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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02월호 Vol.349

미국 현대 연극의 이토록 세련된 소환

프리뷰1┃국립극장 NT Live '뜨거운 양철 지붕 위의 고양이'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

일찌감치 문학작품으로 가치를 인정받았을 뿐 아니라 연극과 영화에 이르기까지 장르를 넘나들며 관객을 매혹해온 두 작품이 있다.
벌써부터 연극 팬들을 후끈 달아오르게 만드는 두 편의 NT Live를 한발 먼저 만나보자.

 

영국 국립극장이 화제의 연극을 촬영해 전 세계 공연장과 영화관에서 중계하는 내셔널 시어터 라이브(National Theatre Live, 이하 NT Live)가 상영을 시작한 지 올해로 10년을 맞이한다. 전 세계 연극 팬들을 설레게 하는 NT Live는 지금까지 전 세계 2천여 곳에서 상영됐고, 5만 5천여 명이 관람했다. 우리도 지난 2014년 ‘워호스’를 시작으로 매년 국립극장에서 영국의 수준 높은 연극을 생생하게 즐길 수 있게 됐으며 올해는 목요일 낮 2시 공연도 추가돼 관람 시간 선택의 폭도 넓어졌다. 2019년 국립극장이 엄선한 NT Live는 테네시 윌리엄스의 퓰리처상 수상작 ‘뜨거운 양철 지붕 위의 고양이’와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에드워드 올비의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다. 현대 미국의 대표 극작가 테네시 윌리엄스와 에드워드 올비. 이 둘의 히트작이자 50년이 넘도록 장르를 넘나들며 사랑받아온 두 작품을 나란히 감상할 수 있는 놓칠 수 없는 기회다.

 

과감한 각색과 매혹적인 배우 '뜨거운 양철 지붕 위의 고양이'

2017년 7월, 영국 웨스트엔드의 여름은 테네시 윌리엄스의 1955년 퓰리처상 수상작 ‘뜨거운 양철 지붕 위의 고양이’로 후끈 달궈졌다. 할리우드 스타이자 뛰어난 패션 감각으로 시에넌센스(Siennasance)라는 스트리트 스타일을 유행시킨 여성들의 워너비 모델 시에나 밀러와 한때 영국을 대표하는 불량 청소년 역 전문배우라 불릴 정도로 거친 남성미와 섹시함으로 무장한 잭 오코넬의 만남이라니. 여기에 트레이드마크인 금발 곱슬머리로 수많은 영화에서 중후하고 개성 있는 연기를 선보여온 콤 미니가 한 무대에 올랐다.

 


하지만 이들보다 나의 관심을 끈 건 연출가 베네딕트 앤드루스였다. 그의 이름을 기억하게 된 건 영국에 체류하던 2014년, 테네시 윌리엄스의 또 다른 대표작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의 표를 구하기 위해 영국 영 빅 시어터 매표소 앞의 긴 행렬에 기꺼이 몸을 실으면서부터다. 질리언 앤더슨의 매력적인 얼굴 사진으로 도배된 극장 입구에서 제비뽑기에 당첨되는 행운까지 얻어 정해진 날짜에 공연장으로 갔다. 고전을 현대 감각으로 재해석한 연출력에 기립박수가 터졌다. 그런 베네딕트 앤드루스 연출이 지난 성공 이후 3년 만에 테네시 윌리엄스 카드를 다시 꺼내들었다.


사실 ‘뜨거운 양철 지붕 위의 고양이’의 유명세는 1955년 브로드웨이에서 초연된 공연이 아니라 1958년에 제작된 동명 영화의 성공 때문이다. 엘리자베스 테일러와 폴 뉴먼의 리즈 시절을 그대로 담고 있는 이 오래된 영화는 두 주인공이 모두 고인이 된 지금, 더욱 아련하게 다가온다. 한 줌도 안 될 듯한 허리와 미끈한 종아리가 돋보이는 투피스 차림의 엘리자베스 테일러, 그녀의 젊음이 부질없게도 아름답다.


테네시 윌리엄스의 희곡을 충실하게 살린 영화와는 달리 베네딕트 앤드루스 연출은 과감한 각색을 시도했다. 무대는 미국 개척기의 광활한 미시시피 대농장의 델타 맨션을 그대로 재현하는 대신 현재 뉴욕의 어느 세련된 펜트하우스 거실을 옮겨놓은 듯하다. 금빛의 대형 사각형 프레임 아래로 블랙의 모던하고 심플한 가구, 스위스 출신 무대 디자이너 마그다 윌리의 미니멀한 무대가 돋보인다. 하지만 이곳엔 창문도, 숨을 곳도 없다. 불행한 결혼생활에 갇힌 젊은 부부의 출구 없는 감옥. 무대 오른편에 삐죽하게 솟아 있는 샤워기에도 몸을 가릴 만한 곳은 없다. 이제 이곳에 있는 모두는 허위의식을 벗고 진실과 대면해야 한다. 어둠 속에서 물소리가 들리고 잭 오코넬이 나체로 흠뻑 젖은 채 샤워기에 기대앉아 있는 모습이 서서히 드러나면서 연극은 시작된다.


