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여우락 페스티벌은 총 11편의 프로그램을 준비했다. 파격보다는 심화라는 관점에서, 그리고 음악적 호기심을 자극하는 공연이라는 점에서 어느 때보다 감각적인 무대를 접할 수 있을 것이다.
2017년은 한국 대중음악의 분기점이라 해도 좋을 해다. 메인 스트림에서는 ‘방탄소년단’의 글로벌 돌파가 이뤄졌고, 독립음악 분야에서는 경기민요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민요록밴드 ‘씽씽’이 국제적으로 화제가 되었다. 이게 전부가 아니다. 압도적인 성과를 보인 것이 이들일 뿐, 실제로는 여러 음악가가 다양한 방식으로 해외 무대에 초청되거나 적극적인 활동을 벌였다. 국악밴드 ‘고래야’는 2016년부터 유럽 투어와 미국 투어를 진행했고, 부산 출신의 밴드 ‘세이수미’는 올 초부터 영국을 기점으로 한 달 동안 유럽 투어를 진행했다.
누군가에게 이런 흐름은 갑작스럽게 여겨지기도 하겠지만, 관점을 바꿔보면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지난 10년간 국내에서는 한국음악을 매개로 해외 마케터 및 기업과 만나는 접점을 다양하게 늘려왔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 진행하는 뮤콘을 비롯해 홍대 앞에서 벌어지는 잔다리 페스티벌과 국립극장 여우樂(락) 페스티벌이 대표적이다. 필자를 포함해 많은 사람이 최근 한국음악의 글로벌 진출과 그 성과에 대해 유튜브와 소셜미디어, 바이럴 효과 등을 언급하지만, 생각해보면 일이 돌아가기 위해서는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것이 우선일 수밖에 없다.
파격적 실험과 혁신적 접근
올해 여우락 페스티벌의 행보 역시 이런 맥락에서 살펴봐야 한다. 2010년 시작된 여우락의 슬로건은 ‘당신만 몰랐던 세계 속의 우리 음악’이었다. 지난 8년 동안 이 페스티벌의 성과는 바로 이 슬로건을 지키기 위한 노력과 같은 것이다. 일반적으로 기획의 정의를 문제 해결을 위한 합리적인 방법론이라고 할 때, 여우락의 기획 방향은 난처한 상황에 놓인 국악의 정체성이란 문제를 실험적 시도와 방법론의 심화라는 방식으로 돌파한다. 페스티벌 5주년 때는 재즈 보컬리스트 나윤선을 예술감독으로 초빙해 국악을 글로벌한 관점에서 재해석하는 방식을 취했다. 최근까지 여우락이 취하는 방식은 국악이 가지고 있는, 어렵고 오래되고 동시대와 거리가 있다는 편견을 비틀어 오히려 현대예술의 실험성과 국악의 음악적 경험을 통합하는 방식으로 드러났다. 이런 점이 여우락의 인지도와 지속성을 가능케 한 이유라고 본다.
이런 파격적 실험과 혁신적인 접근으로 여우락은 동시대의 한국음악을 가장 적절하게 보여주는 행사가 될 수 있었다. 그리고 지난해부터 여우락의 방향타를 쥔 원일 예술감독은 이 페스티벌이 이제는 음악뿐만 아니라 참여하는 음악가를 중심으로 한 프로그래밍 또한 심화의 단계로 나아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지난해 행사의 키워드가 ‘변화’ ‘진화’ ‘아이콘’이었다면 올해는 ‘신(信)’ ‘신(新)’ ‘신난다’ 키워드 세 개로 깊이에 초점을 맞추는 모양인 것도 그런 이유다. 특히 원일 예술감독과 함께 2018년 여우락을 맡게 된 이아람 음악감독은 ‘블랙스트링’의 멤버로 국악의 경계를 흐트러뜨리는 작업을 선보였다는 데 주목할 만하다.
