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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02월호 Vol.349

국립극장 환도 기념 공연 '신앙과 고향'

두고두고 회자되는 공연 기록: 1957년 7월 12~20일

국립극장 환도 기념 공연 ‘신앙과 고향’
1957년 7월 12~20일

 

1957년, 전란에 대구로 피신했던 국립극장은 만 4년 만에 서울로 돌아왔다. 아직 독자적인 공간을 보유할 수 없어 서울시의회와 공관 건물을 나눠 사용했으나 예술인들이 귀환한 국립극장에 거는 기대는 컸다. 그만큼 국립극장에서도 환도 후 첫 작품을 선정하는 데 심혈을 기울였고, 당시 극장장이던 서항석(1900~1985)은 국내 창작을 장려할 뿐만 아니라 해외 우수 작품을 소개한다는 국립극장의 미션에 입각해 연극 ‘신앙과 고향(Glaube Und Heimat)’을 첫 번째 작품으로 무대에 올렸다.


‘신앙과 고향’은 오스트리아 출신 작가인 칼 쇤헤어(Karl Schonherr)가 1910년 발표한 작품으로 일찍이 오스트리아에서 무성영화로 제작됐으며 한국에서는 극단 신협의 전신인 극예술협회가 1936년에 초연했다. 신교를 믿는 농민들이 구교에 저항하다 아들을 잃고 신앙의 자유를 찾아 고향을 등진다는 이야기가 어째서 당대 연극인들에게 강한 호소력을 발휘했는지는 1957년 공연 안내 책자 속 연출가의 말에 상세히 적혀 있다.


국립극장 공연예술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안내 책자는 복사물 형태로 인쇄 상태가 썩 양호하지는 않으나, 연출가 홍해성이 안내 책자에 밝혀둔 변을 통해 공연 의도를 확인할 수 있는 귀한 자료다. 그는 이 작품을 통해 신앙의 자유를 탄압당한 토착민들의 숭고한 인간고와 집과 전통을 고수하려는 집착을 교차시켜, 여하한 강압에도 굴하지 않는 인간의 고고함을 클로즈업하겠다고 밝혔다. 역자이자 연극인이던 제2대 국립극장장 서항석 역시 이 책자를 통해 “신앙심과 향토애가 양전(兩全)하지 못할 때의 인간비극을 그려내는 데 중점을 둔 것”이라고 말한다. 연극인들이 이 작품에서 인간의 보편적 고뇌와 더불어 전쟁과 이념 분쟁으로 고통 받은 자국의 상황을 연상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신앙과 고향’ 안내 책자는 이러한 제작진의 변 외에도 흥미로운 정보를 여럿 담고 있어 꼼꼼히 살필 만하다. 우선 표지 중앙의 그림은 무대미술가 김정환이 그린 무대 디자인을 사용해 고향이라는 공간성을 강조한다. 또한 상단과 하단에는 한자와 영어로 각각 1회, No.1이라 적어 첫 번째 공연의 중요성을 부각하고 있다. 내지를 펼치면, 출연자들의 사진이 엄숙하게 배치되는 대신 콜라주처럼 종이 위를 떠다니며 작품과 표지가 주는 무게를덜어준다. 다음 장부터는 이진순 연출가를 포함해 음악가 현제명 등 다양한 예술계 원로들의 축사가 빼곡히 실려 있어 당시 예술인들이 국립극장 환도를 얼마나 학수고대했는지 보여준다. 스태프를 당시에는 ‘뒷스탭’이라고 칭했음을 알 수 있는 표기나, 말미에 조그맣게 적힌 희곡 모집과 2회 공연 광고 역시 소소하지만 유용한 내용이다.

 

 

안내 책자가 주로 활자 정보를 담고 있다면 넉 장의 사진은 흑백이지만 풍부한 시각 정보를 전달한다. 무대만 촬영한 사진은 안내 책자 표지 그림의 기원을 알려주고, 공연 실황을 촬영한 사진은 실제 장면이 어떠했는지 증명할 뿐 아니라 연출 방향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한다. 단체 사진에서는 전체 출연진뿐만 아니라 연출가와 극장장 이자 번역가의 면면을 볼 수 있다.


공연예술박물관의 또 다른 소장품인 대본은 텍스트 자체만으로도 중요한 자료다. 또한 당시 공연계 정황을 엿볼 수 있는 흔적이 남아 있어 더 특별하다. 본문 한 장 한 장에 ‘문교부’라는 도장이 찍혀 공연 전에 국가 검열을 거쳤음을 보여준다. 이외에도 어떤 재질의 종이가 대본 제작에 사용 됐는지, 대본 제작에 사용된 등사 방식이 어떠했는지 알 수 있어 당시 공연계의 제작 상황을 짐작게 하는 단서를 제공한다.

 


‘신앙과 고향’은 대본에 의역이 많고 신협이 전속단체가 되는 과정에서 잡음이 생겨 공연 자체로는 절찬받지 못했지만 이해랑·김동원·백성희·황정순 등 베테랑 배우들의 열연으로 관객을 모았고, 국립극장의 발전 가능성을 증명했다. 그리고 공연예술박물관에 소장된 자료는 이러한 역사를 명징한다. 공연 예술은 무형 예술이기에 안내 책자·공연 사진·대본처럼 자료를 응집할수록 가치 있는 정보가 추출되는 일이 많다. 그렇기에 공연예술박물관은 오늘도 한국 공연예술사를 기록한다는 이상을 향해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다.

 

이주현 국립극장 공연예술박물관 학예연구사

 

참고 김대규, ‘정유문화계 총평-극단’, 경향신문, 1957년 12월 24일자 4면.
       김동원, ‘신협과 나’, 경향신문, 1957년 12월 30일자 4면.

 

국립극장 환도 기념 공연 ‘신앙과 고향’
일자 1957년 7월 12~20일
장소 국립극장 소극장
극작 칼 쇤헤어
연출 홍해성
번역 서항석
출연 하기종·김동원·황정순·강계식·장민호·문정숙·박성대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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