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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6월호 Vol. 341

풍부한 사설과 리얼리즘이 살아있는 소리

프리뷰 3┃국립극장 완창판소리 '정신예의 심청가-동초제'

 

 

 

6월 국립극장 완창판소리 무대에서는 정신예가 동초제 ‘심청가’를 부른다. 동초제 판소리는 현대 판소리의 대표적인 바디로 보성소리와 함께 현대 판소리의 양대 축을 이루는 소리다. 그런 만큼 동초제를 부르는 소리꾼도 수없이 많다.


동초(東超)는 김연수(1907~1974) 명창의 호인데, 그는 일제강점기부터 창극 활동을 활발히 했다. 1942년 서른다섯 살 젊은 나이에 창극 ‘심청전’을 연출해 오케 레코드에 취입吹入한 적이 있다. 이 음반은 현재 국립창극단의 창극 ‘심청전’의 원형이 되는 작품이다. 가령 인당수 뱃노래, ‘어가 어디냐? 수문 바우다. 수문 바우면 배 다칠라. 아따 야들아, 염려 마라…’ 하는 대목도 바로 오케 음반에 나오는 소리다. 김연수는 광복 후 초대 국립창극단장을 지냈고, 동초제가 국립창극단의 중심 소리 역할을 하게 되면서 이후 창극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끼쳤다. 판소리가 자생력을 갖추지 못한 상황에서 안정적인 공적 자금으로 운영되는 여러 창극단을 배경으로 연극소리를 지향하는 동초제는 자연스럽게 영토를 넓혀갈 수 있었다. 김연수는 판소리를 ‘연극’이라고 정의했고, 동초제는 창극에 최적화된 소리다. 그는 판소리 다섯바탕을 새로 짜서 창본으로 출판했고, 전 바탕을 녹음해 남겼으며, 제자 오정숙에게 전승함으로써 자신의 소리를 완벽하게 후세에 전했다.


동초제는 김연수가 완전히 새로 짰기 때문에 와전되거나 틀린 사설이 없다. 잘못되거나 불분명한 사설은 전부 고쳐버렸고, 사리에 맞지 않은 내용은 전부 합리적인 이야기로 개작했다. 그렇기 때문에 동초제의 사설 전달력은 다른 어떤 바디보다 빼어나다. 한편으로는 다른 바디에는 없는 여러 삽화를 추가함으로써 전체적인 공연시간이 매우 길게 늘어났다. 김연수의 녹음으로 보면 ‘춘향가’는 8시간, ‘심청가’는 5시간 30분에 달한다. ‘심청가’만 하더라도 정권진의 소리에 비해 2시간쯤 더 길다.


동초제에 들어있는 풍부한 삽화나 사설은 창극 무대에서 활용될 수 있도록 짜여있다. 동초제는 리얼리즘을 바탕으로 하는 창극 소리라고 할 수 있다. 가령 황성길 대목에서 심봉사와 뺑파의 수작, 여러 봉사의 통성명, 무릉태수 만나는 데, 방아타령, 안씨 맹인 대목은 그 하나하나가 훌륭한 연극의 한 장면이 될 수 있도록 풍부한 재담과 아니리로 짜여있다. 아마 황성길 대목만 가지고도 충분히 두어 시간짜리 창극 한 편을 짤 수 있을 것이다. 김연수의 사설은 그만큼 재미있고 표현도 극적이다.


그러나 이 소리를 혼자서 완창할 때는 상황이 다르다. 우선 긴 연주시간 때문에 완창을 하기에는 매우 부담스럽다. 그냥 완주하는 데 목표를 둔다면 그만이지만, 소리의 완성도를 감안한다면 상당히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부르는 사람도, 청중도 힘들기는 마찬가지다. 판소리는 연극성도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성음놀음이다. 장시간 소리 듣는 재미를 느끼지 못한다면 지루한 공연이 될 수 있다. 소리 공력은 물론이고 장시간 무대를 장악하기가 무척 힘들기 때문이다.