이아람 음악감독이 속한 ‘블랙스트링’은 국악기와 양악기를 결합한 창작음악을 하는 밴드다. 장구·대금·거문고에 전기기타가 섞이는 이 음악은 어쩌면 록 같기도 하고, 한편 재즈처럼 들리기도 한다. 이것은 장르가 아닌 음악의 본질에 주목한 결과다. 그러니까 이들은 음악의 본성이라고 할 수 있는 소리에 주목하고, 그 소리를 듣는 사람들은 각각의 고유한 감상을 따라가면서 감각의 지도를 그린다. 그 점에서 이아람 음악감독의 합류는 여우락이 국악을 대하는 태도와 방법론에 대한 본질적 고민과 연결되어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다양한 음악가로 구성된 11개의 무대는 전통과 현대, 역사성과 동시대성의 조화를 경험하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올해 여우락 페스티벌은 총 11편의 프로그램을 준비했다. 이제까지와 다른 점이라면, 신인을 발굴하고 소개하는 무대보다는 중견 음악가들의 무대가 눈에 띈다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파격보다는 심화라는 관점에서, 올해는 ‘한국적 사운드’라는 맥락에서 자신만의 결과물을 꾸준히 만들어온 중견급 음악가들을 재발견할 수 있는 무대로 꾸며질 가능성이 높다. 혹자는 모험적이지 않다는 점을 언급할 수 있겠지만, 여우락의 입장에서는 늘 새로운 예술가를 발굴하는 데 주력했으므로 올해의 시도가 오히려 모험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신신신’ 세 가지 키워드로 여우락의 새로운 모험을 그려보자.
신信, 믿고 본다!
먼저, 지난해 개막 공연을 장식한 ‘장단 DNA’의 ‘홀림’(7월 6~7일, 달오름극장)을 눈여겨보게 된다. 이들은 ‘한글’을 소재로 우리의 리듬과 장단을 찾아가는 여정을 굿으로 재현하는데, 안상수 디자이너의 비주얼 아트와 더불어 경북의 금릉빗내농악 예능보유자인 손영만 남무의 결합으로 뜻밖의 상상력을 펼치리라 기대된다.
‘안숙선의 지음(知音)’(7월 13~14일, 달오름극장) 공연도 준비돼 있다. 안숙선의 경우 1994년 동명의 음반 발매 이후 24년 만에 재연하는 공연이다. 당대를 대표하던 레퍼토리를 다시 들려줄 예정으로, 21세기적 관점으로 우리 음악의 깊이를 탐구하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 본다.
한편, 해금 연주자 강은일을 비롯해 철현금의 유경화와 거문고의 허윤정이 협연하고, 비무장지대DMZ의 소리를 담은 김창훈의 사운드스케이프가 가세하는 ‘카르마 DMZ’(7월 15일, 하늘극장)는 한반도의 현실과 우리 음악이 놓이는 위치에 대해 재고할 기회를 준다. 음악은 감각의 총합일 수밖에 없다는 것. 이것은 한계이자 가능성이고, 감각의 지평을 열어젖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이 무대는 여우락에서 최초로 시도하는 3D 입체 음향 공연인데, 공연 현장에서만 접할 수 있는 경험이 되리라는 점에서 추천할 수밖에 없다.
또, 주목하는 무대는 ‘바람곶’의 ‘바리시나위’(7월 21~22일, 달오름극장)다. ‘하늘과 땅과 바다가 만나는 장소에서 불어오는 소리의 바람’이란 뜻의 이 그룹은 원일 예술감독을 비롯해 박순아(가야금)·이아람(대금)·박우재(거문고)·박재록(시타르) 등 내로라하는 연주자들로 구성됐다. 2012년 이후 처음으로 한 무대에 오르는 ‘바람곶’의 등장은 올해 여우락의 방향을 보여주는 단서이기도 하다. ‘바람곶’이 선보이는 영적인 사운드스케이프는 지구적 관점에서 국악이 놓인 위치를 가늠하게 하는 것이다.
신新, 새롭고 실험적이다!
한국음악을 소리의 실험이라는 맥락으로 접근하는 무대도 준비된다. 이아람 음악감독이 주도하는 ‘after 산조’(7월 10일, 달오름극장)는 우리 음악의 대표적인 민속 기악 독주곡인 산조의 원형과 이에 영감을 받아 변주하는 소리의 풍경을 재현한다. 평소 이아람 음악감독과 교감해온 재즈·실험음악·국악 분야의 실력파 독주자들이 함께한다.
