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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6월호 Vol. 341

보이는 것 그 이상의 예술

세계무대 ┃MAXXI 21세기 국립 로마 현대미술관

 

 

 

“더 이상 과거의 유물에 기대어 살아갈 수 없었다.”
역사 속의 도시가 아닌 미래를 주도하는 현대적인 모습으로 거듭난 로마의 또 다른 얼굴을 마주하다.


이탈리아에서 최신 예술을 가장 빠르게 만날 수 있는 곳이 어딜까 생각하면 대부분 베네치아나 밀라노를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도시 전체가 역사를 품고 있는 박물관인 로마에서 만나는 현대미술은 과연 어떨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을 것 같은 콜로세움, 판테온, 바티칸 박물관 등 한결같은 모습을 보여주는 도시에서 마주하는 컨템퍼러리한 현대미술은 어떨까.

 

더 이상 과거에 기대 살 순 없다 MAXXI 21
지난 4월 18~22일은 로마의 2771번째 생일 기념 축제 기간(Natale di Roma)이었다. 이렇게 유구한 역사를 간직한 로마는 과거를 존중하고 과거의 유산과 함께 살아가는 대표적인 도시다. 하지만 로마는 이제 더 이상 과거만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다가올 미래를 준비하고 또 보여주기도 한다. 최첨단 건물, 컨템퍼러리 아트와는 거리가 먼 듯한 이곳에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21세기 미술의 현주소와 앞으로 나아갈 미래를 보여줄 거장들의 작품을 전시하는 감각적인 박물관이 있다.


‘막시MAXXI’라 이름 붙은 ‘21세기 국립 로마 현대미술관(Museo Nazionale delle Arti del XXI Secolo)’은 로마가 역사 속의 도시가 아닌 미래를 주도할 수 있는 현대적인 모습으로 거듭나기 위한 ‘플라미니오(Flaminio) 문화·예술 지역 현대화 계획’ 중 하나로 2010년 완공되었다.


MAXXI 재단의 이사장 피오 발디(Pio Baldi)는 “우리는 오랜 시간 ‘로만 클래식(Roman Classic)’으로 세상과 소통했다. 하지만 더는 과거의 유물에 기대어 살아갈 수 없었다. 현대미술의 발전을 위해 우리에게는 프랑크 게리(Frank Gehry)의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Guggenheim Bilbao Museum)처럼 미래 지향적이며 혁신적인 미술관이 필요했다”라고 언급하며 MAXXI의 완성을 위해 헌신적으로 기여했다.


이처럼 21세기 건축 및 예술의 발전을 도모하고 창조적인 현대 예술 작품을 수집·보존·연구·전시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된 MAXXI는 2004년 프리츠커 건축상(The Pritzker Architecture Prize) 수상자이자 우리에겐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의 건축가로 더 잘 알려진 이라크 출신의 건축가 자하 하디드(Zaha Hadid)의 작품으로, 2010년 영국 왕립 건축가 협회(Royal Institute of British Architects)의 스털링 상(Stirling Prize)을 수상했다. 내부의 계단과 구조물은 흑과 백으로 구성되어 깔끔하고, 곡선을 사용해 독특하다. 설치 작품에 따라 다른 형태로 변형이 가능해 ‘길과 통로’의 건축물이라고도 한다.


미술관은 자하 하디드 특유의 비정형 건축 스타일이 잘 드러나 있다. 노출 콘크리트와 예각을 사용해 세련미를 더한 외관 디자인. 특히 건물 우측 상단에 전면을 유리로 마감한 전시 공간이 눈에 띈다. 건물로 들어서면 천장까지 뚫려 있는 로비가 그 자체로 오픈 전시장이 되기도 하고, 2개의 전시동을 이어주는 나선형 계단은 유려한 곡선으로 건물을 타고 흐르는 것 같은 느낌이다.

 

협업·소통·참여·실험적 전시
필자가 MAXXI를 방문했을 때에도 역시 상설전을 비롯해 미디어, 건축 관련 전시를 비롯해 다양한 분야의 기획전이 진행되고 있었다.
그중 막시와 이탈리아 우주국(Italian Space Agency), 국립 핵물리 연구소(National Institute of Nuclear Physics), 그리고 아르헨티나 출신으로 국제적 명성을 쌓고 있는 건축가이자 예술가인 토마스 사라세노(Tomas Saraceno)의 협업으로 이루어진 전시 ‘Gravity. Imaging the universe after einstein’이 가장 눈길을 끌었다. 사라세노는 예술, 건축, 자연과학과 공학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관련 분야 전문가들과 긴밀하게 협업하고 예술적 실험을 통해 시각화하기 어려운 주제들을 다루는 작가로 유명하다. 언뜻 보면 어려운 주제이지만 다양한 영상과 흥미로운 전시물 덕에 아인슈타인이 가져온 과학적 혁신의 본질에 대해 사유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우주에 와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암흑 속의 전시실은 작품에 더욱 몰입할 수 있도록 했으며, 과학적 시뮬레이션을 결합한 상징적인 작품들은 우주의 이미지를 창의적으로 보여주고 또 상상하게 만들었다.


