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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6월호 Vol. 341

우리 음악에 홀리다

프리뷰 1┃예술감독 원일&음악감독 이아람


 

“신신신…” 마주 앉은 두 남자가 주문을 걸 듯 읊조린다. 올해로 아홉 번째를 맞은 여우락 페스티벌이 궁금한 이들을 위해 이들의 대화를 옮겨왔다. 

인터뷰 2018년 5월 3일 | 국립극장 뜰아래 연습장


그날 오후, 우박이 쏟아졌다. 서울시 중구 장충단로 국립극장. 극장 전속단체의 공연연습장인 ‘뜰아래 연습장’으로 내려가는 계단 한편에 우박 알갱이가 모여 있었다. 이상한 계절의 침략에 봄이 하얀 피를 흘리고 있었다. 길조일까. 7월 개막하는 2018 여우樂(락) 페스티벌의 원일 예술감독과 이아람 음악감독을 만나러 가는 길. 두 사람은 연습장 안에서 환한 미소로 정담을 나누고 있었다. “‘여우’락이니까 구미호처럼…” “한국음악에 계속 분란을…” “신신신…” 암호 같은 말을 송수신하는 두 사람 사이에 의자를 놓고 끼어 앉았다.

 

올해 여우락 페스티벌의 콘셉트는 무엇인가요?
원일 뿌리가 강한 것, 전통과 현재가 교차하는 것, 여기서만 볼 수 있는 새롭고 뜨거운 것, 대중적인 것…. 네 가지 정도로 요약됩니다.

 

젊은 대금 연주자 이아람 씨가 음악감독을 맡았는데, 원일 감독과는 인연이 있죠?
이아람 네. 한국예술종합학교 1학년 때(2000년) 원일 감독님의 관현악 지휘 수업을 들으며 처음 뵀습니다. 감독님이 결성하신 창작국악그룹 ‘푸리’의 팬이기도 했는데 마침 제가 졸업할 무렵, 창작음악앙상블 ‘바람곶’에 합류하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주셔서 함께 음악을 하게 됐죠. 제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준 멘토가 세 분 있습니다. 박용호(대금)·허윤정(거문고), 그리고 원일 선생님. 이런 자리에 덜컥 앉게 돼 영광입니다.
원일 주변에서 이아람 씨를 먼저 추천해준 분들도 있는데 저와 너무 가까운 관계이니 오히려 처음엔 주저했습니다. 오해의 소지도 있을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이아람 씨는 ‘나무’ ‘블랙스트링’을 포함한 여러 단체에서 활동하면서 또래 국악인 가운데 압도적이라고 할 정도로 작가적 마인드가 풍부한 창작자입니다. 무슨 일을 누가 벌였다더라, 하면 이 사람일 정도니까요. 이번 여우락의 11편 공연 중에 ‘after 산조’(7월 10일, 달오름극장)를 보시면 이아람이 어떤 사람인지 아마 알게 될 겁니다.

 

제목이 독특합니다. ‘after 산조’는 어떤 작품인가요.
이아람 원 감독님이 이끄는 개막 공연 ‘홀림’처럼, 저만의 작품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산조는 민속음악의 정수이자 기악의 꽃이죠. 그런데 대중에게 가까이 다가가기는 어렵잖아요. 그래서 기악이 조명받기를 바라며 산조 다음의 음악을 상상해봤습니다. 김보라(소리)와 조성재(아쟁·타악)부터 박혜리(아코디언·휘슬)·이원술(더블베이스)·이소월(비트메이킹)까지 다양한 분야의 솔로이스트 8명을 모았죠. 산조의 원형을 짙게 보여준 뒤 그에 대한 오마주를 할 것입니다.

 

정말 다양한 분야의 아티스트들이 모였네요. 이들이 보여줄 여우락의 핵심 키워드가 궁금합니다.
원일 바로 ‘신신신(信新신)’입니다. 믿을 만하면서도(信) 새롭고(新) 신나는 것을 뜻하지요. 믿을 신(信)이란, 이를테면 안숙선, ‘바람곶’, 안상수 같은 참가자나 ‘홀림’ 같은 공연은 그 면면만 봐도 음악적으로 추호의 의심이 들지 않죠. 새로울 신(新)은 아방가르드입니다. 올해 여우락의 중추를 이루는 주제죠. ‘정형과 비정형’(7월 11일, 하늘극장)을 통해 그룹 ‘잠비나이’가 두 곡 정도 신작을 초연할 겁니다. 해외에서도 기대할 무대죠. ‘아홉 개의 문’(7월 18일, 하늘극장)도 신(新)입니다. 호주의 드러머 사이먼 바커, 미국에서 활동하는 멀티 연주자 젠슈, 한국의 대금 연주자 겸 창작자 차승민이 함께합니다. 차승민은 문학을 화두로 한 실험적 즉흥음악의 길을 줄기차게 모색해온 아티스트입니다. 바커와 젠슈는 외국인이지만 각각 동해안별신굿과 가야금, 판소리를 배움으로써 한국음악을 자신의 음악 세계 일부로 만들어버린 연주자들이죠. 젠슈는 대만계 아버지, 동티모르계 어머니를 둔 미국인입니다. 동티모르가 지닌 암흑과 폭력의 역사와 페미니즘을 음악으로 표현합니다. 이전 여우락에서 일부 시도한 해외 연주자와의 협업이 만족할 만한 깊이로 이어지지 못한 적도 있는데, 이번에는 뭔가 보여줄 것 같습니다. ‘킹스턴 루디스카’와 연희컴퍼니 ‘유희’의 에너지 넘치는 무대는 ‘신나는 것’에 해당합니다.

