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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02월호 Vol.349

시간과 함께 영글다

SPECIAL┃국립무용단과 '시간의 나이'

 ‘시간의 나이’도 이제 4년 차, 두 번의 국내 공연과 두 번의 파리 공연을 거치며 시간과 함께 영글었다.
작품을 둘러싼 수많은 말 속에서 이 공연이 가진 크고 작은 의미를 톺아본다.

 

국립무용단과 프랑스 안무가 조세 몽탈보가 만든 ‘시간의 나이’가 첫 선을 보인 지도 어느덧 3년이 지났다. 주로 한국 전통춤에 기초한 무용 극을 보여주던 국립무용단이 동시대 창작춤에 도전하기 위해 기획한 해외 안무가 초청 프로젝트에서 첫 안무가로 테로 사리넨이 ‘회오리’ 를 올려 크게 호평을 받은 후였다. 당시 조세 몽탈보가 안무를 맡는다


는 소식을 듣고 ‘드디어 올 것이 왔다’라는 기대감에 무척 설렌 기억이 있다. 기발한 영상과 무대 위의 무용수들을 절묘하게 합성하는 연출로 세계적 명성을 얻은 그이기에 얼마나 재미있는 작품을 만들지, 한국춤을 어떻게 녹여낼지 세간의 관심이 몰렸다.


그런데 정작 한국 초연에 대한 반응은 그리 뜨겁지 않았다. 우리의 전통을 얼마나 현대적으로 만들어줄지에 대한 기대가 지나치게 컸던 탓일까, 기존의 몽탈 작품 형식에 무용수만 교체된 것 같다는 평이 있는가 하면 ‘파라다이스’ 등 세 번의 내한 공연에서 보여준 대표작들에 비해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평도 있었다. 럼에도 오히려 파리 공연은 성공할 거라 예상했다. 몽탈보는 한국의 전통을 소재로 하지만, 단순하게 가이드북을 만들지 않았으며, ‘인류’를 이야기하는 큰 스케일로 접근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예상은 정확하게 적중했다. 이국적인 연출과 매력적인 무용수는 몽탈보의 창작 세계를 한 단계 끌어올렸고, 새로운 것을 열망하던 팬들의 기대를 충족시키기에 충분했다. 1200석 객석은 7회 공연 내내 연일 매진이었고, 뜨거운 감동을 받은 관객들은 발로 객석 바닥을 구르며 환호성을 질렀다.


2016년 첫발을 내디딘 ‘시간의 나이’가 오는 3월, 세 번째 국내 무대를 준비하고 있다. 제작 과정에서 만난 몽탈보와의 인터뷰, 국내 초연에 대한 기대와 반응, 파리 현지에서 목격한 관객과 언론 반응 등을 회상 하면서 몇 개의 키워드를 떠올렸다. 제목이 의미하는 ‘시간의 나이’를 이야기할 만큼의 연륜은 아니지만, 몽탈보와 국립무용단이 서로를 이해하고 조화를 이루기엔 충분한 시간이 흘렀다고 생각한다. 이제 제대로 된 케미를 보여줄 때가 됐다.

 

 

전통X현대
“전통과 현대는 서로 상충하는 개념이 아니라 함께 섞이고 공존하는 것이라고 인지하는 태도가 창작을 가능하게 한다.”
- 조세 몽탈보 (안무 노트, 2016년 3월) -

“한국춤이 가진 역동적 모습이 인상적이었는데, 케이팝과 한국 전통춤이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 소르베 예몽, 10대 관객 (매일경제, 2016년 6월 20일자 34면) -


초연 당시 포스터를 보면 수영복 차림의 여자가 한복을 입은 남자와 우산을 쓰고 있다. 그 아래 거울에 비친 것 같은 남녀 모습이 언뜻 보면 데칼코마니로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다르다. 하단의 사진엔 현대복을 입은 남자와 한복을 입은 여자가 우산을 들고 있다. 전통이 현대를, 현대가 전통을 서로 보호하고 상생한다는 의미를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몽탈보는 작품 속에서도 이 대비를 반복적으로 등장시켰다. 영상 속 전통의상을 입은 무용수와 일상복을 입은 무대 위 무용수 간의 교감, 과거 모습을 담은 스케치 위를 달리는 도시인의 형상 등. 여기서 남는 여운이 곧 작품의 주제이자 우리 삶의 현주소일 것이다. 케이팝에 열광하는 파리의 젊은 관객이 느낀 것처럼 역동적이고 다채로운 전통의 힘이 고스란히 우리 삶에 녹아 있고, 새로운 모습으로 이 시대를 움직이고 있다. 세계가 공감한 동시대성이 바로 그것이다.

 

해체X해방
“조세 몽탈보, 전통의 굴레를 벗기다.”     

- 아리안 바블리에 (르 피가로, 2016년 6월 18일) -
“몽탈보가 한국 무용계의 히딩크가 돼, 우리의 춤과 무용수를 세계에 알릴 수 있기를 기대한다.”
- 장인주 (중앙일보, 2016년 2월 13일자 27면) -

 

초연 당시, 한국춤을 모르는 외국인 안무가가 어떻게 전통을 현대화할수 있겠느냐는 부정적인 견해도 있었다. 본래 창의적인 인용은 대상을 잘 알지 못할 때 가능하다는 이론을 무시한 기우였다. 연습실에서 만난 몽탈보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몇 가지 편견을 과감하게 깨뜨리며 전통을 해체하고 있었다. ‘한량무’는 남자춤이지만, 남녀 구분 없이 모두 같이 출 것. ‘부채춤’도 남녀 모두 부채 없이 추어볼 것. 북을 매달아놓거나 들지 말고, 바닥에 세워놓고 그 위에 앉아서 두드려볼 것 등이었다. 이러한 주문에 간혹 어색해하는 무용수들이 있다며 조심스럽게 한국 문화에 대해 묻기도 했다. 비키니 수영복을 입은 여성을 등장인물로 찾고 있는데 선뜻 나서는 무용수가 없다는 걱정과 함께.

