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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04월호 Vol.351

새로운 스텝을 향해

VIEW 프리뷰3-2┃국립무용단 '넥스트 스텝Ⅱ-안무가 육성 프로젝트'

국립무용단의 안무가 육성 프로젝트가 또 한 걸음, 넥스트 스텝을 밟는다.

명확한 세 개의 미션을 가지고 도약하는 국립무용단과 단원들의 도전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2018년 3월에 시작된 국립무용단 안무가 육성 프로젝트 ‘넥스트 스텝’이 두 번째 시즌을 맞았다. ‘바리바리 촘촘 디딤새’(2001~2012)를 시작으로 국립무용단이 추진해온 안무가 육성 사업의 연장선에서, 단원에게 안무의 기회를 주는 기획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세 가지 미션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첫째, 무용수에서 안무가로의 도약
‘넥스트 스텝’은 프로젝트 제목이 의미하듯이, ‘다음 단계로의 발걸음’ 즉 ‘무용수에서 안무가로의 단계 전환’에 첫 번째 미션이 있다. 무용수와 안무가의 단계는 어떻게 다를까.


춤을 추는 것과 춤을 만드는 것은 엄연히 별개의 활동임에도 춤을 잘 추는 사람이 마치 춤을 잘 만드는 것처럼 잘못 인식되곤 한다. 음악과 비교하자면, 춤을 추는 것은 노래를 부르거나 악기를 연주하는 것이고, 춤을 만드는 것은 작곡을 하는 것이다. 무용수가 만들어진 춤 또는 무용 작품을 어떻게 잘 표현할지 고민한다면 안무가는 어떤 작품을 만들지 A부터 Z까지 연출과 제작을 모두 아울러 고민하고 결정한다. 이렇게 설명하면, 무용수에 비해 안무가로서의 작업이 엄청나게 광범위하고 월등해 보이지만, 기록이 용이하지 않고, 순간의 예술로 사라지는 무용 작품에 있어 무용수의 역할은 안무의 핵심이자 중추다.


모든 피아니스트(무용수)가 작곡(안무)을 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피아노를 칠 줄 아는 작곡가는 확실한 창작 도구를 확보하고 있다. 작곡을 잘하기 위해서 꼭 노래를 잘 부르거나 악기 연주에 능할 이유가 없듯이, 안무를 잘하기 위해 꼭 춤을 잘 출 필요도 없다. 하지만 신체 구조와 움직임의 원리를 직감으로 이해하고 머릿속의 이미지를 거침없이 몸으로 표현할 수 있는 무용수라면 안무하는 데 엄청난 무기를 가지고 있는 셈이다. 안무가 양성을 위해서 무용수에게 안무의 기회를 주는 것은 그래서 성공 확률이 높고, 꼭 필요하다. 세계적인 안무가의 99퍼센트는 무용수 출신이거나 무용수라는 점을 기억하자.

 

둘째, 전통의 현대화
‘전통의 현대화’는 국립무용단이 창단 이래 줄곧 주장해온 창작 목표다. 모든 표현 방법과 기술을 망라해, 우리의 전통을 동시대성이라는 그릇에 담아내는 것이다. 그럼에도 그동안 국립무용단이 해온 작업을 나열해보면 그 목표가 선명하지 않은 경우도 꽤 있었다.


‘전통’의 범위와 정의가 애매하듯이 한국 전통춤의 범주도 정의 내리기 쉽지 않다. 얼마나 오래된 춤이어야 전통이라고 할 수 있을까. 얼마나 정통한 뿌리를 고집해야 전통이라고 부를 수 있는가. 고전(Classic)과 전통(Tradition)의 개념은 혼동하지 않으면서, 종종 ‘한국 전통춤’을 ‘고전무용’이라고 칭하는 실수를 목격한다. 발레?현대무용과 같은 서양 춤에 뿌리를 두지 않은 한국의 것이라는 의미 정도로 전통춤을 해석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통의 현대화’는 ‘넥스트 스텝’의 중요한 미션이다. 국립무용단에서 한국춤을 춤 언어로 늘 사용해온 단원들이기에 안무의 출발점을 자연스레 ‘전통’에서 찾을 것이다. 하지만 ‘현대화’라는 과제는 해답을 찾기 쉽지 않아 보인다.