 

‘소리길 begins’(7월 17일, 달오름극장)는 어떤가요.
원일 현재 한국에서 가장 주목하는 작곡가로 미국에서 활동하는 김택수 씨가 이끕니다. 서양음악의 테너가 우리 판소리를 소개한다든지 하는 위트와 유머를 기막히게 활용하는 분이죠. 전통과 근대의 남루하면서도 아련한 풍경, 전통의 마지막 얼룩 같은 것 있잖아요. 인사동에 가면 드는 이상한 기분. 이런 것들을 잡아서 재치 있게 풀어내는 게 작곡가 김택수의 장기입니다.
이아람 저는 그의 음악을 들으면 꼭 전통 가옥과 트렌디함이 공존하는 익선동에 가있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이미 전설이 된 창작음악앙상블 ‘바람곶’의 재결합 무대도 궁금합니다.
원일 ‘바리시나위’(7월 21~22일, 달오름극장) 말씀이군요. 바리데기 신화를 소재로 2006년에 공동 창작한 작품입니다. ‘바람곶’은 시나위의 박제된 정의를 현대화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최초로, 제대로 구현해낸 팀입니다. 이번 무대는 서양의 오디세이 같은 위대한 모험 이야기, 우리나라 무가(巫歌)의 귀환을 의미한다고 할 만하지요.
이아람 ‘바람곶’은 근 5년 활동을 하지 않았습니다. 요즘 20대 중후반인 후배들을 만나보니 ‘바람곶’을 보고 느낀 충격과 작법이 새 영역을 추구하는 데 기반이 됐다는 이야기들을 하더군요. ‘바람곶’이 제시한 새로운 길, 그 방법론이 아직도 유효함을 재확인해보고 싶습니다. 가장 기본적으로 요구되는 것은 연주력입니다. 개인이 지닌 연주력의 끝에서 새로운 음색이 나오고 그것들이 응축돼 ‘바람곶’만의 에너지가 만들어지거든요.
원일 이번 공연에서 ‘바람곶’은 기존 곡들을 충실히 재현하되 두 편 정도 새로운 작품을 더할 겁니다. 타악의 극단(한문 윗첨자로→)極端과 기악의 극단, 분리돼 있다 믿었던 두 개의 극단이 ‘바람곶’과 함께라면 하나가 될 수 있음을 목격하실 수 있을 겁니다. 사물놀이보다 흥겨우면서도 신비로운 음색을 표현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요.

 

  

 

‘홀림’(7월 6~7일, 달오름극장)에 시각 디자이너 안상수 씨의 참여도 눈에 띕니다.
원일 흩어지는 소리를 기호로 낚아챈 게 한글인데, 그것을 다시 우리 장단으로 분절시키는 무대입니다. 충돌의 게임이 재미날 거예요. 경북의 금릉빗내농악 예능보유자 손영만 선생을 비롯해 박은하·김정희·김복만, 저를 포함한 타악 연주자들, 그리고 안상수라는 또 다른 차원의 예술가가 비주얼 디렉터로 참여해 시각 영역까지 펼쳐낼 겁니다.

 

작년 여우락 개막 공연이 ‘장단 DNA’였는데, 드림팀이 다시 뭉치는군요. 그때는 부제가 ‘김용배적 감각’이었죠. 올해는 제목이 ‘홀림’이군요.
원일 좋은 음악이란 어쨌든 듣는 이를 홀리는 것입니다. 굿도, 명상도 결국엔 누군가를 홀리는 거죠. 홀림은 예술의 본질과 맞닿아 있어요.

 

듣다 보니 여우락에 홀리는 기분입니다.
원일 지난해 ‘노선택과 소울소스’가 소리꾼 김율희와 여우락 무대에 섰고, 그 콘셉트로 음반 녹음과 공연 활동을 했죠. 많은 이들을 홀린 무대였어요. 요즘 전 세계적으로 뜨고 있는 민요록밴드 ‘씽씽’은 2014년 여우락 공연 ‘제비·여름·민요’를 계기로 활동 범위를 확장하며 세계인을 홀리고 있죠.

