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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6월호 Vol. 341

작품을 빛내는 다섯 가지 요소

SPECIAL┃국립무용단 '향연' 공연 미리보기


 

 

2015년 12월, 첫선을 보인 이래 매진 행렬을 거듭한 ‘향연’이 벌써 다섯 번째 관객을 만날 준비를 하고 있다. 작품을 더욱 빛나게 하는 요소를 한번 들여다보자.


국립무용단(예술감독 김상덕)은 2017-2018 국립극장 레퍼토리시즌의 대미를 ‘향연’으로 마무리한다. 국립무용단 ‘향연’은 전통적인 선과 멋과 흥을 간직하면서도 동시대적인 세련미를 더함으로써 예술적인 가치를 높였다. 21세기 감각으로 한국 전통춤을 재구성했다는 점에서 대중에게도 큰 호응을 일으킨 작품이다. 2015년 초연 당시 가장 먼저 반응한 이들은 일반 관객층이었으며 매해 재연될 때마다 이례적인 매진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올해는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을 벗어나 처음으로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 오르는 만큼 다시 한 번 이목을 끌고 있다. 관객에게 사랑받을 수밖에 없는 ‘향연’을 더욱 향연스럽게 만드는 요소를 다섯 가지로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우리 고유의 선과 멋과 흥을 간직한 ‘무(舞)’와 ‘악(樂)’
조선왕조 마지막 무동으로 일컬어지는 고(故) 김천흥 선생은 “조흥동의 춤은 언제든 안심하고 볼 수 있다”라고 말한 바 있다. 그 이유인즉 “족보에도 없는 정체불명의 동작이 튀어나와 깜짝 놀라는 것 없이 안심하고 한국무용을 감상할 수 있다”라는 것이다. 조흥동은 정식으로는 열일곱 명, 잠깐씩까지 합치면 수십 명의 스승에게서 배운 만큼 한국 춤사위를 가장 많이 보유한 무용가로 알려져 있다. 그의 춤 자산은 ‘향연’에 고스란히 반영돼 있다. 궁중무·종교무·민속무를 망라해 11개에 이르는 우리 춤의 고유한 선과 멋을 제대로 그려냄으로써 말이다. 이러한 ‘향연’을 찾는 일반 관객층이 두텁고 매해 재공연 때마다 반복해서 관람하는 이도 적지 않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동안 크고 작은 변형을 거쳐온 창작 춤사위에 익숙해지다 못해 식상한 일반 관객에게 오랜만에 접한 전통 춤사위는 도리어 신선하게 받아들여졌으며 근본에 대한 열망과 기대까지 충족시키고 있는 것이다.


우리 가락의 멋과 흥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는 음악도 마찬가지다. 시작해서 3분의 1 지점까지는 다소 현대적인 감각으로 편곡된 듯하지만 이 또한 전통 가락을 미니멀하게 덜어내는 작업을 거쳤을 뿐이다. 이후에는 춤에 어울리는 전통적인 가락에 충실하고 있다. 박재록 음악감독은 “구상 단계에서는 여러 시도를 해볼까도 싶었지만 연출가·안무가와 논의한 끝에 결국 춤과 어우러지는, 춤을 최대한 살리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다”라고 한다. 여러 요소가 망라된 총체적인 작품에서 무(舞)와 악(樂)이 면밀한 상호작용을 통해 묵직하게 중심을 잡아간다는 점이 고무적이다.

 

 

 

전통의 기품에 현대적 감각을 더한 ‘의상’
‘향연’에서 제일 먼저 각인되는 요소는 아무래도 의상이다. 초연 당시 의상 디자이너 정구호가 연출을 맡아 가장 공을 들인 부분이기도 하고 결과적으로 작품의 인상을 결정짓는 주요 요소로 작용했다. 200여 벌에 달하는 의상은 전통 한복의 실루엣과 소재를 그대로 살리면서 색감과 디자인에 현대적인 감각을 돋우고 있다.


