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소리 다섯바탕 현대화 작업의 마지막 작품, 그 완성의 지점은 바로 판소리였다.
2018년 4월 25일~5월 6일 | 명동예술극장
판소리로 귀향한 창극누구보다 기다리던 공연, 무엇보다 기대하던 작품이다. 2006년에 초연되고 2011년 5월까지 해마다 국내외 여러 무대에 오른 창극 ‘청’ 이후, 국립창극단은 창극으로서의 ‘심청가’를 더는 공연하지 않았다. 하여 이번 창극은 꼭 7년 만에 다시 만난 ‘심청가’다. 이 사실만으로도 공연을 준비한 이들의 부담이 작지 않았을 것임은 능히 짐작할 수 있다. 이전의 ‘청’이 창극 양식을 확립하는 데 공이 크다는, 아주 높은 평을 받았던지라 이번 ‘심청가’가 과연 어떤 모습으로 거듭날지 기대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연출가 손진책과 작창자 안숙선은 창극의 근본인 소리를 제대로 들려주겠노라 선언했다. 결과는 성공이었다. 화려한 무대로 업그레이드하려 들지 않고 판소리 자체를 들려주는 데 집중한 제작진의 고집은, 그 어느 대형 음악극보다도 웅숭깊은 창극의 진수를 빚어냈다.
김성녀 예술감독 부임 이후 국립창극단은 그야말로 다채로운 행보를 보여왔다. 다른 장르의 작품들을 국내외 할 것 없이 창극 안으로 끌어왔고, 해외 연출가의 손에 맡기기도 여러 번이었다. ‘창극 현대화 작업’은 그렇게 파격적 실험을 거듭하며 진행되었고, 그 여정의 마지막 작품이 이번 ‘심청가’다. 돌고 돌아 마침내 돌아온 완성의 지점이 바로 판소리인 것이다. 근래에 국립창극단에서 올린 작품 중 판소리의 음악성을 가장 잘 살렸다고 생각되는 것은 ‘트로이의 여인들’이다. 뜻밖에도 그 성과는 싱가포르 연출가 옹켕센이 이루어낸 것이었다. 놀라운 한편, 헛헛했다. 갈수록 화려한 세트와 퍼포먼스에 몰두하는 우리 창극계에 어떤 일침을 가한 느낌이랄까. 우리가 잊은 소리의 예술성이 외국인 연출가에 의해 재발견된 것이 적이 고마우면서도 아쉬움을 떨칠 수는 없었다. 이번 ‘심청가’는 그 아쉬움에 대한 국립창극단의 응답이기도 했다.
잘 웃고 잘 울었다
“가군(家君)의 손길 잡고, 유언허고 죽더니라.” 극의 초반에 곽씨 부인이 유언하기 전 도창자가 시작한 저 소리. 진양조장단에 얹혀 한숨처럼 던져진 ‘가군의’ 한마디를 듣자마자, 객석 또한 신음하듯 옅은 추임새를 흘리며 무장해제 상태가 되어버렸다. ‘아, 오늘은 소리만 들으라는 얘기구나.’ 눈대목이 나올 때마다 눈을 감으며 소리에 몰입할 수 있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무대장치가 특별히 눈여겨볼 것 없이 소박한 까닭도 그즈음에 이해되었다. 이번에는 관객(觀客/보는 손님)이 아니라 청중(聽衆/듣는 무리)이 돼달라는 제작진의 요청, 알아듣기 어렵지 않았다.
무대는 매우 소박했다. 아무것도 칠하지 않은 원목으로 평상 두어 개와 작은 가구 몇 개를 짜서 올려놓았고, 그것들로만 모든 장면을 표현했다. 소리꾼들은 처음부터 그 화선지 같은 무대 위에 모두 나와 섰다. 배우이기 이전에 자부심 넘치는 소리꾼인 그들은 저마다 부채 하나씩을 들고 색칠을 준비하고 있었다. 참 든든했다고나 할까. 소리꾼들의 역량만으로도 두어 시간쯤은 너끈히 채우고 남으리라 자신했을 테다. 실로 그랬다. 이야기 흐름의 마디마디에서 순결한 원목 세트에는 은근한 색이 입혀졌다. ‘청’에서 무대 자체가 크게 회전하며 거대한 배를 만들어냈던 것에 비하면, 이번 ‘심청가’에 등장한 인당수와 그 위에 뜬 배는 차라리 추상에 가까운, 상징적인 오브제로 보이는 세트였다. 도창자가 ‘범피중류’를 부르기 시작하자 무대는 이내 격랑이 휘몰아치는 인당수로 변했다. 심청이 물에 뛰어든 후, 무대에 남은 모든 이가 객석 쪽으로 몸을 돌려 풍랑에 뜬 꽃잎처럼 사라져가는 그녀의 마지막을 바라볼 때, 객석은 그대로 물에 잠겨버렸다.
