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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6월호 Vol. 341

삶을 견뎌온 사람들의 노래

리뷰 1┃국립국악관현악단 '모던 국악 기행-강원·영남의 힘'

굽이굽이 높은 산과 깊은 골짜기에서 거칠지만 꿋꿋하게 삶을 살아낸 사람들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오던 독특한 가락을 ‘메나리토리’라 한다.

메나리, 산에 피는 꽃, 산유화다.

2018년 4월 13일 |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강원도와 경상도는 산을 중심으로 영동과 영서, 영남으로 구분한다. 백두대간 중심부에 자리한 대관령을 중심으로 동쪽은 영동, 서쪽은 영서, 그리고 너무 높아서 새나 넘을 수 있다고 ‘조령(鳥嶺)’이라는 이름이 붙은 문경새재의 남쪽을 영남이라 한다. 굽이굽이 높은 산과 깊은 골짜기에서 거칠지만 꿋꿋하게 삶을 살아낸 사람들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오던 독특한 가락을 ‘메나리토리’라 한다.


지난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식에서 ‘정선아리랑’을 불러 감동을 전해준 김남기 명인은 이날 공연 영상에서 “정선아리랑을 왜 부르냐면, 나 여기 있소 하는 거요”라고 했다. 호랑이며 멧돼지가 슥 지나가도 이상하지 않을 깊은 산속, 어느 비탈에서 혼자 밭을 매던 사람이 두려움과 외로움에 소리를 하면, 반대편 비탈에서 그 소리를 받아 소리에 소리를 이어 갔다고. ‘메나리토리’는 그렇게 산에서 삶의 꽃을 피워내던 사람들의 소리였다.


그렇다면 산 아래 바닷가 사람들의 삶은 어땠을까. 언제나 온갖 먹을거리를 아낌없이 내주는 고마운 바다지만, 수십 수백 톤짜리 큰 배를 타고 나가도 큰바람 한번 불었다 하면 온 가족이 잠을 못 이루는 것이 바닷가의 삶이다. 망망대해에서는 시냇물에 뜬 가랑잎 정도도 되지 않을 작은 목선(木船)을 타고 바다로 나가야 했던 사람들의 두려움은 더 말해 무엇하랴. 사람의 능력으로는 어찌해볼 수 없는 거대한 자연의 힘. 그래서 바닷가 마을에서는 지금도 무속신앙이 끈질기게 이어져온다.


‘동해안별신굿’은 백두대간 너머 영동과 영남 지방을 아울러 해안 지방에서 전승되어온 마을굿이다. 북으로는 강원도 고성에서부터 남으로는 부산에 이르기까지, 동쪽으로는 바다가, 서쪽으로는 높은 산이 가로막은 좁고 긴 삶의 터전. 다른 지역과 교류하기가 쉽지 않은 까닭에 그 지역만의 독특한 가락과 춤을 지켜왔다. 굿은 집안 대대로 무업을 이어온 세습무가 주관하는데, 여자는 무녀, 남자는 음악을 담당하는 화랭이가 되어 자연에 맞서거나 순응할 줄 아는 사람들을 위해 지극정성으로 소리하고 춤추고 연주한다. 그 세월이 쌓이고 쌓여 예술로, 국가적인 보물로 인정을 받았다.


서도소리는 대동강 물을 먹어야 제대로 소리할 수 있다는 말이 있는데, 강원도와 영남 지방의 소리 또한 그 지역의 독특한 환경을 몸으로 살아내지 않은 사람이 제대로 구현해내기는 쉽지 않은 것 같다. 그래서인지 서도와 남도 지방의 가락과 춤사위에 비해 강원과 영남 지방의 가락과 춤사위는 수도권에서는 접하기가 쉽지 않다.

 

소박하지만 구수한 강원·영남의 힘

국립극장에서 시리즈로 마련하고 있는 ‘모던 국악 기행-강원·영남의 힘’은 이렇게 우리가 자주 접하기 어려운 귀한 가락과 춤사위를 직접 만날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이었다.

