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꾼 ‘이연주’라는 이름은 낯설지만, 창극 ‘메디아’(2013)의 도창은 기억에 선명하다. ‘안드레이 서반의 다른 춘향’(2014), 국립예술가시리즈 ‘맥베스 부인’(2012)에서도 힘 있는 목소리와 선 굵은 외모로 무대를 꽉 채웠던 그녀다. 작은 역할에서도 강렬한 오라를 발산해온 그녀가 신작 ‘패왕별희’에서 무대 중앙으로 나선다. 중국 역사상 최초의 여태후로 변신해 천하를 호령하겠다는 포부로 노래한다.
3월 초 만난 이연주는 임신 18주차에 접어들고 있었다. 잔인하고 욕심 많은 ‘여치’ 역할을 맡아 태교가 걱정스러울 법도 했지만, 태연하고 유연하게 작품에 몰두하고 있었다.
“낯설기도 하고 흥미롭기도 해요. 경극 특유의 몸짓과 판소리 창법이 어우러져야 하거든요. 지금은 어색하죠. 연결이 안 되는 부분이 있고, 아직은 몸과 입이 따로 노는 단계예요. 소리도 한창 익히고 있는데, 그걸 잘 어울리게 만드는 게 배우의 몫이겠죠.”
‘여치’는 유방의 부인으로, 중국 최초의 여태후다. 원전인 경극 ‘패왕별희’는 우리에게 흔히 항우와 우희의 사랑과 이별 이야기로 더 알려져 있지만 창극 ‘패왕별희’에선 ‘센 여자’ 여치의 비중도 상당하다.
“엄청난 악녀 캐릭터예요. 정말 잔인하고 권력에 대한 욕심도 많죠. 남편 못지않게 전세를 좌지우지하는 능력을 보였다고 하네요. 자기가 낳은 왕자를 왕으로 세우려고 첩의 자식들을 제거하는 잔인한 모습에 왕자가 자결할 정도였죠. 그런데 측근들은 살뜰히 챙기고 백성을 잘 먹여 살려 그녀가 다스릴 당시엔 나라가 풍요로웠대요. 오디션에서 낙점됐는데, 저는 늘 강한 배역을 맡게 되네요. 창극 ‘트로이의 여인들’에서도 우직한 역할이었죠.”
‘창작 판소리의 대명사’ 이자람이 작창을 맡은 소리는 판소리 전통 창법을 그대로 살린다. 그런데 여치의 소리는 시조창과 접목해서 몽환적이면서도 비상하는 듯한 독특한 느낌을 구사하게 된다고. 최초의 여자 태후에 걸맞은 위엄을 부여하기 위해서다.
“여치가 권력을 장악하고픈 욕망을 드러내는 장면이 있어요. 웅장하고 독특한 소리색으로 ‘내가 이 세상을 거머쥐리라’라는 포부를 노래하죠. 여자의 포부를 강렬하게 보여주는 부분인 만큼 잘해내고 싶어요.”
‘패왕별희’가 경극과 창극의 만남으로 주목받고 있지만, 사실 국립창극단은 늘 실험의 연속이었다. 3월 퇴임한 김성녀 전 예술감독이 단체를 이끈 지난 6년간 같은 스타일의 작품은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수많은 실험 중 이연주는 특히 창극 ‘트로이의 여인들’에 대한 애착을 드러냈다. “가장 애정이 가는 작품이자 가장 힘들었던 작품”이라며 옹켕센 연출을 “여우 같다”고 표현했다. 무슨 얘길까.
“옹켕센 연출은 각자의 소리에 맞춰 캐스팅을 했어요. 여덟 명의 여인(‘트로이의 여인들’ 코러스) 캐릭터가 다 달랐거든요. 그때 서로 대화를 많이 했는데, 옹켕센 연출이 사람을 간파하는 면이 있더군요. 사람을 홀리듯 마음을 사로잡아 뭔가를 끌어내 작품을 만들어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트로이의 여인들’이 정말 힘든 작품이긴 했어요. 나라가 망한 고통을 표현하는 공연 내내 한 번의 퇴장도 없었던 데다, 또 우리 정서와도 다른 부분이 많았죠. 그럼에도 굉장히 잘 어우러지게 만든 것 같아서 옹켕센 연출이 참 존경스러웠어요. 안숙선 선생님의 작창도 감정을 끌어내기에 너무 좋았고요. 소리가 좋으면 작품이 좋거든요. 제가 소리꾼이라서 더 그런 것 같아요.”