그처럼 무대 세트에 구애하지 않는 소리의 저력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고전의 힘이다. 판소리나 창극처럼 이른바 고전에 해당하는 이야기로 공연하는 작품은 관객 대부분이 이미 대강의 서사를 알고 있다는 전제하에 시작한다. 결말을 궁금해하며 숨죽여 지켜보는 것이 아니다. 어떻게 웃기고 또 어떻게 울리고 종국에는 어떻게 풀어줄지가 관건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다가 창극의 본령이 소리에 있음을 안다면 귀를 더욱 열어야 할 일이다. 소박하고 단출한 무대를 만들어놓고 제작진은 소리 잘 들어주기를 주문한 것이었다.
곽씨 부인은 내내 그곳에 있었다
고수는 통상 소리꾼의 왼편에 앉는다. 객석에서 보면 오른편, 공연 용어로 이른바 상수라 불리는 위치다. 이번 창극 ‘심청가’에서는 고수가 하수에 앉았고 도창자가 상수에 주로 서 있었다. 고수가 무대 전면에 등장하는 것도 창극에서는 흔한 그림이 아닌데, 보통의 판소리 공연에서처럼 상수에 앉는 것이 아니라 그 자리를 도창자에게 내준 것이다. 판소리 공연에서 고수는 단순한 반주자에 그치는 존재가 아니다. 소리꾼의 조력자이면서 어떨 땐 연출자의 역할을 맡기도 한다. 한마디로 소리꾼을 ‘바라지’하는 사람인 것이다. 그 자리에 도창자가 선 것은 도창으로 다른 소리꾼들을 바라지하겠다는 뜻이리라. 고수는 장단을 맡고 도창은 서사를 맡아 긴 이야기를 함께 이끌고 가겠다는 의미일 것이다. 도창자는 멀찍이 서서 무대를 지켜보다가 눈대목에 이르면 도창(導唱) 본연의 역할을 수행할 뿐 아니라, 간혹 인물들 사이로 끼어들어 스태프인 듯 조연 배우인 듯 자연스럽게 무대 위를 거닐었다. 관객의 눈에 비친 그 모습은 주로 곽씨 부인의 형상이었다. 초반부에 비통하게 죽은 그녀는 이후 딸의 성장을 그처럼 바라지하고 있었다. 열다섯 살이 된 심청의 뒤로 은근히 다가가서 머리댕기를 매주던 그녀의 모습은, 근래에 원통하게 가족과 영결한 많은 이들의 모습과 겹쳐지는 아릿한 그림이었다. 잠시 숨을 쉴 수 없었다. 그렇게 어미는 내내 그 곁에 있었다.
도창자가 먼저 소리를 내고 극중 인물이 자연스럽게 이어 부르는 방식은 사실 새로운 것이 아니다. 혼자서 전곡을 소화해야 하는 판소리 작품을 여럿이 나누어 부르기로 시도한 때, 즉 창극이란 것을 처음 짤 때부터 그렇게 했을 것이다. 도창이 극의 진행을 방해한다는 이유로 불필요하다 지적한 이들도 적지 않았으나, 도창이야말로 창극 음악의 중심이다. 창극의 음악성을 풍부하게 하려면 대본을 구성할 때에 좋은 소리 대목(더늠*)을 많이 쓸 수밖에 없는데, 좋은 더늠의 사설은 대체로 관찰자의 시선에서 시작된다. 그러니 공력 높은 소리꾼이 나서서 이끌어야 음악적 효과가 극대화되는 것이다. 문제는 관찰자로서의 도창자가 낸 소리가 극중 인물의 소리로 얼마나 자연스럽게 전환되는지다. 이에 관한 고민의 결과로 김명곤 연출가는 1999년의 ‘심청전’에서 도창이 극에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 있게 한 바 있고, 임진택 연출가는 2002년의 ‘춘향전’에서 도창의 역할을 극중 인물에게 맡겨보기도 했다. 선례에 비추어 볼 때, 이번 ‘심청가’의 도창은 최소한으로 자연스럽게 극에 개입하면서도 도창 본연의 역할에 매우 충실했다. 불편한 진실 같은 얘기지만, 도창자가 티켓파워를 가진 명창이어야 한다는 점도 중요하게 작용한다. 그만큼 소리가 창극의 성패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도창자를 극의 초반부에 무대에서 사라진 곽씨 부인으로 보이게끔 설정한 것은 도창의 역할을 최적화할 수 있게 한 절묘한 선택이었다.
