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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6월호 Vol. 341

오감 발달 우리 아이 음악놀이터

리뷰 3┃국립국악관현악단 어린이 음악회 '엔통이의 동요나라'

 

목청 높여 노래하고 손뼉 치고 춤추며 아이들은 우리 국악을 온몸으로 받아들였다.
2018년 5월 2~12일 | 국립극장 하늘극장

 


“아르랑아르랑, 달래달래 엔~통!”
어린이날을 앞둔 5월의 어느 날, 아이들이 입을 모아 마법의 주문을 외치자 푸른 하늘을 향해 활짝 열려있던 하늘극장의 천장이 스르르 닫히기 시작했다. 탄성을 지르는 건 아이들뿐만이 아니었다. 국립국악관현악단의 흥겨운 연주가 시작되자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순식간에 엔통이가 안내하는 환상의 세계로 빠져 들어갔다.


5월 2일부터 12일까지 하늘극장 무대에 오른 어린이 음악회 ‘엔통이의 동요나라’는 ‘땅속 두더지 두디’(2013)와 ‘아빠사우루스’(2016)에 이은 국립국악관현악단의 야심작이다. 이번 무대의 주인공은 노래하고 뛰어노는 것을 좋아하는 여섯 살 아이 교은이. 교은이는 두 달 전 태어난 동생이 부모님의 관심을 몽땅 빼앗아갔다고 생각한다. 그런 교은이가 엄마 아빠에 대한 서운함을 노래하자 신비한 요정 ‘엔통이’가 그녀를 찾아간다. ‘어디에도 없고 어디에나 있는’ 노래 요정 엔통이는 교은이와 함께 신비한 노래 여행에 나서서, 교은이가 노래를 통해 감정을 풀어내고 다친 마음을 스스로 회복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산에 피어도, 들에 피어도, 길가에 피어도 모두 다 꽃이야.” 극장을 찾은 아이들 역시 이 여행에 동행해 목청 높여 노래하고 손뼉을 치고 춤을 추면서 제 나름의 감정을 마음껏 쏟아냈다.


돌이켜 보면 우리 모두 자라면서 한 번쯤은 부모님의 관심을 갈구하던 시절이 있었을 것이다. 교은이가 느끼는 이 서운함은 또래의 아이들만이 아니라 같이 온 어른들도 고개를 끄덕이게 했다. 그러나 극장을 찾은 어른과 아이 모두를 함께 노래하게 만드는 힘은 비단 스토리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이 신비한 여행 속에서 교은이가 부모님의 어린 시절로 돌아가서 함께 뛰어놀며 부르는 동요는 세대를 초월해 사랑받는 노래들이었다. 이 공연이 어른아이 할 것 없이 모두를 하나로 묶어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보다도 노래의 힘이 컸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우리 집에 왜 왔니’ ‘섬집아기’ 같은 친숙한 노래가 국악관현악으로 편곡되어 자연스럽게 객석으로 다가갔다. 반응이 가장 뜨거웠던 것은 ‘상어 가족’. 쉽고 재밌는 후렴구와 배우들의 율동, 구성진 연주가 무대를 가득 채우자 노래를 따라 부르는 아이들의 목소리도 커져갔다.


‘국악관현악’이라고 하면 낯설고 어색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아이들은 친숙한 노래가 흘러나오자 먼저 몸으로 반응했다. 이는 교육적 측면에서도 상당히 긍정적이다. 국악에 관한 지식과 정보를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국악을 받아들였다 뜻이기 때문이다. ‘엔통이의 동요나라’ 음악감독 함현상은 「미르」 2016년 11월호에 기고한 글을 통해서 국악 동요 작곡에 대한 철학을 밝힌 바 있다. 그는 “마치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엄마의 품이 가장 포근함을 아는 것처럼” 국악에 대한 ‘느낌’을 갖게 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역설한다. 이런 진지한 고민의 결실이 이번 무대를 통해서도 잘 전달된다. ‘숨바꼭질’ 놀이를 할 때에 관객석으로 숨어든 엔통이를 숨겨주기도 하고, 동생에 대해 ‘미워, 미워’라고 노래하는 교은이와 손을 맞잡고 토닥여주기도 하면서 아이들은 우리 국악의 느낌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시간을 가졌다. 이러한 감각과 경험이 아이들에게는 훗날 음악 교과서 속 한 줄의 설명을 외우는 것보다 훨씬 더 생생한 음악적 자양분이 될 것이다.

 


유아기의 음악적 경험은 평생의 음악적 기호를 결정한다고 한다. 그래서 유아기에는 아이들이 갖고 있는 적성이나 흥미, 발달단계를 고려해서 적절한 음악적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어린이 음악회 ‘엔통이의 동요나라’는 단순한 전통음악의 개념을 넘어서 좀 더 종합적인 형태의 국악, 즉 악가무 일체로서의 예술 경험을 아이들에게 선사한다. 이런 관점에서 생각해보자면 아이들의 조화로운 예술 경험과 발달을 도울 수 있는 것이 바로 우리 국악 공연인데, 오늘날의 어린이 국악 음악회 공연 실정은 척박하기 그지없다. 그것이 ‘엔통이의 동요나라’와 같은 무대가 더욱 귀하고 반가운 이유다.


그러나 내용상 아쉬운 점이 없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이제 어린이극도 전형적인 젠더 이분화를 탈피해야 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교은이의 엄마는 육아와 온갖 가사노동으로 바쁘고 교은이의 아빠는 퇴근 후 소파에 누워 TV와 스마트폰만 바라본다. 이러한 인물 설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다. 거꾸로 생각해보면 대부분의 아동극 속에서 부모의 젠더 역할이 이렇게 표현된 이유가, 이것이 바로 많은 아이들이 가장 널리 공감하고 감정이입할 수 있는 ‘현실 속’ 젠더 역할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양한 형태의 가족이 존재하는 오늘날, 아이들에게 사회를 보는 유연한 시각을 길러주기 위해서는 교육 콘텐츠 자체가 가진 관점도 변해야 하고, 더욱 근본적으로는 실제 우리 가정 내의 모습도 변해야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엔통이의 동요나라’가 갖고 있는 ‘국악 동요’라는 형식상의 유연함을, 내용상의 유연함이 미처 따라가지 못하는 것으로 보여 안타까움도 있었다.


어찌 되었건 공연에 참가한 모두가 애쓰지 않아도 절로 웃음 짓게 하는 마력을 지닌 작품임엔 틀림없었다. 특히 국립국악관현악단원들은 적재적소에 음악을 연주해줄 뿐만 아니라 대사까지 더해가며 상황에 맞춰 섬세하게 연출된 연기력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이것이 연기 또는 연출이 아니라 정말 아이들과 호흡하는 가운데 자연스럽게 나오는 반응임을 점차 깨닫게 되었다. 한마디로 객석과 무대의 경계가 허물어진 가운데 모두가 흥겨운, ‘국악’의 맛이 자연스럽게 녹아있는 공연이었다.

 

이채은 ‘현재’의 삶을 바꾸는 ‘고전’을 공부하기 위해 읽고 쓴다. 현재는 서강대학교에서 판소리계 소설을 중심으로 조선 후기 문학과 예술을 공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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