 

   

 
1부에서는 먼저 전통의 소리로, 예능보유자 김형조 명인의 ‘정선아리랑’과 김정희 명인이 이끄는 ‘동해안별신굿’을 마련했다. 예술가가 되기 위해 삶을 바치는 것이 아닌, 주어진 삶 속에서 자연스럽게 익히고 우러나와 예술이 되는 소리는 소박하지만 구수하고 깊다. 거기에 귀한 소리를 이어가고 있다는 자부심이 더해진 김형조 명인의 무대는 가슴 찡한 울림이 있었다. 동해안별신굿에서는 마지막 화랭이로 손꼽히는 김정희 명인과 누이 김정숙 무녀가 신을 모시는 청배, 부정을 씻어내는 부정굿, 그리고 모인 사람들을 위해 축원하는 세존굿을 선보였다. 무녀의 다양한 의상과 독특한 소리, 춤사위는 인상적이었고, 장단은 화려했다. 최근 동해안별신굿 예능보유자 김용택 명인의 별세 소식을 접하고 나니, 그야말로 신명(神明)이 나는 가락을 우리가 앞으로 얼마나 더 만날 수 있을지 안타까운 마음과 함께, 정말로 소중한 무대에 함께했다는 고마운 마음이 든다.


2부는 ‘모던 국악 기행’이라는 의미에 걸맞게, ‘메나리토리’를 바탕으로 창작된 음악을 선보이는 무대였다. 박범훈 작곡의 피리 3중주 ‘춤을 위한 메나리’에 이정식의 색소폰이 가세해 재즈의 느낌으로 풀어낸 ‘피리와 색소폰을 위한 삼중주-춤을 위한 메나리’, 박범훈 작곡의 ‘샤쿠하치와 고토를 위한 메나리’를 임교민이 실내악으로 편곡한 ‘한(恨), 삶, 메나리’, 그리고 배새롬 작곡의 초연곡 ‘밀양, 아리랑’을 선보였다. ‘춤을 위한 메나리’는 연주자 간의 호흡이 돋보였고, 실내악으로 구성된 ‘한, 삶, 메나리’와 ‘밀양, 아리랑’은 깔끔하고 조화로운 연주로 앞에서 흥분으로 가빠진 호흡을 차분하게 가라앉히며 음악 속으로 빠져들게 했다.


그러나 좋은 음악, 뛰어난 연주 속에서도 내내 마음 한쪽에 자리 잡은 의문은 ‘전통음악을 현대적으로 계승한다는 것’은 과연 무엇이냐는 점이었다. 이제는 깊은 산중에서 외로움과 두려움을 달래기 위해 정선아리랑을 불러야만 하는 사람도 없고, 바닷가에서는 굿으로 용왕님을 달래기보다는 첨단 장비를 더 믿는 편이다. 이런 시대에 전통은 어떻게 계승해야 하는가. 단순히 오선보에 그리는 가락과 장단만 가지고 될 것인가. 이 의문에 해결의 실마리가 되는 곡이 바로 배새롬 작곡의 ‘밀양, 아리랑’이었다. ‘밀양, 아리랑’은 아랑의 전설이 담긴 ‘밀양아리랑’에 근래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가지고 지켜본 밀양 집단 성폭행 사건을 담아낸 작품이다. 세월 따라 환경이 바뀌고 삶의 방식은 달라졌지만, 음악으로 풀어내는 우리 삶의 이야기는 크게 다르지 않겠구나, 현대의 시각으로 보면 오히려 전통이 달라질 수도 있겠구나 하는 작은 깨달음.


6월 29일에 열리는 ‘모던 국악 기행-제주·서도의 흥’에서도 그동안 우리가 자주 접하기 힘든 음악, 그리고 그 음악이 지금 우리 삶에 주는 울림을 만나는 시간을 만들어줄 것이란 기대를 가져본다.

 

남화정 국악 전문 방송작가. 동국대학교 불교대학 박사 과정을 수료했으며, 어린이 국악입문서 ‘사람이 있는 곳에 흘러라 우리 음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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