고수와 도창자가 다시 자리를 바꾼 것은 인당수에 빠져 죽은 심청이 수궁에서 환생해 곽씨 부인을 만난 후, 즉 공연의 2부가 시작되면서였다. 어미는 그제야 안심할 수 있었던 것이다.
다시 눈을 뜬 심청
도창자인 안숙선(유수정과 더블 캐스팅)이 전체를 아우르는 가운데, 심청은 두 사람의 소리꾼이 나누어 맡았다. 어린 시절의 심청으로는 민은경, 환생 이후의 심청으로는 이소연이 무대에 올랐다. 민은경의 단단한 소리와 이소연의 중후한 소리를 한 무대에서 선사하겠다는 기획 의도를 어렵지 않게 눈치챌 수 있다. 촉망받는 젊은 소리꾼들의 소리를 굳이 분산해 소비할 필요가 있을까. 이 와중에 주목되는 소리꾼은 역시 심봉사 역의 유태평양이다. 심청 역의 두 소리꾼보다 열 살쯤 아래인 그를 심봉사로 올려 극을 시종 이끌게 한 것은 가히 이 작품의 승부수라 할 만하다. 이면의 구현을 중요한 가치로 여기는 판소리에서 20대의 건장한 소리꾼에게 노쇠한 맹인 역할을 맡기는 것이 어찌 모험이 아니겠는가. 이는 소리에 집중하겠다는 연출자의 강단에 힘입은 것이기도 하겠다. 근래의 작품들에서 과거의 소년 명창 이미지를 완연히 넘어섰고 최근엔 대중에게도 친숙해진 유태평양에게 묵직한 과제를 던져줄 때가 된 것이다. 심봉사가 너무 젊고 건강하다는 인상이 수시로 몰입을 방해하려 들었으나 유태평양은 소리와 능청스러움으로 끊임없이 밀어냈다. 안숙선 명창이 쉰 살 넘어서까지도 여전히 춘향과 심청을 연기하던 2000년대 초반을 생각하면, 세대교체는 확실히 이루어졌다. 주연이 아닌 출연진의 소리도 하나하나 짱짱하게 전달된 점 또한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 소리꾼이 부채를 쥐고 있다는 것의 의미가 새롭게 와닿는 값진 경험이었다. 사실성의 훼손을 감수한 것 또한 연출가로서는 모험이었을 터이다.
어디 내 딸 좀 보자!
끝으로 짧게나마 이번 작품의 주제 지향을 언급해야겠다. 딸을 다시 만나 그 모습을 보고 싶어 하는 심봉사의 애절한 외침. 그 순간 심봉사만큼 눈길을 끈 것은 그 주변에 늘어앉은 다른 봉사들이었다. 그들은 심봉사와 한목소리로 ‘어디 내 딸 좀 보자!’를 외쳤다. 저마다 판소리 완창의 막바지에 이른 듯 온 힘을 다해 토하는 절규로 청중을 풀어주고 있었다. 한 부녀의 가정사가 아니라 공동체 구성원 각각의 애환을 녹여낸, 짧지만 인상 깊은 울림을 주는 정경이었다. 고전의 가치를 단편적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현재를 살아가는 각자의 고민에 비추어 보자는 메시지이리라. 지금 우리가 가장 간절히 보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이래저래 스케치하다 보니 찬사가 과한 듯도 하나, 필자는 원래 칭찬하기에 익숙한 사람이 아니다.
글 이태화 ‘일제강점기의 판소리 문화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논문 ‘창극 《심청전》 공연의 변천과 양식화 방안 모색’의 인연으로 이번 창극을 유심히 관람했다.
*더늠은 판소리 창자 개인이 사설과 음악 등을 새롭게 짜 넣은 소리 대목 혹은 특정 창자가 다른 창자들에 비해 월등히 잘 부르는 소리 대목을 지칭하는 용어이다. (전경욱, ‘한국전통연희사전’, 민속원, 2014, 31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