창극 ‘패왕별희’를 통해 우싱궈 연출을 만난 것도 특별한 경험이다.
“1990년대에 왕조현과 어깨를 나란히 한 대스타잖아요. 중국 전통 무술이 등장하는데, 워낙 본인이 배우에다 무술에 능해서 몸소 무술 동작을 다 보여줘요. 의상도 영화 ‘와호장룡’ 의상을 맡았던 예진텐이 만들어요. 저희에겐 엄청난 영광이죠. 국립창극단원임에 감사해요. 어디 가서 그런 분들의 안목과 노하우를 직접 배우겠어요. 제가 성악가들과 함께 한 작업도 다 이런 경험으로 배워서 하게 된 것이죠.”
2012년 ‘국립예술가시리즈’에서 선보인 ‘맥베스 부인’얘기다. ‘국립예술가시리즈’에 선정된 아티스트들이 대부분 콘서트 형식의 공연을 꾸민 것과 달리, 이연주는 성악가 세 명과 함께 가야금·첼로·타악기의 실내악 반주로 독특한 창극을 만들었다. 당시 좋은 반응에 힘입어 지난해 수정을 거쳐 국립국악원에서 공연하기도 했다.
“6년 만에 같은 멤버들이 모였어요. 스토리를 간소화해서 음악 위주로 선보였죠. 셰익스피어에 관심이 있어서 리어왕?햄릿 등 4대 비극을 여성에 초점을 맞춰 새로운 작품으로 만들고 싶어요. ‘맥베스 부인’ 공연 때 꾸린 팀이었는데, 연습하다 보니 팀워크가 좋아져서 꾸준히 관계를 이어오고 있죠. 올해도 프로젝트를 해보려 했는데 아기를 가졌네요. 하지만 나중에도 할 수 있는 작업이니 꾸준히 해보려고요.”
그녀는 ‘맥베스 부인’ 말고도 흥미로운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해 국립무형유산원의 ‘판소리 이수자뎐’에 선정돼 공연한 ‘춘향, 거문고와 놀다’는 소리와 전통 악기의 컬래버레이션으로 만들어가는 또 다른 프로젝트다.
“‘춘향가’를 바탕으로 거문고와 소리가 주거니 받거니 하는 공연을 만들어봤어요. 소리를 반주하는 북과 거문고를 반주하는 장구까지 가미하니 다이내믹해지더군요. 소리와 거문고, 타악 각각의 장기가 보이게끔 구성한 건데, 앞으로 판소리 다섯바탕을 각각 전통 악기와 매칭한 공연을 계속 해보고 싶어요. ‘춘향가’는 지조와 절개가 거문고와 제일 잘 맞다고 생각한 건데, ‘적벽가’는 북을 다양하게 이용할 수 있겠죠. 이런 작업을 한번 해보니 전통이 재밌다는 걸 새삼 느껴요. 전통만큼 좋은 게 없더라고요.”
국가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춘향가’ 이수자인 그녀는 전통도 꾸준히 공부하고 있다. 2003년과 2017년 국립극장 완창판소리에서 ‘심청가’를 완창했고, 지금은 안숙선 명창에게 ‘적벽가’를 사사하고 있다.
“저도 공부를 하지만, 안 선생님은 정말 대단하세요. 소리에 평생을 바치신 분이 그 경지에 오르시고도 늘 공부해야 한다고 하시죠, 지금도 공부할 때가 제일 행복하다고 말씀하세요.”
하지만 전통만 반복하는 건 “재미없다”고 쿨하게 인정한다. 전통의 아름다움을 살리면서도 색다르게 선보일 방법을 찾고 있는 이유다.
“전통은 여백이 많고 느려서 심심하다 느낄 수 있잖아요. 욕심부리는 건 아닌데, 그저 내 만족을 위해 이것저것 시도하다 보니 발전도 있더라고요. 꼭 성공해야 뭘 배우는 건 아닌 것 같아요. 때론 실패에서 더 큰 걸 얻기도 하더군요.”
그녀는 이런 작업들이 욕심 때문은 아니라고 거듭 강조했다. ‘나를 보여주고 싶은 열망’이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사물을 소유하고 싶은 건 욕심이라 생각하는데 음악에 대해서는 발전하고자 노력하는 게 욕심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저는 죽을 때까지 이 길을 갈 거니까 이왕이면 재밌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는 거예요. 소리란 게 혼자서는 외롭고 힘든 싸움이거든요. 하면 할수록 안 되는 느낌도 들고요. 다른 음악인들과 작업하면서 생기를 얻고 활력도 얻는 거죠.”
