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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7월호 Vol.342

'울림'이 살아있는 공간으로

시즌인문학┃한국 전통예술과 공연 공간

 

 

 

공연을 완성하는 다양한 요소 중 하나는 ‘공간’이다. 공간은 무대와 객석의 구조, 음향설계 등 공연에 영향을 미치는 여러 세부 요소를 포괄한다. ‘잔향 시간’ 즉 소리의 ‘울림’과 직결되는 요소는 관객의 마음을 보이지 않게 흔든다.


극장(劇場)의 사전적 의미는 ‘연극을 공연하는 공간’이다. 하지만 오늘날 극장의 의미는 연극을 공연하는 공간으로 한정되지 않는다. 극장 건축을 분석하다 보면 설계 시 ‘목적’과 실제 공간의 ‘활용’이 다소 모순적이라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지금의 공연 공간은 다양한 종류의 공연을 수용할 수 있도록 각각의 특성에 맞게 끊임없이 변화해야 하는 동시에, 극장 건축의 기본적인 성질인 ‘내구성(耐久性)’을 지녀야 한다.


판소리, 마당놀이, 전통연희 등 한국의 민속예술, 그리고 오페라와 같이 긴 역사를 지닌 서구의 공연은 오랫동안 원형극장, 임시로 건설된 야외무대, 마당 등 가림막이 없거나 최소화된 곳에서 공연되어왔다. 공간의 건축적인 요소라곤 틀·구획 정도에 불과해서, 공연을 보며 웃고 우는 구경꾼들이 미처 인식하지 못하는 정도였다. 서구에서는 고대(古代)에 극장을 건설할 때 이미 무대 설계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관객에게 시각 및 청각적으로 최상의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 극장 설계의 중요한 목표였다. 그곳엔 문학, 사회, 그리고 건축적인 표현이 완벽하게 공존했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기술적·사회적·예술적인 변화로 인해, 극장 설계에서는 또 다른 중대한 변환(變煥)이 진행되었다. 서구의 경우 귀족과 상류층을 염두에 둬 고전적이고 밀실화된 공간을 일부 갖춘 형태에서 누구나 평등하게 공연을 감상하는 문화를 수용하는 형태로 점차 변화했다. 설계의 초점(焦點)을 공연자의 발음과 대사를 관객에게 어떻게 잘 전달할 것인지에 맞추기 시작했다. 또, 구조적으로는 객석이 무대를 반원형으로 감싸는 말발굽형 구조에서 객석이 무대를 평면적으로 바라보는 구조로 전환되었다.

 

장르별 특성을 수용하고 구현하는 공연 공간
이러한 서구식 극장이 도입되기 전, 한국의 전통예술 공연은 관객과 연희자가 분리되는 형식이 아닌, 모두가 같은 공간에서 함께하는 형태가 대부분이었다. 야외 공연이 행해지는 곳은 공연 공간의 형식 또한 고정 건축물 개념이 아닌, 공연 때마다 임시로 마련하는 가설(假設) 공연장의 형태였으나, 근대 이후 새로운 극장 문화가 형성됨에 따라 우리의 전통예술 공연 역시 서구식 극장에 분별없이 수용됐다. 그 과정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많은 문제점과 공간 적정성(適正性) 논란이 꾸준히 제기돼왔다. 다행히 최근 다양한 규모의 전통예술 전용 공연장이 건립되고 있어 긍정적이다. 하지만 전통예술 공연을 수용하는 전용 공간으로서 적합한 구조(객석, 무대 등)와 음향적 특징을 갖추고 있는지 깊은 성찰이 필요하다.


전통공연 공연장을 이야기할 때 우리가 눈여겨볼 만한 중요한 사항 중 하나는 해당 공간이 극·음악·무용 등 다양한 공연 형태를 수용할 수 있는 ‘종합형 극장(total theatre)’ ‘다목적 극장(multi-purpose theatre)’으로 활용 가능한지 여부다. 객석과 무대의 동반적인 유연성(柔軟性) 즉 공연 형태에 따라 무대와 객석의 구조를 유연하게 변경해 활용하는 것은 공연 공간에서 점점 중요해지고 있다. 더불어 야외에서 벌어지던 공연을 실내 무대에서 구현할 때, 제약이 되는 요소가 없는지도 따져볼 일이다. 일반적으로 판소리에는 ‘돌출(thrus) 무대’, 창극에는 ‘프로시니엄(proscenium) 무대’, 전통무용은 ‘원형(arena) 무대’, 국악관현악은 프로시니엄 무대를 변형한 ‘엔드 스테이지end stage’가 적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객석 규모로 나누면, 판소리와 국악관현악은 소극장, 창극은 대극장, 전통무용은 중극장이 적합하다고 보았다. 그러나 현대의 극장 건축은 무대와 객석을 하나의 통합된 개체(個體)로 보며, 다양한 무대 디자인과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가변무대(可變舞臺)는 무대의 형식이 공연 장르를 제한하는 요소가 아님을 보여준다. 공연 공간은 무대와 관객 사이에서 활발한 교류와 공감을 만들어낼 수 있도록 구성되어야 하며, 극장 건축의 제한을 뛰어넘어 무용과 판소리·창극·관현악 등 다양한 공연 장르에 대응할 수 있는 방안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국악기의 연주 기법으로 발현되는 미세한 떨림이나 판소리의 사설(辭說)·추임새 등 소리에 대한 정보가 명료하게 전달되는 것은 무척 중요하다. 국악관현악 연주를 구현하는 차원에서는 음량과 음색을 집중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이에 따라 설계 단계부터 음에 대한 적절한 울림과 균형, 명료성이 강조되는 공간으로 기능할지 충분히 검토하고 계획을 세워야 한다.

