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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6월호 Vol. 341

의자에 앉아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

예술서적┃김신 '당신이 앉은 그 의자의 비밀'

 

 

 

의자는 사람과 물리적으로 가장 가까운 가구다. 의자의 역사는 곧 거기 앉는 사람의 역사이기도 하다. 디자인 평론가 김신이 그 역사와 의미를 간결하게 풀어낸 ‘의자 탐구서’를 펴냈다.


이사하려고 짐을 싸면서 헤아려보니, 4년 동안 의자가 7개 늘었다. 엉덩이가 하나뿐인데도 그렇다. 의자는 자연 증식하는 생명체처럼 내 공간을 점유해갔다. 고양이는 겨우 한 마리에서 두 마리가 되었을 뿐인데. 의자의 번식력이 더 강하구나.


그중 내 인생을 바꿨다 싶을 만한 의자는 한 개다. ‘레이지보이’사에서 나온 1인용 리클라이너 소파는 앉는 사람이 가장 편안해하는 자세에 맞게 다리받이와 등받이를 각각 여러 단계로 조절할 수 있다. 이 의자에 앉아 책 읽고 잠자고 놀고 다시 책 읽는다. 이 의자 위에 답삭 올라앉아 한 시절을 온통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그리하여 책 ‘당신이 앉은 그 의자의 비밀’을 읽으면서도 뒤적뒤적 레이지보이에 대한 글을 찾았지만 보이지 않는다. 하긴 레이지보이 의자는 디자인 측면에서는 내세울 게 없는 물건이지. ‘휴식을 위한 기계’라고나 할까. 하지만 이 표현은 레이지보이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니다. 이미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가 자신이 디자인한 아름다운 의자, LC4 셰즈 롱그(LC4 Chaise Longue)를 설명하면서 한 말이다. 그리고 르 코르뷔지에는 이미 자신이 디자인한 집을 ‘거주를 위한 기계’라고 표현한 바 있다. 이 책을 읽으며 알았다.


저자인 김신은 디자인 평론가다. 예술학과에서 미술이론을 전공하고, 1994년 월간 ‘미술공예’ 기자로 입사해 다음 해 월간 ‘디자인’으로 옮긴 뒤 2011년 2월까지 근무했다. 무려 199회 동안 잡지를 만들었다고. 말 그대로 디자인계 동향을 알 수 있는 최첨단에 있었던 셈이다. 그는 자신이 의자 디자인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로 ‘미술공예’ 편집실에 붙어있던 비트라 뮤지엄이 제작한 의자 포스터를 들었다. 개성적이고 아름다운 각종 의자들이 인쇄된 포스터를 보며 저자는 “디자인의 세계에 처음 입문”했다고 한다.


의자라는 건 요물이다. 머리부터 다리까지 의자는 마치 사람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팔을 벌려 언제든지 안을 수 있다는 자세를 취하는데, 무심코 안겼다가는 눌러앉기 십상이다. 지하철의 긴 의자든, 공원의 벤치든, 집안의 안락의자든 상관없이 앉으려는 그 순간에는 ‘오직 너만을 위해 존재하고 있어’라는 표정을 짓는다. 저자는 의자를 “매우 개인적인 사물”이라고 말한다. 의자는 내가 있을 자리이고, 내가 앉을 의자가 있는지 없는지는 내가 환대를 받는지 홀대를 받는지 알 수 있는 척도다. 의자는 생김새조차 사람을 닮았다. 팔-팔걸이, 다리, 등받이-몸통, 좌석-엉덩이, 목받침대-머리로 일대일 대응된다. 그래서 의자에서 아름다움을 느끼는 건 어쩐지 인간적으로 느껴진다. 어떤 물건이 안 그렇겠냐만 의자라서 더더욱.


그러나 의자 디자인에 대한 관심은 대중적이지 않다. 저자는 말한다. “한국인이 관심을 갖는 디자인 분야는 옷, 스마트폰, 자동차처럼 주로 밖으로 가지고 다니는 물건에 집중돼 있었다”라고. 그러나 지금은 분위기가 달라졌다. 인테리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카페가 생활의 중심으로 들어오면서 기능적이고 아름다운 의자에 눈독 들이는 이가 많아졌다. 그러한 의자의 종류와 계보가 알고 싶다고? 그렇다면 이 책이 제격이다.


저자는 의자의 시작을 신석기시대에서 찾는다. “일하지 않고 몸을 한 곳에 가만히 둘 수 있는 사람” 즉 권력자를 위한 가구로 시작한 의자는 산업화 시대가 되어서야 누구나 가질 수 있게 된다. 수많은 단순노동자와 화이트칼라가 양산되었기 때문이다. 저자에 따르면, “그릇과 옷·칼·숟가락 같은 인류의 온갖 도구는 쓸모라는 목적으로 태어나 점차 지위의 상징이라는 새로운 기능을 찾아가고 있어요. 이와 달리 의자는 단지 지위를 표시하는 상징물로 태어나 완전히 실용적인 물건으로 바뀐 독특한 사물입니다.”


이 책에는 유명한 디자인의 의자들과 의자 회사가 소개된다. 이 책이 주목하고 있는 것은 디자이너의 개성이 담기기 시작한 20세기 이후의 의자들이다. 의자의 사진과 간결한 설명을 보면 우리가 카페에서, 회사 로비에서, 바닷가에서, 영화에서, 드라마에서 본 의자들의 정체를 알게 된다. 의자의 맥락만 따라가도 새롭게 보이는 것이 한두 개가 아니다. 의자의 역사는 그 의자에 앉았던 사람의 역사이기도 하니까.

 

박사 북 칼럼니스트. TV 및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책과 문화를 소개해왔다. 저서로 ‘가꾼다는 것’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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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 너무 가깝고 흔하게 존재해 특별하다고 느끼지 못하는 사물일수록 그 역사와 종류에 대해 아는 일은 소소한 즐거움을 준다. 의자가 그렇듯 ‘종이’도 디자인 영역에서는 풀어낼 이야기가 많은 매력적인 오브제다. 일본의 에세이스트 오다이라 가즈에의 ‘종이의 신 이야기’(오다이라 가즈에 지음·오근영 옮김, 책읽는수요일, 2017)는 종이를 만들고 사랑하는 이들과 그 종이의 이야기가 빼곡히 담긴 책이다. 종이는 그 자체의 질감과 인쇄된 패턴 등으로 단일 오브제로서의 아름다움을 확보하는 동시에, 포장지·우유병 뚜껑 등 일상의 조역을 맡으면서도 소소한 감동을 준다. 차분한 글과 사진은 물론 앨범지·만화용지·크래프트지 등 다양한 종이로 인쇄된 페이지는 읽는 맛을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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