 

연습실의 몽탈보를 지켜보면서 한국 축구에 전환점을 만들어준 히딩크 감독이 떠올랐다. 선후배 서열을 철저하게 지키는 분위기 속에서 열을 번갈아가며 배치하는 단순한 변화부터 짜인 순서가 아닌 무용수의 생각과 동작을 찾아내고 곧바로 작품에 반영하는 연출 방식까지 다양한 시도를 실천하는 그가 마치 학연?지연 등의 고정관념과 관습을 깨고 새로운 시도를 강행해 성공을 이끌어낸 히딩크와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춤은 인간과 같아서 결국 하나의 뿌리를 가지고 있고, 하나의 맥으로 통하기 때문에 한국의 춤이 곧 세계적인 춤이 될 것이라는 몽탈보의 확신은 라벨의 ‘볼레로’에 맞춘 피날레에서 확인할 수 있다. 통일과 규칙으로부터 해방된 춤은 자유와 열정을 담은 제의, 몽탈보의 ‘볼레로’로 거듭났다.

 

춤X연주
“그들이 무용가인 동시에 연주자라는 점이 놀라웠다.”                                          

- 조세 몽탈보 (「미르」, 2016년 5월호) -
“조세 몽탈보는 타악을 연주하는 무용수들의 한국적 전통에 유럽적 감성과 현대적 영상을 더한다. 새로운 세상이 눈앞에 펼쳐진다.”
- 엠마뉘엘 부쉐 (텔레라마, 2016년 5월 28일) -

 

2014년 11월, 사전 답사를 위해 한국을 찾은 몽탈보의 눈에 가장 강렬하게 들어온 것이 바로 춤과 연주를 동시에 소화하는 무용수였다고 한다. 결국 ‘시간의 나이’에는 화려하게 오프닝을 장식한 삼고무를 비롯해 장고춤·진도북춤·진쇠춤 등 타악 연주를 활용한 춤이 다수 등장한다. 악기를 들지 않더라도 무용수들은 추임새를 섞거나 손뼉을 치고 몸을 두드리며 한국 장단과 리듬을 연출한다. 전 세계 어디를 다녀봐도 이렇게 훌륭한 무용수 겸 연주자는 없다는 몽탈보의 확신은 프랑스 관객에게도 통했다.


몽탈보는 ‘시간의 나이’와 관련한 인터뷰에서 늘 국립무용단원을 ‘무용수이자 연주자’라고 소개했다. ‘신체 기술과 음악적 기술을 동시에 구현하는 놀라운 무용수들’이라며 자랑했다. 비보잉·발레·바로크무용·아프리카춤·플라멩코 등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춤에 대한 관심과 전 세계 민속춤에 남다른 식견으로 그것들을 과감하게 작품에 삽입해온 몽탈보의 칭찬 앞에서 우리는 새삼 한국춤의 예술적 가치를 재평가 할 수 있었다. 그는 프랑스 관객에게 한국춤을 가장 흥미롭게 전할 수있는 최고의 적임자였다.

 

한국X프랑스
“몽탈보는 ‘한국’ ‘인류’ ‘뿌리’를 세 개의 장에 담아, 노련한 중매쟁이처럼 한국은 물론 유럽 관객의 평가까지도 가늠했다.”
- 문애령 (「미르」, 2016년 5월호) -
“몽탈보가 재해석한 한국 전통춤에서 전 세계에 통하는 보편성을 발견할 수 있었다.”
- 시릴 구예트, 40대 관객 (매일경제, 2016년 6월 20일자 34면) -

 

‘시간의 나이’는 ‘2015-2016 한?불 상호교류의 해’를 맞아 한국 국립극장과 프랑스 샤요국립극장이 공동으로 제작한 작품이다. 2014년 6월부터 공동 제작이 논의되기 시작해 2년여에 걸쳐 프랑스와 국내 제작 스태프가 함께 만들었다. 샤요국립극장은 프랑스 5대 국립극장 중 하나로 그중 유일하게 무용을 주로 공연하는 극장이다. 총 3개 공연장에서 매 시즌 350회 정도의 공연을 올리니 단연코 세계 무용 시장의 중심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조세 몽탈보는 2000년부터 샤요국립극장의 무용 감독을 지냈으며 2008년부터 도미니크 에르비외와 공동 극장장을 지낸 바 있다. 샤요국립극장의 내부 구조에서부터 관객층은 물론 세계시장 내의 위치까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시간의 나이’는 국립극장과 샤요국립극장, 국립무용단과 조세 몽탈보 등 한국과 프랑스를 대표하는 베테랑이 만나 만들어낸 문화 교류의 큰 성과다. 그 성과는 한·불 수교 130주년을 기념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한국춤이 세계시장으로 나아가는 데 중요한 디딤돌이 됐다. ‘시간의 나이’를 번역하지 않고 한국어 발음 그대로 옮겨 적은 제목 ‘SHIGANE NAI’가 어떤 의미인지 세계인이 궁금해하는 날이 올 것이라고 믿는다.

 

장인주 무용평론가. 프랑스 파리 제1대학교에서 무용미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전문무용수지원센터 이사장?서울문화재단 이사를 지냈다. 저서로는 ‘세기의 안무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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