전통은 찾아가서 알려야 하는 것
이연주는 철학 박사다. 그것도 인도 철학을 전공했다. 뜬금없는 것 같지만, 소리를 잘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일 뿐이란다.
“남들은 4차원이라고들 하는데 단순한 이유예요. 소리를 하다 보니 삶을 알고 싶고 인간이 가진 철학을 알고 싶어졌어요. 음악과 가까워지고 싶은데 그러려면 삶에 대해 깊어져야 하니까요. 사람의 마음을 울리려면 공부를 더 해야겠고, 석사까지는 음악을 했으니 동양철학을 해보자 싶었던 거죠.”
철학을 공부하면서 가장 크게 배운 건 겸손한 삶의 태도다. 공부도, 소리도 하면 할수록 어렵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됐다.
“많이 겸손해졌어요. 전에는 자신감만 가득했거든요. 어려운 공부를 하면서 내가 무지하다는 걸 알게 되니 남에 대한 배려와 이해심이 생겼죠. 남들이 잘한다고 치켜세운다고 ‘나 잘났어’ 하고 있었다면 더 큰 예술가가 되지 못했을 것 같아요. 대신 고민도 많아졌어요. 곧 개강할 창극 아카데미에 대해서도 생각이 많아요.”
그녀는 국립극장 교육 프로그램인 창극 아카데미의 메인 강사를 맡고 있다. 2012년 첫 수업 때부터 안숙선 명창을 도와 실질적인 강의 운영을 도맡아왔다. 12주짜리 입문 프로그램이지만, 호응은 뜨겁다. 그간의 수강생 가운데 전공자로 나서겠다는 아이도 꽤 있다.
“교육을 넘어 창극을 전파하는 일이거든요. 전통은 찾아가서 알려야 하는 것이라 생각해왔고, 그런 기회가 있을 때마다 적극 나서는 편이에요. 선생님의 역할이 정말 중요하다 생각해요. 습자지같이 선생의 모든 것을 흡수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정성 들여 가르쳐야겠다고 다짐하게 됐어요. 아이들이 재미를 찾도록 신경 쓰고 있죠. 고민되는 건 놀이와 전통의 균형을 적절히 맞춰야 하는 부분이에요.”
그녀가 교육 프로그램의 ‘재미’에 신경 쓰는 건 본인의 경험 때문이다.
“그땐 선생님의 소리를 그대로 따라 해야만 했으니, 어린애가 뭐가 재밌었겠어요. 같이 다니던 언니들과 공기놀이, 고무줄놀이 하러 다녔죠. 그래도 선생님이 재능을 발견해주신 덕분에 여기까지 왔네요. 소리 공부라는 게 조금 지겨운 면이 있죠. 지금도 연습을 수없이 반복하다 보면 바보스럽다는 생각도 들어요. 그런데 제가 근성은 있는 것 같아요. 즐거운 작업과 같이 풀어서 응용하다 보니 저도 모르게 보람도 성취감도 생기더군요.”
국립창극단 입단 계기는 조금 특이했다. 대학원 진학을 준비하던 시기에 친구의 추천으로 원서를 제출하게 됐다는 것이다. 하지만 운명처럼 입단한 이곳에서 소리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제가 행운아죠. 운명인 것 같아요. 국립창극단에 들어오고 나서 진짜 소리 공부를 제대로 하게 됐어요. ‘국립’이란 커다란 타이틀이 저를 만든 거라 생각해요. 선배들처럼 ‘국립답다’는 얘기를 듣고 싶고, 국립에 걸맞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해왔거든요.”
이런 그녀의 말에 문득 ‘그럼 국립에 걸맞은 창극이란 뭘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요즘 창작 열기로 창극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걸 피부로 느낀다면서도 전통을 배제하고 싶지는 않다고 거듭 강조하는 그녀의 모습에 답이 보이는 것 같았다. 전통과 창작을 잘 절충해서 이끌어가는 것. 그 표현대로 “정말 어려운 일”이겠지만, ‘국립창극단’이란 이름 앞에 주어진 커다란 사명이 아닐 수 없다.
글 유주현 ‘중앙SUNDAY’공연 담당 기자. 서울대학교 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 국제대학원에서 일본의 다카라즈카 가극에 관한 연구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사진 人, The vie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