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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6월호 Vol. 341

경계 넘어 재발견한 우리 민족의 소리

프리뷰 4┃국립국악관현악단 '모던 국악 기행-제주·서도의 흥'

 

 

시대의 조류에 몸을 싣고 ‘민족의 소리’를 새삼 다시 생각하게 하는 장(場)이 관객 앞에 펼쳐진다.


지난 4월 27일 역사적인 판문점 선언 이후 문화계의 이목은 북한에 쏠렸다. 반세기 넘게 날을 세워온 남과 북은 소통의 실마리를 대개 문화 교류에서 찾아왔기 때문이다. 비록 각 장르의 정서는 너무 다른 채 진행돼왔지만, 전통예술만은 여전히 민족의 동질감을 환기하는 좋은 촉매다. 그런 점에서 이번 ‘모던 국악 기행’은 특히 주목할 만하다. 그동안 경기·남도·동부 지역을 통과하며 각 지역의 음악적 특색을 더듬어온 국립국악관현악단의 마지막 여정이 공교롭게 북한을 거치기 때문이다. 아울러 한국의 문화 지도를 그리는 작업에서 늘 대미를 장식해온 제주도 역시 이 뜻깊은 여정의 끝을 함께한다. 남에서 북으로, 혹은 북에서 남으로 70분 만에 한반도를 종단하는 이번 공연은, 이렇게 ‘남한 소리’의 반쪽짜리 탐색을 넘어선다. 시대의 조류에 몸을 싣고 ‘민족의 소리’를 새삼 다시 생각하게 하는 장場이 관객 앞에 펼쳐진다.

 

낯설지만 친근한 ‘건너편’의 음악
‘제주·서도의 흥’이 주제인 이번 공연은 제목처럼 지역이 아니라 전통이 지닌 정체성과 현대적 변주 가능성으로 나뉜다. 구태적인 구분을 벗어나 국악의 동시대성에 집중하려는 의지의 표현이다. 1부에선 서도와 제주 지역 명인의 노래와 연주로 지역별 특색을 소개하고, 2부에선 그 지리적 정서를 새롭게 재해석한 실내악을 선보인다.


1부 기행의 출발지는 온 국민의 관심이 쏠린 바 있는 휴전선 이북이다. 관객과 가장 먼저 만나는 것은 서도소리다. 서도는 평안도와 황해도를 가리키는 곳으로, 서도소리에는 거친 풍토에서 꿋꿋이 살아온 서도 지역민의 삶과 정서가 담겨 있다. 이번 공연에선 황해도 소리의 특성을 지닌 ‘난봉가’를 집중 소개한다. 우리에겐 ‘난봉꾼’이라는 말로 익숙한 난봉가는 주로 남녀 간의 사랑에 관한 곡이 많아 ‘사랑가’라고도 불렸다. 장기간 지속된 불황으로 방황하는 오늘날 청춘들의 처지처럼 서글프고 애절한 곡이 많아 흥미를 자아낸다. 이번 무대는 황해도 출신의 박기종 명인이 ‘긴난봉가’ ‘중난봉가’ ‘자진난봉가’ ‘별조난봉가’ ‘사설난봉가’ 등을 연이어 부르며 서도소리의 정수를 들려줄 예정이다.


다음 여정은 북쪽으로 더 올라가 함경도를 향한다. 중국·러시아와 접경 지역인 데다 한반도의 북쪽 끝인 함경도야말로 한국 관객에겐 가장 멀게 느껴지는 곳이다. 다만 기후나 생활환경에서 접경지의 지역민이 견뎌왔을 거친 일상만 짐작할 따름이다. 여기서 그 막연한 관객의 추측을 심정적으로 구체화하는 것이 최여영의 퉁소 연주다. 퉁소는 구슬프게 흐느끼다가도 쩌렁쩌렁하게 호통치기도 하면서 사람의 마음을 쥐고 흔든다.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향악과 당악에 모두 널리 쓰인 퉁소가 일제강점기 이후 배제된 것도 이러한 본성 탓이다. 비록 다른 관악기에 비해 다소 입지가 좁지만, ‘북청사자놀음’이 전승되는 함경도 북청에서 만큼은 퉁소가 여전히 주인공이 될 수 있는 곳이어서 더 의미가 있다. ‘애원성’ ‘아스랑가’ ‘농부가’ ‘라질가’ ‘신아우’가 잇달아 연주되는 동안 퉁소의 진면목을 발견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1부의 마지막은 한반도의 최남단으로 내려가 제주민요와 만난다. 제주는 과거 죄인을 보내는 유배지 중 하나였을 만큼 육지와 심리적·지리적 거리감이 형성됐던 땅이다. 육지와 떨어진 지리적 특성 하나만으로도 독자적인 문화를 꽃피워왔다. 그런 제주 고유의 개성은 고스란히 언어와 곡조에 담겨 ‘서우젯소리’나 ‘오돌또기’ 같은 제주민요로 전해진다. 고성옥 명창은 이 두 곡을 비롯해 ‘영주십경가’ ‘용천검’ ‘너영나영’ ‘이야홍타령’ 같은 ‘제주 냄새’ 나는 소리로 객석을 달굴 예정이다. 노랫말은 낯설어도 신명 나는 음률에 몸을 맡기다 보면 어느새 소리꾼들의 노래에 공명하게 될 것이다.

