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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2월호 Vol.347

음악의 비단을 짊어지고 창작의 실크로드로

우리 시대의 작곡가 ㅣ 전인평(1945~)

 

그에게 작곡이 근대 한국음악에 영향을 준 서양음악과의 ‘줄 당기기’라면, 아시아음악 연구는 고대와 중세에 영향을 준 중앙아시아 음악과의 ‘줄 잇기’ 작업이다.

이 시간에도 그는 아시아의 음악적 공통분모를 발견하기 위해 부단히 망원경을 들여다본다.

 

전인평은 ‘동양음악’(1996), ‘실크로드 음악과 한국음악’(2001), ‘동북아시아 음악사’(2012) 등 책을 지었다. 그의 이름은 ‘음악 찾아 여행하기’와 ‘기록 남기기’의 주어다. 목적어는 ‘아시아음악’. 여행하지 않을 때에는 곡을 짓는다. 하지만 그것 역시 여행의 흔적이다. 적어 내려가던 선율과 음이 막히면 그는 또다시 떠난다. 한국음악 속에 숨 쉬고 있는 아시아 여러 나라의 음악적 맥을 탐구하거나 한국음악이 아시아와 교감한 역사적 흔적을 찾는다.

 

신국악의 요충지에서
전인평은 충청북도 영동에서 태어났다. 1963년 대전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서산 원북초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무료한 시간을 때우기 위해 쓴 곡이 동요 ‘연못’(1964)이었고, 그가 쓴 곡은 월간으로 발행되던 ‘새교실’에 실리기도 했다. 당시 잡지에는 게재된 노래에 대해 촌평하는 의례가 있었는데 그의 곡에 대해 “음악이론을 공부하면 더 좋은 곡을 쓸 수 있겠다”라는 평이 실렸다. 그 길로 전인평은 두 권의 책을 사서 독학했다. 나운영(1922~1993)이 지은 ‘화성법’과 ‘작곡법’이었다.


독학으로 공부하다시피 한 그는 서울대학교 음악대학에 입학했다. 1959년에 신설돼 교육 체계가 잡혀 있지 않은 국악과에는 특별한 교육 시스템이 없었다. 곡을 짓는 데는 독학과 스승들의 격려가 전부였다. 국악학도였지만 1968년 동아음악콩쿠르에 나가 서양음악 작곡 부문에서 피아노 3중주곡으로 입상했다. 가야금산조의 선율을 바이올린 피치카토로 연주하게 하게 한 것이 특징인 곡이다. 이듬해 같은 콩쿠르의 국악 작곡 부문에서 3중주곡으로 입상했다. 대학교 3학년, 25세 때였다. 1970년에 대학을 졸업한 그는 곧장 대학원에 진학했다. 호구지책으로 상명사대부속중학교의 음악교사로 취직했고, 1975년 조선일보 동요작곡상을 수상했다.


당시 서울대 국악과는 ‘신국악’의 요충지나 다름없었다. 지금이야 창작국악의 행위와 작품, 연주가 일반적이지만 당시 서울대 음대 정기연주회에서 선보인 신작과 그 파장은 국악 사회를 변화시키는 작지만 중요한 동력이었다. 전인평은 당시 국악계의 변화를 이끌던 한만영 교수로부터 서울대 음대 정기연주회를 위한 관현악곡을 위촉받았다. 작곡에 관한 방법론이 있어 곡이 나오는 게 아니라, 곡의 탄생과 함께 국악 작곡의 뼈대가 잡혀가던 때였다. 당시 관현악곡을 쓰는 이들도 다섯 손가락에 꼽을 정도였다. 전인평이 쓴 가야금 협주곡은 1970년 정기연주회에서 한만영의 지휘로 초연됐다. 1971년 제12회 정기연주회에서 그는 합주곡 ‘운(韻)’을 발표했다. 이 공연에는 그뿐만 아니라 이해식·이성천·김용진 등의 작품이 함께 연주됐다. 앞서 말한 다섯 손가락에 드는 이들이다. 1973년 정기연주회에서는 가야금 5중주곡을 초연했는데, 이 곡을 들은 권오성 한양대학교 교수는 “가야고의 전통적 주법을 확대시켜 구축한 아담한 곡”이라 평했다.(‘경향신문’ 1973년 6월 9일 자, ‘서울음대 국악연주회를 듣고 진지한 연주가 인상적’)


