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오전 10시. 휴일 이른 시간에도 좋아하는 음악을 배우느라 늦잠을 잊은 아이들이 있다. 열 살 수빈이는 음악여행을 두 번 거듭하며 거문고의 낮고 둔탁한 소리에 푹 빠졌다.
여행은 설레는 단어다. 여권에 찍힌 출입국사무소의 도장을 본다. 여행의 시작과 마무리 날짜, 그 사이의 며칠은 살아가는 데 꽤 큰 힘이 된다. 여행을 통해 우리는 삶을 더 진전시킬 동력을 얻곤 한다.
오감오락 음악여행단은 우리 음악을 여행처럼 즐겁게 체험할 수 있도록 마련된 교육 프로그램이다. 초등 3~6학년 아이들은 일주일에 한 번씩, 4주에 걸쳐 국악기를 체험하고 각 지역의 아리랑을 배우는 등 우리 음악과 친해지는 여행을 떠난다. 3학년 수빈이가 오감오락 음악여행단에 함께하게 된 것은 ‘주말 수업’인 덕이었다. 평일에 직장 때문에 여유 시간을 내지 못하는 수빈이 어머니 정희숙 씨는 주말에 아이들이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찾다가 오감오락 음악여행단을 우연히 알게 돼 1기 수업을 신청했다. 수업 첫날, 부모가 참관할 수 없어 수빈이를 혼자 별오름극장에 들여보내며 내심 걱정도 했다. 그러나 수업을 마치고 나오는 아이의 표정은 밝았다. 같은 조를 이룬 친구들과 조 이름을 정하고 구호를 만들며 친해졌고, 그새 입에 착 붙은 수업 주제가를 곧잘 흥얼거렸다.
“수빈이가 어릴 때 다닌 어린이집에서 특별활동 시간에 국악을 배웠어요. 우리 장단에 맞춰 게임하며 놀고 7살 때엔 장구를 배워 졸업 공연에서 친구들과 사물악기를 연주했죠. 요즘 아이들이 국악을 멀게 느끼는 편인데 수빈이는 국악을 좋아하고 악기가 있으면 적극적으로 다가가더라고요.”
4주 과정 중 어떤 수업이 제일 재미있었느냐는 질문에 수빈이는 ‘악기 소리 들리니?-우리는 악기 수색대’를 꼽았다. 이 수업은 꽹과리, 북, 장구, 징 등 익숙한 사물악기부터 박, 해금 등 평소에 접하기 어려운 국악기까지 직접 만져보고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연주해볼 수 있다. 다양한 악기 중에 수빈이는 어떤 게 제일 마음에 들었을까.
“거문고요! 낮은 음이 좋아서요. 가야금은 손으로 연주하는데 거문고는 술대를 사용해서 연주하잖아요. 그런 것도 특이하고 재밌어 보여요.”
1기 수업이 끝날 즈음 수빈이는 ‘수업 또 안 하는지’ 엄마에게 물었다. 즐거웠던 만큼 아쉬움이 큰 모양이었다. 길게 고민하지 않고 5월에 진행하는 2기 수업에도 참여하기로 했다. 배울 내용이 1기 때와 같아도 괜찮았다. 이번엔 친한 친구도 함께 신청했다. 5월, 수빈이는 긴 머리를 ‘똑단발’로 자르고, 봄 햇살 속에 친구의 손을 잡고 별오름극장에 들어섰다. “수빈이 머리 예쁘게 잘랐구나!” 선생님이 반갑게 맞아주셨다. 두 번째 음악여행은 그렇게 따뜻한 인사로 시작되었다. 새로운 곳의 정서에 익숙해지면 그곳이 더 잘 보이듯 수빈이는 친숙함 속에서 친구가 모르는 것을 알려주는 여유를 보이며 수업을 다시 재미있게 들을 수 있었다.
