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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2월호 Vol.347

디지털 시대에 클래식을 즐기는 방법

세계무대 ㅣ 영국 BBC 연중 기획 '틀래식 음악 100년사'

 

 “콘텐츠를 즐기고 공유하는 방법은 달라졌지만, 우리를 단결시키는 음악의 힘은 늘 강하다. 그런 점에서 클래식 음악의 역할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시대에 발맞춰 공영방송 BBC가 새 기획을 선보인다.

 

 

 

뭔가 다르지 않을까? 영국의 공영방송 BBC에서 클래식 음악을 주제로 한 연중 기획 ‘클래식 음악 100년사Our Classical Century’를 방송한다는 소식을 듣고 처음 든 생각이다. 영국 클래식 음악 100년의 역사를 되돌아보는 다큐멘터리·공연 등이 BBC Four, BBC Two 및 클래식 음악 전문 라디오 채널 Radio 3 등 다양한 채널에서 2018년 11월 둘째 주부터 약 1년간 방송될 예정이다. 오는 2022년 개국 100주년을 맞는 오랜 전통의 BBC 역사에서 가장 큰 규모의 클래식 음악 관련 기획이 될 예정이라니 더욱 기대를 모은다.

 

청소년과 어린이도 좋아하는 클래식 음악
클래식 음악의 대중화를 위해 이렇듯 노력해온 방송사도 없을 것이다. BBC는 클래식 음악 축제의 대명사가 된 BBC 프롬스Proms를 개국 직후부터 지금까지 매해 여름 운영해왔고, BBC 심포니를 포함해 무려 9개의 악단과 합창단을 소유하고 있다. 지금까지 녹음된 실황 중계나 기록 영상만으로도 수준 높은 다큐멘터리 몇 편은 뚝딱 만들 수 있을 듯하다. 하지만 앞으로 1년 동안 펼쳐질 연중행사는 더욱 눈길을 끈다. 기존의 클래식 음악 향유층뿐 아니라 청소년과 어린이까지 그 대상에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이번 여름에 열린 2018년 BBC 프롬스에서도 예견된 행보다. 프롬스 역사상 최초로 젊은 음악가만의 연주회가 열렸고, 모두 BBC 젊은 음악가 경연BBC Young Musician의 역대 우승자로 구성됐다. 연주자 중에는 올해 우승자 16세의 피아니스트 로런 장, 최초 흑인 수상자인 2016년 우승자 첼리스트 세쿠 카네 메이슨도 있다. 평범한 가정에서 자란, 공립학교 출신의 스타 탄생은 클래식 음악계에 충격을 주었다. 출신?성별?나이 등 향유층에 대한 고정관념을 일깨우는 계기였다. 영국에서 클래식 음악은 중산층 이상이 누리는 고급 문화다. 국립 청소년 교향악단이나 합창단에서 활동하는 공립학교 출신이 전 단원 중 고작 3분의 1 정도라는 데서 그 현실을 볼 수 있다.


물론 청소년에게 클래식 음악을 알리려는 노력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무려 70여 년 전인 1945년, 영국 정부는 청소년 교육 영화 ‘오케스트라의 악기’를 위해 ‘청소년을 위한 관현악 입문’이란 관현악곡을 벤저민 브리튼에게 의뢰하기도 했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클래식 음악 100년사’에서 이 곡의 연주 실황을 중계한다는 BBC의 계획은 시사하는 바가 분명하다.


이번에 방송될 여러 편의 다큐멘터리는 반드시 음악 애호가가 아니라도 흥미를 느낄 만한 구성이다. 그중에는 잘생겨서 더 유명한 물리학자 브라이언 콕스가 소개하는 구스타브 홀스트 ‘행성’, 찰스 왕세자가 소개하는 작곡가 찰스 휴버트 패리에 관한 내용도 있다. 패리는 영국 밖에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영국 왕실에서 귀하게 여기는 작곡가다. 수년 전 윌리엄과 케이트 왕세손 부부의 결혼식에서 그의 작품이 3곡이나 연주됐다. 실제로 찰스 왕세자는 작곡가 패리 때문에 클래식 음악을 듣기 시작했으며, 같은 이유에서 더 많은 이들이 패리의 곡을 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는 그가 다큐멘터리 ‘왕자와 작곡가The Prince and the Composer’에 참여한 이유이기도 하다. 또한 잉글리시 내셔널 오페라가 벤저민 브리튼의 ‘전쟁 레퀴엠’을 초연하기까지 1년간의 준비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도 방송된다. 이번 공연은 제1차 세계대전 종전 100년을 기념해 11월 16일부터 12월 7일까지 공연될 예정이다. 이 야심만만한 연중 기획은 마침내 영국의 클래식 음악 축제 BBC 프롬스의 시작과 함께 절정에 이르게 될 것이다.


‘클래식 음악 100년사’가 기대를 모으는 또 다른 이유는 단순히 음악사가 아니라 영국 역사 속의 클래식 음악을 주목해서다. 1918년부터 현재까지 기간을 네 부분으로 나눴다. 1부 1918년~1936년, 2부 1936년~1953년, 3부 1953년~1971년, 4부 1980년대~현재까지…. 이 시간 속에서 클래식 음악의 위상을 꼼꼼히 조망한다.


예컨대, 영국 노동당의 애창곡이자 축구 경기 응원가이며 영국을 대표하는 합창곡인 패리의 ‘예루살렘’은 초연 2년 뒤인 191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18년 3월에 발생한 대규모의 여성 참정권 시위에서 이 곡이 여성 투표 찬가로 사용된 것이다. 윌리엄 블레이크의 동명 시에 가락을 얹은 이 노래가 내포하고 있는 이상주의가 시위의 성격과 잘 어울렸기 때문이다. 작곡가 패리 역시 곡의 사용을 허락했을 뿐 아니라 저작권을 기증해 이후 여성연합에서 공식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제2의 영국 국가로 불릴 만큼 영국을 상징하는 곡이 됐다.

