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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05월호 Vol.352

'소리'로 증명한 '창극'의 힘

SPECIAL┃국립창극단 '심청가' 도창 안숙선과 유수정

지난해 4월, 국립창극단이 판소리 다섯바탕 현대화 작업의 대미로 창극 ‘심청가’를 무대에 올렸다.

그리고 올해 6월, 오롯이 소리의 힘으로 관객을 사로잡았던 초연의 감동을 머금고 다시 한번 관객과 만난다.


창극 ‘심청가’가 1년 만에 다시 무대에 오른다. 지난해 명동예술극장에서 초연해 관객의 감성을 흔든 화제작이다. 흥행 기록도 기록이지만 더 특별한 건 창극의 뿌리, 판소리의 본질을 충실하게 살려 신세대 관객을 매료했다는 점이다. 오는 6월 공연을 앞두고 ‘심청가’의 도창을 맡은 안숙선과 유수정, 두 명창을 만났다. 오롯이 소리의 힘으로 극을 이끌어갈 책임이 이들의 어깨 위에 걸려 있다.

 

파격과 혁신 대신 판소리 원형으로
창극 ‘심청가’는 소리에 초점을 맞춘 작품이다. ‘창극’에서 ‘극’의 요소를 줄이고 ‘창(唱)’의 요소를 강조했다. 2012년 시즌제 도입 이후 본격적으로 진행된 국립창극단의 판소리 다섯바탕 현대화 작업의 완결판으로, 변화와 혁신의 부담을 훌훌 털어버린 모양새다. 독일 연출가 아힘 프라이어의 ‘수궁가’(2011·2012)를 시작으로 루마니아 연출가 안드레이 서반의 ‘안드레이 서반의 다른 춘향’(2014), 오페라 연출가 이소영의 ‘적벽가’(2015), 연극 연출가 고선웅의 ‘흥보씨’(2017·2018)까지, 판소리를 두고 파격과 실험을 계속해온 국립창극단이 ‘소리’라는 원래 자리로 돌아간 셈이다. “소리의 맛과 멋을 제대로 보여주겠다”라고 선언한 연출가 손진책은 소리에 집중하기 위해 무대와 소품 등 다른 요소들을 최소화했다. 반주도 일체의 서양 악기를 배제하고 순수한 전통음악을 고수했다. 소리·아니리·발림, 판소리 3대 요소만으로 청중의 마음을 들었다 놨다 하는 소리꾼의 역량에 작품의 성패가 달린 것이다.

 

소리의 깊이는 인생의 깊이
도창은 창극에서 해설자 노릇을 한다. 이야기의 안과 밖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배우의 연기에 참견하기도 하고, 3인칭 전지적 작가의 시각으로 극의 흐름을 설명하기도 한다.


도창 역에 더블 캐스팅된 두 명창에게 ‘좋은 소리’가 무엇인지 물었다. 도대체 소리가 어때야 관객들의 마음에 가닿을 수 있단 말인가. 안숙선은 판소리만이 가진 소리의 특성을 살리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소리는 문학·연기·음악이 어우러져 만들어지는 것이라며 소리를 이면에 맞게 잘해야 한다고 했다. 그가 강조한 ‘이면’에 대해 유수정은 노래와 표정·몸짓이 상황에 맞아야 한다는 뜻이라며 슬플 땐 슬프게, 힘찰 땐 힘차게 소리를 진솔하게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풀어 설명했다. 정교한 시김새로 뻣뻣한 소리를 다듬어야 사람의 심금을 울릴 수 있다고도 했다. 내친김에 어떤 소리꾼이 그런 좋은 소리를 낼 수 있는지도 물어봤다. 이들은 신재효 선생의 ‘광대론’을 꺼냈다. “광대라 하는 것이 제일은 인물치레, 둘째는 사설(辭說)치레, 그 직차 득음(得音)이요, 그 직차 너름새라”라는 구절을 인용하며 명창의 조건에 연결했다. 여기서 사설은 대사, 득음은 소리, 너름새는 손짓과 몸짓을 뜻한다. 첫째 조건인 인물이야 타고난다 쳐도 나머지는 인생의 희로애락을 거치며 함께 길러지는 덕목이다.

 

올해로 데뷔 62년이 된 안숙선은 “어릴 때 세상사를 어찌 알겠나. 그러다 보니 이면에 맞지 않는 노래를 부르곤 한다”라며 그녀 역시 그랬단다. 여덟 살 때 이모인 가야금 명인 강순영에게 가야금을 배우며 국악에 입문한 그녀는 “어려서는 춘향가의 ‘비만 와도 임의 생각’을 ‘비만 와도 이모 생각’인 줄 알고 불렀어요. 또 ‘춘향아 정신 차려라’를 ‘춘향아 점심 차려라’로 알고 발음하기도 했죠”라고 털어놨다. 소리의 깊이는 소리꾼 인생의 깊이와 무관할 수 없다는 얘기다. “소리라는 게 끝이 없어요. 큰 명창 되기가 참 어렵죠. ‘판소리 좀 알 만하니까 기운 떨어지고 판소리 좀 할 만하니까 죽게 되었네’라고 하신 옛 선생님들 말씀이 이해가 된다”라고 말했다.

