한 세(가는) 삼베 같은 성음이 꼭 나(내) 성음을 닮았당께! 반들반들한 소리는 재미가 없어야. 사람이 사는 세상이 곡절이 많듯이 소리 성음에도 그 결이 묻어나야 제맛이여!”라고 하면서, 오민아를 두고 “씨앗 하나를 떨구고 간다”라고 말했다 한다. 목이 쉰 소리이면서도 날카로운 기세가 묻어나는 성음으로 전력을 다해 소리를 내지르는 오민아의 소리에 대한 설명으로 이보다 적합한 표현이 있을까 싶다. 성우향 명창이 이렇게 오민아의 소리를 칭찬한 것은 오민아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자신을 닮아 자신의 소리를 제대로 이어갈 자질을 갖춘 제자, 그러나 아직 완성되지 못해 씨앗에 불과한 제자인 오민아에 대한 기대와 걱정이 묻어나는 말이 아닐 수 없다.

 

신재효는 광대의 네 가지 요건을 들었는데, 첫째는 인물치레라고 했다. 판소리 소리꾼은 인물이 잘나야 한다는 것이다. 신재효의 견해에 비추어 보면 오민아는 일단 소리꾼으로서 인물을 갖추었다고 할 것이다.

너름새는 신재효가 소리꾼이 갖추어야 할 요건으로 네 번째 든 것이다. 오민아는 너름새를 매우 절제 있게 구사한다. 발 한 번 옮기고, 손 한 번 들어 올리는 것도 신중하다. 그래서 오민아의 너름새는 춤에 가깝다. 요즘의 소리꾼들은 너름새를 거의 연극처럼 구사하는 일이 많다. 현대 판소리 청중은 판소리의 음악적인 이해가 부족하다. 너름새에 치중하는 소리꾼들은 이러한 현대 청중 앞에서 소리를 하려면 어쩔 수 없다고 한다. 그러나 판소리 너름새는 최소한에 그쳐야 한다는 주장을 펴는 소리꾼도 많다. 특히 보성소리를 하는 사람들은 너름새를 신중하게 한다. 판소리는 음악성이 주가 돼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은 ‘판소리는 성음놀음’이라는 주장에서 잘 드러난다.

 

신재효가 든 소리꾼의 두 번째와 세 번째 요건은 사설치레와 득음이다. 사설은 이미 전승형으로 주어져 있으니 남은 것은 득음이다. 오민아가 마땅히 주력해야 할 것 역시 득음이다. 그리고 득음의 성공이나 실패 여부는 오직 오민아 자신에게 달려 있다. 그렇다고 조급해할 것은 없다. 그녀는 아직 젊기 때문이다.

 

오민아는 어릴 때부터 판소리에 재능을 보였다. 대학교 2학년 때는 제9회 동아국악콩쿠르 학생부 판소리 부문에서 금상을 수상했고, 3학년 때는 대한민국 춘향국악대전 판소리 일반부에서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러나 결혼한 뒤에는 소리에 전념하지 못했다. 그리고 이제야 국립극장 ‘완창판소리’ 무대에 서게 됐다. 여간한 각오가 없었다면 이 무대에 서지 못했을 것이다.

 

이제 오민아는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 타고난 자질을 잘 발휘해 최고의 소리꾼이 될 것인지, 오늘 이후에 결정될 것이다. 아무쪼록 최고의 기량을 발휘해 판소리사에 길이 남을 훌륭한 공연을 펼쳐주기를 바란다. 그렇다고 너무 긴장하지는 말기를. 너무 긴장해서 가진 능력을 다 펼치지 못한다면 얼마나 안타까울 것인가.


최동현 군산대학교 국문과 교수·시인·판소리학회장. 전라북도 문화재위원회 위원을 지냈으며, 현재 전주세계소리축제 조직위원회 부위원장을 맡고 있다.

 

국립극장 완창판소리 ‘오민아의 심청가-강산제’
날짜     2019년 5월 25일
장소     국립극장 하늘극장
관람료  전석 2만 원
문의     국립극장 02-2280-4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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