작곡과 공부, 가르치고 배우는 과정에서 전인평은 1972년 ‘대여음(大餘音)에 관한 연구’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같은 해 그동안 써둔 노래를 모아 가곡집 ‘산거(山居)’를 냈고, 그해 10월 20일 이종록과 함께 서울대 음대 리사이틀홀에서 작곡발표회를 열었다.


1970년대에 들어 전인평은 ‘운(韻)’(1971), 가야금 협주곡 2번(1974), ‘달 아래서’(1978) 등 관현악곡과 가야금·피리·대금·장구를 위한 4중주(1970), 가야금 독주곡 ‘사슴풀’(1972)과 가야금을 위한 ‘어린이 나라’(1979), 피리를 위한 산조(1979), 거문고 독주곡 ‘소나무가 보이는 마을’(1979) 등을 작곡했다. 피아노·플루트·오보에를 위한 3중주(1970), 트럼펫 중주곡 ‘채운(彩雲)’(1972) 같은 서양식 작품을 쓰기도 했고, ‘국화 옆에서’(1972), ‘동짓달’(1972), ‘화분’(1972), ‘산골 애기’(1972), ‘이름 없는 여인이 되어’(1974) 등 가곡을 짓기도 했다. 이 중 관현악곡 ‘달 아래서’는 오늘날까지도 자주 연주된다. 방황과 모색의 시기라고 할 수 있는 이때는 국악 외에 서양음악과 동요·가곡 등이 혼재돼 있었다. 모색의 여정은 관현악 조곡 2번 ‘두레’(1980)와 거문고 독주곡 ‘소나무가 보이는 마을’이라는 결실을 낳았다.


‘두레’를 발표한 1980년은 1960년대에 시작된 신국악 운동이 그 뿌리(국악)와 줄기(작곡)를 타고 어느 정도 결실을 본 때였다. 이상규 ‘대바람소리’(1978), 이해식 ‘해동신곡’(1979), 김영동 ‘매굿’(1981)이 대한민국작곡상 국악 부문을 수상하며 당대의 대표작으로 자리를 잡았고, 그간 희미했던 국악 작곡의 개념도 작곡가-작품-초연 순으로 이어지는 문화를 타며 본격적인 창작예술로 기능하기 시작했다. 전인평은 ‘두레’로 1980년 제4회 대한민국작곡상 국악 부문 우수상을 수상했다. 음악적 시야를 농악으로 향한 후에 만든 작품이었다. 소재 찾기에 갈급하던 그는 장구 연주자 김병섭에게 배운 설장구와 농악 장단을 바탕으로 3악장 구성의 관현악곡을 만들었고, 체득한 장단은 논문 ‘굿거리장단의 변주 방법-김병섭 장구놀이에 기하여’(1979)에 정리해놓기도 했다.


1979년 발표 작 ‘소나무가 보이는 마을’은 1980년대 들어 활발히 진행될 거문고 창작을 예견한 작품이다. KBS-FM시리즈로 펴낸 음반 ‘거문고 앙상블 연주집’(2002)은 20세기를 빛낸 거문고 창작곡을 모은 음반으로, 정대석·이강덕 등이 남긴 1970년대 거문고 작품과 함께 ‘소나무가 보이는 마을’이 수록돼 있다.

 

 

 장단과 거문고
전인평에게 1960년대와 1970년대가 창작을 위한 ‘모색’의 시간이었다면, 1980년대는 ‘빠져듦’의 시간이었다. 예술가에게 ‘빠져듦’이란 특정 소재에 대한 선택과 집중을 통해 정체성을 더욱 단단히 하는 시간이다.