 

과거의 유산에서 현재 진행형의 소통 수단으로
전통음악의 힘은 시대성과 지역성에 기반을 둔 역사적·인류학적 특성에 기인하지만, 현대에 계승돼 동시대 사람들과 적극적으로 향유될 때 비로소 살아 숨 쉬는 존재가 된다. 2부의 역할은 바로 1부에서 소개된 전통음악의 현대적 가능성을 실험하는 것이다. 이에 서도 지역과 제주의 전통음악을 기반으로 새롭게 창작된 실내악 두 곡이 연주된다.


먼저 백대웅 작곡의 퉁소 협주곡 ‘만파식적의 노래’가 현대적인 실내악 버전으로 탈바꿈돼 첫선을 보인다. 2007년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처음 소개된 이 곡은 본래 3악장으로 구성돼 18분 동안 연주할 정도로 장대하다. 또, 긴 시간과 별개로 그 구성도 다양하고 알차다. 1악장은 자진모리장단으로 북청사자놀음의 퉁소 가락을 변주하고, 2악장은 남도민요를 기반으로 한 서정적인 선율이 애절하게 조화를 이룬다. 마지막 3악장에서는 변형한 엇모리장단이 현란하게 전개된다. 이미 원곡 자체가 상당히 현대적인 감각으로 작곡된 만큼, 홍정의 편곡으로 선보이는 버전에서는 기존의 연주 기교와 음색이 어떤 스타일로 편곡됐을지 기대를 모은다.


2부의 마지막이자 이번 ‘모던 국악 기행’의 끝을 장식하는 것은 제주민요를 소재로 한 곡이다. ‘봉지가’ ‘망건 짜는 소리’ ‘사대소리(김매는 소리)’ 등 제주민요는 이 곡의 모티프가 된다. 또 천혜의 자연환경에서 살아가는 제주 사람들의 정서는 작곡가 강은구의 솜씨로 음악에 묻어날 예정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제주와 북한 지방의 시간적·공간적 역사에 갇혔던 음악은 현대의 관객과 새롭게 만나게 되는 것이다.


네 차례의 음악 여행을 통해 관객과 만났던 모던 국악 기행은 이로써 긴 여정을 마무리한다. 사실 ‘모던 국악’이라는 작명에는 ‘국악’이라는 용어에 배어있는 ‘옛것’의 선입견을 극복하려는 고민이 엿보인다. 지난해부터 이어온 국립국악관현악단의 이 프로젝트는 그런 고민의 실천과 다름없었다. 각 지역에 전해지고 새롭게 재현되는 소리를 조명함으로써 관객과 동시대를 호흡하는 국악의 현주소를 짚어냈다. 특히 이번 ‘제주·서도의 흥’은 국악이 교과서나 국악 전문 공연장에서나 존재하는 것이 아님을 보여주고, 반 토막 난 반도 국가에 사는 우리의 지리적 정체성과 과제를 체감시키는 시간이 될 것이다. 이는 국악이 고색창연한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현재, 나아가 미래까지 연결된 소중한 문화 자산임을 깨닫는 기회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이제 마지막 무대를 기다리는 ‘모던 국악 기행’은 그 자체로 국악의 새로운 출발을 의미한다.

 

송준호 공연 칼럼니스트.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무용미학을 전공하고 ‘주간한국’과 ‘한국일보’ ‘더 뮤지컬’을 거쳐 공연과 여행에 관한 글을 쓰고 있다.

 

국립국악관현악단 ‘모던 국악 기행-제주·서도의 흥’
날짜      2018년 6월 29일
장소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관람료   R석 3만 원, S석 2만 원
문의      국립극장 02-2280-4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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