 

 

클래식 음악의 역할을 고찰하다
왜 지금 클래식 음악일까. BBC의 토니 홀 사무총장은 이번 기획을 이렇게 설명한다.
“콘텐츠를 즐기고 공유하는 방법은 달라졌지만, 우리를 단결시키는 음악의 힘은 늘 강하다. 그런 점에서 클래식 음악의 역할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이변이 없는 한 2019년 3월 29일 영국은 유럽연합EU에서 탈퇴한다. 예정된 혼란을 앞둔 지금 영국은 여러 갈래로 분열돼 있다. 그 어느 때보다 영국을 하나로 단결시킬 매개체가 필요한 시기다. BBC는 이 어려운 질문에 클래식 음악을 답으로 내세운다. 그 예가, 엘가의 ‘위풍당당 행진곡’ 1번과 ‘희망과 영광의 나라’다. BBC 프롬스 폐막식을 보면 영국인이 아니더라도 영국인이 느끼는 묘한 감동을 조금이나마 공유할 수 있다. 이 곡은 매년 빠지지 않고 연주되는 폐막식 레퍼토리 중 하나다. 연주가 시작되면 관객은 일제히 박자에 맞춰 무릎을 굽혔다 펴며 춤을 추다가 소프라노와 함께 후렴구를 합창하는 게 일종의 관례다. 본래 야외 행사로 시작된 프롬스는 기존 음악회와 조금 다르다. 특히 폐막식에서 관객은 자유분방한 분위기 속에 적극적으로 공연을 즐긴다. 환호성을 지르고 몸을 흔들며 음악을 즐기는, 일종의 파티다.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공연장을 가득 메운 영국 국기 유니언잭이다. 국기를 열정적으로 흔들며 합창하는 모습은 음악이 끌어내는 공감대가 무엇인지 보여주는 확실한 증거다.


당신을 강하게 만든 신께서 당신을 더욱 더 강하게 하시네
God, who made thee mighty, make thee mightier yet


이번 연중 기획 또한 어려운 시기, 클래식 음악과 영국인이 교감하던 순간에 주목한다. 1918년 9월 29일 제1차 세계대전 종전 두 달여 전 초연된 홀스트의 ‘행성’. 이 관현악 모음곡은 발표 당시에는 큰 주목을 받지 못했으나 전쟁에 대한 두려움과 다가올 미래에 대한 희망이 뒤섞인 혼란스러운 감정을 잘 표현해 훗날 큰 사랑을 받는다. 사실 이 작품은 점성술에서 영감을 얻어 만들어졌지만 말이다. 작곡가의 의도와 다르게 읽히는 작품은 이뿐만이 아니다. 랄프 본 윌리엄스의 ‘날아오르는 종달새’는 고유의 서정적이고 목가적인 분위기 덕분에 영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클래식 음악으로 자주 꼽힌다. 실은 영국 동부 해안에서 출정하는 해군을 보고 영감을 받았다지만, 주목할 점은 사람들은 음악에서 위안을 얻고 동질감을 느낀다는 사실이다. 음악은 누리는 사람들에 의해 진정한 생명을 얻기 때문 아닐까.


이번 연중 기획에서는 100년 전, 같은 질문에 답을 찾아 나선 두 명의 작곡가도 소개한다. 작곡가 구스타브 홀스트와 그의 왕립음악대학 동창생이자 친구인 랄프 본 윌리엄스다. 이들은 함께 영국 각지로 민요 채집을 다녔다. 찬송가부터 뱃노래까지 잠들어 있던 영국의 민속음악을 찾아 배낭을 메고 도보 여행을 다닌 것이다. 본 윌리엄스는 저서 ‘민족음악’(1935)에서 “가장 위대하고 잘 알려진 예술가가 가장 국민적인 예술가이기도 하다”라며 “바흐?셰익스피어?베르디?휘트먼은 모두 세계인이고자 했지만, 예술적 영감의 출발점은 항상 민족이었다”라고 쓰기도 했다. 이들의 작품 대부분은 민요와 무관하지만, 영국적인 분위기와 인상을 불러일으키는 놀라운 힘이 있다.

 

BBC의 온라인 음악 사업
이러한 기획에서 볼 수 있듯이 BBC 역시 변화의 시기에 놓여 있다. 영국에서도 지상파 방송의 영향력은 전과 같지 않다. 청년층은 이미 온라인으로 보는 유튜브나 넷플릭스로 옮겨간 지 오래다. 젊어지고 싶은 BBC의 전략 중 하나는 ‘음악’이다. 눈으로 듣는 시대에서 BBC는 자사의 장점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 ‘BBC 사운즈’를 얼마 전부터 운영하고 있다. 웹과 전용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TV와 라디오 채널에서 방송된 다양한 공연과 인터뷰 영상을 볼 수 있으며, 조만간 BBC 프롬스 등 클래식 음악 관련 자료를 찾아볼 수 있는 방대한 아카이브를 운영할 계획이다. 이번 연중 기획 ‘클래식 음악 100년사’는 클래식 음악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기회가 될 것이다. 이를 계기로 BBC는 최근 그들이 주목하고 있는 35세 이하의 젊은 층이 클래식을 듣고 즐기는 원스톱 플랫폼이 될지도 모른다.

 

박루니 저서로 ‘친절한 뉴욕’ ‘친절한 북유럽’ ‘런던의 착한 가게’ 등 책이 있고, 현재 런던에 거주하며 문화 콘텐츠를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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