그 첫 번째는 장단이다. 전작 ‘두레’를 통해 장단의 묘미를 안 그는 가야금·거문고와 같은 현악기를 통해 장단을 드러내는 방식을 취했다. 가야금 독주곡 ‘노피곰’(1981)에는 장산도 씻김굿 현장에서 접한 장단을 녹여 넣었고, 장구가 아닌 북을 사용했다. 거문고 독주곡 ‘장산도’(1980)와 ‘정읍후사’(1982)에서도 장단과 박자의 힘줄이 선율의 핏줄과 잘 맞물린다.


두 번째는 거문고다. 거문고 독주곡 ‘소나무가 보이는 마을’이 스스로 세운 이정표였다면, 1980년대는 그 길을 따라 부지런히 걸었다. 이어 홍난파 주제에 의한 거문고 독주곡(1988), 거문고 독주곡 3번(1988) 등을 발표했다. 거문고에 집중한 에너지는 자장가 주제에 의한 거문고 변주곡(1990)에서 연주자가 느린 도드리장단에 맞춰 노래하는 병창 형식의 실험으로 이어졌는가 하면, 훗날 대표작으로 자리매김한 거문고 협주곡 ‘왕산악’(1996)에서 대거 표출되기도 했다. 장녀 전진아(KBS국악관현악단 거문고 단원)가 그의 여러 거문고 작품을 초연했고, 이를 모아 음반 ‘전진아, 거문고 Fantasy-전인평 거문고 창작곡 모음’(2010)을 내기도 했다.

 

실크로드에서 발견한 아시아음악

 

1983년 중앙대학교 국악과 교수로 부임한 전인평은 1985년 인도로 향했다. 불교음악 ‘영산회상’을 연구하던 중 불교의 본국으로 발걸음을 옮긴 것이다. 그는 인도 뉴델리의 간다르마 마하 비다알라야에서 인도와 아시아음악을 공부해 자신의 음악 영역을 확장했다.

 

그에게 작곡이 근대 한국음악에 영향을 준 서양음악과의 ‘줄 당기기’라면, 아시아음악 연구는 고대와 중세에 영향을 준 중앙아시아 음악과의 ‘줄 잇기’ 작업이다. 그가 빠져든 거문고가 서역과 활발히 교류한 고구려 악기라는 사실을 통해 중앙아시아의 음악도 그의 시야에 들어왔다. 한국의 ‘특수성’이 아니라, 아시아의 ‘공통성’ 속에서 한국음악을 다시 들여다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가 발로 뛴 현장의 자료와 주관적 느낌은 객관화돼 ‘새로운 한국음악사’(2000)를 저술하는 연료가 됐다. 이러한 작업은 ‘실크로드 음악과 한국음악’, ‘아시아음악연구’(2001), ‘실크로드, 길 위의 노래’(2003), ‘인도음악의 멋과 신비’(2003), ‘아시아음악의 이해’(2005), ‘동북아시아 음악사’ 등으로 이어졌다. 한국의 산조와 인도의 라가를 비교했고, 인도 고대연극에서 음악을 사용한 흔적인 ‘나티야 사스트라Natya Sastra’와 인도 전통리듬인 탈라, 그리고 ‘영산회상’ 장단의 유사한 구조를 발견하기도 했다. 느리게 시작해 빠르게 진행되는 만중삭(慢中數)과 세틀 형식은 한국뿐만 아니라 인도·인도네시아·태국·캄보디아 음악에도 녹아 있는 특징이다. 그래서 ‘세종실록 봉래의의 장단과 속도’(1999)를 연구할 적에 만중삭은 그가 기존에 알고 있던 개념이 아니었다. 그것은 아시아의 음악적 공통분모였다.

 

아시아 음악학자로 자리매김하게 된 전인평은 현장 답사를 통해 얻은 지식을 작곡에도 반영했다. 현을 미세하게 움직이는 인도의 부팔리(‘제왕의 라가’라고도 한다)는 거문고 독주곡 ‘왕산악’의 모티프가 됐고, 북인도의 현대적인 음악 기법인 캬을 도입해 가야금 독주곡 ‘외오곰’(1986)을 작곡하기도 했다. 관현악 이야기 ‘별주부와 토끼’(1989)에는 인도음악의 지속음 기법이 녹아 있다.