 

‘울림’의 중요성
공연 공간에서 소리의 웅장함과 감동을 느끼기 위해 주요한 요소로 꼽히는 것은 공간의 ‘울림’이다. 공간 안에서 소리가 발생하면 그 소리는 실내 전체로 확산(擴散)과 반사(反射)를 반복하면서 나아가 ‘정상(頂上) 상태’에 이르게 된다. 그 소리가 멈추면 그 순간부터 소리는 감쇠(減衰) 과정을 거치면서 소멸하는데 이러한 감쇠 과정에서 들리는 소리를 공간의 울림, 즉 ‘잔향(殘響)’이라 한다. 공연장에서 감상하는 소리는 악기 자체의 소리에 이러한 공간의 잔향이 더해져 만들어진다. 잔향은 각 공연 장르를 충족시킬 수 있을 만큼 충분해야 한다. 소리의 전달이 명료하고, 공간감을 주는 입체적인 울림을 지녀야 하며, 공간에 그 울림이 가득 차 소리가 풍부하게 전달되어야 한다.

 


사용 목적에 적정한 잔향 시간은 공연 공간의 필수 조건과도 같다. 그렇다면 국내 대표적인 전통예술 전용 공연장의 잔향 시간은 얼마나 될까. 국립국악원 예악당(체적 30,800m3·714석) 1.00초, 국립남도국악원 진악당(22,810m3·586석) 1.09초, 국립부산국악원 연악당(23,696m3·686석) 1.18초, 국립부산국악원 예지당(5,489m3·276석) 0.85초 등으로 모두 규모에 비해 잔향 시간이 짧은 편이다. 공연 공간에 적정한 울림이 없으면 실내 음향을 기준으로 볼 때 예술 공연보다는 강연에 더 알맞은 조건인 셈이다. 이 때문에 전통예술 공연에서 전기적 확성장치의 도움을 받아 정제(整齊), 증폭(增幅), 가공(加工)된 소리를 전하게 되는 것이다.


2017년 2월 재개관한 국립국악원의 우면당(230석)은 이러한 울림의 한계를 개선하고자 한 사례다. 마이크나 스피커 등 전기적 장치가 없는 ‘자연음향(自然音響) 공연장’을 구현하고자, 체적 대비 사용 목적에 적정한 1.12초의 잔향 시간을 확보하도록 설계됐다. 리모델링 이전의 0.87초에 비해 잔향 시간이 길어지면서 소리가 풍성해지고 부드러워졌다. 국립국악원 우면당은 전통공연 공연장의 음향 제(諸) 조건에 새로운 안을 제시한 사례로 꼽힌다.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역시 지난 4월 본격적인 리모델링에 들어갔다. 해오름극장의 리모델링 방향에 대해 음향 전문가로서 단연 눈에 띄는 부분은 ‘적정 잔향 시간을 확보하고 무대로부터 발생된 음의 충만성, 풍부성 및 명료성이 강조되는 공간으로 형성’한다는 대목이다. 이를 위해서는 공연 공간으로서의 건축음향 제 조건에 대해 더욱 적극적이고 단계적인 검토를 실시해야 할 것이다. ‘공연장의 수준’을 결정하는 데는, 각각의 공연 공간이 예술 장르 특성에 적정하게 설계·건립되었는지 여부가 매우 중요하다. 무대와 객석이 상호작용할 수 있고, 공간의 울림이 관객의 마음속에 커다란 울림으로 이어지는 해오름극장이 되기를 기대한다.

 

 

김남돈 극장 컨설턴트, 공학박사(건축음향). 예술의전당, 고양아람누리, 유니버설아트센터, 경주·천안예술의전당, 대구콘서트하우스 등의 건축음향 컨설팅을 실시했다.
그림 조성헌 일러스트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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