지안 페라리 갤러리(Gian Ferrari Gallery)에서 진행되는 밀토스 마네타스(Miltos Manetas)의 ‘Internet Paintings’ 또한 흥미로운 전시였다. 계단을 올라 전시실로 들어서면 셀카로 채워진 세계를 묘사하는 커다란 캔버스를 통해 페이스북이 지켜보는 현실, 구글(Google)이 기록한 전 세계의 거리 등을 보여준다. 그리고 아직 작업 중인 것처럼 보이는 캔버스와 물감, 의자를 비롯해 한편에는 컴퓨터로 무언가 작업을 하는 것 같은 몇몇 사람도 마주하게 된다. 이 전시에서 네트워크를 통해 수집된 이미지 콜라주는 시간의 경과에 따라 변수를 구성하고, 작가가 독창적으로 해석한 가상세계는 실제 세계를 분석하고 해독하는 과정을 통해 다시 정교하게 만들어진다. 그리고 그 표현은 현재의 새로운 도상 시스템을 창조하고, 인터넷 그림은 캔버스에 생동감을 불어넣는다. 2009년 베네치아 비엔날레에서 첫 인터넷 파빌리온(Internet Pavilion)을 설립한 것으로 유명한 마네타스에게 창작 과정에서 빚어지는 의사소통은 필수적인 요소다. 이번 전시에서도 마네타스의 작품은 실제 웹 플랫폼이 되어 마치 컴퓨터 앞에 앉아있는 것처럼 관람객이 작품과 멀티미디어 콘텐츠를 탐색할 수 있도록 해주며, 이를 통해 관람객의 참여와 공유를 이끌어낸다.


다양한 미디어와 설치미술, 사진과 문서를 볼 수 있는 ‘Home beirut. Sounding the neighbors’ 또한 의미 있는 전시라 할 만하다. 이 전시는 베이루트Beirut라는 도시를 통해 분쟁과 갈등의 역사를 보여주며, 전쟁의 기억이라는 실존적인 주제를 다루고 있다. 최근의 갈등 사태에 대한 비판적인 반영을 비롯해 문화의 다양성, 추억의 보관과 재현, 미래에 대한 전망 등을 레바논 예술가 36명이 100여 작품을 통해 다양한 형태로 표현하고 있다. 도시 재개발과 사회 재활의 특별한 과정을 통해 도시의 미래를 창출하려는 예술가·음악가·디자이너 및 출판사의 목소리를 들려준다. 전쟁의 참상을 경험한 도시이지만 지난 수십 년 동안 역동성과 문화적 활력의 모범을 보여준 베이루트의 단면을 느낄 수 있는 인상적인 전시다.


건축과 관련해서도 두 개의 전시가 진행되고 있었는데, ‘Zevi’s Architects. History and counter-history of Italian Architecture 1944-2000’은 탄생 100주년을 맞이한 이탈리아 건축가 브루노 제비(Bruno Zevi)와 관련한 전시다. 이 전시회는 전후부터 20세기 말까지 이탈리아 건축에 대한 새로운 개관을 비롯해 제비의 광범위한 비판과 글쓰기, 정치적·사회적 열정과 시민 역사에 공헌한 그의 존재를 재조명하는 전시다.


다른 하나는 ‘Disegno ergo progetto. Ideas and shapes around architecture’전으로, 일련의 건축 도면을 보여줌으로써 건축가가 도면이라는 매체를 통해 설계에 도달하는 방법을 보여준다.
이외에도 사진·영화·비디오·역사적인 포스터·오리지널 LP 및 오디오에 나타난 이탈리아 음향 전위예술의 기록인 ‘When sound becomes form’전은 1950년에서 2000년 사이 이탈리아의 음향 실험에 관한 이야기를 전시장과 아카이브에서 들려주는 매우 흥미로운 구성을 선보이고 있었다.

 

 

More than meets the eye
막시 재단 이사장은 기존의 다른 미술관처럼 단순히 작품을 전시하기 위한 곳이 아니라 현대의 미술을 둘러싼 세계의 전혀 다른 분야 언어들을 비교 연구하는 곳으로 만들어가겠다고 밝힌 바 있다. 1998년 현대 건축 예술을 위한 국가 차원의 적극적인 지원 결정 이후, 수많은 근·현대 건축가의 자료를 수집해 방대한 아카이브를 구축했으며, 국제적 시각예술 활동의 결과물을 수집·보존·전시해 연구를 진작하며 관련 활동 및 각종 전시회의 주관을 목표로 운영해오고 있다. 향후 개최될 막시의 전시 목록을 보면, 젊은 작가들의 독립적이고 실험적인 전시 리스트가 눈에 띈다. 또한 아프리카나 리투아니아 등 다양한 지역 작가들과의 협업도 여전히 시도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막시는 건물 외벽에 붙어있는 문구를 증명하듯 보이는 것 그 이상으로 눈에 보이는 로마가 아니라 새로운 로마를 만나는 시간을 만들어준다. 전통·미래·혁신 그리고 일상을 그리는 사람들과 소통하기 위해 끊임없이 대화의 창을 열어놓는 막시의 꾸준한 행보에서 현대미술을 향한 진정성이 느껴지는 이유를 대변해주는 문장이 아닐까 싶다.

 

이현정 고려대학교에서 미술사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박물관 학예사로 근무, 이후 서울시청에서 문화 공간 구성과 시민 참여 프로그램 기획 및 홍보를 담당했다. 현재 고려대학교에서 박물관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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