1980년대부터 한국음악은 일본음악과 더욱 적극적으로 교류했고, 1988년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해외여행 자유화가 이뤄졌으며 1992년 한·중 수교는 한·중·일의 전통음악이 만나는 계기가 됐다. 한 예로 동아시아 3개국의 전통음악가가 모여 1993년 창단한 오케스트라 아시아가 있다.
전인평은 이와 달리 음악의 비단을 짊어지고 실크로드로 나아갔다. 1991년과 1998년, 그는 중앙아시아로 대대적인 현지 조사를 나갔다. 답삿길에서 음악을 만나면 그 기원을 물었다. 뿌리의 끝은 반드시 한국음악과 닿아 있으리라는 믿음 때문이다. 1991년 실크로드 탐사 중 우즈베키스탄에서 만난 장단의 표정은 굿거리·자진모리·동살풀이와 닮아 있었고, 이를 바탕으로 해금곡 ‘알타이 춤곡’(1991)을 작곡했다. ‘거문고 환상곡’(2007)에는 인도 벵골의 민요를 사용했다. 인도음악에 담긴 한의 정서가 한국 민요와 닮아 있었기 때문이다. ‘신라 환상곡’(2006)에선 몽골의 노랫소리가, ‘사매은곡’(2011)에선 인도의 향내가 풍겨 나온다.


그는 2002년부터 영문학술지 ‘Asian Musicology’를 내고 있다. 정년퇴직 후에 펴낸 ‘보고 듣는 우리 음악의 멋 열 가지’(2010), ‘국악 작곡 길잡이’(2013), ‘동북아시아 음악사’(2016), ‘한국창작음악사’(2017)는 그가 정진해온 한국음악-작곡-아시아음악-역사라는 줄기로 이어진다. 이 순간에도 진행되는 그의 작업은 고대부터 한국음악에 영향을 준 역사적 반경을 살펴보는 망원경과 같고, 음악에 내재된 DNA를 살펴보는 현미경과 같다고 할 수 있겠다.

 

*작품에 기재된 작곡 연도는 한국예술종합학교 한국예술연구소의 ‘한국 작곡가 사전’과 전인평의 ‘한국창작음악사’를 따릅니다.

 

송현민 음악평론가. 음악을 듣고 글을 쓰며 부지런히 객석과 책상을 오가고 있다. 급변하는 음악 생태계에 대한 충실한 ‘기록’이 미래를 ‘기획’하는 자료가 된다는 믿음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림 권준 일러스트레이터


참고문헌 전인평 ‘새로운 한국음악사’, 현대음악출판사, 2000. 전인평 ‘한국창작음악사’, 아시아문화, 2017. 정수일 ‘실크로드학’, 창작과비평사, 2001. 안현정 ‘이성천, 이해식, 전인평 작품에 나타난 작곡기법연구’, 동양음악 40권, 2016.

 

21세기 KBS-FM시리즈 35 ‘KBS국악관현악단 창작음악집’
1996년 발표한 거문고 협주곡 ‘왕산악’이 수록된 1999년 음반이다. 박일훈·박범훈 외에 정대석의 거문고 협주곡 ‘수리재’도 담겨 있어, 거문고 창작에서 일가를 이룬 두 작곡가의 특징을 살펴보는 재미가 있다. 여러 문화가 녹아 있는 실크로드 작곡가답게 ‘왕산악’은 4악장의 자유로운 형식 속에서 여러 음악이 꿈틀거린다. 거문고의 타악적 습성이 잘 나타나는 가운데 ‘상주모심기소리’가 들리는가 하면, ‘영산회상’과 산조가 겹쳐진 듯 묘한 레이어가 전체적인 구조를 감싼다. 20년 전 이뤄진 오경자(국립국악관현악단 거문고 수석)의 협연은 작품과 악기의 매력을 배가하는 결정적인 힘이다. 하여 전인평의 작품이면서 오경자의 작품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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