 

‘안숙선의 지음(知音)’(7월 13~14일, 달오름극장)은 어떤 무대가 될까요.
원일 안숙선 선생의 실황 음반 ‘지음’(1994)은 두말할 나위가 없는 명반이죠. 지금도 공부의 재료로 삼을 정도로요. 1994년 연강홀 공연을 저도 봤는데 그때 출연한 분들이 다시 이번 무대에 섭니다. 돌아가신 두 분을 제외한 모든 출연진이요. 창작이 끼어들지 않은 순도 100퍼센트의 안숙선표 전통음악을 들을 수 있을 겁니다. 예년의 여우락에서 다양한 젊은 시도를 아우르다 보니 깊이와 전통이 아쉽다는 비판도 있었습니다. 현장에서 박수 받고 끝나는 것 말고, 올해는 지속적으로 거론될 깊이를 동반하고 싶었습니다.

 

6월에 강원도 철원 비무장지대(DMZ)에서 음악 페스티벌을 한다던데 여우락 공연 가운데 ‘카르마 DMZ’(7월 15일, 하늘극장)도 있네요.
이아람 이번 여우락 공연 가운데 ‘바람곶’에 이어 ‘제다이Jedi의 귀환’이라고 할 또 다른 공연입니다. ‘솔리스트 앙상블 상상’이죠. 강은일(해금), 유경화(타악·철현금), 허윤정(거문고). 각 분야 최고의 연주자들이 아이디어를 더했습니다.
원일 그 비장의 카드가 사운드 아티스트 김창훈입니다. 영화 ‘봄날은 간다’ 보셨죠? 배우 유지태 씨가 연기하는 배역처럼 필드 레코딩(야외 녹음)을 많이 하는 분입니다. 이분은 주로 DMZ에서 특이한 소리를 많이 채록해요. 얼었던 철교가 햇빛을 받아 녹는 소리, 특이한 새의 울음소리처럼 다양한 공간의 울림을 담죠. 철원 DMZ에 ‘도피안사’라는 절이 있답니다. 하루는 비를 피하려 처마 밑에 있는데 마침 울리는 범종 소리가 빗소리를 타고 물결처럼 맥놀이하며 다가오더라는 거예요. 최고라 불리는 연주자들의 음악에 이런 자연의 음향을 결합하면 새로운 장관이 나올 겁니다. 여우락 최초의 3D 입체 음향 공연입니다. 음향기술 감독과 다각도로 논의 중입니다.

 

요즘 남북 간 평화 분위기가 심상치 않습니다. 여우락을 통한 남북 문화 교류도 상상해볼 수 있겠어요.
원일 개인적으로 기회가 된다면 북한에 우리 음악의 흔적이 얼마나 남아있는지 평양에서 반년이든 1년이든 머물며 연구해보고 싶어요. 우리 여우락 팀들이 가서 ‘우리 음악이 살아있구나’ 하는 기분을 심어줬으면 좋겠어요.
이아람 북한의 기량과 남한의 깊이가 만나서 뭔가 새로운 것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요?
원일 ‘여우락 인 평양’? 그럼요, 해야죠.

 

두 감독이 생각하는 ‘여우락’, 여기 우리 음악이란 무엇입니까.
이아람 고민하며 찾아가는 과정에 있습니다. ‘바람곶’ 멤버로 2011년 처음 여우락 무대를 밟았을 때는 그저 국악 페스티벌이라는 생각밖에 못했습니다. 2015년 프랑스 플루트 연주자 조슬랭 미에니엘과 ‘우드 앤 스틸’을 공연하고 이듬해 최수열 지휘자와 협연, 지난해 ‘블랙스트링’ 멤버로 여우락 무대에 서면서 페스티벌을 바라보는 관점은 물론이고 제가 음악을 하는 관점까지도 달라지고 있음을 느꼈어요. 왜, 사람이 한 가지 말투로만 얘기하면 재미없잖아요. 웃고, 울고, 다양한 표정까지. 그것이 결국 우리 음악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난해 ‘블랙스트링’의 해외 공연으로 20여 개국 무대에 서면서도 느꼈어요. 관객은 연주자나 창작자보다 훨씬 더 앞서 있고 열려 있다는 것을요. 누군가의 취향을 먼저 고려하기보다는 가능성을 최대한 열어놓고 만들어가는 게 중요하다는 것 역시요. 그런 깨달음을 바탕으로 이번 페스티벌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원일 이제 여우락은 존재 자체로 음악가들에게 상상력을 제공하는 페스티벌이 됐다고 봅니다. ‘자우림’이든 ‘혁오’든 서태지든 만약 여우락에서 초청한다면 ‘우리 음악의 정체성 안에서 나는 뭘 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에 휩싸일 거예요. 이것이 여우락이 지닌 가장 중요한 지점이라고 봅니다.

 

임희윤 ‘동아일보’ 문화부 기자. 신문에 글을 쓰고, 라디오에서 이야기한다.
사진 전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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