알코올 중독으로 은퇴한 왕년의 체육 스타 브릭과 그의 아내 매기는 대농장의 주인이자 브릭의 아버지인 폴리트의 65세 생일 파티를 위해 고향에 내려왔다. 브릭은 지난밤 술에 취한 채 운동장에서 장애물 넘기를 하다가 다쳐 목발에 의지해 절뚝이고 있다. 옆방은 브릭의 형인 구퍼와 여섯 번째 아이를 임신한 메이 부부, 그리고 다섯 아이의 노랫소리로 소란스럽기만 하다. 이들의 목적은 단 하나. 폴리트가 가진 막대한 유산의 상속자가 되는 것. 폴리트의 행복한 생일 파티 이면에는 가족 간 상속으로 인한 갈등이 도사리고 있다. 매기는 상속을 위해서라도 임신을 간절히 원하지만 브릭은 어찌 된 일인지 이 매력적인 아내 매기에게 전혀 관심이 없다. 두 사람의 치열한 말다툼 끝에 브릭의 친구 스키퍼가 등장하고 부부의 갈등이 바로 그로 인해 비롯된 것임이 드러난다.


테네시 윌리엄스는 동성애자였고 불과 50여 년 전이지만 당시 미국 사회에서 동성애는 불법이었다. 작가는 자신의 미래를 예견하듯 브릭을 그렸다. 브릭은 자신이 스키퍼의 사랑을 거부해 결국 친구를 자살까지 몰고 갔다고 괴로워하며 술을 마시기 시작한다. 테네시 윌리엄스 역시 동성애에 대한 편견에서 평생 자유롭지 못했고, 연인 프랭크 먼로가 1963년에 암으로 죽자 술과 마약에 빠져 지냈다. 시대가 변해 동성애자 부부가 가족을 이루는 세상이다 보니 브릭의 고뇌가 예전과 같은 무게로 전해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시에나 밀러와 잭 오코넬은 탄탄한 연기력으로 색이 바래져가는 고전에 뜨거운 숨결과 긴장감을 불어넣었다.


“내가 어떤 기분인지 알아 브릭? 난 언제나 뜨거운 양철 지붕 위의 고양이 같은 기분이 들거든.” 작품의 제목이기도 한 ‘캣 온 어 핫 틴 루프Cat on a hot tin roof’를 나른하게 발음하는 시에나 밀러가 어찌나 섹시하던지. 이 매력을 누가 거부할 수 있을까.

 

“베네딕트 앤드루스의 대담한 재해석, 혁신적이며 강렬한 연기…”
“Benedict Andrews’s new production is a bold reimagining, innovative and powerfully acted…”
- Sunday Times, Christopher Hart -

 

“레이저처럼 예리하고 눈부시게 멋진 해석, 결코 잊을 수 없다.”
“A brilliant, lacerating account of the play.”
- The Independent, Paul Taylor-

 

결혼이라는 링 위의 선수들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

2017년 3월, 영국 주요 일간지 문화면에는 웨스트엔드 해럴드 핀터 극장 무대에 오른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에 대한 호평이 연일 이어졌다. 영국의 전설적인 연극 비평가 마이클 빌링톤이 ‘가디언’에 기고한 리뷰에도 별 다섯 개가 반짝인다. 헤드카피는 ‘이멜다 스톤턴, 올비의 결혼 전쟁에 불을 지피다’였다. 한 손에는 술잔을 들고, 포효하듯 고함치며 붉은 손톱으로 손가락질하는 그녀의 사진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프랑스 출장길에 어렵게 휴가를 붙이고, 런던까지 날아가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에게는 영화 ‘해리 포터와 불사조 기사단’에서 해리 포터를 궁지에 빠뜨리는 얄미운 톨로레스 엄브리지 교수 정도로 기억되는 이멜다 스톤턴은 영국인들이 사랑하는 연기파 배우다. 영화와 드라마에선 조연으로 이름을 올리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연극 무대만큼은 그녀의 연기가 빛을 발하는 곳이다. 올리비에 어워즈에서 여우주연상을 다섯 번이나 수상했으니, 그야말로 믿고 보는 배우. 하지만 이 노련한 여배우도 영화에서 마사 역을 맡았던 엘리자베스 테일러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던지 인터뷰에서 막중한 책임에 대한 부담감을 고백하기도 했다.


