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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04월호 Vol.351

씻김굿은 발랄해지고 춤은 그림이 된다

VIEW 프리뷰3-1┃국립무용단 '넥스트 스텝Ⅱ-박기량과 황태인'

차세대 안무가 발굴을 위한 젊은 창작 프로젝트 ‘넥스트 스텝’이 두 번째 시즌을 맞는다.

‘넥스트 스텝II’의 주인공이자 우리 전통춤에 치열하고 반짝이는 상상력을 더할 젊은 창작자 2인.

국립무용단 박기량과 황태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국립무용단 무용수가 자신만의 색채를 통해 우리 춤의 새로움을 선보이는 ‘넥스트 스텝’이 두 번째 시즌을 맞이했다. 지난해 국립무용단원 정소연·김병조·이재화가 선보인 작품 세 편은 평단은 물론 대중의 뜨거운 호평을 받았다. 특히 안무가 이재화가 ‘넥스트 스텝’을 통해 선보인 ‘가무악칠채’는 기존의 틀을 깬 강렬한 작품으로 평가받아 2018-2019 국립극장 레퍼토리시즌의 단독 프로그램으로 자리매김했다.


올해에도 우리 전통춤에 치열하고 반짝이는 상상력을 더할 젊은 창작자들이 선정됐다. 한국과 유럽을 오가며 활발히 활동하는 박기량과 국립무용단의 젊은 세대를 대변하는 황태인이 그 주인공.

두 사람으로부터 ‘넥스트 스텝II’로 관객과 만날 신작 ‘봄(printemps)’과 ‘무무’에 대해 들어봤다.

 

프랑스와 한국이 녹아든 희망의 ‘봄’
안무가 박기량은 국립무용단 ‘시간의 나이’ 출연을 계기로 프랑스 안무가 조세 몽탈보와 인연을 맺어 한국과 프랑스를 오가며 활동하고 있다. 국가무형문화재 제72호 진도씻김굿의 보유자인 고(故) 박병천의 딸인 동시에, 프랑스에서 활동하는 무용수라는 정체성이 이번 작품에 오롯이 담겼다. 주제로 안무도 활발히 해온 그녀의 이번 신작 역시 밑바탕에는 씻김굿이 있다.


박기량이 처음 정한 제목 ‘프랭탕(printemps)’은 프랑스어로 봄을 뜻한다. 2017년 12월 프랑스에서 지독히 긴 겨울을 보내고 이듬해 봄에 느낀 봄의 햇살이 작품의 영감이 됐다.


“단 하루도 빼놓지 않고 비가 내렸는데, 어느 날 비춘 해가 너무 고마웠어요. 이러려고 그 시간을 지나왔나 싶었죠. 결국 봄은 다시 오잖아요. 앞으로 남은 삶을 잘 살기 위해서, 우리 모두가 마음가짐은 봄이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담았어요.”


봄은 생명이 피어나는 계절이다. 박기량의 ‘봄(printemps)’은 춤으로 생명을 이야기한다. 움직임과 오브제는 씻김굿에서 영향을 받았다.


“첫 번째 장의 첫 가사가 ‘넋이로다’예요. 보통 넋은 죽은 이의 영혼으로 생각하지만, 저는 생명을 유지하는 가장 강한 영혼이라고 생각했어요. 생명을 부여받았다는 의미죠.”


생명의 잉태를 이야기하다 보니 무대에는 여성 무용수 일곱 명이 오르게 된다. 생명을 잉태하는 여성의 이미지를 무대 위에 그대로 옮긴 그의 작품을 젠더 갈등이 첨예한 오늘날 한국에서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는 관객의 몫이다.


“성을 분류하기 이전으로 돌아가 보자고 생각할 수도 있고, 완전한 페미니즘으로 생각할 수도 있겠죠. 다만 저는 어떤 과정을 통해 생명이 태어나는지 말하고 싶었어요.”


일곱 명의 무용수는 산 자인 동시에 망자이기도 하고 무당이기도 하다. 제석신, 대지의 여신인 가이아, 물의 여인 등 동서양의 개념이 혼합돼 있다. 세상에 태어남과 동시에 가이아가 만들어준 대지는 여성이 갈 길이고 씻김굿에서 보여주는 ‘길닦음’의 길이기도 하다. 작품 전체가 동서양을 넘나든다. 음악은 이호윤 작곡가가 새로 작곡한 곡과 영국 작곡가 칼 젠킨스의 ‘레퀴엠’을 함께 사용한다. 대금 소리가 들어가지만 온전히 미디로 작업한 음악 역시 동서양의 혼합이다.


하지만 작품은 어렵지 않다. 박기량 안무가는 “씻김굿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는 관객이 보더라도 안무가가 의도한 바를 느낄 수 있게 이야기하고 싶다”라고 했다. 예컨대 말 그대로 혼을 깨끗하게 만드는 과정인 ‘씻김’이라는 테마를 그녀는 ‘샤워’ 동작으로 변형했다. 한편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즐겁고 도발적일 것”이라고 작품을 소개했다. ‘봄(printemps)’은 생명의 시작에서 출발해 저승에 도착했다가 아직 풀어야 할 것이 많은 현실로 돌아온다.