우선 무대 위에서 춤출 때 과하거나 거치적거린다고 여겨지는 색감과 디자인을 많이 걷어냈다. 전통적으로는 한복 한 벌에 오방색을 모두 쓰곤 하는데, 무대 위에서 여러 벌 혹은 십수 벌이 등장했을 때 전체적으로 과한 느낌을 줄 수 있으므로 이를 장면마다 한두 가지 색으로 정리했다. 동시에 춤의 선과 멋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 긴 고름이나 넓은 소매 등의 디자인을 단순화하기도 했다.


특히 색감에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색감 자체가 주는 세련미가 강한 만큼 많은 공을 들였을 거라는 추측을 하게 된다. 정구호는 “색은 전통 오방색(흑·백·적·청·황)에 근거한다. 다만 발색에 대단히 신경 썼다. 빨간색 하나만 하더라도 수십 가지가 있는데 그중에서 가장 좋은 색을 찾아내는 데 오랜 시간이 소요됐다. 두 가지의 색을 조합할 때면 서로 어울리는 색을 선택하느라 몇 배의 시간을 소요하기도 했다. 오방색과 함께 그 중간 배색인 군청색·벽돌색·보라색 등을 뽑아내는 작업도 동시에 진행했다”라고 밝혔다. 이와 같은 섬세한 과정을 통해 전통의 기품은 살리면서도 현대적인 감각을 돋우는 의상을 완성한 것이다.

 

 

 

 

 

미니멀한 세련미가 돋보이는 ‘조명’과 ‘무대미술’
조명과 무대미술 역시 의상과 맥을 같이하면서 미니멀리즘을 극대화했다. 조명은 기존의 한국 창작무용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감정을 풍부하게 표현하는 입체적인 조명을 배제한 채 단순하고 납작한 색 조명을 활용해 춤의 선과 멋을 돋보이게 하는 데 집중했다. 무대미술에서는 매듭이 주요 오브제로 등장한다. 전통공예에서 노리개든, 부채든, 상자든 모든 마무리는 매듭으로 짓는다는 데서 영감을 얻어 공간의 짜임새를 마무리 짓는 느낌을 부여하고자 했다.


앞의 세 요소도 그러하지만 특히 조명과 무대미술은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을 벗어나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으로 갔을 때 신경 써야 할 부분이 많을 수밖에 없다. 극장마다 사이즈나 구조 혹은 객석의 각도가 다르고 따라서 같은 작품이 다르게 보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정구호 또한 이에 대해 인지하면서 ‘향연’을 대대적으로 재편성하기보다는 새로운 극장에 맞게 조율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항연’은 무용수들이 배운 그대로 전통적인 춤을 추는 데도 이를 어떠한 연출로 재구성하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새로운 이미지를 창출해낼 수 있다는 실례를 보여주고 있다. 이는 정구호의 미니멀리즘이 ‘근본에 대한 집착’에서 출발하기에 가능했다. “비우고 지우고 정리하고 재정립하는 게 한국무용에 동시대성을 입히는 나만의 방식”이라고 말하듯, 전통적인 선과 멋과 흥 그리고 기품을 살리기 위한 근본적인 연출로부터 미니멀한 세련미가 완성되었으며 곧 컨템퍼러리한 한국무용을 확립해 관객의 시청각을 사로잡은 것이다. 6월 초, 다시 한번 우리에게 다가올 ‘향연’을 다섯 가지 매력적인 요소에 집중해 음미해보는 건 어떨까 한다.

 

심정민 무용평론가이자 비평사학자. 한국춤평론가회 회장과 고려대학교 연구교수를 역임한 바 있으며 여러 대학에 출강하고 있다. 저서로는 ‘무용비평과 감상’(2015)과 ‘새로 읽는 뉴욕에서 무용가로 살아남기’(2016) 외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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