대중음악과 전자음악, 실험음악이 만나는 무대도 준비된다. 이미 한국음악의 잠재성과 가능성을 폭발적으로 펼쳐낸 ‘잠비나이’의 ‘정형과 비정형’(7월 11일, 하늘극장)은 올해 무대에서 기존의 대표곡 외에 미발표 신곡을 처음으로 선보일 예정이다.
‘우리의 소리’라는, 우리와 가까울 것 같지만 사실상 정체불명의 감각을 살펴보는 공연으로는 작곡가 김택수와 지휘자 최수열의 컬래버레이션 ‘소리길 begins’(7월 17일, 달오름극장)가 있다. 여우락은 매년 우리 음악과 클래식 음악의 결합을 시도하는데, 소리의 길을 탐구하는 이번 시도에서 이들은 음악가라기보다는 과학자에 가깝게 느껴진다.
한편 우리 음악의 정체성 혹은 위치를 해외 음악가와의 협연을 통해 살펴보는 시간도 있다. 다국적 음악을 넘나드는 퍼포머이자 예술가인 젠슈와 호주 출신의 드러머 사이먼 바커, 대금 연주자 차승민이 협연하는 무대 ‘아홉 개의 문’(7월 18일, 하늘극장)은 한국 음악이 국경을 넘나들며 자생하는 현재의 상황을 그려내기에 충분할 것이다.
신난다, 흥이 폭발한다!
마지막으로 신나게 즐길 수 있는 세 팀의 무대도 빼놓을 수 없다. 먼저, ‘두번째달’과 송소희의 ‘팔도유람’(7월 7~8일, 하늘극장)이다. 크로스오버 밴드 ‘두번째달’은 경기민요·남도민요를 비롯해 궁중음악까지 아우르며 우리가 무심히 듣던 소리에 묻어있는 로컬리티(영문 윗첨자로→)locality의 흔적을 추적한다.
국내 정상급 스카밴드 ‘킹스턴 루디스카’와 연희컴퍼니 ‘유희’는 ‘유희스카’(7월 20일, 하늘극장)란 이름으로 우리 장단과 스카의 결합이라는 독특한 컬래버레이션을 보여줄 예정이다. 탈춤·풍물·굿을 포함한 한국의 전통 공연예술을 뜻하는 ‘연희’를 동시대적으로 재해석하는 이 그룹이 스카밴드와 만나 어떤 화학반응을 일으킬지 기대된다.
세계 민속음악에 대한 애정으로 만들어진 ‘하림과 블루카멜 앙상블’의 ‘먼 아리랑’(7월 21일, 하늘극장)도 주목할 만하다. 아랍·발칸반도·중앙아시아의 음악에 우리 민요와 근대 가요가 섞이는 순간을 포착하는 이들은 이국적인 정취와 우리의 정서가 어떻게 만나고 충돌하고 융화하는지에 대한 보고서에 가깝다. 특히 이런 공연은 악기와 음색 그 자체에 집중할 때 더 흥미롭게 볼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앞서 말했듯, 2018년 현재 여우락의 가치는 우리 음악을 실험적으로 선보이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 음악을 동시대 현대인의 감각을 성찰하기 위한 방법론으로 활용하는 데 있다. 국악 혹은 한국음악이 동시대와 멀어진 데는 원형의 보존을 우선으로 삼아온 국악 정책이 크게 작용했지만, 동시에 지나치게 실험적 시도에 천착한 것도 이유라고 본다. 한국의 소리를 재현하려는 시도는 일상적이고 자연스러운 감각으로 드러날 필요가 있다. 여기에는 음악의 고유한 특성, 우리 식으로 말하자면 ‘흥’에 기반을 둔 ‘신명’을 자극하는 소리가 필요하다. 음악적 호기심을 자극하는 공연이라는 점에서, 2018년 여우락 페스티벌에서 우리는 어느 때보다 감각적인 무대를 접할 수 있을 것이다.
글 차우진 음악평론가·문화평론가. 음악과 같은 대중문화의 생산물이 놓이는 위치를 통해 창의력과 콘텐츠 산업의 관계를 관찰하고 있다. ‘청춘의 사운드’ ‘대중음악의 이해’ 등을 썼다.
2018 여우樂락 페스티벌
날짜 2018년 7월 6~22일
장소 국립극장 달오름극장·하늘극장
관람료 전석 3만 원
문의 국립극장 02-2280-4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