어렵게 런던에 온 것 만큼이나 ‘조지와 마사 부부의 전쟁’을 구경하기 위한 입장권 구하기도 쉽지 않았다. 다행히 4층 꼭대기 발코니석 구석에 남아 있는 좌석을 간신히 찾아냈다. ‘풀 하우스(Full House: 만석)’라는 입간판을 재빠르게 내다놓은 극장 입구에는 입장을 기다리는 관객이 이미 긴 줄을 이루고 있었다. 1881년에 지어진 이 고풍스러운 극장은 몇 번의 공사 속에서도 무대를 감싸듯 곡선을 이루는 말발굽 모양의 발코니는 그대로 지켜내고 있어 클래식 연극을 관람하는 데는 제격이다.

 


1962년 10월 3일 미국 브로드웨이 빌리 로즈 극장, 에드워드 올비의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 초연의 막이 올랐다. 점잖고 고상해야 할 대학 교수 조지와 마사 부부의 입에서 시종일관 상스러운 욕설과 노골적인 음담패설이 쏟아졌다. 올비는 제2차 세계대전의 혼란 이후 단란한 가족에서 미국의 이상을 찾으려던 꿈을 조롱하며 보란 듯이 돌을 던졌다.


작품은 연일 화제의 중심에 있었다. 퓰리처상 심사위원들이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를 희곡 부문 수상작으로 결정했으나 퓰리처 위원회에서 상 수여를 거부하면서 심사위원 절반이 사퇴하는 소동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음탕한 여자들이나 볼만한 연극’이라는 평론가의 악담은 오히려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했고 흥행은 대성공이었다. 토니 어워즈 최우수 작품상을 비롯해 5개 부문에서 상을 휩쓸었다.


그로부터 4년 뒤인 1966년에 제작된 영화는 엘리자베스 테일러와 리처드 버튼 부부를 캐스팅해 다시 한번 이목을 모은다. 대중은 이혼과 결혼을 거듭하던 이들 부부의 삶을 그대로 옮긴 듯한 스크린의 난타전을 엿보며 열광했다. 중년으로 접어든 엘리자베스 테일러와 리처드 버튼의 감출 수 없는 주름, 두꺼워진 허리는 올비가 그려낸 배역에 사실감을 더했고 섹시 스타의 이미지를 벗어던진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그해 오스카 어워즈 여우주연상을 거머쥔다.


일요일 새벽으로 넘어가는 늦은 시각. 조지와 마사 부부가 술에 취해 비틀대며 현관문을 열고 들어선다. “쓰레기 같으니라고!(What a dump!)” 거실을 둘러보는 마사의 입에서 욕지거리부터 나온다. 대학교수 부부의 전쟁이 펼쳐질 홈그라운드는 생각보다 초라하다. 마사가 말하는 ‘쓰레기’는 별 볼일 없는 살림살이에 대한 욕이기도 하며 앞으로 드러날 자신들의 결혼 생활에 대한 비난이기도 하다. 그때 초인종이 울린다. 조지와 마사의 전쟁에 초대된 불행한 손님, 닉과 허니 부부다. 조지는 세 가지 게임을 제안한다. 그들의 불편한 진실이 차례차례 밝혀지고 어느새 동이 트면 막이 내린다.


역시 이멜다 스톤턴이었다. 에드워드 올비가 희곡에 써놓은 ‘52세의 덩치 크고 사나운 마사’와는 한참이나 거리가 먼 ‘62세의 150cm 남짓 작은 몸집’으로 관객을 압도했다. 마사의 펀치를 끊임없이 받아넘긴 조지 역의 콘레스 힐과 완벽한 한 쌍을 이루었다. 세 시간 동안 숨죽이며 이 혹독한 전쟁을 지켜보던 객석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객석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 중년 부부들은 서로를 향해 웃으며 박수를 쳐주었다. 인사불성이 되어 서로를 향해 주먹을 휘두르는 다른 집 부부 싸움을 보며 우리는 모두 결혼이라는 링 위에 오른 선수임을 확인하며 안도하는 듯했다.

글 최여정 런던의 오래된 뒷골목에 남겨진 셰익스피어의 흔적을 따라 걸으며 ‘셰익스피어처럼 걸었다’를 썼다. 지금도 극작가들의 삶과 작품을 찾아 여행하며 희곡을 읽고 글을 쓴다.

 

“제임스 맥도널드의 신랄한 연출. 정신 차릴 수 없을 만큼 훌륭하다.
“James Macodnald's blisteringproduction intoxicatingly good
- Financial Times, Sarah Hemming -

 

“이제까지 봤던 연기 중에서 단연 최고의 경지다.”
“One of the greaterst feats of acting I have witnessed.”
- The Independent, Paul Taylor-

 

NT Live ‘뜨거운 양철 지붕 위의 고양이’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
날짜         2019년 3월14~17일 | 2019년 3월 21~24일
장소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관람료      전석 2만 원
관람연령   만 18세 이상 관람가(2000년 12월 31일 이전 출생자)
문의         국립극장 02-2280-4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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