‘전통’과 ‘현대’가 극과 극의 대립 개념이 아니라는 것을 이해하고, 동시대를 사는 관객의 눈높이와 기대치에 미칠 수 있는, 공감 가능한 동시대성을 착안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국립무용단의 ‘넥스트 스텝II’에 선정된 안무가, 박기량과 황태인은 ‘현대화’의 의미를 깨우치기 위해 각자의 방식으로 사력을 다하고 있다. ‘전통’은 이미 그들의 몸과 마음에 온전히 녹아 있으니 우리가 함께 공감하고 공유할 수 있는 미장센을 고심하고 있는 것이다.

 

셋째, 미래의 레퍼토리 발굴
‘넥스트 스텝’은 맞춤형 제작 과정을 자랑한다. 선정된 안무가들의 생각과 장단점을 고려해야 하는 매우 복잡하고 긴 여정이 될지라도 미래의 안무가를 양성하기 위한 투자에 무척 정성을 들인다. 첫 번째 시즌을 뒤돌아보면, 우선 2017년 하반기부터 국립무용단원 전원을 대상으로 여러 차례 워크숍을 진행했다. 제작 과정에 참여하게 될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과 함께 ‘전통’에 대해 고민했으며, 국립무용단의 정체성에 대해서도 토론했다. 최근 몇 년 동안 변화한 국립무용단의 모습과 나아갈 방향에 대해 가감 없는 소감들이 나왔고, 그 와중에 오디션을 통해 선발된 첫 시즌 안무가 세 명은 전문적인 제작 시스템을 적극 활용한 창작 과정에 몰입했다. 음악?무대미술?조명?의상 등의 외부 스태프 그리고 평론가 등과 접촉하면서 안무가 개개인의 지향점이 윤곽을 드러냈다.


효율적인 제작 시스템이 안무가로서의 막중한 임무를 나누어 짊어지고 때로는 울타리를 만들어 안내하는 동안 안무가는 비로소 독자적인 역량을 발휘하고, 스스로의 소통 방식을 터득할 수 있었다. 이렇게 탄생한 첫 번째 시즌 세 안무가의 결과물은 기대 이상의 성과로 남았다. ‘어;린 봄’(김병조 안무)은 국립무용단원의 삶을 고스란히 담아내며 관객에게 따뜻한 위로를 건넸고, 리듬감이 뛰어난 한국춤의 장점을 최대한 살린 ‘싱커페이션’(정소연 안무)과 ‘가무악칠채’(이재화 안무)는 흥겨움을 최고조로 보여주었다. 그중에서 ‘가무악칠채’는 국립무용단 레퍼토리로 선정돼 2018년 11월 확장판으로 공연됐다. 이처럼 완성작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미래의 레퍼토리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는 모티프를 만들어내는 것이 세 번째 미션이다.

 

이번 ‘넥스트 스텝II’에는 박기량과 황태인이 안무가로 선발됐다. 여성 무용수 일곱 명이 기억의 매듭을 풀어내며 또 다른 봄을 마주하는 박기량 안무의 ‘봄(printemps)’과 점·선·면, 도형의 기본 3요소를 공간에 도입한 황태인 안무의 ‘무무’로 새로운 스텝을 내디딘다. ‘넥스트 스텝’의 세 가지 미션을 성공적으로 완수하기 위해서, 오늘의 노력이 미래의 어느 시점에서 또 하나의 전통으로 거듭나기 위해서 잠재된 창작 능력을 최대한 쏟아내고 있다.

 

 

무용수에서 안무가로의 탈바꿈은 예상대로 녹록지 않다. 하지만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길을 향해 내딛는 이들의 발걸음이 무겁거나 힘들어 보이지 않는 이유는 무엇보다 한솥밥을 먹고 있는 동료 단원들이 든든하게 지지해주는 덕분일 것이다. 늘 함께해온 동료가 무용수로 참여하니 천군만마가 부럽지 않다. 안무가와 무용수 간의 호흡은 물론 눈빛만 보아도 서로를 이해하는 그들 간의 절묘한 조화를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넥스트 스텝’을 즐기기에 충분하다.

 

장인주 무용평론가. 발레를 전공했고, 프랑스 파리1대학 무용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전문무용수지원센터 이사장, 서울문화재단 이사를 지냈다. 저서로는 ‘세기의 안무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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