김연수에게 다섯바탕을 배운 이는 오정숙이 유일하고, 현재 동초제 전승자들은 모두 오정숙을 거쳐 배운 2, 3세대들이다. 오정숙의 제자들은 대체로 소리가 옹골차고 사설 전달력도 좋으며 연기력도 우수하다. 오정숙 명창은 빼어난 연기력으로 창극 무대에서 명성을 떨쳤지만 성음이 양성에 가깝다 보니 수리성이 지닌 풍부한 표현에서는 아쉬움이 있었다. 현대 판소리가 사진소리 경향을 띠고 있는 상황에서 성음마저 선생을 닮아가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창극은 단체 소리로 다른 사람과의 조화나 잘 계산된 연기를 보여주지만, 판소리는 자신만의 성음이나 개성을 보여주어야 하므로 서로 다른 미학을 갖고 있다.


정신예는 오정숙의 제자다. 다른 선생의 소리는 학교에서 조금씩 배운 것 이외에는 특별히 배우지 않고, 오정숙만 사사해 다섯바탕을 전부 배웠다고 한다. 정신예는 2007년 국립극장 무대에서 오정숙 명창과 제자들이 릴레이로 부르는 ‘춘향가’ 완창 때 이별가와 신연맞이~십장가 등을 2시간가량 부른 적은 있다. 이때 자료를 보면 정신예는 목이 맑고 야무진 데다 서정적인 표현이 능해서 여러모로 스승을 닮아있으나 아직 목이 완전히 잡히지 않아 안정감은 미흡했다. 그러나 이는 10년 전의 모습이므로 그동안 공부한 결과가 어떨지 기대된다. 국립극장 완창판소리 무대에 정신예를 초대한 것도 그만한 까닭이 있지 않을까 싶다. 2015년 이후에는 미주 지역에서 해외 교민들에게 판소리 보급 활동을 하고 있다 하므로 최근에는 국내에서는 그 소리를 접하기 어려웠다. 그의 개인 발표회나 완창 무대를 접하지 못한 일반인들에게는 미지의 소리꾼이요, 오정숙 명창이 숨겨두었던 제자로 다가올지도 모르겠다.


김여란 명창은 소리가 완전히 익기 전에는 제자들을 절대로 무대에 세우지 않았다고 한다. 국립극장 완창판소리가 신예들에게 문호를 여는 것은 약이 될 수도 있고 독이 될 수도 있다. 이 무대는 여느 개인 발표회나 경연대회와는 성격이 다르다. 단번에 청중을 사로잡으면 일약 스타로 떠오를 수도 있지만, 뚜렷한 실력을 보여주지 못하면 오래도록 부정적인 인상을 고착시키기 때문이다.


기왕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요즘 젊은 소리꾼들이 꿔준 돈 달라는 듯이 청중에게 추임새를 해달라고 주문하는 것을 자주 보게 된다. 예전에 어른들이 무대에서 소리할 때 그런 말을 하는 것을 본 기억이 없다. 판소리가 청중과 함께 판을 만들어가는 것은 사실이지만, 소리가 좋으면 청중은 하지 말라고 해도 저절로 추임새를 하는 법이다. 국립극장 완창판소리 무대는 초대가 아니라 입장료를 내는, 몇 안 되는 소리판이다. 소리꾼은 가짜 추임새에 귀를 팔지 말아야 하고, 청중도 마음에 없는 추임새를 해야 할 이유가 없다.

 

배연형 ‘판소리 소리책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고, 고음반 연구에 많은 성과를 남겼다. 현재 판소리학회장을 맡고 있다.

 

국립극장 완창판소리 ‘정신예의 심청가-동초제’
날짜      2018년 6월 23일
장소      국립극장 하늘극장
관람료   전석 2만 원
문의      국립극장 02-2280-4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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