오감오락 음악여행단에 함께한 학생들에게는 수업 첫날 특별한 여권이 주어진다. 이 여권에는 수업을 마칠 때마다 여행 코스 하나를 마쳤다는 의미의 도장을 받을 수 있다. 수빈이에겐 1기와 2기 두 개의 여권이 있는데, 두 여권 모두 악기 스티커와 도장이 야무지게 찍혀 있었다. 수빈이는 좋아하는 거문고 도장을 가리키며 기회가 닿으면 꼭 배워보고 싶다고 말했다. 피아노와 우쿨렐레를 연주할 줄 알고 노래 부르는 것을 무척 좋아하는 수빈이는 오감오락 음악여행단 이후 국악에 부쩍 관심이 늘었다. 정희숙 씨는 아이의 그런 반응이 신기하고 대견하다. 단지 전통이어서는 아니다. 우리 음악을 즐긴다는 것은 수빈이 또래 아이들이 잘 모르고 지나칠 법한 감각 하나를 깨우는 일이기에.
“국악은 흥이 넘치는 한편 아이들에게 차분한 마음도 갖게 하는 것 같아요. 요즘 아이들이 즐겨 듣는 대중가요의 가사가 썩 좋은 편은 아닌 것 같은데, 아이가 국악을 좋아하면서 취향이나 정서적인 면에서 좋은 균형이 잡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지요. 오감오락에 참여하면서부터 수빈이가 매일 아리랑을 흥얼거렸는데, 한국의 다양한 아리랑을 재미있게 배울 기회가 흔치 않으니 그것만으로도 저는 이 수업이 좋다고 느꼈어요.”(정희숙 씨)
“국악을 배우면서 우리나라 지역마다 그곳의 아리랑이 있고, 부르는 방법도 다 다르다는 걸 배운 게 재미있었어요. 저는 경기아리랑이 제일 좋아요. 일단 따라 부르기 쉽거든요.(웃음)”(수빈)
오감오락 음악여행단은 수빈이에게 수업이 아니라 이름처럼 재미있는 ‘여행’이었다. 토요일 아침 일찍 인천에서 지하철을 타고 국립극장으로 향하는 긴 길엔 피로보다 설렘이 가득했다. 오감오락 두 번의 여행은 끝났지만 주말에 수빈이 가족의 나들이는 계속될 것 같다. 뭐든 적극적으로 해보고 싶어 하는 아이들의 에너지와 재미있는 것을 찾아 경험하게 해주고픈 엄마의 마음이 기분 좋은 리듬을 이루기에. 인터뷰 자리에는 수빈이와 두 살 터울의 남동생이 함께했다. 동생은 수빈이와 아웅다웅하다가도 누나가 피아노를 치면 탬버린을 들고 나타나 리듬을 맞추는 좋은 음악친구다. 2년 후에 동생이 3학년이 되면 5학년이 될 수빈이와 오감오락 음악여행에 함께 보내고 싶다고 정희숙 씨는 바람을 전했다. 그때쯤엔 수빈이의 거문고 사랑을 지면에 더 면밀히 전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글 이아림 오니트 에디터 | 사진 김창제
오감오락 음악여행단
‘오감오락五感五樂 음악여행단’은 초등학교 3~6학년 아이들이 우리 음악을 재미있게 배우고 체험할 수 있는 교육 프로그램이다. 4주 과정의 수업에서는 우리 소리와 다채로운 국악기를 국립국악관현악단 단원의 지도로 체험하고, 지역의 아리랑을 배우며 직접 가사를 만들어 부르는 발표회를 갖는다. 특히 인기 수업인 ‘악기소리 들리니?-우리는 악기 수색대’는 일일체험으로도 진행된다. 올해 ‘오감오락 음악여행단’은 1기(3월)·2기(5~6월)?3기(8월)가 진행됐으며, 특별반은 상반기(3~6월)와 하반기(7~12월)로 나누어 운영된다. 매회 접수가 일찌감치 마감되니 참여를 원하는 경우 신청 날짜를 반드시 기억해둘 일이다.
문의 국립극장 예술교육팀 02-2280-58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