“한국에서 공연할 때는 대부분의 경우 ‘한’이 떠올라 슬프고 심각했는데, 프랑스에 가보니 무대 위 모두가 기쁘더라고요. 이번 작품에서는 세상이 진흙탕일지라도 우리는 해탈해서 발랄하게 놀자고 말하고 싶어요.”

 

점에서 선으로, 선에서 면으로 그려지는 삶
2016년 국립무용단에 입단해, 이제 입단 4년 차가 된 황태인은 신예임에도 자신만의 뚜렷한 시선을 지닌 무용수다. 안무가로서는 ‘2017 신진국악실험무대: 춤으로의 여행’에서 ‘살풀이’를 현대적으로 해석하며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그는 특히 한국무용이 지닌 미적 가치를 무대에서 표현하는 데 매진하고 있다. 그가 선보일 ‘무무’에는 국립무용단 훈련장 김미애와 젊은 기운을 내뿜는 무용수 조용진·조승열이 함께 출연한다.


‘무무’는 한자 ‘없을 무(無)’와 ‘춤출 무(舞)’를 더한 제목이다.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춤이 되어가는 과정엔 무엇이 존재할까. 그 물음이 작품의 시작이었다. 황태인은 미술에서 말하는 도형의 3요소 점·선·면에서 힌트를 얻었다.


“뒤꿈치로 바닥을 찍으면 점이잖아요. 손끝을 움직이면 선이 그려지고요. 한국춤이 점과 선으로 표현된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리고 무용수가 호흡을 하면 그 들숨과 날숨으로 면을 채우게 되는 거죠.”


그의 설명처럼 작품은 무(無)의 상태에서 하나의 그림을 완성하는 과정으로 나아간다. 1장은 점과 선만을 표현한다. 네 명의 무용수가 각각 특정 신체만을 활용해 점과 선을 표현하는 방식이다. 2장에서는 숨을 통해 물체의 양감까지 표현한다. 그리고 3장에서는 무용수들이 그리는 하나의 작품이 완성된다.


“네 명의 무용수가 점과 선을 이용해 어떤 감정을 표현할 거예요. 모두가 합쳐졌을 때는 마치 무대에 하나의 그림이 완성되는 느낌으로 접근하고 있어요.”


황태인이 그리고 싶은 그림은 뭘까. 그는 자신의 인생에 굵직하게 남아 있는 네 가지 감정을 몸짓으로 옮겼다.


“인연을 만났다 헤어지며 점을 찍는다고 하잖아요. 그렇게 점을 표현하기도 하고요. 사람의 심장이 뛰다가 ‘삐’ 소리와 함께 생명을 잃는 순간도 하나의 선으로 마무리되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그런 감정을 무대 위에 그려볼 생각입니다.”


음악 역시 점과 선, 그리고 면으로 나아간다. 거문고 연주자 박우재가 음악을 맡았다. 거문고를 튕겨서 연주하면 점이 되고, 활로 켜면 선이 된다. 황태인은 “저는 점을 찍고, 선을 그리고, 면을 채운다고 접근했어요. 그런데 음악은 그 자체로도 공간을 채우는 오라(Aura)가 있더라고요. 음악적으로도 이런 질감을 느끼실 수 있을 거예요.”라고 설명했다. 또 국립무용단의 선배 단원들과 함께 작품을 준비하는 과정은 즐거운 동시에 어깨가 무거운 일이라고 황태인 안무가는 말했다.


“무용수 세 분이 열정적으로 머리를 맞대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그런데 안무가는 더 감각적이어야 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이번 작품에서 모든 걸 쏟아내고, 다시 무용수로서 저를 더 채운 뒤에 다음 안무를 해야겠다고 생각해요.”

 

국립무용단 무용수가 말하는 전통의 현대화
국립무용단은 한국의 전통을 지키는 동시에 동시대 관객으로부터 공감을 얻기 위한 작품을 지속적으로 발표하고 있다. 젊은 창작진의 성장을 위한 프로그램을 도입한 이유다. 박기량 안무가는 한국의 대표적 정서는 ‘한’보다는 ‘신명’이라고 말했다.


“한국인처럼 잘 즐기는 민족이 있을까 싶은데 왜 우리 정서가 한이 됐을까 생각해봤어요. 한국무용에서는 ‘한’을 풀어내는 뛰어난 작품이 문화재로 지정되고 보존할 가치를 인정받으면서 수십 년간 그 정서를 그대로 이어온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지만 문화는 멈춰 있지 않고 계속 변하잖아요. 현대와 괴리감이 있다면, 우리도 이 시대와 발맞춰 가는 작품을 하려고 노력해야죠.”

 

 

이와 동시에 놓쳐서 안 되는 건 한국무용의 아름다움이다. 황태인 안무가는 “한국무용만의 특수성이 존재한다고 생각해요. 그 정서와 정체성을 제가 확실히 알고 있는 상태에서 새로움을 도입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양진하 한국일보 문화부에서 2017년부터 공연을 담당하고 있다. 생생함을 보고 듣는 무대의 매력을 더 많은 사람에게 전달하고자 부지런히 글을 쓰고 있다.

 

국립무용단 ‘넥스트 스텝II’

 

날짜     2019년 4월 25~27일
장소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관람료  R석 3만 원, S석 2만 원
문의     02-2280-4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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