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자료실을 이전하면서 정리하다 1980년대 국립극장과 건물 내 회의실 모습까지 고스란히 담긴 비디오테이프를 발견했어요. 이렇게 사료적 가치가 높은 자료를 발굴하고 알릴 때 가장 보람을 느껴요”
쉼 없이 바쁘게 돌아가는 극장과 공연 뒤에는 이것에 대해 조용히, 그리고 묵묵히 기록하는 사람이 있다. 공연예술박물관 이주현 학예연구사는 국립극장 무대에 오르는 모든 공연 관련 자료를 기록하고 보관한다. 2008년에 입사해 올해로 입사 10주년을 맞은 이주현 학예연구사를 만났다.
“대학원 졸업하고 바로 극장으로 왔어요. 아마 제가 학부와 대학원에서 공부한 분야가 당시 공연예술박물관 업무와 딱 맞아떨어져서 운이 좋았던 것 같아요. 저 같은 경우가 흔치는 않거든요” 그녀는 고고미술사학을 전공하고 무용미학을 공부했다. 이렇게 역사와 미술 그리고 공연(무용)까지 두루 섭렵한 그녀는, 이러한 자신의 이력 덕에 공연예술박물관과 인연을 맺을 수 있었다고 말한다.
“박물관이나 미술관의 학예연구사(큐레이터)처럼 공연예술박물관의 학예연구사는 ‘극장’과 관련된 기록물과 공연 자료를 수집?관리하고 있어요. 예술 자료를 관리하는 예술자료원과 달리 공연예술박물관의 장점은 하나의 공연에 관련되는 포스터·전단·음향·영상·대본 등을 종합적으로 수집·소장하고 있다는 점이에요. 공연예술 변화의 맥락을 짚어가며 연구할 수 있는 토대가 잘 마련되어 있죠.”
극장의 각 부서에서 만들어내는 공연 자료는 그녀를 통해 수집되어, 현재 공연예술박물관 자료실과 수장고에는 21만여 점에 달하는 자료가 보관되어 있다. 디지털로 변환된 자료는 일부 온라인에서도 볼 수 있지만 현재 극장에 보관된 자료의 상당 부분은 저작권상 직접 방문해야만 열람할 수 있다.
겸손한 어투와 선한 인상의 이주현 학예연구사는 업무와 관련한 이야기를 할 때만큼은 목소리가 커지고 눈빛은 또렷이 빛났다. 그녀는 이제 곧 리모델링에 들어가는 해오름극장에 대한 기록을 담은 ‘사진기록화사업’에 대해 한층 활기찬 목소리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공연과 더불어 극장의 역사도 중요한 부분이에요. 국립극장은 반백년이 넘는, 한국 공연예술사에서 중요한 공간이기에 변화상을 기록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녀는 곧바로 건축물을 전문으로 기록하는 작가를 섭외해 리모델링 후 유실될 공간을 사진으로 기록해 남겼다. 그리고 광장에서부터 로비?극장 내부까지 브이아르(VR·가상현실)로 촬영해 기록해뒀다. 「미르」에 소개된 바 있는 해오름극장의 ‘회전무대’에 대한 이야기도 그녀를 통해 들을 수 있었다.
“촬영을 위해 해오름극장의 숨은 장소들을 견학하면서 회전무대 아래를 가봤는데 깜짝 놀랐어요. 지하라 눅눅할 것 같았는데 의외로 습도와 온도가 적당히 유지되어 굉장히 쾌적하더라고요. 거기에 극장 소품이 많이 보관되어 있었는데 쉽게 오염되는 천 같은 것도 곰팡이 하나 없이 보관이 잘돼서 오히려 관리가 필요한 소품들은 그곳에 보관한다고 하더라고요.”
이주현 학예연구사는 올해 이런 해오름극장의 재밌는 자료를 어떻게 공개할지 고민 중이다. 해오름극장 곳곳에 전시되어 있는 예술작품들을 리모델링이 시작되기 전에 철거하고 보관하는 작업도 최근 그녀가 주력하는 업무 중 하나다.
“이게 보통 작업이 아닐 것 같아요. 해오름극장에 전시된 작품들이 워낙 커서 문을 통해 나갈 수가 없거든요. 시설관리팀과 논의하고 있는데… 리모델링에 들어가고 해오름극장 유리창을 철거하는 날에 맞춰 크레인으로 다 옮겨야 해요. 엄청난 작업이죠.”(웃음)
흔히 학예연구사를 박물관이나 미술관의 꽃으로 비유하지만 공연을 중심으로 운영되는 극장 소속의 학예연구사는 끊임없이 물 밑에서 발을 움직이는 백조와 같다. 10년 전 개관을 준비하던 그때나 지금이나 그녀는 지금도 하고 싶고 또 해야 할 일이 많아 바쁘다.
글 박혜은 국립극장 홍보팀 | 사진 전강인