 

 

 

끌어주고 밀어주는 두 명창
두 사람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소리꾼이다. 국가무형문화재 제23호 가야금 산조 및 병창 보유자인 안숙선은 1979년 국립창극단 입단 이후 주역을 도맡으며 국악계 프리마돈나로 활약했다. 1986년 판소리 다섯바탕 완창을 달성했고, 1998~2005년 국립창극단 예술감독을 지냈다. 가야금 명인 유대봉의 딸로 태어난 유수정은 국가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춘향가’ 이수자다. 1987년 국립창극단에 입단해 창극 ‘춘향가’의 춘향, ‘심청가’의 심청, ‘수궁가’의 토끼 역 등을 소화했고, 판소리 ‘춘향가’와 ‘흥보가’를 여러 차례 완창했다. 올 4월에는 국립창극단 예술감독으로 임명돼 앞으로 3년간 국립창극단을 책임지게 됐다.


유수정이 명창의 반열에 오르게 된 데는 안숙선의 역할이 컸다. 두 사람 모두 만정 김소희 명창에게 소리를 배웠지만, 1995년 만정 타계 이후 유수정은 한동안 방황기를 겪었다.
“2000년대 초반이었어요. 어느 날 선생님이 ‘이리 와봐’ 하시더니 ‘네가 뭐가 그렇게 잘났느냐’며 말씀을 시작하셨어요. ‘네가 남보다 학벌이 뛰어나냐, 소리를 뛰어나게 하냐. 앞으로 완창도 하고, 대통령상도 도전하고, 학교도 졸업하고 그래야지 어째서 그렇게 공부도 안 하고 다니느냐’며 조곤조곤 말씀하시는데 오장을 찌르는 것 같았어요. 어찌나 심장이 벌렁벌렁하던지 사흘을 잠도 못 잤죠. 그 후로 재정비해서 대학도 다시 들어가고, 선생님 댁에 가서 소리도 다시 배웠어요.”


유수정의 긴 회상 끝에 안숙선은 “충분한 가능성이 보이는 재목인데 소리에 집중하지 못하는 모습이 안타까웠어요. 10여 년 나이 터울은 있어도 같은 만정 선생님 제자이니 말이나 한번 해봐야겠다고 생각했죠. 젊어서 열심히 할 기회를 놓치면 힘이 빠질 텐데 싶었어요. 다행히 그때부터 공부를 열심히 하더라고요. 만정 선생님 돌아가시기 전에 미처 못 배운 대목도 가르쳐줬죠”라고 덧붙였다.


가르치고 배우고 챙겨주는 이들의 관계는 이번 창극 ‘심청가’ 작업까지 그대로 이어졌다. 유수정은 “선생님은 정말 끊임없이 연습하세요. ‘또 하시느냐’고 물으면 ‘가만히 있으면 목이 녹슬어 소리가 안 나온다’고 하시죠. 계속 선생님을 좇아 배우고, 선생님 소리를 녹음해 들으며 따라 하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떼창 범피중류의 희열
‘심청가’는 현존하는 판소리 다섯바탕 중에서도 소리의 표현이 세밀하다고 꼽히는 작품이다. 특히 사설에 슬픈 내용이 많아 계면성이 잘 살아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효를 강조하는 교훈적인 내용을 담고 있으면서 동시에 해학과 풍자의 골계미도 돋보인다. 안숙선은 창극 ‘심청가’의 작창도 맡았다. 완창으로 5~6시간 걸리는 판소리를 2시간 남짓 분량으로 압축했다. 그녀는 좋은 소리를 도려내려니 아까운 게 너무 많았다면서도 심청의 탄생과 곽씨 부인의 죽음 등 눈대목은 빼놓지 않고 효과적으로 잘 배치해 넣었다고 말했다.


두 사람이 한목소리로 꼽은 창극 ‘심청가’의 하이라이트 장면은 심청이 인당수에 빠지기 직전에 부르는 ‘범피중류’ 대목이다. 유수정은 “판소리 ‘심청가’에서도 가장 장중한 대목인데, 이번 창극 ‘심청가’에선 이를 심청 혼자만의 소리가 아닌 합창으로 불러 감동을 몇 곱절 키웠다”라고 설명했다. 안숙선은 이 부분을 “슬프다기보다 웅장하다. 희열이 느껴지는 대목”이라고 짚었다.


초연 때 보여준 관객들의 열광적인 반응을 두고 두 사람은 “그만큼 전통 소리에 목말라 있는 사람이 많았다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판소리야말로 우리 정서와 몸짓·음악·색깔 등 우리의 모습을 담아낼 수 있는 장르”라는 자부심도 내비쳤다. 안숙선은 이제 막 예술감독 임기를 시작한 후배 소리꾼 유수정에게 당부의 말이 많았다. “창극의 형식과 정체성을 정립하는 작업부터 해야 하며 그래야 다른 문화 양식에 동화되거나 흔들리지 않는다”라고 거듭 조언했다.


이지영 중앙일보 문화팀 기자. 출판·방송·라이프 등에 이어 2014년부터 공연 분야를 담당하고 있다. 재미와 정보와 감동이 한결같은 목표다.
사진 이승희

 

국립창극단 ‘심청가’
날짜     2019년 6월 5~16일
장소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관람료  R석 5만 원, S석 3만 5천 원, A석 2만 원
문의     국립극장 02-2280-4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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